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지탕 아닌 두부장국이 본래 모습[연포탕]

등록 2013.05.27.


맑게 끓인 국물에 산 낙지를 넣고 살짝 데쳐 채소와 함께 익혀먹는 음식이 연포탕이다. 특별히 양념을 하지 않아 낙지의 담백한 맛과 쫄깃한 식감을 생생하게 맛볼 수 있다. 게다가 낙지는 갯벌 속의 산삼이라고 했으니 낙지 국물이 우러난 시원한 육수를 마시면 나른한 봄기운은 사라지고 힘이 절로 솟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먹는 연포탕의 이름을 정확하게 말하자면 낙지 연포탕 또는 그냥 낙지탕이라고 해야 한다. 연포탕은 원래 낙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연포탕은 원래 두부장국을 가리키는 말이다. 맑은 장국에 두부와 무, 쇠고기, 북어, 다시마 등을 넣고 끓인 두부국이 연포탕이다. 조금 더 부연해서 말하자면 예전 초상집에 문상을 가면 요즘처럼 육개장을 내오는 대신에 두부장국이 나왔는데 그것이 바로 연포탕이다.

보통 두부장국인 연포탕에는 쇠고기를 곁들여 끓이는데 옛날 바닷가 해안 마을에서는 쇠고기가 없으니까 쉽게 잡을 수 있는 낙지를 넣고 끓여서 낙지 연포탕이라고 했다. 그러다 세상이 바뀌면서 두부 값은 싸지고 낙지 값은 비싸졌으니 두부는 사라지고 낙지만 남아 낙지를 끓인 낙지탕이 연포탕으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연포탕은 한자로 ‘연포(軟泡)로 끓인 국(湯)’이라는 뜻인데 연포가 바로 두부를 가리키는 말이다. 정약용이 쓴 아언각비(雅言覺非)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전에 두부를 포(泡)라고 불렀다고 나온다. 그러니까 연포는 부드러운 두부라는 뜻이다. 아언각비는 조선시대의 우리말 어원사전이다.

영조 때 서명응의 고사십이집(攷事十二集)에 본래의 연포탕에 대한 설명이 보이는데 가늘게 자른 두부를 꼬챙이에 꿰어 지금의 프라이팬인 번철에 지진 후 닭국물을 넣고 끓인다고 했다. 홍만선의 산림경제(山林經濟)에도 연포탕 끓이는 법(煮軟泡法)으로 두부를 잘게 썰어 꼬치에 서너 개를 꽂아서 새우젓과 함께 물에다 끓인다. 그리고 굴과 다진 생강을 추가로 넣은 후 두부꼬치와 함께 먹으면 보드랍고 맛이 월등하게 좋다고 했다.

그러니 연포탕은 기본적으로 두부를 꼬챙이에다 꿰어서 주로 닭고기 국물이나 새우젓 국물에 담가서 끓여 먹는 음식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직장인들이 퇴근 후에 회식을 하는 것처럼 옛날 선비들도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 음식을 먹으며 시를 읊고 세상사를 이야기하는 모임이 꽤 유행을 했던 모양이다. 정약용은 자신의 문집인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서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서 두부를 꼬치에 꽂아서 닭고기 국물에다 지져서 먹는데 이를 연포회(軟泡會)라고 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조선시대에 먹었던 연포탕의 모습이 지금 우리가 즐겨 먹는 어묵꼬치, 그러니까 일본의 오뎅과 만드는 방법이나 먹는 방법이 아주 비슷하다는 점이다. 사실 일본의 오뎅도 기원을 따지고 올라가면 어묵을 꽂는 대신에 두부에 된장을 발라서 꼬치에 꽂아 구워 먹거나 혹은 두부꼬치를 넣은 후 장국을 끓여서 먹는 것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사실 지금은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연포탕을 낙지탕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연포탕은 한자 이름 그대로 두부장국을 뜻하는 말인데 어쩌면 연포탕이야말로 낙지탕이 아니라 일본에서 건너온 것으로 알고 있는 어묵꼬치(오뎅)의 기원이 되는 음식일 수도 있겠다.[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맑게 끓인 국물에 산 낙지를 넣고 살짝 데쳐 채소와 함께 익혀먹는 음식이 연포탕이다. 특별히 양념을 하지 않아 낙지의 담백한 맛과 쫄깃한 식감을 생생하게 맛볼 수 있다. 게다가 낙지는 갯벌 속의 산삼이라고 했으니 낙지 국물이 우러난 시원한 육수를 마시면 나른한 봄기운은 사라지고 힘이 절로 솟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먹는 연포탕의 이름을 정확하게 말하자면 낙지 연포탕 또는 그냥 낙지탕이라고 해야 한다. 연포탕은 원래 낙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연포탕은 원래 두부장국을 가리키는 말이다. 맑은 장국에 두부와 무, 쇠고기, 북어, 다시마 등을 넣고 끓인 두부국이 연포탕이다. 조금 더 부연해서 말하자면 예전 초상집에 문상을 가면 요즘처럼 육개장을 내오는 대신에 두부장국이 나왔는데 그것이 바로 연포탕이다.

