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 이해인수녀 “숨쉬는 자체가…”

등록 2012.12.27.
《 본보 오피니언면에 '삶과 죽음이야기'를 연재한 웰다잉 강사이자 칼럼니스트 최철주씨가 이해인 수녀와 가진 대담 원고를 보내왔습니다. 대담은 지난 23일 부산의 성베테딕토 수녀원에서 이뤄졌습니다. 이해인 수녀가 지면을 통해 요즘 근황을 자세히 전한 적은 오랜만입니다. 현재 암투병 중인 수녀는 밝음과 희망을 잃지 않으며 현재 삶에 고맙다는 마음을 본보 독자들에게 보내왔습니다. 》

부산 광안리 해변의 차가운 바닷바람을 등에 지고 큰 길을 건너자마자 성베네딕도 수녀회로 들어가는 큰 골목이 나왔다. 나이 든 남자가 수녀원 입구 경비실에서 뛰쳐나와 용건을 물었다. "이해인 수녀님 인터뷰요?" 그는 혼자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상하다는 표정이었다.

이해인 수녀(67)는 여러 차례 인터뷰를 고사해왔다. 자신이 암 투병중이기도 하지만 메스컴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걸 몹시 꺼렸다. 동아일보에 5개월 동안 매주 '삶과 죽음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그와의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도 선뜻 오케이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 해의 마지막 달이 주는 위로가 생각을 바꾸게 만들었을까. 그가 얼마 전 '소박하고 따뜻한 이야기만 합시다'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오랜 역사를 지닌 수녀원 건물 안에는 20미터 높이의 소나무 10여 그루가 한결같이 Y자형으로 자라고 있었다. 수녀원 안을 한 바퀴 돌아본 뒤 약속된 시간에 피정의 집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그가 조그마한 꽃 한송이를 들고 나타났다. 검은 수녀복을 입은 그녀의 표정이 밝았다. "산다화입니다. 동백과에 속하긴 하지만 우리가 흔히 보는 것과는 좀 다르죠?" 나는 노란 꽃가루를 매단 산다화의 달콤한 향기를 맡으며 그가 사무실로 쓰고 있는 민들레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민들레라는 꽃 이름을 많이 쓰시는 군요

"민들레는 희망의 씨앗이지요. 바람이 불면 그 씨앗이 여기저기로 날아가잖아요. 제 시가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씨앗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의 첫 시집이 '민들레의 영토'이다)

-독자들에게 뿌린 씨앗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동안 저작물도 시집, 산문집, 번역집 합해서 20여권 정도 되니 정말 많은 생각들을 뿌린 셈이지요. 덕분에 분에 넘치는 사랑도 많이 받았고요. 연말연시를 맞아 저는 자신도 모르게 해이해진건 없나하고 돌아보면서 수도생활 초기에 가졌던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생활하는 수도자이지요. 지금도 간간이 스며드는 암 환자로서의 무력증이나 우울함과도 잘 싸워야겠지요. 그동안 제 건강을 위해 멀리서 가까이서 기도해 준 많은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되새김하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세상이 어려워질수록 마음에 상처 받은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우리들 언어가 너무 거칠어졌어요.

"간혹 제가 강의를 하면 꼭 고운 말 쓰기에 대한 것을 빼놓지 않고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어쩌면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막말을 내뱉을 수 있는 것인지요. 정신병동에 입원한 이들의 말을 들어도 가장 가까운 이들의 폭언에 상처를 받은 경우가 있고 자살의 원인도 막말의 상처일 때가 많은 것을 그들이 남긴 유서에서도 알 수 있어요."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해야 이겨낼 수 있어요?

"평상심으로 생활하는 습관이 배어있어야 상처를 덜 받는 것 같습니다. 인간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도록 좋은 책을 많이 읽어두는 것도 비결이라고 봅니다."



▼ 삶을 감사하고, 아픔을 받아들일때 싹트는 지혜… 그게 희망이죠 ▼

-이해인 수녀의 시가 많이 애송되는 이유는 뭘까요?

"제 시가 대단한 깨우침의 정답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못된 것은 나 때문이라고 자책하고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보면서 용서하자고 해요. 제 약점도 드러내면서 고백하고 그것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 뿐 이에요."

-그래도 시집이 수 만권 씩 팔리지요?

