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김태원 장애아 둔 부모의 ‘소망’

등록 2011.04.25.
지난 20일은 제31회 장애인의 날이었습니다. 동아일보는 새로운 주말섹션 O2에서 장애아동을 자녀로 둔 나경원 국회의원과 록밴드 부활의 리더인 김태원 씨의 만남을 주선했는데요.그 대담내용을 소개합니다.

---

#part1#

Q. 최근 아이의 장애를 공개했는데….

[김태원] (00:51) "굉장히 어렵게 얘기를 꺼내지 않았느냐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전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뭐, 할 때가 되서 얘기를 했다."

Q. 공개 뒤 바뀐 점이라면.

[나 경원] (02:35) "국밥집 주인 아주머님이시죠. 제 손을 탁 잡으시더니 눈물이 글썽글썽하시는 거예요. 저희 아이도 아파요, 말씀하시는데 그런 걸 보고 뒤돌아 나오면서 저도 같이 눈물이 글썽거리고. 그 어머님이 나한테 기대하는 게 있을 텐데, 사실은 또 그러면 열심히 하고 있나 반성이 되고요."

[김태원] "누군가 같이 아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위로가 되는 겁니다."

Q. 아이를 키우며 가슴 아팠던 순간.

[김태원] (05:18) "그래도 `우리가 낫다`하는 시선이죠.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이. 물론 동정을 하고 안타까워하고 하는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봐라, 우리가 낫지 않느냐`하는 시선을 제가 봅니다."

(14:22) "최근 `아빠, 어디 있어`를 시작했습니다. `아빠, 어디 있어`라는 말을 듣는데 11년이 걸린 거죠.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예요. 또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나 경원] (16:46) "교장 선생님께서 정말 `어떻게 감히 장애인 아이를 가진 엄마가 사립학교를 왔어` 이런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저한테 `장애 아이를 교육시켜서 보통 아이랑 똑같이 될 수 있다고 생각 하냐`고 반말로 그러시더라고요. 그때 그 충격은요, 애를 데리고 갔었는데 막 울면서 나와서…."

Q. 한국 사회에 대한 아쉬움은 없는지.

[나경원] (07:07) "우리나라 시스템 자체가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시기까지는 뭔가 어디든 보낼 때도 있고 아이들이 갈 곳이 있는데요. 고등학교도 1년 정도는 더 다닐 수가 있는데요. 그것이 딱 끝나고 나면 갈 곳이 없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복지시설도 사실상 오히려 더 갈 곳이 없어지는…."

[김태원] (06:23) "필리핀에서는, 뭐 우리나라도 많이 좋아졌지만, 굉장히 스페셜한 아이로 봅니다. 특별한 아이로 생각을 하지, 이상한 아이로 보지 않아요."

Q. 선진국은 어떤가.

[나경원] (11:10) "(최근) 스웨덴의 장애인 주거시설을 보고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너무나 감동을 받은 것이요, 스웨덴 법령상에 아파트를 지을 경우에 일정한 부분은 장애인 주거시설로 내놓아야 되는 것이 있습니다."

(12:37) "우리도 이제 좀 이런 장애인 주거시설이 만들고 짓고했으면 하는…. 그래서 그걸 실현해 보려고 제가 법률적으로 5월 26일 공청회도 하고요."

Q, 나 의원 자녀는 고3인데….

[나경원] (09:09) "우리 아이는 내년에는 대학을 가고 싶다고 막 그러는데, 드럼을 배워요. 실용음악과를 가는 것이 꿈인데, 장애인특례입학이 있긴 하지만 과연 가능할 지는 더 타진해봐야 할 것 같고요."

[김태원] "그럼 일단 그전에 저를 만나야 되겠네요."

[김 태원] (24:00) "사실은 그런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거거든요. 남들의 시선이 어떻든 간에, 그 아이는 행복하지 않습니까. 행복한 와중에 어떤 음악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다면 더 많은 것을 발산할 수 있을 거라고…."

#part2#

Q. 아이의 장애는 쉽게 받아들여졌는지.

[김 태원] (05:36) "꽤 긴 기간동안 제 스스로 인정을 못하기 때문에 오는. 지금 넷이서 같이 표류되고 있지만, 그때는 아마 제가 없었을 거예요. 제 와이프가 다 책임을 지고 있었어요. 두 아이를 안고 있었을 거예요. 그 점이, 제가 만약 눈물을 흘린다면 그 점에 있어선 눈물이 나겠죠."

