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빌리 엘리엇을 보고 싶다.

등록 2008.01.18.
한국의 빌리 엘리엇을 보고 싶다

빌리 엘리엇이란 영화를 보셨습니까? 광부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발레리나를 꿈꾸는 소년 빌리의 이야기입니다.

‘계집애들이나 하는’ 발레를 하겠다는 아들을 이해 못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을 축으로 구조조정이 한창이던 영국사회의 모습이 잘 담겨 있습니다.

‘백조의 호수’에서 주역을 맡은 아들의 멋진 도약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은 잊지 못할 명장면이죠.

오늘 느닷없이 빌리 엘리엇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국내 무용콩쿠르 병역 특례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자 해서입니다.

국내콩쿠르에서 우승한 남성무용수에게 주는 병역 혜택을 없애고 국제콩쿠르 수상자에게만 혜택을 주는 병역법 개정안이 1월 1일 시행에 들어가면서 국내 무용계가 소용돌이를 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을 이해하자면 무엇보다 남성무용수의 특수성을 알아야 합니다. 발레나 현대무용을 하는 남성무용수의 근육은 울퉁불퉁한 일반적인 남성 근육과는 모양과 성질이 다른 잔근육입니다.

무용에 쓰는 근육은 만들기도 어렵지만 유지하기도 어렵습니다. 단 하루라도 연습을 하지 않으면 금방 표시가 난다고 합니다.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이틀이면 파트너가 알고, 사흘이면 관객이 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병역복무에 따른 2년간의 공백은 남성무용수에겐 사형선고가 마찬가지입니다. 국내 최고 발레단인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의 주역 남자무용수 중에 현역으로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것은 그런 까닭입니다.

남성무용수는 생명도 짧습니다. 세계 최고 발레단인 파리국립발레단은 남성무용수의 정년을 40세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남자가 무슨 발레를 하느냐’는 인식 때문에 우리나라에선 어린 나이에 무용을 시작하는 소년들이 거의 없고 중고교 시절에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병역혜택마저 없애면 남성무용수의 씨가 말라버릴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더욱이 무용의 특성상 남성무용수가 부족하면 여성무용수도 존립하기 어려워 무용계 발전에 큰 장애가 됩니다.

무용계는 국제콩쿠르 입상자에게만 병역 혜택을 주는 것은 재능 있는 무용수 발굴을 외국인의 손에 넘기고, 반세기 역사의 국내콩쿠르를 무시하고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외국대회만 인정하겠다는 것은 문화사대주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국내 무용콩쿠르가 많지 않기 때문에 병역 특례자는 연간 10명 안팎입니다. 무용을 한다고 해서 병역특례를 준다는 것은 형평성에 위배된다는 주장도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여러 사정을 감안할 때 남성무용수에겐 현역대신 다른 방식으로 복무하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봅니다. 대체복무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고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합니다.

남성무용수들이 지금처럼 사설무용단이 아닌 국립발레단이나 국립무용단에서 일정기간 의무적으로 일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입니다.

국방의 의무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도 선진화의 문턱에 진입한 만큼 문화발전을 위해 이 정도의 관용은 베풀 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 무용계에서도 여러 사람의 빌리 엘리엇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금까지 3분논평이었습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한국의 빌리 엘리엇을 보고 싶다

빌리 엘리엇이란 영화를 보셨습니까? 광부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발레리나를 꿈꾸는 소년 빌리의 이야기입니다.

‘계집애들이나 하는’ 발레를 하겠다는 아들을 이해 못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을 축으로 구조조정이 한창이던 영국사회의 모습이 잘 담겨 있습니다.

‘백조의 호수’에서 주역을 맡은 아들의 멋진 도약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은 잊지 못할 명장면이죠.

오늘 느닷없이 빌리 엘리엇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국내 무용콩쿠르 병역 특례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자 해서입니다.

국내콩쿠르에서 우승한 남성무용수에게 주는 병역 혜택을 없애고 국제콩쿠르 수상자에게만 혜택을 주는 병역법 개정안이 1월 1일 시행에 들어가면서 국내 무용계가 소용돌이를 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을 이해하자면 무엇보다 남성무용수의 특수성을 알아야 합니다. 발레나 현대무용을 하는 남성무용수의 근육은 울퉁불퉁한 일반적인 남성 근육과는 모양과 성질이 다른 잔근육입니다.

무용에 쓰는 근육은 만들기도 어렵지만 유지하기도 어렵습니다. 단 하루라도 연습을 하지 않으면 금방 표시가 난다고 합니다.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이틀이면 파트너가 알고, 사흘이면 관객이 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병역복무에 따른 2년간의 공백은 남성무용수에겐 사형선고가 마찬가지입니다. 국내 최고 발레단인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의 주역 남자무용수 중에 현역으로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것은 그런 까닭입니다.

남성무용수는 생명도 짧습니다. 세계 최고 발레단인 파리국립발레단은 남성무용수의 정년을 40세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남자가 무슨 발레를 하느냐’는 인식 때문에 우리나라에선 어린 나이에 무용을 시작하는 소년들이 거의 없고 중고교 시절에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병역혜택마저 없애면 남성무용수의 씨가 말라버릴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더욱이 무용의 특성상 남성무용수가 부족하면 여성무용수도 존립하기 어려워 무용계 발전에 큰 장애가 됩니다.

무용계는 국제콩쿠르 입상자에게만 병역 혜택을 주는 것은 재능 있는 무용수 발굴을 외국인의 손에 넘기고, 반세기 역사의 국내콩쿠르를 무시하고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외국대회만 인정하겠다는 것은 문화사대주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국내 무용콩쿠르가 많지 않기 때문에 병역 특례자는 연간 10명 안팎입니다. 무용을 한다고 해서 병역특례를 준다는 것은 형평성에 위배된다는 주장도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여러 사정을 감안할 때 남성무용수에겐 현역대신 다른 방식으로 복무하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봅니다. 대체복무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고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합니다.

남성무용수들이 지금처럼 사설무용단이 아닌 국립발레단이나 국립무용단에서 일정기간 의무적으로 일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입니다.

국방의 의무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도 선진화의 문턱에 진입한 만큼 문화발전을 위해 이 정도의 관용은 베풀 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 무용계에서도 여러 사람의 빌리 엘리엇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금까지 3분논평이었습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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