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만추` 커플 메이킹영상

등록 2011.02.25.
14일 밤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열린 '만추'(15세 관람가) 시사회. 영화가 끝난 뒤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던 사람들 사이에서, 예상했던 불평이 들렸다.

"에이…. 뭐야."

"재미없어. 이상해."

잔뜩 실망한 표정의 10대 여학생들. 주인공 훈 역을 연기한 배우 현빈을 보러 온 관객이었으리라.

현빈은 올해 초 드라마 '시크릿 가든'을 통해 막강한 호감도의 아우라를 지닌 스타로 발돋움했다.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 소개된 영화가 거의 반년이 지난 이제야 개봉한 배경에는 이 드라마 인기에 힘입은 부분이 적잖았을 것이다. 봐주기 난감한 형국의 '에이스 벤추라' 헤어스타일을 시종 고집함에도 불구하고 현빈은 역시, 눈부시다.

그러나 그가 연기한 훈은 때깔 좋은 하드웨어를 미끼삼아 외로운 여성의 군것질 연애상대가 돼주며 비루하게 연명하는 사내다. 리처드 기어의 탱탱했던 30대를 녹여낸 1980년 작 '아메리칸 지골로'를 떠올리게 하는 역할. 시크릿 가든의 안하무인 재벌 까도남 김주원의 잔영을 맛보려 한 관객이라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가슴을 콩닥거리게 만들 애틋한 베드신도, 없다. 깊고 길고 아픈 키스만 두 차례. 섹스를 시도하는 장면은 있지만 그리 화려하지 않은 현빈의 복근만 슬쩍 드러내고 미수에 그친다.

그러니 부디, 김주원에 홀린 여인들이여. "문자 왔숑"의 여운은 케이블TV 채널에서 한창 진행 중인 3회 연속 재방송 시간에 찾길 바란다. 이 영화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영화가 열린다.

한 여자가 걷는다. 시선 둔 곳 없이. 비틀비틀.

그녀는 조금 전에 사람을, 아마도 남편을, 죽였다.

감옥에 갇힌 뒤에도 내내 시선 둔 곳 없이 심드렁하게 목숨 줄을 부지하던 그 여자 애나(탕웨이)에게 어느 날 가족의 급한 전갈이 닿는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잠시 집에 오라고. 적잖았을 일시보석금은 오빠가 이미 지불했다고.

그러니 빨리 와서, '어머니의 유산 분할에 동의한다'는 문서에, 지장을 찍으라고.

시애틀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 그녀. 여전히 시선 둔 곳, 없다.

그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난다. 범죄조직 우두머리(…정도로 보이는, 무섭게 생긴 아저씨)의 마누라(? 애인? 뭐든 간에)와 놀아나다가 쫓기는 몸이 된, 훈이라는 사내. 승객 중 유일한 아시아인 여성 애나가 만만해 보였는지, 버스 값 좀 빌려달라고 뻔뻔하게 들이댄다.

보호석방 중인 수감자 신세가 아니었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무뢰한. 그녀는 무심한 얼굴로 지갑을 연다.

"갚을 필요 없어요."

세상의 가장자리로 내몰린 인생들의 온기(溫氣) 나누기 스토리이려니.

가족들의 이기심에 질려버린 여자는 무작정 집을 나와 거리를 헤매다가, 별로 많이 헤매지도 않았는데, 그 남자와 '우연히' 다시 마주친다.

아무리 영화라지만 이건 좀…. 시애틀이 무슨 서울 종로 음식점골목만한 공간이던가.

이 영화의 앞 절반쯤은 현빈과 탕웨이 두 배우의 걸출한 매력에 무작정 기댄 듯한 인상을 준다. 특히 탕웨이는, 그녀가 나온 장면만 편집해 꼼꼼히 다시 돌려보고 싶을 정도로 매혹적이다.

훈이 억지로 손에 쥐어준 전화번호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장면. 애나는 쓰레기통 위에 올린 손을 눈치 챌 수 있을 듯 없을 듯한 찰나 동안 살짝, 멈칫한다.