[나경원] (07:02) "인정을 했지만 진짜 그것을 마음에 받아들이는데 한참 걸리면서 갔겠죠. 하지만 아이는 예쁘다는 생각을 하셨을 거예요. 받아들이지는 못하셨지만. 그러니까 이제 겉으론 빨리 받아들였지만 안착하는 데는 오래 걸렸겠죠. 그런데 참 우리 아이를 키우면서 애가 조금조금 변해가는 그 모습이…."

[김태원] "정말 느리지만 변하지 않습니까. 조금씩. 그게 참 아름답죠."

Q. 아이의 존재가 고마웠던 기억.

[김태원] (03:39) "그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제가 만든 곡들의 테마가 바뀌었고, 굉장히 시끄러운 음악을 했던 사람이에요. 록 음악을 했는데. 서정적으로 바뀌는 테마가 됐고…."

[나 경원] (09:29)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느낀 게 결국 우리 아이가 나를 좀더 큰 사람으로 만들어줬구나." (09:57) "모범생처럼 크고 조용히 이렇게 컸던 제가 어떻게 보면 세상의 한 10분의1 밖에 못 봤을 거 같아요. 그랬는데 우리 아이 때문에 세상을 좀 넓게 보고…."

[김태원] "엄청난 선물이네요. 저도 동감합니다."

Q. 장애아를 둔 부모들에게.

[김태원](07:49) "기다리면 전체적으로 아름다워지더라고요. 근데 그걸 기다림조차 포기해버리면 다 깨져버리는 거고. 지금 시작되는 분들도 있으실 거고, 그런 분들에게 그런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기다려라."

[나경원] "시작되시는 분들 참 어려우실 거고, 처음에 참 당황스럽죠. 근데 그런 걸 보면서 사실은 우리 부모들끼리도 서로 멘토와 멘티 같이 그런 게 있으면, 활성화됐으면 좋겠다…."

Q. 서로에게 한 마디.

#part1# [나경원] (19:50)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제도랑 이런 거 열심히 만들 테니까 마음을 많이 움직여 주세요."

[김태원] "제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정말 이 자체가 영광입니다."

#part2# (27:13) [김태원] "굉장히 뜻 깊은 만남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진짜 너무 아름답고, 모든 게 다 아름다우십니다."

[나경은] "제가 드릴 말씀입니다." "하하하."

지난 20일은 제31회 장애인의 날이었습니다. 동아일보는 새로운 주말섹션 O2에서 장애아동을 자녀로 둔 나경원 국회의원과 록밴드 부활의 리더인 김태원 씨의 만남을 주선했는데요.그 대담내용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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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1#

Q. 최근 아이의 장애를 공개했는데….

[김태원] (00:51) "굉장히 어렵게 얘기를 꺼내지 않았느냐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전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뭐, 할 때가 되서 얘기를 했다."

Q. 공개 뒤 바뀐 점이라면.

[나 경원] (02:35) "국밥집 주인 아주머님이시죠. 제 손을 탁 잡으시더니 눈물이 글썽글썽하시는 거예요. 저희 아이도 아파요, 말씀하시는데 그런 걸 보고 뒤돌아 나오면서 저도 같이 눈물이 글썽거리고. 그 어머님이 나한테 기대하는 게 있을 텐데, 사실은 또 그러면 열심히 하고 있나 반성이 되고요."

[김태원] "누군가 같이 아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위로가 되는 겁니다."

Q. 아이를 키우며 가슴 아팠던 순간.

[김태원] (05:18) "그래도 `우리가 낫다`하는 시선이죠.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이. 물론 동정을 하고 안타까워하고 하는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봐라, 우리가 낫지 않느냐`하는 시선을 제가 봅니다."

(14:22) "최근 `아빠, 어디 있어`를 시작했습니다. `아빠, 어디 있어`라는 말을 듣는데 11년이 걸린 거죠.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예요. 또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나 경원] (16:46) "교장 선생님께서 정말 `어떻게 감히 장애인 아이를 가진 엄마가 사립학교를 왔어` 이런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저한테 `장애 아이를 교육시켜서 보통 아이랑 똑같이 될 수 있다고 생각 하냐`고 반말로 그러시더라고요. 그때 그 충격은요, 애를 데리고 갔었는데 막 울면서 나와서…."

Q. 한국 사회에 대한 아쉬움은 없는지.

[나경원] (07:07) "우리나라 시스템 자체가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시기까지는 뭔가 어디든 보낼 때도 있고 아이들이 갈 곳이 있는데요. 고등학교도 1년 정도는 더 다닐 수가 있는데요. 그것이 딱 끝나고 나면 갈 곳이 없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복지시설도 사실상 오히려 더 갈 곳이 없어지는…."