"독자의 아들딸들이 똑 독자가 되어 시를 읽고 편지를 보내옵니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요. 수녀원 동료들이 뭐라고 그러는지 아세요? 그들은 내 약점도 잘 알고 있잖아요. 도대체 뭘 보고 독자들이 해인 수녀님을 그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며 웃어요."

나는 그녀의 밝은 웃음을 보면서 따라 웃었다.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갖는 고뇌가 있겠지요?

"저도 이런저런 소문이나 구설수에 휘말릴 때도 있고 더러는 억울하고 배신감을 느낄 때도 있어요. 그러나 수행에 필요한 교훈으로 삼으면 평화가 찾아옵니다. 제가 암 환자가 되고 나서 더욱 그래야 한다는 걸 느껴요. 저도 인기나 명예의 함정을 잘 알고 있어요. 제 책이 많이 팔린다고 해도 인세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 그 내용을 잘 몰라요. 수녀원이라는 공동체가 인세를 관리합니다. 이웃돕기를 할 때는 제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이름으로 하는데 그게 우리의 무소유 방식입니다."

-힘드실 땐 어떻게 위안을 찾아요?

"저도 외로울 때가 있지요. 그래서 채워야 해요. 몸이 아프니까 사람 만나는 것도 힘들어요. 매정하게 이거저거 다 거절하고 혼자 내 안으로 들어가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러다가도 아이고,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이럴까 하는 두 마음이 왔다 갔다 해요."

-'희망은 깨어있네'라는 시집에서 '옷 정리'를 읽어보면 마음이 아파오더군요.(한 사람이 살아온 흔적을/단번에 지우는 일이 어렵다고/옷장 속의 옷들이/저마다 한마디씩 거드네/지상에서 /내 육신이 떠나면/필요없는 옷들에게/미리 작별인사 고하면서/눈물이 나네)

"호스피스 단체의 모임에서 그런 시를 낭송해 주면 모두 눈물을 흘려요. 저만 아픈 게 아니잖아요. 서로 몸과 마음이 아파서 그래요. 수술하고 나서 물 한 모금 마시기 힘들어하는 제게 어느 날 영양사가 하는 말을 시로 지은 것도 읽어 주었지요. '물도/음식이라 생각하고/아주 천천히 맛있게/ 씹어서 드세요' 라는 시이지요. 저는 그들에게 힘을 내라고 격려하지요. 그러면서 어느 날엔가 제 입에서 쏟아진 모든 말들이 유언이 되고 제가 썼던 글들이 유작이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핑 도는 걸 느낄 때가 있어요."

이해인 수녀가 일어나서 찐 밤을 접시에 담아왔다. 찻숟갈로 밤을 파먹으면서 나는 그의 투병생활을 어느 수준까지 질문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시인의 마음을 가늠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병원에 다니실 때 마다 다른 암환자들과 자주 마주치게 되시죠?

"다들 알아보지요. CT 찍으러 갈 때는 저를 그냥 내버려뒀으면 좋겠는데 환자와 가족들이 몰려들어요.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들려주지요. 아픈 사람이 아픈 환자 보면 더 마음이 아파요. 그런데 저도 모르게 그들에게 참견하고 덕담하고 격려하기에 바빠져요. 백혈병 걸린 아기 엄마들이 기도해달라고 하면 그 자리에서 기도 올리고…그게 제가 할 일이지요."

-고단하실 터인 데 맨날 그럴 수도 없지 않은가요?

"병원에 가면 기도해 달라, 책에 사인해 달라는 사람들이 단 숨에 줄을 서요. 병원 한 구석에 숨어서 하는데도 그래요. 그들에게 줄 기도카드랑 작은 선물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제 가방은 항상 무거워요. 암 환자들에게 연민의 정을 많이 느껴요."

-아프고 수술 받고 죽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안 듣는 날이 없겠군요

"매일 매일 듣고 또 들려오기도 하지요. 애도할 겨를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늘 죽음에 대해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세상에는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지요.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일수록 더 그래요. 우리가 어떻게 살다 가야 하는지 죽음교육을 받으며 충실한 삶을 이어가도록 했으면 해요."

그는 사무실 방의 한쪽 벽을 메우고 있는 서가의 한쪽 부분을 가리키며 "여기에 죽음에 관한 책들만 모아 놓았습니다.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일을 일상화 할 필요가 있어서요. 저도 그렇지만 모두가 이런 걸 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철학이라 해도 좋고 생활 공부라고 해도 좋고요."

