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의 엇갈린 인연 / 이명박 대통령과 손학규 민주당 대표

등록 2011.02.17.
(구가인 앵커) 최근 영수회담 불발을 놓고 정치권에서는 두 남자의 엇갈린 인연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손학규 민주당 대표를 두고 하는 말인데요. 두 사람의 정치인생과 엇갈린 인연을 박민혁 기자가 소개합니다.

***

이명박 대통령과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비슷한 정치인생을 겪으면서도 늘 라이벌 관계에 있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1996년 15대 총선에 출마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종로에서 맞붙어 승리했습니다. 하지만 1998년 선거법 위반 혐의가 인정돼 의원직 자진사퇴와 서울시장 경선을 중도 포기했습니다. 손 대표는 1998년 경기도지사에 출마했습니다. 2선의 패기 넘쳤던 손 대표는 국민회의 임창열 후보에게 석패했습니다. 결국 이 대통령과 손 대표 모두 1999년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합니다.

(인터뷰)이승헌 /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 등의 설명에 따르면 워싱턴에 있는 동안 두 사람이 따로 만난 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같은 한나라당 소속이고 재기를 노리던 때라 어울릴 만도 했는데, 그렇다고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서로 잘 몰랐던 남남이 워싱턴에 함께 있다는 이유만으로 만나야 한다는 법도 없으니까요.”

2002년 두 사람은 각각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로 화려하게 컴백합니다. 한나라당 소속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로 각별한 사이가 될 것 같았지만 두 사람은 업무로 만나는 것 외에 사적으로 따로 만나지는 않았습니다. 차기 대권의 잠재적 라이벌이었기 때문입니다.

2006년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임기가 끝나갈 무렵 두 사람의 대권 경쟁은 본격화됐습니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퇴임과 동시에 서울 안국동에 선거캠프인 ‘안국포럼’을 열고 대권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손 대표 역시 경기도지사를 퇴임한 뒤 ‘100일 민생대장정’에 돌입해 전국을 누비며 지지를 호소했습니다.

2007년 3월 두 사람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경선 룰에 불만을 품고 있던 손 대표가 곧 탈당할 것이란 이야기가 당 안팎에서 흘러나왔습니다.

(CG)이 대통령은 당시 “나간다, 나간다 하는 사람은 결국 안 나간다. 손 후보는 안에 남아도 시베리아지만 나가면 더 추울 것”라고 비판했고,

손 후보는 유세일정을 중단하고 강원도에서 칩거에 들어갔습니다.

(인터뷰)동정민 /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당시 이명박 후보는 강원 유세를 가면서 손학규 후보가 백담사에 올라갔는지 여부를 수시로 체크했습니다. 백담사에 올라갔다면 쫓아가 설득을 해보려 했던 겁니다. 하지만 손 후보의 위치가 최종적으로 확인이 안돼 이 후보는 손 후보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손 대표는 결국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범여권의 대권 경선에 참여했습니다. 정동영 후보와 치열한 경선을 치렀지만 손 대표는 낙선했습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를 근소한 표차로 누르고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당선됐습니다. 손 대표가 여권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면 두 사람은 2007년 대권 레이스에서 또 다른 인연을 만들 수 있었는데 그 기회가 사라진 것입니다.

통합민주당 대통령 경선에서 패배해 잊혀질 것만 같았던 손 대표. 그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대통령 당선으로 오히려 통합민주당 대표로 선출되면서 재기에 성공합니다. 손 대표는 이 대통령의 정부조직 개편 추진에 제동을 거는 등 새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팽팽한 신경전을 펼칩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지 3개월 만인 2008년 5월 이 대통령과 손 대표는 처음으로 둘 만의 시간을 갖습니다. 하지만 첫 영수회담은 이견만 확인하고 성과 없이 끝났습니다.

이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운영해 가는 동안 손 대표는 2008년 7월 대표에서 물러나 강원 춘천에서 닭을 키우고 등산으로 소일하며 2년여 간 때를 기다렸습니다. 손 대표는 2010년 2007년 대통령 경선에서 고배를 마시게 한 정동영 최고위원과 리턴매치를 벌여 대표직에 복귀했습니다.

야당인 민주당을 이끄는 손 대표에게 이 대통령은 두 번째 영수회담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손 대표는 영수회담을 거절했습니다. 두 사람의 인연이 다시 빗나가는 듯 합니다.

(CG)여권 관계자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손 대표가 ‘나는 이상득 의원(이명박 대통령의 친형)과는 맞는데 MB하고는 잘 안 맞아’라고 주변사람들에게 말한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 대통령이 실용을 강조한다면 손 대표는 대의명분을 중시한다고 했습니다. 상대출신과 문과대 출신의 차이일까요. 아무튼 두 사람은 근본적으로 궁합이 맞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2007년 대선에서 좋지 않은 연을 맺었던 이명박 대통령과 손학규 대표. 두 사람이 2012년 대선 이후에 어떤 인연을 맺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동아일보 박민혁입니다.

