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최초 KTX 기장 강은옥씨…시속 300km에서 본 세상

등록 2009.04.09.
“정말 빠르게 지나가는 눈앞의 풍경들이 화살처럼 날아와 내 가슴에 박히는 기분이었죠. 300km라는 속도를 온 몸으로 체험하는데 보통일은 아니더라고요.”

8일 오전 10시 20분 서울발 고속열차(KTX)는 콧대 높은 운전실의 자리를 처음으로 여성에게 내주었다. KTX 개통 5주년이었던 지난 1일 국내 1호 女기관사에서 국내 최초 女기장이 된 강은옥(41) 씨가 서울~부산 구간 KTX 첫 운행을 위해 운전대를 잡았다.

긴장과 두려움으로 잠을 설쳤다는 강 기장은 상기된 얼굴로 출발을 앞두고 서울역에 대기 중인 KTX 운전실에 몸을 실었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각종 스틱과 계기판을 꼼꼼히 체크하기 시작했다. 30만km 무사고의 베테랑 기관사인 그도 역시 첫 순간에는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KTX운전 시뮬레이터훈련을 한 뒤 3년 만에 운전하는 것인데 연습이 아닌 실전이라 떨려요.”

이러한 강 기장의 우려와 걱정도 잠시. 1천 여 명의 승객을 태우고 서울역을 떠난 KTX는 순식간에 광명역과 천안아산역을 지나 고속구간에 접어들자 300km를 넘나드는 속도로 미끄러지듯 질주하기 시작했다.

기장은 자신의 순간적인 방심으로 인해 큰 사고를 불러 올 수 있다는 압박감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무엇보다도 제 시간에 도착하기 위한 부담이 크다. 최대의 속도를 내면서도 승객들의 편안한 승차감을 신경 써야 한다.

순간 순간 빠르게 지나가버리는 속도표지판과 신호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정면으로 고정돼 있던 눈 앞에 어느덧 부산역이 나타났다. 강 기장은 부드러운 손놀림과 차분한 말투로 지상에서 가장 빠른 열차를 2시간 50분간 안전하게 요리하는데 성공했다.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어떤 역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정지선을 2~3m 넘기기도 했고 종착지인 부산역에 도착시간을 3분 지연시킨 정도의 작은 실수도 있었지만 사고 없이 무사히 도착해서 다행이에요.”

첫 운행을 마친 강 기장은 아직 수습 기장 신분이다. 1만Km 이상 운행해야 하는 견습 기간 중에는 운전실에 선임 기장이 동승하게 된다. 기본적인 기계 작동이나 운전 수행 능력을 빠른 시간 안에 향상시키는 목적도 있지만 기장 혼자서 각각의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법에 적응해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기관사와 부기관사가 함께 운전하는 새마을호나 무궁화호와 달리 KTX는 기장 혼자서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운전 중 찾아오는 졸음과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것도 큰 과제라고 하소연했다.

강씨는 선임기장과 함께 운전실에 있었지만 직접 운전을 했다. KTX 운전대를 직접 몰은 최초의 한국 여성이 됐다.

강 기장이 처음부터 철도와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93년 철학과를 졸업한 뒤 적성에 맞는 진로를 찾지 못하자 27살의 늦은 나이에 전문 기술을 공부하기 위해 다시 대학입학시험에 도전했다. 원래는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어 의대를 목표로 했지만 성적이 만족스럽지 못했고 우연히 철도대학에 지원을 하게 됐다.

“처음 철도와 인연을 맺었을 땐 우연이라고 생각했는데 운명적인 상황들이 펼쳐지는 것을 보고 내가 가야하는 길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철도대학 운전학과에서 처음으로 여학생을 선발한 것도 96년도 그 해였죠.”

열차기관사가 하는 일이 ‘다이내믹하다’고 표현한 강 기장은 이 일을 하면서 성격도 많이 변했다. 수영, 탁구, 배드민턴, 요가 등의 운동을 좋아했고 움직이고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했던 자유분방하고 활동적인 성격의 그는 점차 독서를 하거나 조용히 쉬는 정적인 성향의 사람으로 바뀌게 됐다.

“열차 운전이 워낙 스케일이 크고 강한 일이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게 되다보니 일 외의 행동이나 여가생활은 정적인 것들로 바뀌고 있어요.”

운명적인 것인지 운이 좋은 것인지 강 기장은 꽤 오랫동안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았다.

