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황태자 영친왕 희귀 유품 첫 공개

등록 2011.11.22.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였지만 평생을 국적 없는 난민으로 비운의 삶을 살아야했던 영친왕(1897~1970)의 희귀 유품들이 국내에 최초로 공개 됐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22일부터 전시되는 이 사진은 영친 왕비와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해온 재일교포 사업가 하정웅 씨가 모아온 유물들이다.

하 씨는 영친왕 부부의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의 사진 100여점을 비롯해 영친 왕비의 일기와 편지 등 610점을 주일본한국대사관에 기증했으며 국립고궁박물관이 이를 인수해 이번 특별전을 열게 됐다.

영친왕은 고종의 아들이며 순종의 이복동생이다. 1907년 11세의 나이로 덕수궁에서 황태자로 책봉됐으나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제국 없는 황태자’가 됐다.

어린 나이에 일본에 볼모로 끌려가 평생을 타향살이를 해야 했으며 1926년 순종이 죽자 형식상 왕위계승자가 됐으나 일본에 머문 채 귀국하지 못했다.

해방 이후 이왕 자격이 박탈되고 평민으로 강등된 후에도 국내 실세들의 반대로 대한민국 국적을 얻지 못하고 일본역시 국적을 인정하지 않아 무국적 생활을 하게 됐다.

전시되고 있는 거의 모든 사진에서 영친왕의 표정에는 나라 잃은 슬픔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특히 노년기에 이르러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가 쓴 회고록에 실은 가족사진에서는 몰락한 황손의 파란만장한 삶이 절실히 느껴진다.

‘우리는 뉴욕 교외에 조그만 아파트를 얻어 부모 자식 세 사람만의 단란한 생활을 시작했다. 아들을 위해 음식을 하고 속옷을 빨래하는 생활을 하면서 비로소 나도 다른 어머니들과 같은 어머니로서의 행복에 젖었다’ -영친왕비 회고록 중-

영친왕은 나라를 떠난지 56년 만인 1963년 마침네 귀국했으나 이미 뇌출혈로 혼수상태였고 고국을 보지 못한 채 서거했다.
특별전은 1월 31일까지 계속 된다.

동영상 뉴스팀 l 박태근 기자 ptk@donga.com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였지만 평생을 국적 없는 난민으로 비운의 삶을 살아야했던 영친왕(1897~1970)의 희귀 유품들이 국내에 최초로 공개 됐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22일부터 전시되는 이 사진은 영친 왕비와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해온 재일교포 사업가 하정웅 씨가 모아온 유물들이다.

하 씨는 영친왕 부부의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의 사진 100여점을 비롯해 영친 왕비의 일기와 편지 등 610점을 주일본한국대사관에 기증했으며 국립고궁박물관이 이를 인수해 이번 특별전을 열게 됐다.

영친왕은 고종의 아들이며 순종의 이복동생이다. 1907년 11세의 나이로 덕수궁에서 황태자로 책봉됐으나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제국 없는 황태자’가 됐다.

어린 나이에 일본에 볼모로 끌려가 평생을 타향살이를 해야 했으며 1926년 순종이 죽자 형식상 왕위계승자가 됐으나 일본에 머문 채 귀국하지 못했다.

해방 이후 이왕 자격이 박탈되고 평민으로 강등된 후에도 국내 실세들의 반대로 대한민국 국적을 얻지 못하고 일본역시 국적을 인정하지 않아 무국적 생활을 하게 됐다.

전시되고 있는 거의 모든 사진에서 영친왕의 표정에는 나라 잃은 슬픔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특히 노년기에 이르러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가 쓴 회고록에 실은 가족사진에서는 몰락한 황손의 파란만장한 삶이 절실히 느껴진다.

‘우리는 뉴욕 교외에 조그만 아파트를 얻어 부모 자식 세 사람만의 단란한 생활을 시작했다. 아들을 위해 음식을 하고 속옷을 빨래하는 생활을 하면서 비로소 나도 다른 어머니들과 같은 어머니로서의 행복에 젖었다’ -영친왕비 회고록 중-

영친왕은 나라를 떠난지 56년 만인 1963년 마침네 귀국했으나 이미 뇌출혈로 혼수상태였고 고국을 보지 못한 채 서거했다.
특별전은 1월 31일까지 계속 된다.

동영상 뉴스팀 l 박태근 기자 pt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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