(구가인 앵커) 최근 영수회담 불발을 놓고 정치권에서는 두 남자의 엇갈린 인연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손학규 민주당 대표를 두고 하는 말인데요. 두 사람의 정치인생과 엇갈린 인연을 박민혁 기자가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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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과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비슷한 정치인생을 겪으면서도 늘 라이벌 관계에 있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1996년 15대 총선에 출마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종로에서 맞붙어 승리했습니다. 하지만 1998년 선거법 위반 혐의가 인정돼 의원직 자진사퇴와 서울시장 경선을 중도 포기했습니다. 손 대표는 1998년 경기도지사에 출마했습니다. 2선의 패기 넘쳤던 손 대표는 국민회의 임창열 후보에게 석패했습니다. 결국 이 대통령과 손 대표 모두 1999년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합니다.

(인터뷰)이승헌 /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 등의 설명에 따르면 워싱턴에 있는 동안 두 사람이 따로 만난 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같은 한나라당 소속이고 재기를 노리던 때라 어울릴 만도 했는데, 그렇다고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서로 잘 몰랐던 남남이 워싱턴에 함께 있다는 이유만으로 만나야 한다는 법도 없으니까요.”

2002년 두 사람은 각각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로 화려하게 컴백합니다. 한나라당 소속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로 각별한 사이가 될 것 같았지만 두 사람은 업무로 만나는 것 외에 사적으로 따로 만나지는 않았습니다. 차기 대권의 잠재적 라이벌이었기 때문입니다.

2006년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임기가 끝나갈 무렵 두 사람의 대권 경쟁은 본격화됐습니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퇴임과 동시에 서울 안국동에 선거캠프인 ‘안국포럼’을 열고 대권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손 대표 역시 경기도지사를 퇴임한 뒤 ‘100일 민생대장정’에 돌입해 전국을 누비며 지지를 호소했습니다.

2007년 3월 두 사람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경선 룰에 불만을 품고 있던 손 대표가 곧 탈당할 것이란 이야기가 당 안팎에서 흘러나왔습니다.

(CG)이 대통령은 당시 “나간다, 나간다 하는 사람은 결국 안 나간다. 손 후보는 안에 남아도 시베리아지만 나가면 더 추울 것”라고 비판했고,

손 후보는 유세일정을 중단하고 강원도에서 칩거에 들어갔습니다.

(인터뷰)동정민 /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당시 이명박 후보는 강원 유세를 가면서 손학규 후보가 백담사에 올라갔는지 여부를 수시로 체크했습니다. 백담사에 올라갔다면 쫓아가 설득을 해보려 했던 겁니다. 하지만 손 후보의 위치가 최종적으로 확인이 안돼 이 후보는 손 후보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손 대표는 결국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범여권의 대권 경선에 참여했습니다. 정동영 후보와 치열한 경선을 치렀지만 손 대표는 낙선했습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를 근소한 표차로 누르고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당선됐습니다. 손 대표가 여권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면 두 사람은 2007년 대권 레이스에서 또 다른 인연을 만들 수 있었는데 그 기회가 사라진 것입니다.

통합민주당 대통령 경선에서 패배해 잊혀질 것만 같았던 손 대표. 그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대통령 당선으로 오히려 통합민주당 대표로 선출되면서 재기에 성공합니다. 손 대표는 이 대통령의 정부조직 개편 추진에 제동을 거는 등 새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팽팽한 신경전을 펼칩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지 3개월 만인 2008년 5월 이 대통령과 손 대표는 처음으로 둘 만의 시간을 갖습니다. 하지만 첫 영수회담은 이견만 확인하고 성과 없이 끝났습니다.

이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운영해 가는 동안 손 대표는 2008년 7월 대표에서 물러나 강원 춘천에서 닭을 키우고 등산으로 소일하며 2년여 간 때를 기다렸습니다. 손 대표는 2010년 2007년 대통령 경선에서 고배를 마시게 한 정동영 최고위원과 리턴매치를 벌여 대표직에 복귀했습니다.

야당인 민주당을 이끄는 손 대표에게 이 대통령은 두 번째 영수회담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손 대표는 영수회담을 거절했습니다. 두 사람의 인연이 다시 빗나가는 듯 합니다.

(CG)여권 관계자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손 대표가 ‘나는 이상득 의원(이명박 대통령의 친형)과는 맞는데 MB하고는 잘 안 맞아’라고 주변사람들에게 말한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 대통령이 실용을 강조한다면 손 대표는 대의명분을 중시한다고 했습니다. 상대출신과 문과대 출신의 차이일까요. 아무튼 두 사람은 근본적으로 궁합이 맞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2007년 대선에서 좋지 않은 연을 맺었던 이명박 대통령과 손학규 대표. 두 사람이 2012년 대선 이후에 어떤 인연을 맺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동아일보 박민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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