“부기관사에서 기관사로 발령받고 그 뒤로 2호 여자 기관사가 생길 때까지 3년이나 걸렸어요. 지금 상황도 비슷해요. 여자1호 기장이 됐는데 앞으로 여자 후배가 나오려면 꽤 시간이 지나야 한다고 들었어요.”

꿈과 목표를 좇아 앞만 보고 달려왔을 것 같은 강 기장은 전혀 의외의 인생관을 가지고 있었다.

“무계획이 상팔자죠. 목표 없는 인생을 살려고 해요. 다만 당장 원하는 것에 충실하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면 되더라고요.”

자신이 생각해왔던 ‘특별한 일’ 인 기관차 운전을 했지만 강 기장도 슬럼프에 빠진 때가 있었다. 그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피로를 느껴서 2003년부터 1년간 휴직을 신청했다. 기관사가 되고 3년만의 일이었다.

“이 직업이 생각보다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워요. 그래서 무작정 휴직을 했는데 그 시기가 저에게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됐어요. 1년 동안을 인도에서 살았는데 여행도 다니고 히말라야도 트레킹도 하면서 소중한 경험을 많이 했죠.”

그 전까지 자기중심적인 사고로 일을 해왔던 강 기장은 다시 열차를 모는 기관사로 돌아왔을 때 자신을 필요로 하고 이런 기회를 주는 것 자체가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더 열심히 일을 하게 됐다.

강 기장은 기차를 `삶‘이라고 정의했다. 삶이 담고 있는 모든 것이 기차에 녹아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각자의 삶에는 사연들이 있고 언제나 시작과 끝이 있죠. 때로는 멈추기도하고 빨라지기도 하며 굴곡이 진 길을 가다가도 내리막길로 수월히 내려가기도 하고 위급한 상황에 급정거가 필요하기도 하죠. 그런 과정 자체가 세상과 비슷해서 삶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철도 기관사라면 누구나 소망한다는 남북철도 이야기를 꺼냈다.

“특별한 꿈은 없는데 남북철도가 이어지면 광활한 시베리아 대륙을 열차로 운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요.”

도전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여성 1호 기장 강은옥. 언젠가는 여성이란 단어가 빠진 ‘최초’의 타이틀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임광희 동아닷컴 기자 oasis@donga.com

“정말 빠르게 지나가는 눈앞의 풍경들이 화살처럼 날아와 내 가슴에 박히는 기분이었죠. 300km라는 속도를 온 몸으로 체험하는데 보통일은 아니더라고요.”

8일 오전 10시 20분 서울발 고속열차(KTX)는 콧대 높은 운전실의 자리를 처음으로 여성에게 내주었다. KTX 개통 5주년이었던 지난 1일 국내 1호 女기관사에서 국내 최초 女기장이 된 강은옥(41) 씨가 서울~부산 구간 KTX 첫 운행을 위해 운전대를 잡았다.

긴장과 두려움으로 잠을 설쳤다는 강 기장은 상기된 얼굴로 출발을 앞두고 서울역에 대기 중인 KTX 운전실에 몸을 실었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각종 스틱과 계기판을 꼼꼼히 체크하기 시작했다. 30만km 무사고의 베테랑 기관사인 그도 역시 첫 순간에는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KTX운전 시뮬레이터훈련을 한 뒤 3년 만에 운전하는 것인데 연습이 아닌 실전이라 떨려요.”

이러한 강 기장의 우려와 걱정도 잠시. 1천 여 명의 승객을 태우고 서울역을 떠난 KTX는 순식간에 광명역과 천안아산역을 지나 고속구간에 접어들자 300km를 넘나드는 속도로 미끄러지듯 질주하기 시작했다.

기장은 자신의 순간적인 방심으로 인해 큰 사고를 불러 올 수 있다는 압박감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무엇보다도 제 시간에 도착하기 위한 부담이 크다. 최대의 속도를 내면서도 승객들의 편안한 승차감을 신경 써야 한다.

순간 순간 빠르게 지나가버리는 속도표지판과 신호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정면으로 고정돼 있던 눈 앞에 어느덧 부산역이 나타났다. 강 기장은 부드러운 손놀림과 차분한 말투로 지상에서 가장 빠른 열차를 2시간 50분간 안전하게 요리하는데 성공했다.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어떤 역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정지선을 2~3m 넘기기도 했고 종착지인 부산역에 도착시간을 3분 지연시킨 정도의 작은 실수도 있었지만 사고 없이 무사히 도착해서 다행이에요.”

