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논평, 허리기업이 없다

등록 2009.08.03.
한 레미콘 제조업체는 매출이 늘어나면 공장을 별도법인으로 등기해 종업원을 290명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연간 1조2000억 원 규모의 관급공사에 입찰하는 자격을 따려면 종업원 300명 미만의 중소기업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중소기업은 고속 성장해 종업원이 500명을 넘었습니다. 중소기업을 졸업하니 수도권정비법의 규제를 받아 수도권에서는 공장 증설이 불가능해졌고 `괜히 성장했다`는 후회가 들더라고 합니다.

종업원 300명 이상 999명 이하인 중견기업 수는 1997년 850개에서 2006년 540개로 36% 줄었습니다. 1994년 중소제조업체 5만6500개 중 75개사만이 10년 후인 2003년에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고 합니다.

대기업으로 성장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중견기업 후보들이 기업을 쪼개거나 성장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입니다. 정부의 중소기업에 대한 과도한 지원이 오히려 기업의 성장을 억제하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중소기업은 정책자금을 지원받고 신용보증기금 등의 보증지원과 세제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소기업에서 졸업하면 하루아침에 대기업으로 취급돼 지원이 규제로 바뀝니다.

중견기업이 되면 대기업의 횡포도 더 심해진다고 합니다. 중견기업으로 성장해 순이익을 많이 남긴 게 알려지면 거래 대기업이 찾아와 "납품단가를 낮추겠다"고 달달 볶아 다음해엔 순익이 크게 줄어들고 만다는 것입니다. 납품가격 논란은 양측이 서로 옳다고 하겠지만 어쨌든 대기업이 윽박지르면 중견기업의 이익 일부가 대기업으로 흘러가게 되는 게 현실이죠.

대기업-중견기업-중소기업의 구조에서 중간의 중견기업이 충분히 발달한 항아리형이 바람직한 구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중소기업은 지나치게 많고 허리에 해당하는 중견기업은 갈수록 줄어드는 구조가 돼버렸습니다.

정부는 관련법을 개정해 2012년부터 중소기업 기준을 더 엄격하게 적용할 예정입니다. 중소기업은 졸업했어도 대기업으로선 경쟁력이 취약한 상당수 중견기업에 대해 정책적 배려가 뒤따라야 하겠습니다. 동아논평이었습니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한 레미콘 제조업체는 매출이 늘어나면 공장을 별도법인으로 등기해 종업원을 290명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연간 1조2000억 원 규모의 관급공사에 입찰하는 자격을 따려면 종업원 300명 미만의 중소기업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중소기업은 고속 성장해 종업원이 500명을 넘었습니다. 중소기업을 졸업하니 수도권정비법의 규제를 받아 수도권에서는 공장 증설이 불가능해졌고 `괜히 성장했다`는 후회가 들더라고 합니다.

종업원 300명 이상 999명 이하인 중견기업 수는 1997년 850개에서 2006년 540개로 36% 줄었습니다. 1994년 중소제조업체 5만6500개 중 75개사만이 10년 후인 2003년에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고 합니다.

대기업으로 성장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중견기업 후보들이 기업을 쪼개거나 성장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입니다. 정부의 중소기업에 대한 과도한 지원이 오히려 기업의 성장을 억제하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중소기업은 정책자금을 지원받고 신용보증기금 등의 보증지원과 세제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소기업에서 졸업하면 하루아침에 대기업으로 취급돼 지원이 규제로 바뀝니다.

중견기업이 되면 대기업의 횡포도 더 심해진다고 합니다. 중견기업으로 성장해 순이익을 많이 남긴 게 알려지면 거래 대기업이 찾아와 "납품단가를 낮추겠다"고 달달 볶아 다음해엔 순익이 크게 줄어들고 만다는 것입니다. 납품가격 논란은 양측이 서로 옳다고 하겠지만 어쨌든 대기업이 윽박지르면 중견기업의 이익 일부가 대기업으로 흘러가게 되는 게 현실이죠.

대기업-중견기업-중소기업의 구조에서 중간의 중견기업이 충분히 발달한 항아리형이 바람직한 구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중소기업은 지나치게 많고 허리에 해당하는 중견기업은 갈수록 줄어드는 구조가 돼버렸습니다.

정부는 관련법을 개정해 2012년부터 중소기업 기준을 더 엄격하게 적용할 예정입니다. 중소기업은 졸업했어도 대기업으로선 경쟁력이 취약한 상당수 중견기업에 대해 정책적 배려가 뒤따라야 하겠습니다. 동아논평이었습니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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