암 투병 중에도 그가 지쳐 보이지 않는 저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를 나는 곰곰 생각했다. 그가 앉아있는 오른 쪽 서가에는 낯선 사진과 유품들이 진열되어있다.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 소설가 박완서씨, 영문학자 장영희 교수, 화가 김점선씨 등이다. 이해인 수녀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던 인물들이다. 최근 몇 년 동안에 세상을 떠난 그들의 사랑이 느껴진다. 다른 한쪽 책상 서랍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수많은 노트 뭉치가 눈에 들어왔다.

-이게 일기인가요? 입원 중에도 계속 쓰신 건가요?

"제가 아플 때도 병원에서 빠지지 않고 짧게 노트한 거죠. 예쁜 그림도 붙여놓고 기록했어요. 아…여기가 파라다이스다 생각하면서요. 침대에서 써야하니 작은 메모 수첩이 필요했어요. 생활일지라고나 할까, 하루 일과를 반성하면서 한 자 한 자 적어나갔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것도 세상에서 끝이 나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150여 쪽 되어 보이는 각각의 수첩에 붙여진 일련번호는 142번. 그가 지금까지 기록해온 삶이 그만큼 엄청 두텁게 쌓였다. 그런데 나는 특이한 것을 알아차렸다. 그의 허락을 받고 잠시 기록을 들여다보니 건강했을 때나 암 수술을 받고 입원 중이었을 때나 글씨체가 한 결 같이 똑 같았다. 병중(病中)에서라면 흘린 글씨체도 나올 법한 일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똑같은 글씨를 쓸 수 있어요?'하고 묻자 그는 미소만 지었다.

-'이해인의 시' 하면 사람들이 따뜻한 말을 연상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왜 그런 말을 쓰는 사회에서 더 멀어지고 있을까요?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분위기다 보니 남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 보다 질투나 시기심에 사로잡히거나 인내심이 줄어들고 자꾸만 충동에 휘둘리는 경향이 더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비움'이나 '힐링'이라는 말이 과용 되거나 남용되고 있습니다.

"글쎄요. 우리는 비움이나 힐링 뿐 아니라 온갖 좋은 말을 다하지만 그 단어의 뜻대로 살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글로벌이란 말도 너무 많이 하지만 우리 자신은 아직도 협소하고 근시안적인 삶의 태도를 버리지 못하는 걸 자주 발견하게 되던데요. 말부터 할 것이 아니라 그냥 겸손하고 성실한 자세로 그날그날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남에게 바라기 전에 내가 먼저 솔선수범하는 삶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가정에선 부모가 먼저 본이 되고 학교에선 교사가 본이 되고 나라에선 다스리는 사람들이 본이 되는 그런 모습이…."

-수도생활보다 가정생활이 더 쉬울까요. 아니면 수도생활이?

"곤란한 질문인거 같아요. 어려서는 저도 잘 몰랐는데 이 나이에 돌아보니 가정생활 역시 정말로 힘든 수도생활이란 생각이 새롭게 듭니다. 그렇다고 수도생활이 더 쉽다는 뜻은 결코 아니고요. 둘 다 삶의 내용은 다르지만 결국은 같은 급수의 수도생활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에는 악한 자, 교만한 자들이 더 오래 잘 사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때가 있습니다. 어리석은 생각인가요?

"저도 실은 그런 생각을 종종 하는걸요. 성서의 시편에도 보면 악한 이들이 잘되는 꼴을 참을 수 없어 제발 그들을 벌해 달라고 간청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그러나 결국은 어떤 모양으로든 선이 승리하는 세상을 우리는 꿈꾸고 믿어야 한다고 봅니다."

-생로병사로 얽힌 삶은 온통 고통뿐인가요? 희망을 가지고 삶을 이끌어 가는 자세란 어떤 것인가요?

"희망이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지요. 한 번 밖에 없는 자신의 삶을 우선 감사하며 크고 작은 아픔과 시련도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있다면 거기서 살아가는 힘과 지혜가 싹 튼다고 봅니다. 그것이 바로 희망이 아닌가 싶어요. 큰 수술하고 나니 살아서 숨을 쉴 수 있는 것 자체가 희망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가을 호스피스 봉사자들에게 '아픈 이의 신발을 잘 신겨주기 위해 자신을 낮추어야겠다.'고 하시는 말의 여운이 길게 남습니다.