탕웨이에 집중하길. 그런 탄성, 끝까지 줄줄이 꿰이며 수북이 쌓인다.

우연으로 뒤덮인 무리한 구성, 아무리 봐도 '어설피 변장한 김주원' 같은 현빈의 모습에 슬슬 하품이 나올 즈음, 이리저리 뒤척이던 이야기가 다행히 묵직한 초점을 찾는다.

전환점은 두 개의 장면이다.

이름 알 길 없는 서양 배우들의 인형극을 닮은 콩트, 그리고 애나 어머니 장례식 뒤에 이어진 식사 장면.

내내 조용한 이야기에 딱 한 차례 시끌벅적 소동이 끼어드는 이 식사 장면에서 많은 관객이 훈의 어처구니없는 대사에 시원한 폭소를 터뜨렸다.

그런데 그 폭소의 뒷맛. 참 묘하게 쌉쌀하다.

누군가의 다쳐 닫힌 마음을 다독여 다시 열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속내와 사연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다 듣고 이해한 뒤 조심스럽게 정리해서 내민 '완벽한 위로' 뿐일까.

중국어로 늘어놓는 애나의 인생 하소연.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에 묵묵히 귀를 기울이며 유일하게 아는 중국말 "하오(좋다)"와 방금 배운 반대말 "화이(나쁘다)"만으로 답하는 훈은 결코, 성의 없지 않다.

한 사람의 인생을 다독이는 위로는 때로, "저 사람이 내 포크를 썼어요"라는, 찌질하기 그지없는 말 한 마디일 수도 있다는 것.

그 여자가 웃는다. 시선을 둔 모든 곳에 마음속 누군가를 얹고서.

영화가 닫히고

이야기가 다시 시작한다.

탕웨이의 눈동자에 초점이 맺히는 순간이 영화의 어느 지점인지, 주의 깊게 살피길 권한다.

http://news.donga.com/O2/sports/3/20/20110223/35060776/1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14일 밤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열린 '만추'(15세 관람가) 시사회. 영화가 끝난 뒤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던 사람들 사이에서, 예상했던 불평이 들렸다.

"에이…. 뭐야."

"재미없어. 이상해."

잔뜩 실망한 표정의 10대 여학생들. 주인공 훈 역을 연기한 배우 현빈을 보러 온 관객이었으리라.

현빈은 올해 초 드라마 '시크릿 가든'을 통해 막강한 호감도의 아우라를 지닌 스타로 발돋움했다.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 소개된 영화가 거의 반년이 지난 이제야 개봉한 배경에는 이 드라마 인기에 힘입은 부분이 적잖았을 것이다. 봐주기 난감한 형국의 '에이스 벤추라' 헤어스타일을 시종 고집함에도 불구하고 현빈은 역시, 눈부시다.

그러나 그가 연기한 훈은 때깔 좋은 하드웨어를 미끼삼아 외로운 여성의 군것질 연애상대가 돼주며 비루하게 연명하는 사내다. 리처드 기어의 탱탱했던 30대를 녹여낸 1980년 작 '아메리칸 지골로'를 떠올리게 하는 역할. 시크릿 가든의 안하무인 재벌 까도남 김주원의 잔영을 맛보려 한 관객이라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가슴을 콩닥거리게 만들 애틋한 베드신도, 없다. 깊고 길고 아픈 키스만 두 차례. 섹스를 시도하는 장면은 있지만 그리 화려하지 않은 현빈의 복근만 슬쩍 드러내고 미수에 그친다.

그러니 부디, 김주원에 홀린 여인들이여. "문자 왔숑"의 여운은 케이블TV 채널에서 한창 진행 중인 3회 연속 재방송 시간에 찾길 바란다. 이 영화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영화가 열린다.

한 여자가 걷는다. 시선 둔 곳 없이. 비틀비틀.

그녀는 조금 전에 사람을, 아마도 남편을, 죽였다.

