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의 흔적을 발견한 야성과 야만의 치악산

등록 2010.11.12.
치악산(雉岳山)은 비로봉에서 시명봉까지 남북으로 20km가 넘게 길게 뻗어있다. 가을 단풍이 물들면 붉은 산으로 변한다 해서 적악산(赤岳山)이라고 했으며, 웅장하고 골이 깊어 큰 산다운 면모를 갖추고 있다. 지형이 험하고 골짜기가 많아 곳곳에 산성과 사찰, 사적지들이 산재해 있으며 산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꿩과 뱀을 비롯하여 쥐너미고개, 구룡소 등 곳곳에 그럴싸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조선 태종과 관련한 여러 사적지와 많은 전통 문화재도 산재해 있다.

오대산(1563) 비로봉에서 시작된 한강기맥이 계방산(1577m)을 지나 홍천군, 평창군, 횡성군의 경계인 삼계봉에서 영월지맥을 만드는데, 영월지맥은 태기산(1261m) 언저리에서 횡성군을 가로질러 매화산(1084m)을 거쳐 치악산 비로봉에 이른다. 산줄기의 동쪽은 경사가 완만하지만 서쪽은 매우 급하고 돌과 바위가 등산로 곳곳에 널려 있어 ‘악(岳)자 들어가는 산은 등산하기 쉽지 않다’는 말이 실감나는 산이다.

정상은 치악산 줄기의 북쪽에 위치한 높이 1288m의 비로봉이다. 비로봉 서북쪽으로 삼봉(1073m), 투구봉(1002m), 토끼봉(887m)이 있고, 남쪽으로는 향로봉(1043m), 남대봉(1182m), 시명봉(1196m)으로 이어진다. 남쪽 끝자락인 시명봉의 동, 서, 남으로 각 매봉산(1095m) 백운산(1087m) 구학산(983m) 등 1000m 넘는 산들을 거느리며 영서지방을 호령하는 맹주요 원주의 진산(鎭山)이다.



치악산은 야성의 산이고 야만의 산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산신의 영험이 많아 사냥꾼도 감히 짐승을 잡지 않는다.’고 했다. 산이 거칠어 사냥꾼들이 편안하게 사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유명한 꿩(雉 : 치)에 관한 전설은, 옛날 한 젊은이가 무과시험을 보러가기 위해 치악산을 넘다가 구렁이에게 잡아먹히려는 꿩을 보고 뱀을 죽이고 꿩을 살렸다. 날이 저물어 하룻밤 신세를 지려고 찾아간 집에서 하얀 소복을 한 여인이 나그네를 맞았다. 밥까지 얻어먹고 잠이 들었지만 사실은 그 소복한 여인은 젊은이가 낮에 죽인 구렁이의 아내였다. 잠결에 가슴이 답답하여 눈을 떠보니 아내 구렁이가 “남편의 원수를 갚으려 당신을 이곳으로 유인 했다. 만약 당신이 산 위의 빈 절에 있는 범종을 세 번 울리게 할 수 있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고 조건을 걸었다. 젊은이가 낙담하여 죽음을 기다리는 순간, 범종이 세 번 울렸고 몸을 칭칭 감고 있던 구렁이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날이 밝고 빈 절에 올라가보니, 범종 밑에는 머리가 깨진 꿩 세 마리가 죽어있었다. 낮에 살려준 꿩이 목숨으로 보은을 한 것이다. 감동한 젊은이는 과거시험도 포기하고 빈 절을 고쳐 그곳에서 살면서 불심을 닦았다. 그 절이 지금의 상원사 이고 이로 인해 적악산은 치악산으로 바뀌어 불리고 있다고….

서울에서 승용차로 약 1시간30분 거리에 위치한 치악산은 1973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1984년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이름난 계곡인 큰골, 영원골, 황골, 범골, 사다리골, 상원골, 신막골 등은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들고 입석대, 세존대, 신선대, 구룡폭포, 세렴폭포, 영원폭포 등 볼거리도 있지만 규모면에서는 너무 작아 실망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큰 산에 걸맞는 널찍한 계곡과 기이한 형상은 산행의 피로를 풀어준다. 세렴폭포는 폭포라 할 수는 없지만 낙수지점에 버티고 서 있는 바위에 큰 비가 온 후, 물이 부딪치면 작은 아치를 그린다고 한다.

