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복서-7> 길거리 싸움꾼, 프로복싱을 평정하다

등록 2012.05.22.

“권투는 스포츠라기보다 싸움에 가깝죠. 흔히 권투를 ‘허가 난 싸움’ 이라고 하잖아요. 링 위에서는 사람을 때려 죽여도 하자가 없어요. 허가가 났기 때문에. 그만큼 위험한 운동이기 때문에 내 자신이 배짱이 없으면 못하는 거예요. 제가 이긴 건 싸움할 때처럼 내 목을 걸고 죽음을 불사르고 하니까 이기는 거죠.”

전 WBA 플라이급 챔피언 김태식(56)의 복싱 지론이다. 그는 링 안에서도, 밖에서도 싸움을 했노라고 말한다. 그리고 싸움을 할 때야 말로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에게 싸움은 원초적인 수컷의 본능을 넘어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길거리 싸움 수 백 번...진 적 없어
김태식은 어려서부터 싸움을 좋아했다. 자주 싸움을 할 뿐아니라 실력도 제법이었다. 또래들에 비해 작은 체구였던 그는 머리 두 개는 클 법한 형들과 싸우면서도 결코 물러서는 일이 없었고 이기는 쪽은 김태식이었다.

“평소엔 내성적인 아이였는데 싸움이 시작되면 순간적으로 미치는 거죠. 신들린 듯이 싸움을 했어요.”

꿈은 초지일관 권투선수였다. 그러나 그의 고향인 강원도 묵호에는 권투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권투를 하고 싶었던 김태식은 글러브를 가지고 다니며 상대를 찾아 이곳 저곳을 찾아다녔다.

“그때만해도 남자들이 모이면 길거리에서 권투하는 게 있었어요. 저도 모르게 ‘아저씨 저도 한번 해볼게요’ 하고 용감하게 도전하곤 했죠. 그렇게 권투만 보면 제가 생각지 못한 행동들이 막 나왔어요.”

의욕만 앞선 프로데뷔, 쓰디쓴 첫 패배
김태식은 성인이 되자마자 상경했다. 그리고 홍수환의 매니저 김준호가 서울역 근처에서 체육관을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찾아갔다.

“가자마자 스파링을 하고싶다고 얘기했어요. 저도 지금 체육관을 하고 있지만 다짜고짜 그렇게 스파링하자고 얘기하는 건 맞아죽어도 할 말 없을 만큼 굉장한 실례거든요. 그런데 그런 제 모습을 당돌하게 생각한 김준호 씨가 관원 중 한명이랑 스파링을 붙여줬죠.”

처음 정식으로 하게 된 스파링에서 김태식은 흠씬 두들겨 맞았다. 상대는 김태식의 주먹을 요리조리 피했다. 김태식의 코에서 코피가 멈추지 않고 흘렀지만 김준호는 스파링을 중단시키지 않았다. 김태식도 약이 올라 있는 힘을 다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던 중 주먹 한 대가 제대로 걸려 상대선수가 다운됐다. 링 줄 바깥으로 나가떨어질 정도로 센 충격이었다. 김준호는 김태식의 입관을 허락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태식의 프로 데뷔전이 성사됐다. 그 때만해도 김태식은 기본기가 전혀 닦여있지 않은 상태였다. 싸움에서 이기는 법은 알고 있지만 권투에서 이기는 법은 몰랐다. 그는 데뷔전에서 일방적으로 난타당한 끝에 TKO패 당하고 만다.

“아무리 싸움 잘 하는 사람도 권투를 정석으로 배운 사람한테는 절대 안됩니다. 제가 싸움을 몇 백번해서 진 적이 거의 없어요. 링위에서도 그렇게만 하면 될 줄 알았어요. 주먹질만 하면 되는 걸로 착각을 한 거죠. 마우스피스를 물고 코로 숨을 쉬는 것조차 모를 정도였으니까”

악은 오를대로 올랐지만 숨은 턱밑까지 차있었다. 몸은 생각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보다못한 김준호는 3라운드에 타월을 투척했다.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선수”
프로의 벽을 실감했지만 승부욕이 강했던 김태식은 더욱 오기가 생겼다. 자신이 부족했던 점을 연구하고 길거리 싸움과 접목한 새로운 공격방법을 강구했다. 무엇보다 상대를 KO시킬 수 있는 주먹질이 무엇인가 고민하고 훈련했다. 그 결과 경량급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10연속 KO승을 거뒀다. 사람들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선수에 환호했다.

