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원짜리 동전… 1000개 모아 아내와 결혼 30주년 여행을

등록 2012.09.10.


나는 작년 가을부터 500원짜리 동전을 모으고 있다.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의 돼지저금통에는 동전이 제법 그득하다. 그 동전에 새겨진 학을 내년 12월까지 1000마리를 목표로 사냥하고 있는 것이다. 밤마다 내 돼지저금통 속에는 희망찬 학의 하얀 날갯짓이 가득 찬다.

내가 하던 사업이 10여 년 전부터 곤두박질치더니 급기야 모든 것을 잃고 더군다나 혹 같은 부채를 떠안고 내 삶의 터전을 떠나야만 했었다. 결국 가족을 떠나 이곳저곳 기웃대다 건설 현장의 노무자로 몇 년을 견뎠다. 그러다가 작년 초에 면책 판결을 받고 여름부터 경기도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로 일하고 있다. 다른 동료들은 박한 월급의 경비직이 인생의 최막장이라 말을 하나 고된 일과뿐만 아니라 복지나 환경이 극도로 척박한 건설노동을 경험한 나에게는 한 단계 발전된 풍요롭고 고마운 직장이라 생각하고 있다.

내가 시절이 좋을 때는 가족들과 여행도 자주 가고 각종 기념일을 빼놓지 않고 챙겼으며, 특히 결혼기념일은 그냥 넘기질 않았다. 정말 힘들 때에도 두 아들의 지원으로 SG워너비의 콘서트를 관람하러 갔으니 그나마 참 행복한 나날을 지낸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 얼마 후인 내년 겨울에는 결혼한 지 30주년이 되는 진주혼식이 도래한다. 따라서 그에 걸맞은 특별한 이벤트를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지난가을 초소에서 혼자 근무할 때 라디오의 심야 음악 프로그램에서 한 애청자가 올린 사연 하나가 나의 오랜 아이디어 구상의 브레이크를 밟아버렸다. ‘1000마리의 종이학을 접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고 사랑을 구하면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종이학을 접을 줄 모르니 500원짜리 동전을 1000개 모아 거기 새겨진 1000마리 학을 내세워 그녀에게 구애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사연을 듣고 나는 곧바로 결혼 30주년의 이벤트 목표를 학 1000마리의 포획으로 정했다. 500원짜리 1000개면 금액으로 50만 원이니 국내 여행 2박 3일 정도의 경비로는 적당하고 부담도 적고 학 1000마리의 의미도 특별하니 가난한 나의 진주혼식 이벤트로는 손색이 없을 터였다.

다음 날 가족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내 계획을 말하였더니 모두 좋은 생각이라고 기뻐하였다. 아내는 따로 1000마리의 학을 모아서 이벤트의 질을 높이겠다고 곧바로 저금통을 마련하여 학을 사냥하고 있으며, 두 아들도 500원짜리를 구해 적극 후원하고 있다. 기념일까지는 800여 일 남았으니 하루 한 개 이상씩만 모은다면 내 계획은 큰 무리가 없는 것이다.

전에는 가족들과 여행이나 낚시 등 여가를 알차게 즐기며 살았는데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실탄을 대부분 상실해 버린 지금은 행복에 드는 원가는 저렴해졌으나 질은 결코 낮아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은 항상 공정하셔서 나의 경제적 무장을 해제하시더니 그 대신 값싸고 질 좋은 행복을 내게 배려해 주시는 것 같다.

사람이 살아가는 게 어찌 사람의 의지대로 되겠는가. 내가 어느 순간 명을 다할 줄 모르는데 원대한 꿈을 버킷리스트로 잡았다가 그 계획에 도리어 볼모로 잡혀 작은 행복의 부스러기들을 놓쳐 버린다면 인생의 후반을 살아가는 나로서는 참으로 애석한 일이 될 것이다. 더군다나 그 계획을 다 이루기도 전에 불행을 당한다면 버킷리스트는 한갓 계획으로만 그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나는 되도록 기간이 짧고 크기는 작지만 차별화되고 가슴이 따뜻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을 하며, 그 계획이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또 다른 짧고 작은 다음의 버킷리스트를 마련할 뿐이다.