보통 두부장국인 연포탕에는 쇠고기를 곁들여 끓이는데 옛날 바닷가 해안 마을에서는 쇠고기가 없으니까 쉽게 잡을 수 있는 낙지를 넣고 끓여서 낙지 연포탕이라고 했다. 그러다 세상이 바뀌면서 두부 값은 싸지고 낙지 값은 비싸졌으니 두부는 사라지고 낙지만 남아 낙지를 끓인 낙지탕이 연포탕으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연포탕은 한자로 ‘연포(軟泡)로 끓인 국(湯)’이라는 뜻인데 연포가 바로 두부를 가리키는 말이다. 정약용이 쓴 아언각비(雅言覺非)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전에 두부를 포(泡)라고 불렀다고 나온다. 그러니까 연포는 부드러운 두부라는 뜻이다. 아언각비는 조선시대의 우리말 어원사전이다.

영조 때 서명응의 고사십이집(攷事十二集)에 본래의 연포탕에 대한 설명이 보이는데 가늘게 자른 두부를 꼬챙이에 꿰어 지금의 프라이팬인 번철에 지진 후 닭국물을 넣고 끓인다고 했다. 홍만선의 산림경제(山林經濟)에도 연포탕 끓이는 법(煮軟泡法)으로 두부를 잘게 썰어 꼬치에 서너 개를 꽂아서 새우젓과 함께 물에다 끓인다. 그리고 굴과 다진 생강을 추가로 넣은 후 두부꼬치와 함께 먹으면 보드랍고 맛이 월등하게 좋다고 했다.

그러니 연포탕은 기본적으로 두부를 꼬챙이에다 꿰어서 주로 닭고기 국물이나 새우젓 국물에 담가서 끓여 먹는 음식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직장인들이 퇴근 후에 회식을 하는 것처럼 옛날 선비들도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 음식을 먹으며 시를 읊고 세상사를 이야기하는 모임이 꽤 유행을 했던 모양이다. 정약용은 자신의 문집인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서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서 두부를 꼬치에 꽂아서 닭고기 국물에다 지져서 먹는데 이를 연포회(軟泡會)라고 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조선시대에 먹었던 연포탕의 모습이 지금 우리가 즐겨 먹는 어묵꼬치, 그러니까 일본의 오뎅과 만드는 방법이나 먹는 방법이 아주 비슷하다는 점이다. 사실 일본의 오뎅도 기원을 따지고 올라가면 어묵을 꽂는 대신에 두부에 된장을 발라서 꼬치에 꽂아 구워 먹거나 혹은 두부꼬치를 넣은 후 장국을 끓여서 먹는 것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사실 지금은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연포탕을 낙지탕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연포탕은 한자 이름 그대로 두부장국을 뜻하는 말인데 어쩌면 연포탕이야말로 낙지탕이 아니라 일본에서 건너온 것으로 알고 있는 어묵꼬치(오뎅)의 기원이 되는 음식일 수도 있겠다.[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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