"건강한 이들은 항상 자신의 입장에서 아픈 이들을 훈계하고 사랑의 잔소리도 심하게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기에 조금만 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 신발 이야길 상징으로 한 것입니다."

-암 투병을 통해 들여다본 자신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삶에 대한 감사가 더 깊어진 것, 주변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 애틋해진 것, 사물에 대한 시선이 더 예민해진 것, 습관적으로 해오던 기도가 좀 더 새롭고 간절해 진 것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시집 '희망은 깨어있네'에는 작가가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말이 다 들어 있더군요. 더 넣고 싶은 주제가 있나요?

"그 시집은 어쩌면 이승에서의 마지막 작품집이 될지 모른다는 각오로 적은 저의 투병기이기도 합니다. 거기서 저는 '고통의 학교'수련생임을 강조했는데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날그날을 감사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바로 희망이라고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더 넣고 싶은 주제라…우리가 무심해서 놓치고 사는 '일상의 황홀함'이 주는 행복을 좀 더 강조하고 싶네요."

대화를 나눈 지 2시간 가까이 흘러갔을 무렵 나는 그의 사색의 공간을 탐색하고 싶어졌다. 환자에게 겨울 찬바람이 괜찮을까 걱정도 됐지만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광안리 해변으로 산책을 청했다. 수도원에서 걸어서 15분 거리. 큰 거리를 가로질러 가다가 작은 골목길을 빠져나갔는데 그곳에는 빵집, 이발소, 철물점, 호프집 등이 있었다. 우리네 삶의 현장들이었다. 이해인 수녀를 둘러싼 세계이기도 하다.

"시(詩)란 뭘까요?"

해변을 걷는데 그가 내게 물었다. "글쎄요…시란 뭐지요?" 내가 되물었다. 그가 겨울 바다의 잔잔한 파도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시란 삶에 대한 감사와 그리움을 사계절 언어로 풀어낸 상징적인 기도이지요." 광안대교를 건너 먼 바다에서부터 석양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의 짙은 눈썹에도 또 한 편의 시가 내려앉았다.



대담=최철주 웰다잉 칼럼니스트

《 본보 오피니언면에 '삶과 죽음이야기'를 연재한 웰다잉 강사이자 칼럼니스트 최철주씨가 이해인 수녀와 가진 대담 원고를 보내왔습니다. 대담은 지난 23일 부산의 성베테딕토 수녀원에서 이뤄졌습니다. 이해인 수녀가 지면을 통해 요즘 근황을 자세히 전한 적은 오랜만입니다. 현재 암투병 중인 수녀는 밝음과 희망을 잃지 않으며 현재 삶에 고맙다는 마음을 본보 독자들에게 보내왔습니다. 》

부산 광안리 해변의 차가운 바닷바람을 등에 지고 큰 길을 건너자마자 성베네딕도 수녀회로 들어가는 큰 골목이 나왔다. 나이 든 남자가 수녀원 입구 경비실에서 뛰쳐나와 용건을 물었다. "이해인 수녀님 인터뷰요?" 그는 혼자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상하다는 표정이었다.

이해인 수녀(67)는 여러 차례 인터뷰를 고사해왔다. 자신이 암 투병중이기도 하지만 메스컴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걸 몹시 꺼렸다. 동아일보에 5개월 동안 매주 '삶과 죽음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그와의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도 선뜻 오케이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 해의 마지막 달이 주는 위로가 생각을 바꾸게 만들었을까. 그가 얼마 전 '소박하고 따뜻한 이야기만 합시다'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오랜 역사를 지닌 수녀원 건물 안에는 20미터 높이의 소나무 10여 그루가 한결같이 Y자형으로 자라고 있었다. 수녀원 안을 한 바퀴 돌아본 뒤 약속된 시간에 피정의 집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그가 조그마한 꽃 한송이를 들고 나타났다. 검은 수녀복을 입은 그녀의 표정이 밝았다. "산다화입니다. 동백과에 속하긴 하지만 우리가 흔히 보는 것과는 좀 다르죠?" 나는 노란 꽃가루를 매단 산다화의 달콤한 향기를 맡으며 그가 사무실로 쓰고 있는 민들레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민들레라는 꽃 이름을 많이 쓰시는 군요