“저는 사수가 없습니다. 저만의 권투였어요. 권투에 미쳤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죠.”

데뷔 14전만에 세계 타이틀매치를 갖게 된 김태식. 그의 상대는 루이스 이바라였다. 그의 비디오를 본 김태식은 상대의 실력에 기가 질려버렸다.

“너무 잘하는 선수였어요. 제 실력으로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더라구요. 그래도 일생에 한 번 올까말까한 기회를 놓칠 순 없었죠.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못이기겠다 싶어 라운드를 접었습니다. 6라운드 안에 승부를 보자. 넘어가면 진다 생각했습니다.”

김태식은 경기시작 4분여 만에 220발의 펀치를 날려 이바라를 KO시켰다. 후에 복싱팬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속사포 펀치였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권투에 미친 사람”
김태식은 타이틀을 오래 지키지는 못했다. 첫 번 째 방어전에서는 상대의 버팅에 턱이 부서지는 악재속에서도 승리를 따냈지만 두 번 째 방어전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타이틀을 잃었다. 이듬해 WBC챔피언에 도전했지만 패했다. 그 다음해에는 라미레즈와의 경기 후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가 뇌수술을 받았다. 그렇게 천재 싸움꾼은 링을 떠났다.
그러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편견과 싸워야했다. 김태식이 웃기만 해도 ‘돌았다’며 그를 멀리했다. 화를 내도 뇌수술의 후유증이라 생각했다.

“어떤 싸움보다도 힘들었어요. 그게 10년이상 가더라구요. 그래서 사회적응에 잘 안됐습니다. 적응을 못하다보니 돈도 많이 까먹고...거의 다 사기당했죠”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이름을 내걸고 체육관을 하고 있다. 음식점을 해보기도 했지만 그가 돌아갈 곳은 역시 권투뿐이었다. 그는 말한다. 나는 권투에 미쳤노라고.

“지금은 권투가 많이 죽었지만 권투인들이 뭉쳐서 열심히 한다면 언젠가는 인기를 다시 회복 할 수 있을 겁니다. 관중들을 미치게 만들 수 있는 그런 걸출한 선수를 키워내는 게 제 마지막 목표입니다.”

백완종 동아닷컴 기자 100p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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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복서-6. 변정일편 보러가기


“권투는 스포츠라기보다 싸움에 가깝죠. 흔히 권투를 ‘허가 난 싸움’ 이라고 하잖아요. 링 위에서는 사람을 때려 죽여도 하자가 없어요. 허가가 났기 때문에. 그만큼 위험한 운동이기 때문에 내 자신이 배짱이 없으면 못하는 거예요. 제가 이긴 건 싸움할 때처럼 내 목을 걸고 죽음을 불사르고 하니까 이기는 거죠.”

전 WBA 플라이급 챔피언 김태식(56)의 복싱 지론이다. 그는 링 안에서도, 밖에서도 싸움을 했노라고 말한다. 그리고 싸움을 할 때야 말로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에게 싸움은 원초적인 수컷의 본능을 넘어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길거리 싸움 수 백 번...진 적 없어
김태식은 어려서부터 싸움을 좋아했다. 자주 싸움을 할 뿐아니라 실력도 제법이었다. 또래들에 비해 작은 체구였던 그는 머리 두 개는 클 법한 형들과 싸우면서도 결코 물러서는 일이 없었고 이기는 쪽은 김태식이었다.

“평소엔 내성적인 아이였는데 싸움이 시작되면 순간적으로 미치는 거죠. 신들린 듯이 싸움을 했어요.”

꿈은 초지일관 권투선수였다. 그러나 그의 고향인 강원도 묵호에는 권투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권투를 하고 싶었던 김태식은 글러브를 가지고 다니며 상대를 찾아 이곳 저곳을 찾아다녔다.

“그때만해도 남자들이 모이면 길거리에서 권투하는 게 있었어요. 저도 모르게 ‘아저씨 저도 한번 해볼게요’ 하고 용감하게 도전하곤 했죠. 그렇게 권투만 보면 제가 생각지 못한 행동들이 막 나왔어요.”

의욕만 앞선 프로데뷔, 쓰디쓴 첫 패배
김태식은 성인이 되자마자 상경했다. 그리고 홍수환의 매니저 김준호가 서울역 근처에서 체육관을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찾아갔다.

