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금폭탄, 운전중 전화 땐 감옥행… 알아서 法지킨다

등록 2013.09.09.
싱가포르 번화가 중 가장 많은 쇼핑몰과 백화점이 몰려 있는 오처드 길. 한국의 명동 같은 곳이다. 지하철을 타고 오처드 역에서 내려 역을 빠져나가면 오처드 길과 패터슨 길이 만나는 큰 교차로가 나타난다. 차와 사람이 붐비는 시내 사거리에 우리나라의 요금소와 비슷하게 생긴 구조물이 서 있다. 바로 ‘ERP(Electronic Road Pricing)’라고 불리는 시내 혼잡세 징수 장치다.

싱가포르는 작은 나라다. 국토면적이 697km²로 한국(9만9720km²)의 약 14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서울보다 약간 큰 정도다. 지난해 통계에 따르면 싱가포르 총인구는 530만 명. 1인당 국민소득은 5만100달러(약 5471만 원)로 아시아 국가 중 최상위권이다.

작은 나라 싱가포르가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 교통안전 정책은 ‘차량 이용 억제’다. 작은 국토에 통제 불가능한 수의 차가 난립하면 도로는 엉망이 되기 때문이다. 1975년부터 운영하기 시작한 ERP는 운전자가 도심 주요 구간을 통과할 때 자동으로 혼잡세(약 4300원)를 부과한다. 도심 주요 구간에서 차량을 자주 이용할수록 많은 돈을 내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차량 이용을 억제한다.

싱가포르의 대형 쇼핑몰과 백화점이 몰려 있는 시내 중심부 오처드 길. 이곳을 지나는 차량은 도로에 설치된 ERP 아래를 지날 때마다 자동으로 혼잡세를 낸다. 전광판에는 운영시간과 차량 종류, 요금 등이 표시된다. 싱가포르=이은택 기자 nabi@donga.com본보 취재팀은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장택영 수석연구원과 함께 4월 13일 오후 오처드 역 인근 교차로에서 ERP 시스템이 운영되는 모습을 지켜봤다. 싱가포르 육상교통청(LTA·Land Transportation Authority)에 따르면 ERP 시스템은 1975년 처음 도입됐다. 1975년 이전 시내 도로의 통행속도는 평균 시속 20km였으나 제도 시행 뒤 차량 통행이 줄어들면서 시속 30km로 통행 속도가 빨라졌다. ERP와 연결되는 고속도로 역시 차량 감소의 영향으로 통행속도가 시속 45km에서 65km로 빨라졌다.

싱가포르 운전자는 편의점 등에서 ‘캐시카드’로 불리는 충전식 교통카드를 구입해 차량의 단말기에 장착해야 한다. 한국 고속도로에서 쓰이는 하이패스처럼 ERP 아래를 차가 지나갈 때마다 자동으로 요금이 빠져나간다. 만약 충전이 되지 않은 교통카드를 장착하고 다니며 요금징수를 피하려다간 ERP에 기록이 남는다.

ERP는 통과하는 차량을 찍는 카메라, 요금을 징수하는 장치, 요금이 부과되지 않은 차량을 기록하는 장치로 구성된다. 현지서 만난 한 택시운전사는 “캐시카드(교통카드)에 돈을 충전하지 않고 다니다가 적발되면 1000싱가포르달러(약 86만 원)가 넘는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는 차량 총량을 제한하는 정책도 운영 중이다. 승용차 소유를 억제하는 일종의 ‘자동차 면허 할당제(VQS·Vehicle Quota System)’다. 싱가포르에서 자가용을 구입하려면 거의 차 값과 맞먹는 가격의 10년짜리 차량 소유 허가증을 경매를 통해 발급받아야 한다. 차에 붙는 세금도 비싸 한국에서 2000만∼3000만 원 하는 승용차를 싱가포르에서 구입하려면 허가증까지 합해 8000만∼1억 원가량이 든다. 1990년 이전 연평균 7%에 이르던 승용차 증가율은 할당제 실시 이후 3%대로 줄었다. 육상교통청 관계자는 “궁극적으로 대부분의 시민이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만드는 것이 싱가포르 정부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차량 통행을 억제하는 ERP와 할당제 덕분에 싱가포르는 좁은 국토면적에도 불구하고 도로 정체나 혼잡에 시달리지 않는다.