이제 돌아오는 내년 겨울의 진주혼식 기념여행에서는 고난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고 내 곁을 지켜준 아내에게 두 번째 프러포즈를 해야겠다. “다시 태어나도 나랑 같이 살아줄래요? 샐리님(사이버 공간에서의 아내의 별명)” 하고. 1000마리의 학은 사랑을 이루어준다고 했으니까. 이것이 지금 나의 유일하고 소박한 버킷리스트이다.

최평균 아파트 경비원, 수필가



나는 작년 가을부터 500원짜리 동전을 모으고 있다.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의 돼지저금통에는 동전이 제법 그득하다. 그 동전에 새겨진 학을 내년 12월까지 1000마리를 목표로 사냥하고 있는 것이다. 밤마다 내 돼지저금통 속에는 희망찬 학의 하얀 날갯짓이 가득 찬다.

내가 하던 사업이 10여 년 전부터 곤두박질치더니 급기야 모든 것을 잃고 더군다나 혹 같은 부채를 떠안고 내 삶의 터전을 떠나야만 했었다. 결국 가족을 떠나 이곳저곳 기웃대다 건설 현장의 노무자로 몇 년을 견뎠다. 그러다가 작년 초에 면책 판결을 받고 여름부터 경기도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로 일하고 있다. 다른 동료들은 박한 월급의 경비직이 인생의 최막장이라 말을 하나 고된 일과뿐만 아니라 복지나 환경이 극도로 척박한 건설노동을 경험한 나에게는 한 단계 발전된 풍요롭고 고마운 직장이라 생각하고 있다.

내가 시절이 좋을 때는 가족들과 여행도 자주 가고 각종 기념일을 빼놓지 않고 챙겼으며, 특히 결혼기념일은 그냥 넘기질 않았다. 정말 힘들 때에도 두 아들의 지원으로 SG워너비의 콘서트를 관람하러 갔으니 그나마 참 행복한 나날을 지낸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 얼마 후인 내년 겨울에는 결혼한 지 30주년이 되는 진주혼식이 도래한다. 따라서 그에 걸맞은 특별한 이벤트를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지난가을 초소에서 혼자 근무할 때 라디오의 심야 음악 프로그램에서 한 애청자가 올린 사연 하나가 나의 오랜 아이디어 구상의 브레이크를 밟아버렸다. ‘1000마리의 종이학을 접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고 사랑을 구하면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종이학을 접을 줄 모르니 500원짜리 동전을 1000개 모아 거기 새겨진 1000마리 학을 내세워 그녀에게 구애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사연을 듣고 나는 곧바로 결혼 30주년의 이벤트 목표를 학 1000마리의 포획으로 정했다. 500원짜리 1000개면 금액으로 50만 원이니 국내 여행 2박 3일 정도의 경비로는 적당하고 부담도 적고 학 1000마리의 의미도 특별하니 가난한 나의 진주혼식 이벤트로는 손색이 없을 터였다.

다음 날 가족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내 계획을 말하였더니 모두 좋은 생각이라고 기뻐하였다. 아내는 따로 1000마리의 학을 모아서 이벤트의 질을 높이겠다고 곧바로 저금통을 마련하여 학을 사냥하고 있으며, 두 아들도 500원짜리를 구해 적극 후원하고 있다. 기념일까지는 800여 일 남았으니 하루 한 개 이상씩만 모은다면 내 계획은 큰 무리가 없는 것이다.

전에는 가족들과 여행이나 낚시 등 여가를 알차게 즐기며 살았는데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실탄을 대부분 상실해 버린 지금은 행복에 드는 원가는 저렴해졌으나 질은 결코 낮아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은 항상 공정하셔서 나의 경제적 무장을 해제하시더니 그 대신 값싸고 질 좋은 행복을 내게 배려해 주시는 것 같다.

사람이 살아가는 게 어찌 사람의 의지대로 되겠는가. 내가 어느 순간 명을 다할 줄 모르는데 원대한 꿈을 버킷리스트로 잡았다가 그 계획에 도리어 볼모로 잡혀 작은 행복의 부스러기들을 놓쳐 버린다면 인생의 후반을 살아가는 나로서는 참으로 애석한 일이 될 것이다. 더군다나 그 계획을 다 이루기도 전에 불행을 당한다면 버킷리스트는 한갓 계획으로만 그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나는 되도록 기간이 짧고 크기는 작지만 차별화되고 가슴이 따뜻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을 하며, 그 계획이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또 다른 짧고 작은 다음의 버킷리스트를 마련할 뿐이다.