“가자마자 스파링을 하고싶다고 얘기했어요. 저도 지금 체육관을 하고 있지만 다짜고짜 그렇게 스파링하자고 얘기하는 건 맞아죽어도 할 말 없을 만큼 굉장한 실례거든요. 그런데 그런 제 모습을 당돌하게 생각한 김준호 씨가 관원 중 한명이랑 스파링을 붙여줬죠.”

처음 정식으로 하게 된 스파링에서 김태식은 흠씬 두들겨 맞았다. 상대는 김태식의 주먹을 요리조리 피했다. 김태식의 코에서 코피가 멈추지 않고 흘렀지만 김준호는 스파링을 중단시키지 않았다. 김태식도 약이 올라 있는 힘을 다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던 중 주먹 한 대가 제대로 걸려 상대선수가 다운됐다. 링 줄 바깥으로 나가떨어질 정도로 센 충격이었다. 김준호는 김태식의 입관을 허락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태식의 프로 데뷔전이 성사됐다. 그 때만해도 김태식은 기본기가 전혀 닦여있지 않은 상태였다. 싸움에서 이기는 법은 알고 있지만 권투에서 이기는 법은 몰랐다. 그는 데뷔전에서 일방적으로 난타당한 끝에 TKO패 당하고 만다.

“아무리 싸움 잘 하는 사람도 권투를 정석으로 배운 사람한테는 절대 안됩니다. 제가 싸움을 몇 백번해서 진 적이 거의 없어요. 링위에서도 그렇게만 하면 될 줄 알았어요. 주먹질만 하면 되는 걸로 착각을 한 거죠. 마우스피스를 물고 코로 숨을 쉬는 것조차 모를 정도였으니까”

악은 오를대로 올랐지만 숨은 턱밑까지 차있었다. 몸은 생각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보다못한 김준호는 3라운드에 타월을 투척했다.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선수”
프로의 벽을 실감했지만 승부욕이 강했던 김태식은 더욱 오기가 생겼다. 자신이 부족했던 점을 연구하고 길거리 싸움과 접목한 새로운 공격방법을 강구했다. 무엇보다 상대를 KO시킬 수 있는 주먹질이 무엇인가 고민하고 훈련했다. 그 결과 경량급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10연속 KO승을 거뒀다. 사람들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선수에 환호했다.

“저는 사수가 없습니다. 저만의 권투였어요. 권투에 미쳤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죠.”

데뷔 14전만에 세계 타이틀매치를 갖게 된 김태식. 그의 상대는 루이스 이바라였다. 그의 비디오를 본 김태식은 상대의 실력에 기가 질려버렸다.

“너무 잘하는 선수였어요. 제 실력으로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더라구요. 그래도 일생에 한 번 올까말까한 기회를 놓칠 순 없었죠.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못이기겠다 싶어 라운드를 접었습니다. 6라운드 안에 승부를 보자. 넘어가면 진다 생각했습니다.”

김태식은 경기시작 4분여 만에 220발의 펀치를 날려 이바라를 KO시켰다. 후에 복싱팬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속사포 펀치였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권투에 미친 사람”
김태식은 타이틀을 오래 지키지는 못했다. 첫 번 째 방어전에서는 상대의 버팅에 턱이 부서지는 악재속에서도 승리를 따냈지만 두 번 째 방어전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타이틀을 잃었다. 이듬해 WBC챔피언에 도전했지만 패했다. 그 다음해에는 라미레즈와의 경기 후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가 뇌수술을 받았다. 그렇게 천재 싸움꾼은 링을 떠났다.
그러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편견과 싸워야했다. 김태식이 웃기만 해도 ‘돌았다’며 그를 멀리했다. 화를 내도 뇌수술의 후유증이라 생각했다.

“어떤 싸움보다도 힘들었어요. 그게 10년이상 가더라구요. 그래서 사회적응에 잘 안됐습니다. 적응을 못하다보니 돈도 많이 까먹고...거의 다 사기당했죠”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이름을 내걸고 체육관을 하고 있다. 음식점을 해보기도 했지만 그가 돌아갈 곳은 역시 권투뿐이었다. 그는 말한다. 나는 권투에 미쳤노라고.

“지금은 권투가 많이 죽었지만 권투인들이 뭉쳐서 열심히 한다면 언젠가는 인기를 다시 회복 할 수 있을 겁니다. 관중들을 미치게 만들 수 있는 그런 걸출한 선수를 키워내는 게 제 마지막 목표입니다.”

백완종 동아닷컴 기자 100p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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