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여성 “너도 간첩아니냐”는 친구말에…
등록 2013.01.24.23일 오후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만난 김아라 씨(23·여)가 말했다. 현재 채널A의 인기 토크쇼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 중인 그는 2009년 남한에 온 탈북자다.
“그 말 한마디로 제가 누구네 집 자식인지 알 수도 있거든요. 북한에서 소 한 마리를 잡으면 징역 8년, 두 마리를 잡으면 총살감이니까 흔치 않은 일이죠. 집에 왔더니 어머니가 ‘북한에 이모도 남아 계신데 왜 그런 이야기를 했냐’며 속을 끓이시더라고요.”
수려한 미모로 ‘아라 공주’라는 별명을 얻고 팬클럽까지 생긴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옆에 있던 윤아영 씨(30·여)가 거들었다.
“화교 탈북자 출신인 서울시 공무원이 탈북자 정보를 북한에 넘겼다는 걸 보고 남한분들은 ‘별것 아니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명단이 북한 당국에 넘어가면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어요. 탈북자는 배신자로 취급받아요. 북한에서는 정치적으로 위험한 발언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3대가 죽임을 당할 수 있어요.”
2004년 남한에 도착한 윤 씨는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 ‘엉뚱발랄 달변가’로 인기를 끌고 있지만 TV 속에서 보던 발랄함 대신 다소 무거운 표정이었다.
한국 사회에 정착한 대다수 탈북자들에게 화교 탈북자 출신 간첩 사건의 여파는 북한에 남겨진 가족에 대한 걱정에서 끝나지 않는다. 김 씨와 윤 씨는 같은 ‘고향’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들이 자신들을 간첩으로 의심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사건 후 윤 씨는 한 남한 친구에게 “너도 간첩 아니냐”라는 농담을 들었다. 농담인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저는 아무 잘못이 없지만 ‘나도 의심받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어요. 저희도 간첩이 없으면 좋겠지만….”
김 씨는 “오늘 아침 남한 친구와 문자를 주고받는데 갑자기 답이 끊겼다. 두 시간 후 다시 답이 왔지만 그 사이 ‘간첩 뉴스 때문에 나를 멀리하려고 하는구나’라는 자격지심까지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탈북자 커뮤니티 안에서도 누굴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때도 윤 씨는 죄책감이 들었다. “피해자 어머니들이 우는 모습을 보니까 저도 눈물이 나더라고요. 제가 북한 출신이라는 것이 너무 죄송했죠. 어찌됐든 제 고향에서 날아온 폭탄이었으니까요. 한 달 동안 그때 돌아가신 분들이 천국에 가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북한에 있을 때 남한에서 넘어온 간첩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지 물었다. 윤 씨가 먼저 대답했다.
“들어 봤죠. ‘애국심으로 간첩을 잡아야 한다’는 내용의 포스터들을 많이 붙였어요. 집 출입문엔 ‘가시 몽둥이’라는 것을 걸어놔요. 나무를 곤봉 모양으로 깎아서 못의 머리를 잘라낸 다음 고슴도치처럼 박는 거예요. 고춧가루도 담아서 그 옆에 놓고요. 간첩을 잡을 때 쓰라는 거죠.”
김 씨가 맞장구쳤다. “집집마다 다 있었어요. 지금도 있을 거예요. 인민반장이 일일이 다 검사를 하거든요.”
두 사람은 혹시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탈북자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김 씨는 “지금도 형사가 한 달에 한 번 전화가 와 ‘어디 다니느냐’ ‘부모님은 뭐하시나’라며 꼬치꼬치 캐묻는다”며 “어떻게 더 감시를 강화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남한 남자와 결혼해 임신 4개월째인 윤 씨가 거들었다. “어느 교수님은 저한테 ‘외국 가면 다 똑같은 코리안이다. 외국 가서 살면 편견도 없을 거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아버지가 그러셨어요. ‘내 조상이 살던 땅에 살고 싶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어떻게 보든 그냥 내버려둬라.’”
이번 사건으로 인한 충격은 김 씨와 윤 씨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탈북자 쉼터인 ‘평화의 집’ 관계자는 “어제 한 탈북 여성이 전화를 걸어와 ‘주위 동료들이 탈북자 중에 간첩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린다’고 하소연했다”며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탈북자들은 스스로 움츠러들고 상처받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탈북자 중에 섞여 있을 간첩에 대한 검증을 강화해야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사회 전체가 이번 사건을 통일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치러야 할 비용으로 바라봐야 하며, 탈북자들을 더 따뜻하게 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우영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한쪽에서는 탈북자를 부추겨 반북한 운동에 써먹으면서도 군대에서는 그들을 받아주지 않는 등 이중 잣대를 들이대 왔다”며 “그들을 남한식으로 바꾸려고 강요하지 말고 우리가 그들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진심으로 포용할 수 있어야 간첩 문제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김판 인턴기자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4학년
“방송에서 말실수 한 적이 있어요. 북한에 있을 때 삼촌이 소를 잡았다고 말했거든요.”