[김태원] (06:23) "필리핀에서는, 뭐 우리나라도 많이 좋아졌지만, 굉장히 스페셜한 아이로 봅니다. 특별한 아이로 생각을 하지, 이상한 아이로 보지 않아요."

Q. 선진국은 어떤가.

[나경원] (11:10) "(최근) 스웨덴의 장애인 주거시설을 보고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너무나 감동을 받은 것이요, 스웨덴 법령상에 아파트를 지을 경우에 일정한 부분은 장애인 주거시설로 내놓아야 되는 것이 있습니다."

(12:37) "우리도 이제 좀 이런 장애인 주거시설이 만들고 짓고했으면 하는…. 그래서 그걸 실현해 보려고 제가 법률적으로 5월 26일 공청회도 하고요."

Q, 나 의원 자녀는 고3인데….

[나경원] (09:09) "우리 아이는 내년에는 대학을 가고 싶다고 막 그러는데, 드럼을 배워요. 실용음악과를 가는 것이 꿈인데, 장애인특례입학이 있긴 하지만 과연 가능할 지는 더 타진해봐야 할 것 같고요."

[김태원] "그럼 일단 그전에 저를 만나야 되겠네요."

[김 태원] (24:00) "사실은 그런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거거든요. 남들의 시선이 어떻든 간에, 그 아이는 행복하지 않습니까. 행복한 와중에 어떤 음악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다면 더 많은 것을 발산할 수 있을 거라고…."

#part2#

Q. 아이의 장애는 쉽게 받아들여졌는지.

[김 태원] (05:36) "꽤 긴 기간동안 제 스스로 인정을 못하기 때문에 오는. 지금 넷이서 같이 표류되고 있지만, 그때는 아마 제가 없었을 거예요. 제 와이프가 다 책임을 지고 있었어요. 두 아이를 안고 있었을 거예요. 그 점이, 제가 만약 눈물을 흘린다면 그 점에 있어선 눈물이 나겠죠."

[나경원] (07:02) "인정을 했지만 진짜 그것을 마음에 받아들이는데 한참 걸리면서 갔겠죠. 하지만 아이는 예쁘다는 생각을 하셨을 거예요. 받아들이지는 못하셨지만. 그러니까 이제 겉으론 빨리 받아들였지만 안착하는 데는 오래 걸렸겠죠. 그런데 참 우리 아이를 키우면서 애가 조금조금 변해가는 그 모습이…."

[김태원] "정말 느리지만 변하지 않습니까. 조금씩. 그게 참 아름답죠."

Q. 아이의 존재가 고마웠던 기억.

[김태원] (03:39) "그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제가 만든 곡들의 테마가 바뀌었고, 굉장히 시끄러운 음악을 했던 사람이에요. 록 음악을 했는데. 서정적으로 바뀌는 테마가 됐고…."

[나 경원] (09:29)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느낀 게 결국 우리 아이가 나를 좀더 큰 사람으로 만들어줬구나." (09:57) "모범생처럼 크고 조용히 이렇게 컸던 제가 어떻게 보면 세상의 한 10분의1 밖에 못 봤을 거 같아요. 그랬는데 우리 아이 때문에 세상을 좀 넓게 보고…."

[김태원] "엄청난 선물이네요. 저도 동감합니다."

Q. 장애아를 둔 부모들에게.

[김태원](07:49) "기다리면 전체적으로 아름다워지더라고요. 근데 그걸 기다림조차 포기해버리면 다 깨져버리는 거고. 지금 시작되는 분들도 있으실 거고, 그런 분들에게 그런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기다려라."

[나경원] "시작되시는 분들 참 어려우실 거고, 처음에 참 당황스럽죠. 근데 그런 걸 보면서 사실은 우리 부모들끼리도 서로 멘토와 멘티 같이 그런 게 있으면, 활성화됐으면 좋겠다…."

Q. 서로에게 한 마디.

#part1# [나경원] (19:50)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제도랑 이런 거 열심히 만들 테니까 마음을 많이 움직여 주세요."

[김태원] "제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정말 이 자체가 영광입니다."

#part2# (27:13) [김태원] "굉장히 뜻 깊은 만남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진짜 너무 아름답고, 모든 게 다 아름다우십니다."

[나경은] "제가 드릴 말씀입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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