헤리트 베르크헤이더 Gerrit Berckheyde

등록 2003.08.12.
하를렘 1638-1698 하를렘

작품번호 4.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와 호프페이퍼 호수의 풍경, 1690년경

View of Hofvijver Lake in The Hague with the Mauritshuis, c. 1690



캔버스에 유채, 58 x 68.5 cm

서명 기재

지붕 꼭대기에 있는 네 개의 굴뚝으로 식별되는 마우리츠하위스는 이 작품의 중앙 뒷 배경에 그려져 있다. 17세기 당시 시청사였던 이 건물에는 현재, 이번 전시회에 그림을 대여해 준 미술관이 들어서 있다. 마우리츠하위스의 오른쪽에 있는 둑을 따라 늘어선 건물들은 대규모 공업단지의 일부이다. 13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절충주의적 구조물들은 네덜란드의 백작들이 살던 성의 일부로서, 네덜란드 공화국의 총독을 지낸 오란녀家가 여러 세대에 걸쳐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대규모의 보수와 신축에도 불구하고, 이 저택의 특징은 오늘날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세 방향에서 성을 둘러싸고 있는 운하의 일부로 만들어진 호프페이퍼 호수를 따라 말을 탄 사냥꾼들이 무리지어 있으며, 이 그림 속에 등장하는 다른 건물들 중에서도, 두 그루 나무의 오른쪽으로 커다란 창문이 있는 궁정 예배당 건물을 찾아낼 수 있다. 이 작품 속에 묘사된 건물들은 1814년 이후로 네덜란드 정부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17세기 말에 헤이그를 묘사한 그림이나 오란녀家가 살던 이 대저택을 그린 그림들은 매우 인기를 끌었고, 특히 이 가문의 새로운 귀공자였던 빌럼 3세(1650-1702)가 등극한 1672년 이후로는 더욱 그러했다. 그리고 그 결과, 이 도시와 오란녀가문 간의 역사적 유대관계가 회복되었다. 헤리트 베르크헤이더가 이 그림을 완성했던 1690년 무렵이 되면 오란녀家의 인기는 절정에 달한다. 이어 1677년에 빌럼 3세가 영국의 공주 메리 스튜어트(Mary Stuart, 1662-1695)와 결혼하고, 1689년에 이들 부처는 영국의 왕위에 오르게 되었으며, 그로부터 2년 후 총독 겸 국왕이었던 빌럼 3세는 자신의 조국을 당당히 물려받게 되었다. 그래서 이 장면은 한때, 빌럼 3세가 헤이그에 잠시 머물던 때를 그린 것이라고 여겨지기도 했다.

화면의 오른쪽 전경에는 기품 있는 일행들이 말을 탄 채로 ‘감옥의 문Prisons Gate`이라고 불리는 문을 통과하고 있다. 이 감옥 위에는 황새 둥지가 있는데,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이 새를 상징으로 삼는 이 도시의 문장이다. 사냥꾼들 뒤로는 두 명의 말 탄 나팔수들이 뒤따르고 있으며, 몰이꾼과 사냥견을 데리고 나선 매사냥꾼이 그 뒤를 따라가고 있다. 사냥꾼들은 말을 쉽게 몰면서 나아가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마구를 쥐고 있다. 또 두 그루의 나무 옆에는 매사냥꾼이 있는데, 그의 사냥용 매들은 채찍 위에, 그 중 한 마리는 그의 장갑낀 손 위에 앉아 있다. 그리고 그는 채찍과 사냥용 부대자루를 든 몰이꾼과 대화를 나누는 중이다. 그리고 이 문의 오른 쪽에 아이와 함께 앉아 있는 거지 여인은, 사냥이 엘리트들의 오락이라는 사실을 강조해준다.

소장경로 : 1956년 판 덴 보스W.A.van den Bosch 기증

참고문헌 : The Hague 1970, no. 48; Lawrence 1991, p. 72

하를렘 1638-1698 하를렘

작품번호 4.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와 호프페이퍼 호수의 풍경, 1690년경

View of Hofvijver Lake in The Hague with the Mauritshuis, c. 1690



캔버스에 유채, 58 x 68.5 cm

서명 기재

지붕 꼭대기에 있는 네 개의 굴뚝으로 식별되는 마우리츠하위스는 이 작품의 중앙 뒷 배경에 그려져 있다. 17세기 당시 시청사였던 이 건물에는 현재, 이번 전시회에 그림을 대여해 준 미술관이 들어서 있다. 마우리츠하위스의 오른쪽에 있는 둑을 따라 늘어선 건물들은 대규모 공업단지의 일부이다. 13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절충주의적 구조물들은 네덜란드의 백작들이 살던 성의 일부로서, 네덜란드 공화국의 총독을 지낸 오란녀家가 여러 세대에 걸쳐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대규모의 보수와 신축에도 불구하고, 이 저택의 특징은 오늘날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세 방향에서 성을 둘러싸고 있는 운하의 일부로 만들어진 호프페이퍼 호수를 따라 말을 탄 사냥꾼들이 무리지어 있으며, 이 그림 속에 등장하는 다른 건물들 중에서도, 두 그루 나무의 오른쪽으로 커다란 창문이 있는 궁정 예배당 건물을 찾아낼 수 있다. 이 작품 속에 묘사된 건물들은 1814년 이후로 네덜란드 정부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17세기 말에 헤이그를 묘사한 그림이나 오란녀家가 살던 이 대저택을 그린 그림들은 매우 인기를 끌었고, 특히 이 가문의 새로운 귀공자였던 빌럼 3세(1650-1702)가 등극한 1672년 이후로는 더욱 그러했다. 그리고 그 결과, 이 도시와 오란녀가문 간의 역사적 유대관계가 회복되었다. 헤리트 베르크헤이더가 이 그림을 완성했던 1690년 무렵이 되면 오란녀家의 인기는 절정에 달한다. 이어 1677년에 빌럼 3세가 영국의 공주 메리 스튜어트(Mary Stuart, 1662-1695)와 결혼하고, 1689년에 이들 부처는 영국의 왕위에 오르게 되었으며, 그로부터 2년 후 총독 겸 국왕이었던 빌럼 3세는 자신의 조국을 당당히 물려받게 되었다. 그래서 이 장면은 한때, 빌럼 3세가 헤이그에 잠시 머물던 때를 그린 것이라고 여겨지기도 했다.

화면의 오른쪽 전경에는 기품 있는 일행들이 말을 탄 채로 ‘감옥의 문Prisons Gate`이라고 불리는 문을 통과하고 있다. 이 감옥 위에는 황새 둥지가 있는데,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이 새를 상징으로 삼는 이 도시의 문장이다. 사냥꾼들 뒤로는 두 명의 말 탄 나팔수들이 뒤따르고 있으며, 몰이꾼과 사냥견을 데리고 나선 매사냥꾼이 그 뒤를 따라가고 있다. 사냥꾼들은 말을 쉽게 몰면서 나아가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마구를 쥐고 있다. 또 두 그루의 나무 옆에는 매사냥꾼이 있는데, 그의 사냥용 매들은 채찍 위에, 그 중 한 마리는 그의 장갑낀 손 위에 앉아 있다. 그리고 그는 채찍과 사냥용 부대자루를 든 몰이꾼과 대화를 나누는 중이다. 그리고 이 문의 오른 쪽에 아이와 함께 앉아 있는 거지 여인은, 사냥이 엘리트들의 오락이라는 사실을 강조해준다.

소장경로 : 1956년 판 덴 보스W.A.van den Bosch 기증

참고문헌 : The Hague 1970, no. 48; Lawrence 1991, p.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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