고찰(古刹)로는 구룡사, 상원사, 석경사, 국향사, 보문사, 입석사가 있고, 문화재로는 구룡사대웅전(강원유형문화재 24호)과 영원산성과 해미산성 터가 있으며,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에 있는 온대 낙엽활엽수림인 성황림은 한국 중부지방의 자연림의 모습을 대표하는 숲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 제93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구룡사 아래에는 노송 군락지가 있다. 이곳에는 옛날, 국가에서 사용할 소나무(황장목)가 자라는 곳이므로 민간의 벌목을 금지한 국가지정 보호수목이라는 표시 즉, ‘황장금표’가 돌에 새겨져 있다.

2010년 10월 30일 토요일 아침 7시, 컬럼비아 필드테스터 31명은 10월 치악산 정기 산행을 하기 위해 서울 잠실을 출발 치악산으로 향했다. 때마침 주말에다 단풍 시즌으로 영동고속도로는 이른 아침부터 차량 행렬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산아가씨’ ‘아득가’ ‘정든 이 산정에’ 등 산노래를 배우기도 하고, 산행 중에 물 마시는 법, 탄수화물의 섭취, 열피로 대책, 땀의 신비, 수분 섭취의 허와 실에 관한 강의와 토론으로 지루한줄 모르고 남원주 톨게이트에 도착했다.

2차 집결지에서 합류한 4명의 대원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치악산 정상으로 오르는 최단코스 들머리인 황골로 들어섰다. 치악산 비로봉으로 오르는 일반적인 길은 황골코스와 구룡사코스가 있는데 들머리를 황골로 잡는 것이 보다 편하다. 황골로 오르면 일단 주능선에 올라선 후 작은 봉우리를 몇 개 넘으면서 서서히 고도를 높이는데 반해 구룡사에서 출발하면 등산로가 계속 오르막이라 더 힘들다.

황골탐방지원센터에서 20분쯤 올라가면 왼쪽으로 입석대 바위가 우뚝 솟아있다. 등산로에서 약간 벗어나 있지만 길을 따라 입석대에 올라 입석대와 그 30m 옆에 있는 1090년, 고려 선종 7년)에 조각된 마애불좌상(강원도 유형문화재 117호)은 꼭 들러보아야 할 곳이다. 마애(磨崖)불이란 자연 바위벽에 새긴 불상을 말하는데, 이곳의 자그마한 마애불은 그 모습이 참 편안하게 보였다. 920년 전, 득도를 위해 이곳에 정좌했을 한 스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상념에 잠겨본다.

입석대를 지나 느린 걸음으로 1시간을 올라가면 주능선에 올라선다. 주능선의 나무들은 이미 옷을 모두 벗고 겨울 채비에 들어갔다. 헬기장에 도착하여 주변의 조망을 보며 점심을 먹는다. 조망이 좋은 산을 눈이 좋은 산이라 한다. 이런 산에는 의례 산성이 있기 마련이다. 칼 들고 싸우던 시절에는 눈이 좋은 높은 곳에서 상대편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동남방에 먼지가 이는 것을 보니 군사가 이동한다!”며 급보를 올렸겠지….