첫 운행을 마친 강 기장은 아직 수습 기장 신분이다. 1만Km 이상 운행해야 하는 견습 기간 중에는 운전실에 선임 기장이 동승하게 된다. 기본적인 기계 작동이나 운전 수행 능력을 빠른 시간 안에 향상시키는 목적도 있지만 기장 혼자서 각각의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법에 적응해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기관사와 부기관사가 함께 운전하는 새마을호나 무궁화호와 달리 KTX는 기장 혼자서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운전 중 찾아오는 졸음과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것도 큰 과제라고 하소연했다.

강씨는 선임기장과 함께 운전실에 있었지만 직접 운전을 했다. KTX 운전대를 직접 몰은 최초의 한국 여성이 됐다.

강 기장이 처음부터 철도와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93년 철학과를 졸업한 뒤 적성에 맞는 진로를 찾지 못하자 27살의 늦은 나이에 전문 기술을 공부하기 위해 다시 대학입학시험에 도전했다. 원래는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어 의대를 목표로 했지만 성적이 만족스럽지 못했고 우연히 철도대학에 지원을 하게 됐다.

“처음 철도와 인연을 맺었을 땐 우연이라고 생각했는데 운명적인 상황들이 펼쳐지는 것을 보고 내가 가야하는 길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철도대학 운전학과에서 처음으로 여학생을 선발한 것도 96년도 그 해였죠.”

열차기관사가 하는 일이 ‘다이내믹하다’고 표현한 강 기장은 이 일을 하면서 성격도 많이 변했다. 수영, 탁구, 배드민턴, 요가 등의 운동을 좋아했고 움직이고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했던 자유분방하고 활동적인 성격의 그는 점차 독서를 하거나 조용히 쉬는 정적인 성향의 사람으로 바뀌게 됐다.

“열차 운전이 워낙 스케일이 크고 강한 일이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게 되다보니 일 외의 행동이나 여가생활은 정적인 것들로 바뀌고 있어요.”

운명적인 것인지 운이 좋은 것인지 강 기장은 꽤 오랫동안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았다.

“부기관사에서 기관사로 발령받고 그 뒤로 2호 여자 기관사가 생길 때까지 3년이나 걸렸어요. 지금 상황도 비슷해요. 여자1호 기장이 됐는데 앞으로 여자 후배가 나오려면 꽤 시간이 지나야 한다고 들었어요.”

꿈과 목표를 좇아 앞만 보고 달려왔을 것 같은 강 기장은 전혀 의외의 인생관을 가지고 있었다.

“무계획이 상팔자죠. 목표 없는 인생을 살려고 해요. 다만 당장 원하는 것에 충실하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면 되더라고요.”

자신이 생각해왔던 ‘특별한 일’ 인 기관차 운전을 했지만 강 기장도 슬럼프에 빠진 때가 있었다. 그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피로를 느껴서 2003년부터 1년간 휴직을 신청했다. 기관사가 되고 3년만의 일이었다.

“이 직업이 생각보다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워요. 그래서 무작정 휴직을 했는데 그 시기가 저에게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됐어요. 1년 동안을 인도에서 살았는데 여행도 다니고 히말라야도 트레킹도 하면서 소중한 경험을 많이 했죠.”

그 전까지 자기중심적인 사고로 일을 해왔던 강 기장은 다시 열차를 모는 기관사로 돌아왔을 때 자신을 필요로 하고 이런 기회를 주는 것 자체가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더 열심히 일을 하게 됐다.

강 기장은 기차를 `삶‘이라고 정의했다. 삶이 담고 있는 모든 것이 기차에 녹아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각자의 삶에는 사연들이 있고 언제나 시작과 끝이 있죠. 때로는 멈추기도하고 빨라지기도 하며 굴곡이 진 길을 가다가도 내리막길로 수월히 내려가기도 하고 위급한 상황에 급정거가 필요하기도 하죠. 그런 과정 자체가 세상과 비슷해서 삶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철도 기관사라면 누구나 소망한다는 남북철도 이야기를 꺼냈다.

“특별한 꿈은 없는데 남북철도가 이어지면 광활한 시베리아 대륙을 열차로 운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요.”

도전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여성 1호 기장 강은옥. 언젠가는 여성이란 단어가 빠진 ‘최초’의 타이틀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임광희 동아닷컴 기자 oas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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