감옥에 갇힌 뒤에도 내내 시선 둔 곳 없이 심드렁하게 목숨 줄을 부지하던 그 여자 애나(탕웨이)에게 어느 날 가족의 급한 전갈이 닿는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잠시 집에 오라고. 적잖았을 일시보석금은 오빠가 이미 지불했다고.

그러니 빨리 와서, '어머니의 유산 분할에 동의한다'는 문서에, 지장을 찍으라고.

시애틀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 그녀. 여전히 시선 둔 곳, 없다.

그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난다. 범죄조직 우두머리(…정도로 보이는, 무섭게 생긴 아저씨)의 마누라(? 애인? 뭐든 간에)와 놀아나다가 쫓기는 몸이 된, 훈이라는 사내. 승객 중 유일한 아시아인 여성 애나가 만만해 보였는지, 버스 값 좀 빌려달라고 뻔뻔하게 들이댄다.

보호석방 중인 수감자 신세가 아니었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무뢰한. 그녀는 무심한 얼굴로 지갑을 연다.

"갚을 필요 없어요."

세상의 가장자리로 내몰린 인생들의 온기(溫氣) 나누기 스토리이려니.

가족들의 이기심에 질려버린 여자는 무작정 집을 나와 거리를 헤매다가, 별로 많이 헤매지도 않았는데, 그 남자와 '우연히' 다시 마주친다.

아무리 영화라지만 이건 좀…. 시애틀이 무슨 서울 종로 음식점골목만한 공간이던가.

이 영화의 앞 절반쯤은 현빈과 탕웨이 두 배우의 걸출한 매력에 무작정 기댄 듯한 인상을 준다. 특히 탕웨이는, 그녀가 나온 장면만 편집해 꼼꼼히 다시 돌려보고 싶을 정도로 매혹적이다.

훈이 억지로 손에 쥐어준 전화번호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장면. 애나는 쓰레기통 위에 올린 손을 눈치 챌 수 있을 듯 없을 듯한 찰나 동안 살짝, 멈칫한다.

탕웨이에 집중하길. 그런 탄성, 끝까지 줄줄이 꿰이며 수북이 쌓인다.

우연으로 뒤덮인 무리한 구성, 아무리 봐도 '어설피 변장한 김주원' 같은 현빈의 모습에 슬슬 하품이 나올 즈음, 이리저리 뒤척이던 이야기가 다행히 묵직한 초점을 찾는다.

전환점은 두 개의 장면이다.

이름 알 길 없는 서양 배우들의 인형극을 닮은 콩트, 그리고 애나 어머니 장례식 뒤에 이어진 식사 장면.

내내 조용한 이야기에 딱 한 차례 시끌벅적 소동이 끼어드는 이 식사 장면에서 많은 관객이 훈의 어처구니없는 대사에 시원한 폭소를 터뜨렸다.

그런데 그 폭소의 뒷맛. 참 묘하게 쌉쌀하다.

누군가의 다쳐 닫힌 마음을 다독여 다시 열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속내와 사연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다 듣고 이해한 뒤 조심스럽게 정리해서 내민 '완벽한 위로' 뿐일까.

중국어로 늘어놓는 애나의 인생 하소연.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에 묵묵히 귀를 기울이며 유일하게 아는 중국말 "하오(좋다)"와 방금 배운 반대말 "화이(나쁘다)"만으로 답하는 훈은 결코, 성의 없지 않다.

한 사람의 인생을 다독이는 위로는 때로, "저 사람이 내 포크를 썼어요"라는, 찌질하기 그지없는 말 한 마디일 수도 있다는 것.

그 여자가 웃는다. 시선을 둔 모든 곳에 마음속 누군가를 얹고서.

영화가 닫히고

이야기가 다시 시작한다.

탕웨이의 눈동자에 초점이 맺히는 순간이 영화의 어느 지점인지, 주의 깊게 살피길 권한다.

http://news.donga.com/O2/sports/3/20/20110223/35060776/1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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