"민들레는 희망의 씨앗이지요. 바람이 불면 그 씨앗이 여기저기로 날아가잖아요. 제 시가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씨앗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의 첫 시집이 '민들레의 영토'이다)

-독자들에게 뿌린 씨앗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동안 저작물도 시집, 산문집, 번역집 합해서 20여권 정도 되니 정말 많은 생각들을 뿌린 셈이지요. 덕분에 분에 넘치는 사랑도 많이 받았고요. 연말연시를 맞아 저는 자신도 모르게 해이해진건 없나하고 돌아보면서 수도생활 초기에 가졌던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생활하는 수도자이지요. 지금도 간간이 스며드는 암 환자로서의 무력증이나 우울함과도 잘 싸워야겠지요. 그동안 제 건강을 위해 멀리서 가까이서 기도해 준 많은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되새김하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세상이 어려워질수록 마음에 상처 받은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우리들 언어가 너무 거칠어졌어요.

"간혹 제가 강의를 하면 꼭 고운 말 쓰기에 대한 것을 빼놓지 않고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어쩌면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막말을 내뱉을 수 있는 것인지요. 정신병동에 입원한 이들의 말을 들어도 가장 가까운 이들의 폭언에 상처를 받은 경우가 있고 자살의 원인도 막말의 상처일 때가 많은 것을 그들이 남긴 유서에서도 알 수 있어요."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해야 이겨낼 수 있어요?

"평상심으로 생활하는 습관이 배어있어야 상처를 덜 받는 것 같습니다. 인간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도록 좋은 책을 많이 읽어두는 것도 비결이라고 봅니다."



▼ 삶을 감사하고, 아픔을 받아들일때 싹트는 지혜… 그게 희망이죠 ▼

-이해인 수녀의 시가 많이 애송되는 이유는 뭘까요?

"제 시가 대단한 깨우침의 정답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못된 것은 나 때문이라고 자책하고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보면서 용서하자고 해요. 제 약점도 드러내면서 고백하고 그것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 뿐 이에요."

-그래도 시집이 수 만권 씩 팔리지요?

"독자의 아들딸들이 똑 독자가 되어 시를 읽고 편지를 보내옵니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요. 수녀원 동료들이 뭐라고 그러는지 아세요? 그들은 내 약점도 잘 알고 있잖아요. 도대체 뭘 보고 독자들이 해인 수녀님을 그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며 웃어요."

나는 그녀의 밝은 웃음을 보면서 따라 웃었다.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갖는 고뇌가 있겠지요?

"저도 이런저런 소문이나 구설수에 휘말릴 때도 있고 더러는 억울하고 배신감을 느낄 때도 있어요. 그러나 수행에 필요한 교훈으로 삼으면 평화가 찾아옵니다. 제가 암 환자가 되고 나서 더욱 그래야 한다는 걸 느껴요. 저도 인기나 명예의 함정을 잘 알고 있어요. 제 책이 많이 팔린다고 해도 인세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 그 내용을 잘 몰라요. 수녀원이라는 공동체가 인세를 관리합니다. 이웃돕기를 할 때는 제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이름으로 하는데 그게 우리의 무소유 방식입니다."

-힘드실 땐 어떻게 위안을 찾아요?

"저도 외로울 때가 있지요. 그래서 채워야 해요. 몸이 아프니까 사람 만나는 것도 힘들어요. 매정하게 이거저거 다 거절하고 혼자 내 안으로 들어가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러다가도 아이고,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이럴까 하는 두 마음이 왔다 갔다 해요."

-'희망은 깨어있네'라는 시집에서 '옷 정리'를 읽어보면 마음이 아파오더군요.(한 사람이 살아온 흔적을/단번에 지우는 일이 어렵다고/옷장 속의 옷들이/저마다 한마디씩 거드네/지상에서 /내 육신이 떠나면/필요없는 옷들에게/미리 작별인사 고하면서/눈물이 나네)

"호스피스 단체의 모임에서 그런 시를 낭송해 주면 모두 눈물을 흘려요. 저만 아픈 게 아니잖아요. 서로 몸과 마음이 아파서 그래요. 수술하고 나서 물 한 모금 마시기 힘들어하는 제게 어느 날 영양사가 하는 말을 시로 지은 것도 읽어 주었지요. '물도/음식이라 생각하고/아주 천천히 맛있게/ 씹어서 드세요' 라는 시이지요. 저는 그들에게 힘을 내라고 격려하지요. 그러면서 어느 날엔가 제 입에서 쏟아진 모든 말들이 유언이 되고 제가 썼던 글들이 유작이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핑 도는 걸 느낄 때가 있어요."