게다가 싱가포르의 도로교통법은 한국에 비해 무척 엄하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과속을 하면 위반 정도와 차량 종류에 따라 적게는 3만 원에서 많게는 14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싱가포르의 과속 벌금은 최소 130싱가포르달러(약 11만 원)다. 규정속도보다 시속 40km 이상 50km 미만으로 달리면 벌금이 최대 230싱가포르달러(약 19만 원)다. 만약 규정속도보다 시속 50km 이상 넘겨 과속하면 벌금을 내는 게 아니라 정식으로 기소된다.

싱가포르에서 운전 중 휴대전화를 사용하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한국은 벌점 15점이 부과되고 최대 7만 원의 범칙금만 내면 되지만 싱가포르의 처벌은 상상을 초월한다. 1000싱가포르달러(약 86만 원)의 벌금 또는 12개월 이하의 징역이 선택적으로 부과되거나 심하면 동시에 부과되기도 한다. 무심코 운전 중 전화를 받으면 1년을 감옥에서 보낼 수도 있는 것이다. 운전면허가 취소되고 휴대전화도 몰수당한다.

법이 엄한 탓에 싱가포르 운전자는 교통경찰이 보이지 않아도 알아서 법을 지킨다. 한 싱가포르 운전자는 “운전을 하다 교통경찰을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사람이 알아서 법을 지킨다”고 말했다. 실제 취재팀이 4일간 싱가포르에서 운전을 하거나 대중교통을 타며 교통경찰이 단속하는 현장을 찾으려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싱가포르 시내에서 도로를 무단횡단하는 보행자들은 볼 수 있었지만 반칙운전자들은 보기 힘들었다.

한국의 한 보험사에서 근무하다 싱가포르 현지 출장사무소에서 근무하는 한 한국인은 “특히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은 가혹하리만큼 엄격하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는 “여기서 음주운전을 하다 세 번 걸리면 태형(笞刑) 처벌을 받은 뒤 본국으로 추방된다”고 설명했다. 태형은 신체에 물리적인 타격을 가하는 형벌로서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아직까지 태형을 가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그저 몇 대 때리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을 틀에 묶어놓고 회초리로 허벅지 살점이 뜯기도록 때린다고 한다. 조선시대 행해지던 ‘곤장’과 비슷하다.

동행한 장 수석연구원은 “싱가포르가 국제무역 거점도시로 급성장하면서 1962∼1973년 차량도 연평균 약 9%씩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며 “이런 성장의 영향으로 교통체증 등 혼란이 예상돼 강한 법규 준수 시스템을 구축해 올바른 교통행태를 유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싱가포르=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싱가포르 번화가 중 가장 많은 쇼핑몰과 백화점이 몰려 있는 오처드 길. 한국의 명동 같은 곳이다. 지하철을 타고 오처드 역에서 내려 역을 빠져나가면 오처드 길과 패터슨 길이 만나는 큰 교차로가 나타난다. 차와 사람이 붐비는 시내 사거리에 우리나라의 요금소와 비슷하게 생긴 구조물이 서 있다. 바로 ‘ERP(Electronic Road Pricing)’라고 불리는 시내 혼잡세 징수 장치다.

싱가포르는 작은 나라다. 국토면적이 697km²로 한국(9만9720km²)의 약 14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서울보다 약간 큰 정도다. 지난해 통계에 따르면 싱가포르 총인구는 530만 명. 1인당 국민소득은 5만100달러(약 5471만 원)로 아시아 국가 중 최상위권이다.

작은 나라 싱가포르가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 교통안전 정책은 ‘차량 이용 억제’다. 작은 국토에 통제 불가능한 수의 차가 난립하면 도로는 엉망이 되기 때문이다. 1975년부터 운영하기 시작한 ERP는 운전자가 도심 주요 구간을 통과할 때 자동으로 혼잡세(약 4300원)를 부과한다. 도심 주요 구간에서 차량을 자주 이용할수록 많은 돈을 내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차량 이용을 억제한다.

싱가포르의 대형 쇼핑몰과 백화점이 몰려 있는 시내 중심부 오처드 길. 이곳을 지나는 차량은 도로에 설치된 ERP 아래를 지날 때마다 자동으로 혼잡세를 낸다. 전광판에는 운영시간과 차량 종류, 요금 등이 표시된다. 싱가포르=이은택 기자 nabi@donga.com본보 취재팀은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장택영 수석연구원과 함께 4월 13일 오후 오처드 역 인근 교차로에서 ERP 시스템이 운영되는 모습을 지켜봤다. 싱가포르 육상교통청(LTA·Land Transportation Authority)에 따르면 ERP 시스템은 1975년 처음 도입됐다. 1975년 이전 시내 도로의 통행속도는 평균 시속 20km였으나 제도 시행 뒤 차량 통행이 줄어들면서 시속 30km로 통행 속도가 빨라졌다. ERP와 연결되는 고속도로 역시 차량 감소의 영향으로 통행속도가 시속 45km에서 65km로 빨라졌다.