비로봉에 도착하면 원주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며 조망은 더욱 좋아진다. 멀리 가까이에 산 산 산, 나무 나무 나무… 끝없이 펼쳐진다. 시루봉이라고도 불리는 비로봉에는 정상의 상징인 신선, 용암, 칠성탑이라는 돌탑 3개가 신기하다. 보통 미륵탑이라 불리는 이 탑들은 높이가 대략 5m 정도이므로 치악산의 진짜 높이는 1288에 5를 더하여 1293m인 셈이다. 세 개의 탑은 원주의 용씨 성을 가진 사람에게 치악산 산신령이 현몽하여 쌓게 되었다고 전해지는 데 제법 큰 돌을 들어올려 쌓은 그 정성과 노력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구룡사 쪽으로 하산은 계곡길과 사다리병창을 경유하는 능선길이 있다. 두 길은 세렴폭포 아래에고 만난다. 하산로는 능선길 권한다. 지루한 돌밭인 계곡길에 비해 조망도 좋고 사다리병창이라는 독특한 분위기의 능선은 지루함이 덜하다. ‘병창’이란 절벽을 뜻하는 원주의 방언이다. 사다리 모습이란 뜻인지, 옛날 나무사다리에 의지해서 오르내렸다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좌우가 절벽인 바위능선길이 한동안 계속된다. 바위가 없는 흙길 구간도 좌우 계곡으로 경사가 매우 심하다. 등산로 군데군데 인공데크를 설치하여 힘들다는 것 외에 어려움은 없다.

세렴폭포를 보려면 등산로에서 벗어나 10분정도 왕복해야 하나, 큰 비가 온 후가 아니라면 세렴폭포는 볼품이 없으므로 생략해도 된다. 구룡사까지 내려오면서 계곡은 점점 커지고 아직도 남아있는 옛 화전민의 주거터와 경작지의 흔적을 만난다. 무슨 연유로 치악산 깊은 골에 삶의 터를 잡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이 걸었을 같은 길을 걷다보니 그들의 삶이 무위자연의 삶이었다고 해야 할 지, 고달픈 삶이었다고 해야 할지 만감이 교차한다. 천천히 숲길을 걸으면서 치악산에 얽힌 전설과 문화재를 생각하며 구룡사를 지나 오른쪽에 숨어있는 황장금표도 찾아보길 바란다.

좋은 산행과 추억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노력해준 컬럼비아 필드테스터들의 팀웍과 따뜻한 정이, 깊어가는 가을 보다 더 깊게 느껴진 치악산 산행이었다.

마운틴 월드 이규태 master@mountainworld.net

영상 = VJ 차무상

치악산(雉岳山)은 비로봉에서 시명봉까지 남북으로 20km가 넘게 길게 뻗어있다. 가을 단풍이 물들면 붉은 산으로 변한다 해서 적악산(赤岳山)이라고 했으며, 웅장하고 골이 깊어 큰 산다운 면모를 갖추고 있다. 지형이 험하고 골짜기가 많아 곳곳에 산성과 사찰, 사적지들이 산재해 있으며 산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꿩과 뱀을 비롯하여 쥐너미고개, 구룡소 등 곳곳에 그럴싸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조선 태종과 관련한 여러 사적지와 많은 전통 문화재도 산재해 있다.

오대산(1563) 비로봉에서 시작된 한강기맥이 계방산(1577m)을 지나 홍천군, 평창군, 횡성군의 경계인 삼계봉에서 영월지맥을 만드는데, 영월지맥은 태기산(1261m) 언저리에서 횡성군을 가로질러 매화산(1084m)을 거쳐 치악산 비로봉에 이른다. 산줄기의 동쪽은 경사가 완만하지만 서쪽은 매우 급하고 돌과 바위가 등산로 곳곳에 널려 있어 ‘악(岳)자 들어가는 산은 등산하기 쉽지 않다’는 말이 실감나는 산이다.

정상은 치악산 줄기의 북쪽에 위치한 높이 1288m의 비로봉이다. 비로봉 서북쪽으로 삼봉(1073m), 투구봉(1002m), 토끼봉(887m)이 있고, 남쪽으로는 향로봉(1043m), 남대봉(1182m), 시명봉(1196m)으로 이어진다. 남쪽 끝자락인 시명봉의 동, 서, 남으로 각 매봉산(1095m) 백운산(1087m) 구학산(983m) 등 1000m 넘는 산들을 거느리며 영서지방을 호령하는 맹주요 원주의 진산(鎭山)이다.