23일 오후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만난 김아라 씨(23·여)가 말했다. 현재 채널A의 인기 토크쇼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 중인 그는 2009년 남한에 온 탈북자다.
“그 말 한마디로 제가 누구네 집 자식인지 알 수도 있거든요. 북한에서 소 한 마리를 잡으면 징역 8년, 두 마리를 잡으면 총살감이니까 흔치 않은 일이죠. 집에 왔더니 어머니가 ‘북한에 이모도 남아 계신데 왜 그런 이야기를 했냐’며 속을 끓이시더라고요.”
수려한 미모로 ‘아라 공주’라는 별명을 얻고 팬클럽까지 생긴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옆에 있던 윤아영 씨(30·여)가 거들었다.
“화교 탈북자 출신인 서울시 공무원이 탈북자 정보를 북한에 넘겼다는 걸 보고 남한분들은 ‘별것 아니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명단이 북한 당국에 넘어가면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어요. 탈북자는 배신자로 취급받아요. 북한에서는 정치적으로 위험한 발언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3대가 죽임을 당할 수 있어요.”
2004년 남한에 도착한 윤 씨는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 ‘엉뚱발랄 달변가’로 인기를 끌고 있지만 TV 속에서 보던 발랄함 대신 다소 무거운 표정이었다.
한국 사회에 정착한 대다수 탈북자들에게 화교 탈북자 출신 간첩 사건의 여파는 북한에 남겨진 가족에 대한 걱정에서 끝나지 않는다. 김 씨와 윤 씨는 같은 ‘고향’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들이 자신들을 간첩으로 의심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사건 후 윤 씨는 한 남한 친구에게 “너도 간첩 아니냐”라는 농담을 들었다. 농담인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저는 아무 잘못이 없지만 ‘나도 의심받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어요. 저희도 간첩이 없으면 좋겠지만….”
김 씨는 “오늘 아침 남한 친구와 문자를 주고받는데 갑자기 답이 끊겼다. 두 시간 후 다시 답이 왔지만 그 사이 ‘간첩 뉴스 때문에 나를 멀리하려고 하는구나’라는 자격지심까지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탈북자 커뮤니티 안에서도 누굴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때도 윤 씨는 죄책감이 들었다. “피해자 어머니들이 우는 모습을 보니까 저도 눈물이 나더라고요. 제가 북한 출신이라는 것이 너무 죄송했죠. 어찌됐든 제 고향에서 날아온 폭탄이었으니까요. 한 달 동안 그때 돌아가신 분들이 천국에 가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북한에 있을 때 남한에서 넘어온 간첩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지 물었다. 윤 씨가 먼저 대답했다.
“들어 봤죠. ‘애국심으로 간첩을 잡아야 한다’는 내용의 포스터들을 많이 붙였어요. 집 출입문엔 ‘가시 몽둥이’라는 것을 걸어놔요. 나무를 곤봉 모양으로 깎아서 못의 머리를 잘라낸 다음 고슴도치처럼 박는 거예요. 고춧가루도 담아서 그 옆에 놓고요. 간첩을 잡을 때 쓰라는 거죠.”
김 씨가 맞장구쳤다. “집집마다 다 있었어요. 지금도 있을 거예요. 인민반장이 일일이 다 검사를 하거든요.”
두 사람은 혹시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탈북자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김 씨는 “지금도 형사가 한 달에 한 번 전화가 와 ‘어디 다니느냐’ ‘부모님은 뭐하시나’라며 꼬치꼬치 캐묻는다”며 “어떻게 더 감시를 강화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남한 남자와 결혼해 임신 4개월째인 윤 씨가 거들었다. “어느 교수님은 저한테 ‘외국 가면 다 똑같은 코리안이다. 외국 가서 살면 편견도 없을 거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아버지가 그러셨어요. ‘내 조상이 살던 땅에 살고 싶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어떻게 보든 그냥 내버려둬라.’”
이번 사건으로 인한 충격은 김 씨와 윤 씨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탈북자 쉼터인 ‘평화의 집’ 관계자는 “어제 한 탈북 여성이 전화를 걸어와 ‘주위 동료들이 탈북자 중에 간첩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린다’고 하소연했다”며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탈북자들은 스스로 움츠러들고 상처받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탈북자 중에 섞여 있을 간첩에 대한 검증을 강화해야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사회 전체가 이번 사건을 통일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치러야 할 비용으로 바라봐야 하며, 탈북자들을 더 따뜻하게 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우영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한쪽에서는 탈북자를 부추겨 반북한 운동에 써먹으면서도 군대에서는 그들을 받아주지 않는 등 이중 잣대를 들이대 왔다”며 “그들을 남한식으로 바꾸려고 강요하지 말고 우리가 그들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진심으로 포용할 수 있어야 간첩 문제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김판 인턴기자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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