이해인 수녀가 일어나서 찐 밤을 접시에 담아왔다. 찻숟갈로 밤을 파먹으면서 나는 그의 투병생활을 어느 수준까지 질문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시인의 마음을 가늠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병원에 다니실 때 마다 다른 암환자들과 자주 마주치게 되시죠?

"다들 알아보지요. CT 찍으러 갈 때는 저를 그냥 내버려뒀으면 좋겠는데 환자와 가족들이 몰려들어요.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들려주지요. 아픈 사람이 아픈 환자 보면 더 마음이 아파요. 그런데 저도 모르게 그들에게 참견하고 덕담하고 격려하기에 바빠져요. 백혈병 걸린 아기 엄마들이 기도해달라고 하면 그 자리에서 기도 올리고…그게 제가 할 일이지요."

-고단하실 터인 데 맨날 그럴 수도 없지 않은가요?

"병원에 가면 기도해 달라, 책에 사인해 달라는 사람들이 단 숨에 줄을 서요. 병원 한 구석에 숨어서 하는데도 그래요. 그들에게 줄 기도카드랑 작은 선물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제 가방은 항상 무거워요. 암 환자들에게 연민의 정을 많이 느껴요."

-아프고 수술 받고 죽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안 듣는 날이 없겠군요

"매일 매일 듣고 또 들려오기도 하지요. 애도할 겨를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늘 죽음에 대해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세상에는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지요.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일수록 더 그래요. 우리가 어떻게 살다 가야 하는지 죽음교육을 받으며 충실한 삶을 이어가도록 했으면 해요."

그는 사무실 방의 한쪽 벽을 메우고 있는 서가의 한쪽 부분을 가리키며 "여기에 죽음에 관한 책들만 모아 놓았습니다.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일을 일상화 할 필요가 있어서요. 저도 그렇지만 모두가 이런 걸 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철학이라 해도 좋고 생활 공부라고 해도 좋고요."

암 투병 중에도 그가 지쳐 보이지 않는 저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를 나는 곰곰 생각했다. 그가 앉아있는 오른 쪽 서가에는 낯선 사진과 유품들이 진열되어있다.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 소설가 박완서씨, 영문학자 장영희 교수, 화가 김점선씨 등이다. 이해인 수녀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던 인물들이다. 최근 몇 년 동안에 세상을 떠난 그들의 사랑이 느껴진다. 다른 한쪽 책상 서랍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수많은 노트 뭉치가 눈에 들어왔다.

-이게 일기인가요? 입원 중에도 계속 쓰신 건가요?

"제가 아플 때도 병원에서 빠지지 않고 짧게 노트한 거죠. 예쁜 그림도 붙여놓고 기록했어요. 아…여기가 파라다이스다 생각하면서요. 침대에서 써야하니 작은 메모 수첩이 필요했어요. 생활일지라고나 할까, 하루 일과를 반성하면서 한 자 한 자 적어나갔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것도 세상에서 끝이 나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150여 쪽 되어 보이는 각각의 수첩에 붙여진 일련번호는 142번. 그가 지금까지 기록해온 삶이 그만큼 엄청 두텁게 쌓였다. 그런데 나는 특이한 것을 알아차렸다. 그의 허락을 받고 잠시 기록을 들여다보니 건강했을 때나 암 수술을 받고 입원 중이었을 때나 글씨체가 한 결 같이 똑 같았다. 병중(病中)에서라면 흘린 글씨체도 나올 법한 일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똑같은 글씨를 쓸 수 있어요?'하고 묻자 그는 미소만 지었다.

-'이해인의 시' 하면 사람들이 따뜻한 말을 연상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왜 그런 말을 쓰는 사회에서 더 멀어지고 있을까요?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분위기다 보니 남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 보다 질투나 시기심에 사로잡히거나 인내심이 줄어들고 자꾸만 충동에 휘둘리는 경향이 더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비움'이나 '힐링'이라는 말이 과용 되거나 남용되고 있습니다.