치악산은 야성의 산이고 야만의 산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산신의 영험이 많아 사냥꾼도 감히 짐승을 잡지 않는다.’고 했다. 산이 거칠어 사냥꾼들이 편안하게 사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유명한 꿩(雉 : 치)에 관한 전설은, 옛날 한 젊은이가 무과시험을 보러가기 위해 치악산을 넘다가 구렁이에게 잡아먹히려는 꿩을 보고 뱀을 죽이고 꿩을 살렸다. 날이 저물어 하룻밤 신세를 지려고 찾아간 집에서 하얀 소복을 한 여인이 나그네를 맞았다. 밥까지 얻어먹고 잠이 들었지만 사실은 그 소복한 여인은 젊은이가 낮에 죽인 구렁이의 아내였다. 잠결에 가슴이 답답하여 눈을 떠보니 아내 구렁이가 “남편의 원수를 갚으려 당신을 이곳으로 유인 했다. 만약 당신이 산 위의 빈 절에 있는 범종을 세 번 울리게 할 수 있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고 조건을 걸었다. 젊은이가 낙담하여 죽음을 기다리는 순간, 범종이 세 번 울렸고 몸을 칭칭 감고 있던 구렁이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날이 밝고 빈 절에 올라가보니, 범종 밑에는 머리가 깨진 꿩 세 마리가 죽어있었다. 낮에 살려준 꿩이 목숨으로 보은을 한 것이다. 감동한 젊은이는 과거시험도 포기하고 빈 절을 고쳐 그곳에서 살면서 불심을 닦았다. 그 절이 지금의 상원사 이고 이로 인해 적악산은 치악산으로 바뀌어 불리고 있다고….

서울에서 승용차로 약 1시간30분 거리에 위치한 치악산은 1973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1984년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이름난 계곡인 큰골, 영원골, 황골, 범골, 사다리골, 상원골, 신막골 등은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들고 입석대, 세존대, 신선대, 구룡폭포, 세렴폭포, 영원폭포 등 볼거리도 있지만 규모면에서는 너무 작아 실망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큰 산에 걸맞는 널찍한 계곡과 기이한 형상은 산행의 피로를 풀어준다. 세렴폭포는 폭포라 할 수는 없지만 낙수지점에 버티고 서 있는 바위에 큰 비가 온 후, 물이 부딪치면 작은 아치를 그린다고 한다.

고찰(古刹)로는 구룡사, 상원사, 석경사, 국향사, 보문사, 입석사가 있고, 문화재로는 구룡사대웅전(강원유형문화재 24호)과 영원산성과 해미산성 터가 있으며,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에 있는 온대 낙엽활엽수림인 성황림은 한국 중부지방의 자연림의 모습을 대표하는 숲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 제93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구룡사 아래에는 노송 군락지가 있다. 이곳에는 옛날, 국가에서 사용할 소나무(황장목)가 자라는 곳이므로 민간의 벌목을 금지한 국가지정 보호수목이라는 표시 즉, ‘황장금표’가 돌에 새겨져 있다.

2010년 10월 30일 토요일 아침 7시, 컬럼비아 필드테스터 31명은 10월 치악산 정기 산행을 하기 위해 서울 잠실을 출발 치악산으로 향했다. 때마침 주말에다 단풍 시즌으로 영동고속도로는 이른 아침부터 차량 행렬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산아가씨’ ‘아득가’ ‘정든 이 산정에’ 등 산노래를 배우기도 하고, 산행 중에 물 마시는 법, 탄수화물의 섭취, 열피로 대책, 땀의 신비, 수분 섭취의 허와 실에 관한 강의와 토론으로 지루한줄 모르고 남원주 톨게이트에 도착했다.

2차 집결지에서 합류한 4명의 대원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치악산 정상으로 오르는 최단코스 들머리인 황골로 들어섰다. 치악산 비로봉으로 오르는 일반적인 길은 황골코스와 구룡사코스가 있는데 들머리를 황골로 잡는 것이 보다 편하다. 황골로 오르면 일단 주능선에 올라선 후 작은 봉우리를 몇 개 넘으면서 서서히 고도를 높이는데 반해 구룡사에서 출발하면 등산로가 계속 오르막이라 더 힘들다.

