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결산

[앵커]
달구벌 대구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 대회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세계적인 육상 스타들이 9일간 열띤 승부를 벌였는데요. 스포츠부 유재영 기자와 이번 대회를 결산해봅니다.
유 기자. 아무래도 육상은 기록의 경기인데, 이번 대회, 전체적으로 기록이 저조하지 않았습니까. [기자]
네. 말씀하셨듯이
아쉽게도 세계신기록은 단 한 개에 불과했습니다.
대회 마지막 날에야 극적으로 남자 400미터 계주에서 자메이카가 세계신기록을 수립해
가까스로 ‘무 세계기록대회’라는 오명을 지울 수 있었는데요.
대회 직전 국제육상연맹이나 대회 조직위에선 지난 베를린 대회 3개보다 세계신기록이 더 나오지 않을까 내심 많은 기대를 했습니다.
하지만 대회가 시작되고 보니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거나 근접해 있는 스타급 선수들이 하락세에 있거나 컨디션 난조를 보였는데요.
게다가 대회 초반부터 남자 100미터에서 세계 기록 경신을 노렸던 우사인 볼트가 스타트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부정 실격되면서 그 분위기가 묘하게 다른 종목 선수들에게도 이어졌습니다.여자 장대높이뛰기 최강자인 ‘미녀새’ 이신바예바는 사실 왜 출전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요.
본인이 수립한 세계 최고 기록 5미터6센티미터보다 무려 41센티미터가 뒤진 저조한 기록으로 6위에 그쳤습니다.
이산바예바는 부상 후유증이 있었지만 노련함으로 경쟁자들과 접전을 벌일 것이라고 봤는데 결국 제 컨디션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장대높이뛰기 종목 경기력 분석을 담당했던 체육과학연구원 최규정 수석연구원의 말을 들어보시겠습니다. [인터뷰 : 최규정 수석연구원 / 체육과학연구원]
“경기의 부담감 때문에 평정심이 깨지면서 경기 운영의 틀이 깨지게 되고, 전체적으로는 마치 마의 덫에 걸린 것처럼 모든 조건들이, 몸도 충분히 활성화되지 않은 그런 경기 운영, 심리적으로도 집중할 수 없었던 거고… 경기를 본인이 끌고 가지 않고 끌려가는 상황이 돼 불운한 경기가 됐습니다.”[앵커]
덥고 습한 날씨가 기록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이는데요.[기자]
네. 직접 대구에 내려가 보니 그야말로 찜통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기온은 2007년 오사카, 2009년 베를린 대회와 비슷했지만 높은 습도가 변수였습니다.
밤에도 높은 습도가 유지되다보니 트랙뿐 아니라 도약 종목에서도 선수들이 컨디션을 유지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선수들은 이미 대기할 때부터 많은 땀을 흘려 체력 소모가 많을 수밖에 없었고요.
그러다보니 집중력도 상당히 떨어졌습니다. [앵커]
그래도 대회 막판 볼트가 남자 200미터와 남자 400미터 계주에서 폭발적인 스퍼트를 뽐냈고, 의족 스프린터인 남아프리카공화국 피스토리우스도 감동의 역주를 펼치는 등 볼거리가 제법 나왔습니다. [기자]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볼트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사실 볼트가 100미터에서 부정 출발로 실격당하면서 나머지 종목에서도 부담을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습니다.
볼트의 라이벌인 자메이카 파월이나 미국의 타이슨 게이가 부상 등을 이유로
불참한 가운데서 볼트의 부진은 대회 흥행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 다름없었는데요.
다행히도 볼트가 200미터에서 남자 400미터 계주에서 역주를 펼치면서 체면을 세웠습니다.
피스토리우스의 감동의 역주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피스토리우스는 투혼을 발휘하며 남자 400미터에서 준결승까지 진출했고, 1600미터 계주에선 1번 주자로 나서 남아공의 결승 진출을 견인하면서 단연 주목을 끌었습니다. [앵커]
이번 대회를 통해 나타난 세계 육상 경쟁 구도는 어떻습니까.[기자]
트랙 단거리는 미국과 자메이카, 장거리는 아프리카, 투척과 필드는 동구권이 강세를 보이는 기존 판도엔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 틈 사이를 중국과 일본이 진입한 것이 주목할만합니다.
이번 대회에서 중국은 금메달 1개를 포함해 4개의 메달을 따냈고, 일본도 남자 해머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등 선전을 펼쳤습니다.
두 나라는 트랙과 필드 종목에서 준결승 이상 진출자를 고르게 배출하면서 런던올림픽을 기대케 했습니다.
체격 조건이 비슷한 우리에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기록은 전체적으로 하향 평준화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인터뷰 : 김기진 교수 / 계명대 체육과 ]
“우리가 기대하는 스타 선수들이 비교적 조금 노쇠했지 않느냐 이제. 그래서 세대 교체 시기에 지금 들어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혜성처럼 나타난 새로운 신인들이 기존기록을 월등하게 앞설 수 있는 경기력을 갖지 못하지 않느냐….”

