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김진주 그리고 아버지…

등록 2007.11.07.
80년대 대학을 다니신 분들은 박노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노동의 새벽’이라는 시집을 쓴 시인이지요. 한동안 얼굴 없이 시집만 내서 ‘익명의 시인’으로 알려졌었는데 ‘남한사회주의노동당동맹’이라는 당시만 해도 경천동지할 사회주의 정당을 만든 주인공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얼굴을 보였습니다. 80년대 아이콘이라 할 만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주인공은 박 시인이 아니라 그의 아내 김진주 씨입니다.

그녀가 얼마 전 책을 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버지의 삶을 정리한 것입니다. 알고 보니 그녀의 아버지는 우리나라에서 라디오를 처음 만든 엔지니어더군요. 책은 단순히 개인적인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아니라 젊은 시절 아버지의 세대를 부정했던 딸이 이제는 아버지의 삶을 적으며 아버지 세대를 이해하게 되는 화해와 소통의 기록입니다.

김진주 씨는 남편과 같이 구속이 되면서 화제가 됐습니다. 이화여대 약대를 졸업한 엘리트였고 대형병원 약사로 일하다 노동 운동에 뛰어든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여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지요. 부모 입장에서는 얼마나 속을 끓었겠습니까.

책에는 그런 딸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가슴 아픔이 그대로 적혀있습니다. 금지옥엽 키운 외동딸이, 부모 말이라면 곧이곧대로 따르던 모범생 딸이 갑자기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달라지더라는 거지요.

유신말기, 데모가 끊이지 않았던 시절 대학에 들어가게 된 딸은 이종사촌 대학생 오빠가 데모를 하다가 잡혀가자 운동권을 기웃거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급기야 대학을 졸업하고 백병원 약국에 들어갔지만 이내 때려치우고 구로공단에서 야학생활을 한다면서 수시로 가출을 했고 이제는 아예 미싱사로 일하겠다고 하더니 급기야 야간상고를 나온 노동자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아버지는 딸에 대한 서운함 때문에 사위 얼굴도 보기 싫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첫인상에 사위 감이 인상이 맑고 한눈에 봐도 머리가 좋은 사람이란 걸 느끼게 되었답니다. 결국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혼을 승낙하게 됩니다.

결혼 후에도 딸의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지요. 사회주의자를 공언하며 4년 동안 수감생활을 했고 출소 후 3년간은 남편 옥바라지를 하느라 청춘을 보냈으니 말이지요.

딸은 그러나 늦게야 철이 듭니다. 감옥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를, 아버지의 삶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아버지는 일본에서 공업전문학교를 다니고 LG전자인 전신인 금성사에서 일했으니 ‘비겁한 친일 협력자였고, 군사독재와 자본가의 하수인이다’라고 생각했었다는 겁니다. 그러다 감옥에 갇힌 후에야 비로소 생각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일제 치하로부터 해방정국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체득한 기술의 진보를 통해 아버지가, 그리고 아버지 세대가 얼마나 우리 삶을 밝게 열어 주었는지, 그리고 한 엔지니어로서 얼마나 고뇌에 찬 나날을 고군분투하며 살아 왔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거지요.

딸은 책에서 아버지가 부산 연지동 라디오 공장에서 일할 때 불쑥 방문한 박정희 장군과의 만남이라는 일화를 전하면서 한강의 기적을 있게 한 박 대통령의 성취와 그 세대의 성취를 보게 되었다면서 박정희에 대한 증오를 걷어냈다고 말합니다.

한때 이념의 틀로 세상을 보려고 했던 김진주 씨는 나이가 들면서, 그리고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면서 이념을 걷어내고 삶을 보다 복잡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거지요.

김 씨 부녀 이야기는 그 시대를 겪은 집안이라면 결코 드물지 않은 체험일 것입니다.

이제 민주화 세력이 주류가 되었으니 김진주 씨도 남편 박노해 씨도 당당히 권력을 누릴 만도 한데 두 사람은 여전히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인권 운동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늘 변화하는 현실 앞에 눈감지 않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두 사람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 삶의 어둠과 그늘의 편에서 헌신하는 수행자처럼 보입니다.

‘아버지의 라디오’를 여러분도 함께 읽으며 우리가 진정 살아가면서 배우고 지켜야할 것들이 어떤 것들인지 생각해보는 여유롭고 따뜻한 가을이 되시기를 빌겠습니다. 이상 3분 논평 이었습니다.