이제 돌아오는 내년 겨울의 진주혼식 기념여행에서는 고난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고 내 곁을 지켜준 아내에게 두 번째 프러포즈를 해야겠다. “다시 태어나도 나랑 같이 살아줄래요? 샐리님(사이버 공간에서의 아내의 별명)” 하고. 1000마리의 학은 사랑을 이루어준다고 했으니까. 이것이 지금 나의 유일하고 소박한 버킷리스트이다.

최평균 아파트 경비원, 수필가

더보기
공유하기 닫기

VODA 인기 동영상

  1. 유튜브 알고리즘 초기화 및 특수 댓글 작성 방법!
    재생01:04
    1
    ITip2유튜브 알고리즘 초기화 및 특수 댓글 작성 방법!
  2. [예고] "우리 언니 어떤 점이 좋아요?" 동완을 당황시킨 윤아의 절친 어반자카파 조현아!
    재생00:31
    2
    요즘남자라이프 신랑수업[예고] "우리 언니 어떤 점이 좋아요?" 동완을 당황시킨 윤아의 절친 어반자카파 조현아!
  3. [나.솔.사.계 58회 예고] 8옥순을 지키기 위한 11영식의 방어전...!ㅣ사랑은 계속된다 EP.58ㅣSBS PLUS X ENAㅣ목요일 밤 10시 30분
    재생00:30
    3
    나는 SOLO, 그 후 사랑은 계속된다[나.솔.사.계 58회 예고] 8옥순을 지키기 위한 11영식의 방어전...!ㅣ사랑은 계속된다 EP.58ㅣSBS PLUS X ENAㅣ목요일 밤 10시 30분
  4. [선공개] ※일촉즉발 대치 상황※ 게임에 집착하며 위협적으로 돌변한 금쪽이
    재생01:30
    4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새끼[선공개] ※일촉즉발 대치 상황※ 게임에 집착하며 위협적으로 돌변한 금쪽이
  5. 동갑내기 치과의사 남편의 내조 피곤한 아내 양지은 위한 사랑의 마사지! 이 분위기 뭐야~ | KBS 240419 방송
    재생03:25
    5
    신상출시 편스토랑동갑내기 치과의사 남편의 내조 피곤한 아내 양지은 위한 사랑의 마사지! 이 분위기 뭐야~ | KBS 240419 방송
  6. 양지은, 동갑내기 치과의사 남편에게 해고통보서 내밀었다! "본업 치과의사로 돌아가요!" | KBS 240419 방송
    재생05:11
    6
    신상출시 편스토랑양지은, 동갑내기 치과의사 남편에게 해고통보서 내밀었다! "본업 치과의사로 돌아가요!" | KBS 240419 방송
  7. 저는 정도의 길을 걷습니다 (뮤직스테이션 연창영 원장 1부)
    재생10:21
    7
    골린이 박찬의 노골프저는 정도의 길을 걷습니다 (뮤직스테이션 연창영 원장 1부)
  8. [모두의 챌린지] 두 번째 친환경 챌린지, 야생 조류 충돌 방지를 위한 노력 \
    재생02:15
    8
    모두의 챌린지[모두의 챌린지] 두 번째 친환경 챌린지, 야생 조류 충돌 방지를 위한 노력 '새를 구해요 챌린지', MBC 240419 방송
  9. 미스트롯3 TOP7 그 전설의 시작은?!🤔 TV CHOSUN 240418 방송
    재생03:22
    9
    미스트롯3 TOP7 완전 정복미스트롯3 TOP7 그 전설의 시작은?!🤔 TV CHOSUN 240418 방송
  10. 이 무대를 보고 상도에게 빠지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야 TV CHOSUN 240419 방송
    재생04:01
    10
    미스터 로또이 무대를 보고 상도에게 빠지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야 TV CHOSUN 240419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