[앵커]
한국에서 열린 대회, 우리 선수들의 부진은 정말 안타까운데요. 가능성과 숙제를 동시에 남긴 대회가 아닌가 싶습니다. [기자]
역시 세계의 벽은 높았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고작 3종목에서 10위 안에 진입했는데요. 한국신기록은 4개가 나왔습니다.
계주의 선전이 눈에 띄는데요.
남자 20킬로미터 경보에서 김현섭이 6위, 남자 50킬로미터 경보에서도 박칠성이 한국신기록을 세우며 7위로 들어왔습니다.
남자 1600미터 계주 팀은 13년 만에 한국신기록을 갈아 치웠고요. 대회 마지막 날 남자 400미터 계주에서도 사상 처음 38초대에 진입하며 한국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밖에 남자 10종 경기 김건우와 여자 높이뛰기의 최윤희가 제 실력을 발휘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종목은 실망스러웠습니다.
특히 34년 동안 깨지지 않았던 남자 100미터 한국기록을 경신하며 우리 출전 선수 중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김국영은 예선 첫 레이스에서 실격해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남자 마라톤도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3명의 기록을 합산해 순위를 매기는 단체전에서 3위 이내 입상을 자신했던 남자 마라톤은 참가선수 5명 모두 중하위권으로 밀려났습니다. 우리 대표팀은 10개 종목에서 10위 안에 들겠다는 당초의 ‘10-10’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육상 관계자들이 느낀 실망감은 상당히 큰데요.
장재근 대한육상경기연맹 이사의 말을 들어보시겠습니다. [인터뷰 : 장재근 / 대한육상경기연맹 이사]
“4년 전부터 세계선수권을 준비했을 때 분명히 격차가 난다는 것을 밑에 깔고 알고 대비를 했어야 하는 건데. 10-10이 아니라 4-4 정도 삼고 ‘올 인’을 했으면 좀 더 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는 거죠. 우리 한국에서도 한 사람만 만들어낸다면 당연히 따라오게 돼있어요. 박태환 선수 나오고 나서부터 수영은 엄청나게 기량이 좋아졌어요. 똑같은 거예요.”[앵커]
대회 운영 면에서 아쉬운 점은 없었나요. 특히 숙소나 교통, 미디어 지원과 관련해 외신 기자들과 선수들이 불만이 컸다고 하던데요. [기자]
으레 국제대회를 치르면 터져 나오는 불만이긴 합니다만
이번 대회 운영에서 몇 가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개막 직전부터 대회 조직위원회가 사전 예고 없이 메인프레스센터를 비워달라고 해 외신기자들이 거세게 항의하는 소동이 빚어져 출발부터 삐걱거렸죠.
숙소 문제에도 불만이 많았는데요.
경기장인 대구 스타디움 주변 호텔이 일찌감치 예약이 마감되면서
많은 외신 기자들이 스타디움에서 거리가 먼 경산 등으로 이동해 숙소를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수단 숙소나 시내에서 경기장을 오가는 셔틀 버스 숫자도 부족해 큰 불편을 겪기도 했습니다.
패스트푸드점, 식당 등 경기장 주변 편의 시설도 아예 대회 중반까지 문을 열지 않아
국내 관객들조차 의아해할 정도였습니다.

[인터뷰 : 레오나르도 포포비치 / 슬로바키아 방송 기자]
“대구 도시가 좋았고, 스타디움도 다른 훌륭했지만 스타디움 주변 상점이 없고, 교통, 숙소 가 불편한 문제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대회 운영을 비교하지면, 지난 베를린 대회는 다른 종목들의 노하우를 육상 대회에 잘 접목시켰던 것 같다.” [앵커]
한국은 올림픽과 월드컵 등에서 세계 스포츠 강국으로 자리매김했는데요.
유독 육상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이번 대회가 우리 육상계를 자극한 좋은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유재영 기자.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