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산 ‘한양공원漢陽公園’의 탄생 비밀을 아시나요?

등록 2010.11.23.
서울 남산 케이블카를 타는 곳에서 소파길을 따라 가다 오른 쪽에 漢陽公園 이라 쓰여진 표석(서울 중구 필동 산1-16)하나가 서있다.

표석 전면에는 수발의 총탄 자국이 뒷면은 글씨 한 자 남기지 않고 파내어 손상이 왜 되었을까?

1908년 일제는 옛 남산식물원 터부터 숭례문에 이르는 남산 서북쪽 일대 100만 평방미터(약 30만평)의 땅을 영구 무상으로 임대받아 공원을 조성하여 1910년 5월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고종은 개장식에 칙사를 보내 축하하며 ‘한양공원’이라는 이름을 보냈다. 표석에 쓰인 한문 글씨는 고종의 친필이라고 한다. 일제는 1916년 남산 전체를 공원화할 계획을 수립해 1918년 조선신궁을 옛 남산식물원 일대에 건립하며 한양공원은 문을 닫았다. 이 표석은 원래 남산3호터널 북쪽 출입구 근처에 세워졌으나 터널을 뚫으며 지금의 자리에 옮긴 것이란다.

참고자료

박인재[서울시 도시공원의 변천에 관한 연구](상명대학교: 박사논문, 2002)

서울역사박물관[서울특별시 문화유적 지표조사 종합보고서](서울역사박물관 조사연구과, 2005)

* 동영상: http://www.journalog.net/yil2078

* 이미지: http://my.pcaso.kr/yil2078

이영일 동아닷컴 객원기자 press157@donga.com

서울 남산 케이블카를 타는 곳에서 소파길을 따라 가다 오른 쪽에 漢陽公園 이라 쓰여진 표석(서울 중구 필동 산1-16)하나가 서있다.

표석 전면에는 수발의 총탄 자국이 뒷면은 글씨 한 자 남기지 않고 파내어 손상이 왜 되었을까?

1908년 일제는 옛 남산식물원 터부터 숭례문에 이르는 남산 서북쪽 일대 100만 평방미터(약 30만평)의 땅을 영구 무상으로 임대받아 공원을 조성하여 1910년 5월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고종은 개장식에 칙사를 보내 축하하며 ‘한양공원’이라는 이름을 보냈다. 표석에 쓰인 한문 글씨는 고종의 친필이라고 한다. 일제는 1916년 남산 전체를 공원화할 계획을 수립해 1918년 조선신궁을 옛 남산식물원 일대에 건립하며 한양공원은 문을 닫았다. 이 표석은 원래 남산3호터널 북쪽 출입구 근처에 세워졌으나 터널을 뚫으며 지금의 자리에 옮긴 것이란다.

참고자료

박인재[서울시 도시공원의 변천에 관한 연구](상명대학교: 박사논문, 2002)

서울역사박물관[서울특별시 문화유적 지표조사 종합보고서](서울역사박물관 조사연구과, 2005)

* 동영상: http://www.journalog.net/yil2078

* 이미지: http://my.pcaso.kr/yil2078

이영일 동아닷컴 객원기자 press15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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