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독신녀 대통령 모욕 주기’ 막말 정치의 자해
등록 2014.09.24.과연 누구 말이 옳은가? 설 의원의 발언을 전반부 A와 후반부 B로 나눠 살펴보자.
A=나는 대통령이 연애했다는 얘기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B=문제는 그게 아니라면 더 심각한 게 있다.
요즘 시중에서 쓰이는 연애라는 말의 의미는 국어사전적 의미를 넘어 외설스러운 연상이 담겨 있다. A는 연애라는 어휘의 문제이지만 B는 문장 전체가 묘한 뉘앙스를 지니고 있다. ‘연애도 안 하고 청와대 경내에 있으면서 대처를 못했으니 연애보다 더 심각하다’는 힐난 또는 조롱의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그 중요한 7시간 동안 뭘 했느냐고 국회의원이 따질 수는 있다. 예를 들어 그날 전국의 폐쇄회로(CC)TV와 군경의 통신망이 연결돼 있는 청와대 벙커에 들어가지 않은 것을 추궁한다면 박 대통령은 그 이유를 설명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행적을 따지더라도 품격 있는 언어로 사실관계를 파고들어야 한다.
새정치연합의 김경협 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청와대 앞에서 노숙하는 세월호 유족의 면담을 거부한 박 대통령을 겨냥해 “어머니의 마음은 직접 자식을 낳고 키워봐야만 알 수 있다”고 비난했다. 세상에서 수없이 벌어지는 사건을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꼭 직접 경험해봐야 다 아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상상력과 공감능력의 영역이지 결혼과 출산의 문제는 아니다. 독신여성이나 이혼여성도 인생에서 어렵고 중요한 선택을 한 것이다. 독신녀나 이혼녀를 폄하 또는 모독하는 발언도 성차별 발언과 마찬가지로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같은 당의 장하나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박 대통령을 겨냥해 “무책임한 대통령, 비겁한 대통령, 국민을 구조하는 데 나서지 않는 대통령…”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장 의원은 “당신은 국가의 원수가 맞다”고 덧붙였다. 국가 원수(元首)와 원수(怨讐)의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를 이용한 말장난이다. 장 의원은 40일째 단식을 벌인 김영오 씨의 면담 요청을 박 대통령이 거절한 것을 비판했지만 김 씨의 요즘 행태를 보면 박 대통령이 안 만나주기를 백번 잘한 것 같다.
장 의원도 비례대표 초선이다. 활자로 쓰는 글은 여러 차례 숙고를 거듭하면서 정제된다. 하지만 머리에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옮겨놓으면 예상치 못한 파문이 벌어진다. 후회하더라도 열차는 떠났다.
미국 공화당 조 윌슨 의원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난했다가 사과한 사례는 한국 풍토에서 보면 ‘그런 것 가지고 사과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오바마 대통령이 상하의원 합동연설에서 “의료개혁이 불법 이민자들에게도 의료보험을 제공할 것이라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고 발언하자 윌슨 의원은 “당신 거짓말이야”라고 두 번이나 소리쳤다. 비난이 쏟아지자 윌슨 의원은 “나는 대통령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지만 내 논평은 부적절했고 유감스럽다. 대통령에게 예의를 잃었던 점을 진지하게 사과한다”고 성명을 냈다. 설 의원이 박 대통령에게 이 수준의 사과라도 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막말 논란에 휩싸인 의원들 중엔 비례대표 초선의원이 많다. 대리기사에게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소리쳤다는 김현 의원도 비례대표 초선이다. 벼락치기 신분상승을 주체하지 못해 생기는 사고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스피치 라이터였던 이기주 씨가 최근 ‘언품(言品)’이라는 책을 펴냈다. 언품은 말의 품격이다. 입 구(口)가 세 개 쌓여 품(品)이 된다. 막말 초선들도 선수(選數)를 쌓아가면서 좀 더 세상과 인간에 대해 깊이 있는 공부를 해야 언품과 인품이 묻어나는 발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막말정치는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같은 편의 속을 후련하게 해주는 효과도 있다. 단기 성과만 놓고 보면 흑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열성 당원이 아니라 전체 국민을 상대로 선거를 치르는 정당으로선 치명적인 자해(自害) 행위다.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hthwang@donga.com
새정치민주연합 설훈 의원은 채널A의 ‘쾌도난마’ 프로그램에 출연해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과 관련한 발언에 대해 “대통령이 내게 고맙다고 해야 한다. 내 발언으로 박 대통령이 이 부분에서 벗어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같은 당 황주홍 의원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황당한 음담패설로 저급화하는 것은 우리 당에 득이지 않다”며 설 의원에게 군더더기 없는 사과를 요구했다.