"글쎄요. 우리는 비움이나 힐링 뿐 아니라 온갖 좋은 말을 다하지만 그 단어의 뜻대로 살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글로벌이란 말도 너무 많이 하지만 우리 자신은 아직도 협소하고 근시안적인 삶의 태도를 버리지 못하는 걸 자주 발견하게 되던데요. 말부터 할 것이 아니라 그냥 겸손하고 성실한 자세로 그날그날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남에게 바라기 전에 내가 먼저 솔선수범하는 삶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가정에선 부모가 먼저 본이 되고 학교에선 교사가 본이 되고 나라에선 다스리는 사람들이 본이 되는 그런 모습이…."

-수도생활보다 가정생활이 더 쉬울까요. 아니면 수도생활이?

"곤란한 질문인거 같아요. 어려서는 저도 잘 몰랐는데 이 나이에 돌아보니 가정생활 역시 정말로 힘든 수도생활이란 생각이 새롭게 듭니다. 그렇다고 수도생활이 더 쉽다는 뜻은 결코 아니고요. 둘 다 삶의 내용은 다르지만 결국은 같은 급수의 수도생활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에는 악한 자, 교만한 자들이 더 오래 잘 사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때가 있습니다. 어리석은 생각인가요?

"저도 실은 그런 생각을 종종 하는걸요. 성서의 시편에도 보면 악한 이들이 잘되는 꼴을 참을 수 없어 제발 그들을 벌해 달라고 간청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그러나 결국은 어떤 모양으로든 선이 승리하는 세상을 우리는 꿈꾸고 믿어야 한다고 봅니다."

-생로병사로 얽힌 삶은 온통 고통뿐인가요? 희망을 가지고 삶을 이끌어 가는 자세란 어떤 것인가요?

"희망이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지요. 한 번 밖에 없는 자신의 삶을 우선 감사하며 크고 작은 아픔과 시련도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있다면 거기서 살아가는 힘과 지혜가 싹 튼다고 봅니다. 그것이 바로 희망이 아닌가 싶어요. 큰 수술하고 나니 살아서 숨을 쉴 수 있는 것 자체가 희망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가을 호스피스 봉사자들에게 '아픈 이의 신발을 잘 신겨주기 위해 자신을 낮추어야겠다.'고 하시는 말의 여운이 길게 남습니다.

"건강한 이들은 항상 자신의 입장에서 아픈 이들을 훈계하고 사랑의 잔소리도 심하게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기에 조금만 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 신발 이야길 상징으로 한 것입니다."

-암 투병을 통해 들여다본 자신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삶에 대한 감사가 더 깊어진 것, 주변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 애틋해진 것, 사물에 대한 시선이 더 예민해진 것, 습관적으로 해오던 기도가 좀 더 새롭고 간절해 진 것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시집 '희망은 깨어있네'에는 작가가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말이 다 들어 있더군요. 더 넣고 싶은 주제가 있나요?

"그 시집은 어쩌면 이승에서의 마지막 작품집이 될지 모른다는 각오로 적은 저의 투병기이기도 합니다. 거기서 저는 '고통의 학교'수련생임을 강조했는데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날그날을 감사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바로 희망이라고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더 넣고 싶은 주제라…우리가 무심해서 놓치고 사는 '일상의 황홀함'이 주는 행복을 좀 더 강조하고 싶네요."

대화를 나눈 지 2시간 가까이 흘러갔을 무렵 나는 그의 사색의 공간을 탐색하고 싶어졌다. 환자에게 겨울 찬바람이 괜찮을까 걱정도 됐지만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광안리 해변으로 산책을 청했다. 수도원에서 걸어서 15분 거리. 큰 거리를 가로질러 가다가 작은 골목길을 빠져나갔는데 그곳에는 빵집, 이발소, 철물점, 호프집 등이 있었다. 우리네 삶의 현장들이었다. 이해인 수녀를 둘러싼 세계이기도 하다.

"시(詩)란 뭘까요?"

해변을 걷는데 그가 내게 물었다. "글쎄요…시란 뭐지요?" 내가 되물었다. 그가 겨울 바다의 잔잔한 파도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시란 삶에 대한 감사와 그리움을 사계절 언어로 풀어낸 상징적인 기도이지요." 광안대교를 건너 먼 바다에서부터 석양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의 짙은 눈썹에도 또 한 편의 시가 내려앉았다.



대담=최철주 웰다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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