황골탐방지원센터에서 20분쯤 올라가면 왼쪽으로 입석대 바위가 우뚝 솟아있다. 등산로에서 약간 벗어나 있지만 길을 따라 입석대에 올라 입석대와 그 30m 옆에 있는 1090년, 고려 선종 7년)에 조각된 마애불좌상(강원도 유형문화재 117호)은 꼭 들러보아야 할 곳이다. 마애(磨崖)불이란 자연 바위벽에 새긴 불상을 말하는데, 이곳의 자그마한 마애불은 그 모습이 참 편안하게 보였다. 920년 전, 득도를 위해 이곳에 정좌했을 한 스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상념에 잠겨본다.

입석대를 지나 느린 걸음으로 1시간을 올라가면 주능선에 올라선다. 주능선의 나무들은 이미 옷을 모두 벗고 겨울 채비에 들어갔다. 헬기장에 도착하여 주변의 조망을 보며 점심을 먹는다. 조망이 좋은 산을 눈이 좋은 산이라 한다. 이런 산에는 의례 산성이 있기 마련이다. 칼 들고 싸우던 시절에는 눈이 좋은 높은 곳에서 상대편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동남방에 먼지가 이는 것을 보니 군사가 이동한다!”며 급보를 올렸겠지….

비로봉에 도착하면 원주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며 조망은 더욱 좋아진다. 멀리 가까이에 산 산 산, 나무 나무 나무… 끝없이 펼쳐진다. 시루봉이라고도 불리는 비로봉에는 정상의 상징인 신선, 용암, 칠성탑이라는 돌탑 3개가 신기하다. 보통 미륵탑이라 불리는 이 탑들은 높이가 대략 5m 정도이므로 치악산의 진짜 높이는 1288에 5를 더하여 1293m인 셈이다. 세 개의 탑은 원주의 용씨 성을 가진 사람에게 치악산 산신령이 현몽하여 쌓게 되었다고 전해지는 데 제법 큰 돌을 들어올려 쌓은 그 정성과 노력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구룡사 쪽으로 하산은 계곡길과 사다리병창을 경유하는 능선길이 있다. 두 길은 세렴폭포 아래에고 만난다. 하산로는 능선길 권한다. 지루한 돌밭인 계곡길에 비해 조망도 좋고 사다리병창이라는 독특한 분위기의 능선은 지루함이 덜하다. ‘병창’이란 절벽을 뜻하는 원주의 방언이다. 사다리 모습이란 뜻인지, 옛날 나무사다리에 의지해서 오르내렸다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좌우가 절벽인 바위능선길이 한동안 계속된다. 바위가 없는 흙길 구간도 좌우 계곡으로 경사가 매우 심하다. 등산로 군데군데 인공데크를 설치하여 힘들다는 것 외에 어려움은 없다.

세렴폭포를 보려면 등산로에서 벗어나 10분정도 왕복해야 하나, 큰 비가 온 후가 아니라면 세렴폭포는 볼품이 없으므로 생략해도 된다. 구룡사까지 내려오면서 계곡은 점점 커지고 아직도 남아있는 옛 화전민의 주거터와 경작지의 흔적을 만난다. 무슨 연유로 치악산 깊은 골에 삶의 터를 잡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이 걸었을 같은 길을 걷다보니 그들의 삶이 무위자연의 삶이었다고 해야 할 지, 고달픈 삶이었다고 해야 할지 만감이 교차한다. 천천히 숲길을 걸으면서 치악산에 얽힌 전설과 문화재를 생각하며 구룡사를 지나 오른쪽에 숨어있는 황장금표도 찾아보길 바란다.

좋은 산행과 추억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노력해준 컬럼비아 필드테스터들의 팀웍과 따뜻한 정이, 깊어가는 가을 보다 더 깊게 느껴진 치악산 산행이었다.

마운틴 월드 이규태 master@mountainworld.net

영상 = VJ 차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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