과연 누구 말이 옳은가? 설 의원의 발언을 전반부 A와 후반부 B로 나눠 살펴보자.
A=나는 대통령이 연애했다는 얘기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B=문제는 그게 아니라면 더 심각한 게 있다.
요즘 시중에서 쓰이는 연애라는 말의 의미는 국어사전적 의미를 넘어 외설스러운 연상이 담겨 있다. A는 연애라는 어휘의 문제이지만 B는 문장 전체가 묘한 뉘앙스를 지니고 있다. ‘연애도 안 하고 청와대 경내에 있으면서 대처를 못했으니 연애보다 더 심각하다’는 힐난 또는 조롱의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그 중요한 7시간 동안 뭘 했느냐고 국회의원이 따질 수는 있다. 예를 들어 그날 전국의 폐쇄회로(CC)TV와 군경의 통신망이 연결돼 있는 청와대 벙커에 들어가지 않은 것을 추궁한다면 박 대통령은 그 이유를 설명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행적을 따지더라도 품격 있는 언어로 사실관계를 파고들어야 한다.
새정치연합의 김경협 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청와대 앞에서 노숙하는 세월호 유족의 면담을 거부한 박 대통령을 겨냥해 “어머니의 마음은 직접 자식을 낳고 키워봐야만 알 수 있다”고 비난했다. 세상에서 수없이 벌어지는 사건을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꼭 직접 경험해봐야 다 아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상상력과 공감능력의 영역이지 결혼과 출산의 문제는 아니다. 독신여성이나 이혼여성도 인생에서 어렵고 중요한 선택을 한 것이다. 독신녀나 이혼녀를 폄하 또는 모독하는 발언도 성차별 발언과 마찬가지로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같은 당의 장하나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박 대통령을 겨냥해 “무책임한 대통령, 비겁한 대통령, 국민을 구조하는 데 나서지 않는 대통령…”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장 의원은 “당신은 국가의 원수가 맞다”고 덧붙였다. 국가 원수(元首)와 원수(怨讐)의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를 이용한 말장난이다. 장 의원은 40일째 단식을 벌인 김영오 씨의 면담 요청을 박 대통령이 거절한 것을 비판했지만 김 씨의 요즘 행태를 보면 박 대통령이 안 만나주기를 백번 잘한 것 같다.
장 의원도 비례대표 초선이다. 활자로 쓰는 글은 여러 차례 숙고를 거듭하면서 정제된다. 하지만 머리에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옮겨놓으면 예상치 못한 파문이 벌어진다. 후회하더라도 열차는 떠났다.
미국 공화당 조 윌슨 의원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난했다가 사과한 사례는 한국 풍토에서 보면 ‘그런 것 가지고 사과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오바마 대통령이 상하의원 합동연설에서 “의료개혁이 불법 이민자들에게도 의료보험을 제공할 것이라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고 발언하자 윌슨 의원은 “당신 거짓말이야”라고 두 번이나 소리쳤다. 비난이 쏟아지자 윌슨 의원은 “나는 대통령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지만 내 논평은 부적절했고 유감스럽다. 대통령에게 예의를 잃었던 점을 진지하게 사과한다”고 성명을 냈다. 설 의원이 박 대통령에게 이 수준의 사과라도 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막말 논란에 휩싸인 의원들 중엔 비례대표 초선의원이 많다. 대리기사에게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소리쳤다는 김현 의원도 비례대표 초선이다. 벼락치기 신분상승을 주체하지 못해 생기는 사고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스피치 라이터였던 이기주 씨가 최근 ‘언품(言品)’이라는 책을 펴냈다. 언품은 말의 품격이다. 입 구(口)가 세 개 쌓여 품(品)이 된다. 막말 초선들도 선수(選數)를 쌓아가면서 좀 더 세상과 인간에 대해 깊이 있는 공부를 해야 언품과 인품이 묻어나는 발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막말정치는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같은 편의 속을 후련하게 해주는 효과도 있다. 단기 성과만 놓고 보면 흑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열성 당원이 아니라 전체 국민을 상대로 선거를 치르는 정당으로선 치명적인 자해(自害) 행위다.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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