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언론관

등록 2007.09.21.
지난 3일 방송의 날 축사에서 대통령은 “(취재지원 선진화와 관련) 누구와도 토론할 용의가 있으며 공무원 접촉 문제도 불편이 없도록 합의할 용의가 있다”고 했습니다. 한 발 물러서는 것 같지만 현란한 수사 속에 감춰진 언론관은 여전히 왜곡되어 있었습니다.



대통령은 “힘들지만 참여정부의 역사적 책임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다”고 대 언론투쟁의 투사(鬪士)처럼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언론에 일부 우월적 지위가 있었다. 언론권력은 절제해야한다”고도 했습니다. 정치보다 언론이 우위에 있다는 발상이며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말입니다.

총칼로 다스릴 수 없는 민주 사회에서 우월적 지위란 ‘정보와 자료에 대한 독점적 접근권’ 입니다. 세상에 어느 언론이 대통령이나 공무원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습니까. 언론의 일은 권력이 가진 혹은 감추려고 하는 정보를 발굴, 선택, 편집하는 것입니다. 정보독점에 있어 정부와 언론은 50대50대의 동등한 권력을 갖고 싶어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관료 집단은 천사가 아닙니다. 언제라도 게으름과 부패의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번 변양균 김상진 게이트에서도 드러나고 있지만 오랜 군사독재시대의 권위주의적 관행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 관료들은 비밀주의의 타성이 깊습니다. 최근에 보도된 신발 밑창에 뇌물 통장을 깔고 다니는 교육부 국장 같은 공무원들이 한둘이겠습니까. 언론이 없다면 이런 일들이 어떻게 알려지겠습니까.

대통령은 “언론과의 유착 관계 청산이 이번 정부와의 숙명적 만남”이라고 했습니다. 정작 쾌재를 부르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공무원들입니다. 그들은 대통령을 우군으로 삼아 기꺼이 언론탄압의 대리인이 되어 국민 감시망을 제멋대로 치워버리려 하고 있습니다. 인권과 민생에 가장 취약한 경찰이 청와대를 놀래 킬 정도로 정보접근을 제한하는 데 앞장선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대통령이 언론을 업적 홍보와 실정(失政)변명의 수단 정도로 생각하고 있으니 김만복 국정원장 같은 사람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마나 브리핑을 하면서 자기노출에 급급한 공무원들을 질타하지는 못할망정 정정보도와 반론보도에 “감동받았다” “언론에 소송 걸면 점수를 주겠다”는 황당한 언론관을 갖고 있는 대통령이 있는 한 국민의 알권리 보장은 요원합니다.

대통령은 “언론개혁의 1차과제인 언론자유에 있어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는 감히 해결되었다고 본다”며 “시장권력으로부터 자유, 사주로부터 기자의 자유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남은 숙제”라고 했습니다. 자본주의 시장의 기본원리조차 모르는 무지한 말입니다.



언론이라는 재화는 정부가 간섭하는 공공재(公共財)가 아닙니다. 시장을 토양으로 태어나고 존재하는 자본주의의 산물입니다. 정부의 간섭이나 역할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정부가 언론을 자유롭게 해 주겠다는 발상은 국민 위에서 국민을 훈육 대상으로 보는 권위주의적 발상입니다.

대통령은 언론이 밉고 통제, 간섭, 탄압하고 싶은 유혹이 일더라도 참아야 합니다. 건전한 시민의식을 가진 국민들이 알 권리를 막는 정부의 부당한 시도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허문명 논설위원 ansangelhuh@donga.com

지난 3일 방송의 날 축사에서 대통령은 “(취재지원 선진화와 관련) 누구와도 토론할 용의가 있으며 공무원 접촉 문제도 불편이 없도록 합의할 용의가 있다”고 했습니다. 한 발 물러서는 것 같지만 현란한 수사 속에 감춰진 언론관은 여전히 왜곡되어 있었습니다.



대통령은 “힘들지만 참여정부의 역사적 책임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다”고 대 언론투쟁의 투사(鬪士)처럼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언론에 일부 우월적 지위가 있었다. 언론권력은 절제해야한다”고도 했습니다. 정치보다 언론이 우위에 있다는 발상이며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말입니다.

총칼로 다스릴 수 없는 민주 사회에서 우월적 지위란 ‘정보와 자료에 대한 독점적 접근권’ 입니다. 세상에 어느 언론이 대통령이나 공무원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습니까. 언론의 일은 권력이 가진 혹은 감추려고 하는 정보를 발굴, 선택, 편집하는 것입니다. 정보독점에 있어 정부와 언론은 50대50대의 동등한 권력을 갖고 싶어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관료 집단은 천사가 아닙니다. 언제라도 게으름과 부패의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번 변양균 김상진 게이트에서도 드러나고 있지만 오랜 군사독재시대의 권위주의적 관행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 관료들은 비밀주의의 타성이 깊습니다. 최근에 보도된 신발 밑창에 뇌물 통장을 깔고 다니는 교육부 국장 같은 공무원들이 한둘이겠습니까. 언론이 없다면 이런 일들이 어떻게 알려지겠습니까.

대통령은 “언론과의 유착 관계 청산이 이번 정부와의 숙명적 만남”이라고 했습니다. 정작 쾌재를 부르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공무원들입니다. 그들은 대통령을 우군으로 삼아 기꺼이 언론탄압의 대리인이 되어 국민 감시망을 제멋대로 치워버리려 하고 있습니다. 인권과 민생에 가장 취약한 경찰이 청와대를 놀래 킬 정도로 정보접근을 제한하는 데 앞장선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대통령이 언론을 업적 홍보와 실정(失政)변명의 수단 정도로 생각하고 있으니 김만복 국정원장 같은 사람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마나 브리핑을 하면서 자기노출에 급급한 공무원들을 질타하지는 못할망정 정정보도와 반론보도에 “감동받았다” “언론에 소송 걸면 점수를 주겠다”는 황당한 언론관을 갖고 있는 대통령이 있는 한 국민의 알권리 보장은 요원합니다.

대통령은 “언론개혁의 1차과제인 언론자유에 있어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는 감히 해결되었다고 본다”며 “시장권력으로부터 자유, 사주로부터 기자의 자유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남은 숙제”라고 했습니다. 자본주의 시장의 기본원리조차 모르는 무지한 말입니다.



언론이라는 재화는 정부가 간섭하는 공공재(公共財)가 아닙니다. 시장을 토양으로 태어나고 존재하는 자본주의의 산물입니다. 정부의 간섭이나 역할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정부가 언론을 자유롭게 해 주겠다는 발상은 국민 위에서 국민을 훈육 대상으로 보는 권위주의적 발상입니다.

대통령은 언론이 밉고 통제, 간섭, 탄압하고 싶은 유혹이 일더라도 참아야 합니다. 건전한 시민의식을 가진 국민들이 알 권리를 막는 정부의 부당한 시도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허문명 논설위원 ans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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