80년대 대학을 다니신 분들은 박노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노동의 새벽’이라는 시집을 쓴 시인이지요. 한동안 얼굴 없이 시집만 내서 ‘익명의 시인’으로 알려졌었는데 ‘남한사회주의노동당동맹’이라는 당시만 해도 경천동지할 사회주의 정당을 만든 주인공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얼굴을 보였습니다. 80년대 아이콘이라 할 만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주인공은 박 시인이 아니라 그의 아내 김진주 씨입니다.

그녀가 얼마 전 책을 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버지의 삶을 정리한 것입니다. 알고 보니 그녀의 아버지는 우리나라에서 라디오를 처음 만든 엔지니어더군요. 책은 단순히 개인적인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아니라 젊은 시절 아버지의 세대를 부정했던 딸이 이제는 아버지의 삶을 적으며 아버지 세대를 이해하게 되는 화해와 소통의 기록입니다.

김진주 씨는 남편과 같이 구속이 되면서 화제가 됐습니다. 이화여대 약대를 졸업한 엘리트였고 대형병원 약사로 일하다 노동 운동에 뛰어든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여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지요. 부모 입장에서는 얼마나 속을 끓었겠습니까.

책에는 그런 딸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가슴 아픔이 그대로 적혀있습니다. 금지옥엽 키운 외동딸이, 부모 말이라면 곧이곧대로 따르던 모범생 딸이 갑자기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달라지더라는 거지요.

유신말기, 데모가 끊이지 않았던 시절 대학에 들어가게 된 딸은 이종사촌 대학생 오빠가 데모를 하다가 잡혀가자 운동권을 기웃거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급기야 대학을 졸업하고 백병원 약국에 들어갔지만 이내 때려치우고 구로공단에서 야학생활을 한다면서 수시로 가출을 했고 이제는 아예 미싱사로 일하겠다고 하더니 급기야 야간상고를 나온 노동자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아버지는 딸에 대한 서운함 때문에 사위 얼굴도 보기 싫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첫인상에 사위 감이 인상이 맑고 한눈에 봐도 머리가 좋은 사람이란 걸 느끼게 되었답니다. 결국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혼을 승낙하게 됩니다.

결혼 후에도 딸의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지요. 사회주의자를 공언하며 4년 동안 수감생활을 했고 출소 후 3년간은 남편 옥바라지를 하느라 청춘을 보냈으니 말이지요.

딸은 그러나 늦게야 철이 듭니다. 감옥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를, 아버지의 삶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아버지는 일본에서 공업전문학교를 다니고 LG전자인 전신인 금성사에서 일했으니 ‘비겁한 친일 협력자였고, 군사독재와 자본가의 하수인이다’라고 생각했었다는 겁니다. 그러다 감옥에 갇힌 후에야 비로소 생각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일제 치하로부터 해방정국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체득한 기술의 진보를 통해 아버지가, 그리고 아버지 세대가 얼마나 우리 삶을 밝게 열어 주었는지, 그리고 한 엔지니어로서 얼마나 고뇌에 찬 나날을 고군분투하며 살아 왔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거지요.

딸은 책에서 아버지가 부산 연지동 라디오 공장에서 일할 때 불쑥 방문한 박정희 장군과의 만남이라는 일화를 전하면서 한강의 기적을 있게 한 박 대통령의 성취와 그 세대의 성취를 보게 되었다면서 박정희에 대한 증오를 걷어냈다고 말합니다.

한때 이념의 틀로 세상을 보려고 했던 김진주 씨는 나이가 들면서, 그리고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면서 이념을 걷어내고 삶을 보다 복잡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거지요.

김 씨 부녀 이야기는 그 시대를 겪은 집안이라면 결코 드물지 않은 체험일 것입니다.

이제 민주화 세력이 주류가 되었으니 김진주 씨도 남편 박노해 씨도 당당히 권력을 누릴 만도 한데 두 사람은 여전히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인권 운동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늘 변화하는 현실 앞에 눈감지 않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두 사람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 삶의 어둠과 그늘의 편에서 헌신하는 수행자처럼 보입니다.

‘아버지의 라디오’를 여러분도 함께 읽으며 우리가 진정 살아가면서 배우고 지켜야할 것들이 어떤 것들인지 생각해보는 여유롭고 따뜻한 가을이 되시기를 빌겠습니다. 이상 3분 논평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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