싱가포르 운전자는 편의점 등에서 ‘캐시카드’로 불리는 충전식 교통카드를 구입해 차량의 단말기에 장착해야 한다. 한국 고속도로에서 쓰이는 하이패스처럼 ERP 아래를 차가 지나갈 때마다 자동으로 요금이 빠져나간다. 만약 충전이 되지 않은 교통카드를 장착하고 다니며 요금징수를 피하려다간 ERP에 기록이 남는다.

ERP는 통과하는 차량을 찍는 카메라, 요금을 징수하는 장치, 요금이 부과되지 않은 차량을 기록하는 장치로 구성된다. 현지서 만난 한 택시운전사는 “캐시카드(교통카드)에 돈을 충전하지 않고 다니다가 적발되면 1000싱가포르달러(약 86만 원)가 넘는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는 차량 총량을 제한하는 정책도 운영 중이다. 승용차 소유를 억제하는 일종의 ‘자동차 면허 할당제(VQS·Vehicle Quota System)’다. 싱가포르에서 자가용을 구입하려면 거의 차 값과 맞먹는 가격의 10년짜리 차량 소유 허가증을 경매를 통해 발급받아야 한다. 차에 붙는 세금도 비싸 한국에서 2000만∼3000만 원 하는 승용차를 싱가포르에서 구입하려면 허가증까지 합해 8000만∼1억 원가량이 든다. 1990년 이전 연평균 7%에 이르던 승용차 증가율은 할당제 실시 이후 3%대로 줄었다. 육상교통청 관계자는 “궁극적으로 대부분의 시민이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만드는 것이 싱가포르 정부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차량 통행을 억제하는 ERP와 할당제 덕분에 싱가포르는 좁은 국토면적에도 불구하고 도로 정체나 혼잡에 시달리지 않는다.

게다가 싱가포르의 도로교통법은 한국에 비해 무척 엄하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과속을 하면 위반 정도와 차량 종류에 따라 적게는 3만 원에서 많게는 14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싱가포르의 과속 벌금은 최소 130싱가포르달러(약 11만 원)다. 규정속도보다 시속 40km 이상 50km 미만으로 달리면 벌금이 최대 230싱가포르달러(약 19만 원)다. 만약 규정속도보다 시속 50km 이상 넘겨 과속하면 벌금을 내는 게 아니라 정식으로 기소된다.

싱가포르에서 운전 중 휴대전화를 사용하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한국은 벌점 15점이 부과되고 최대 7만 원의 범칙금만 내면 되지만 싱가포르의 처벌은 상상을 초월한다. 1000싱가포르달러(약 86만 원)의 벌금 또는 12개월 이하의 징역이 선택적으로 부과되거나 심하면 동시에 부과되기도 한다. 무심코 운전 중 전화를 받으면 1년을 감옥에서 보낼 수도 있는 것이다. 운전면허가 취소되고 휴대전화도 몰수당한다.

법이 엄한 탓에 싱가포르 운전자는 교통경찰이 보이지 않아도 알아서 법을 지킨다. 한 싱가포르 운전자는 “운전을 하다 교통경찰을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사람이 알아서 법을 지킨다”고 말했다. 실제 취재팀이 4일간 싱가포르에서 운전을 하거나 대중교통을 타며 교통경찰이 단속하는 현장을 찾으려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싱가포르 시내에서 도로를 무단횡단하는 보행자들은 볼 수 있었지만 반칙운전자들은 보기 힘들었다.

한국의 한 보험사에서 근무하다 싱가포르 현지 출장사무소에서 근무하는 한 한국인은 “특히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은 가혹하리만큼 엄격하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는 “여기서 음주운전을 하다 세 번 걸리면 태형(笞刑) 처벌을 받은 뒤 본국으로 추방된다”고 설명했다. 태형은 신체에 물리적인 타격을 가하는 형벌로서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아직까지 태형을 가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그저 몇 대 때리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을 틀에 묶어놓고 회초리로 허벅지 살점이 뜯기도록 때린다고 한다. 조선시대 행해지던 ‘곤장’과 비슷하다.

동행한 장 수석연구원은 “싱가포르가 국제무역 거점도시로 급성장하면서 1962∼1973년 차량도 연평균 약 9%씩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며 “이런 성장의 영향으로 교통체증 등 혼란이 예상돼 강한 법규 준수 시스템을 구축해 올바른 교통행태를 유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싱가포르=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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