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테러 한달 현지 르포…위기에서 더 빛난 프랑스

등록 2015.02.13.
[파리 테러 한달 현지 르포]

전승훈·파리 특파원‘파리는 샤를리다!’ ‘샤를리 에브도, 파리의 명예시민’

11일 오후. 프랑스 파리 시청 건물 벽에는 여전히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대형 검은색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그러나 시청 앞에 설치된 흰색 얼음판에서는 스케이트를 타는 소녀들의 까르르 웃음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지난달 7일)이 일어난 지 한 달여가 지난 파리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지난달 7∼9일 프랑스는 2차 대전 이후 최대의 시련을 겪었다. 시사 풍자 만화잡지 샤를리 에브도와 유대인 식품점 인질 사건 등 이슬람 극단주의 연쇄 테러로 17명의 시민과 경찰이 희생됐다. 그러나 프랑스 국민은 테러에 엄정하게 대처하면서도, 사회적 동요와 불안감을 부추기지 않고, 평상심을 유지하는 ‘일상 복원력’의 저력을 보여 주고 있다.

150만 명의 파리 시민과 세계 34개국 정상이 함께 행진을 벌였던 레퓌블리크 광장, 바스티유 광장 주변의 노천카페에는 따스한 햇살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도 관광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고, 겨울 세일을 끝내고 봄 신상품으로 단장한 가게의 점원들도 미소로 손님을 맞았다.



에펠탑 앞에서 소총을 들고 경계하는 군인들이 부쩍 늘어났다는 점만 빼 놓으면 한 달 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스페인 여행객 알리시아 카잘스 씨(52·여)는 “파리 여행을 계획해놓고 약간 걱정됐는데 안전 조치가 강화된 모습을 보니 오히려 더 안심이 된다”며 “하기야 테러를 당했다고 파리를 여행지에서 제외하기엔 너무 아쉽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인터내셔널비즈니스타임스에 따르면 프랑스 여행업계는 테러 공격에도 불구하고 1월에 파리를 찾은 여행객 수가 거의 줄지 않았다고 한다.

국가적 재난 사태에서도 프랑스인들이 ‘일상’을 지속하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테러 사건 발생 직후 TF1과 프랑스2 TV 등 최대 민영·공영 방송사들은 코미디, 노래자랑, 연애 리얼리티쇼 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그대로 내보냈다. 파리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 중인 최재헌 씨(24)는 “한국에서는 재난이 닥치면 모든 일상이 올스톱된 채 국가 전체가 우울증에 빠지고 스스로 자학하는 경우가 많은데, 프랑스인들은 단결을 보여 주면서도 일상을 지속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대형 사건이 터지면 으레 있을 법한 정부 책임론이 별로 없다는 것도 특이하다. 외국 언론들이 프랑스 정보 당국과 경찰이 안이했던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를 했을 뿐 오히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과 마뉘엘 발스 총리, 베르나르 카즈뇌브 내무장관 등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지지율은 10∼20%씩 크게 상승했다. 한-프랑스 문화예술 교류 단체 ‘에코드라코레’를 운영하는 한국인 이미아 씨(47·여)는 “국가적 재난 속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를 비난할 뿐 초점을 흐릴 수 있는 엉뚱한 ‘마녀사냥식’의 희생양 찾기는 찾아볼 수 없어 나도 놀랐다”며 “모두 평정심을 찾아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테러범들에게 하는 최고의 복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파리 시민들이 테러를 잊은 것은 결코 아니다. 샤를리 에브도 사무실이 있는 테러 현장은 지난 한 달 동안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꽃들이 마치 무덤처럼 둥그렇게 쌓였다. 추모 열기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11일 ‘나는 샤를리다’라는 추모의 메시지를 적은 연필 모양의 기다란 나무 막대를 가지고 아이와 함께 온 쥘리앙 씨(42)는 “샤를리 에브도 사건의 교훈을 기억하기 위해 테러 현장은 꼭 보존돼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인 유학생 메간 노르가드 씨(20·패션 마케팅 전공)는 “늘 이 앞을 지날 때면 뉴욕에서 9·11테러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그라운드 제로’를 찾는 것과 마찬가지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프랑스 정부는 이민자 통합을 위한 학교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인터넷을 통한 이슬람극단주의 테러 선동 방지 대책을 실시하는 등 조용하지만 강력한 대책을 펴 나가고 있다. 11일 파리 5구에 있는 프랑스 최대의 이슬람사원 ‘그랑드 모스케’에서는 기도를 올리는 이슬람 신자들뿐 아니라 카페에서 민트차를 마시는 수많은 관광객으로 붐볐다. 모스크에서 만난 이맘(이슬람 지도자) 타하르 마흐디 씨는 “샤를리 에브도가 우리를 연필로 공격했기 때문에 우리도 연필로 대응해야 한다”며 “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총알로 대응하는 것은 이슬람이 아니라 마피아”라고 말했다.

프랑스의 국제관계연구소(IFRI)의 정치학자 도미니크 무아지는 “프랑스의 일상 복원력은 수많은 혁명을 통해 계몽주의적인 공화국의 가치를 발전시켜 온 전통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런던의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의 이코노미스트 길 모어 씨는 “테러 공격 이후 프랑스가 보여 준 단결은 지난 10년 동안 ‘프랑스 쇠퇴론’으로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던 ‘집단적 의기소침’을 치유할 수 있는 전기충격과 같은 효과”라고 말했다.

전승훈·파리 특파원 raphy@donga.com

[파리 테러 한달 현지 르포]

전승훈·파리 특파원‘파리는 샤를리다!’ ‘샤를리 에브도, 파리의 명예시민’

11일 오후. 프랑스 파리 시청 건물 벽에는 여전히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대형 검은색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그러나 시청 앞에 설치된 흰색 얼음판에서는 스케이트를 타는 소녀들의 까르르 웃음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지난달 7일)이 일어난 지 한 달여가 지난 파리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지난달 7∼9일 프랑스는 2차 대전 이후 최대의 시련을 겪었다. 시사 풍자 만화잡지 샤를리 에브도와 유대인 식품점 인질 사건 등 이슬람 극단주의 연쇄 테러로 17명의 시민과 경찰이 희생됐다. 그러나 프랑스 국민은 테러에 엄정하게 대처하면서도, 사회적 동요와 불안감을 부추기지 않고, 평상심을 유지하는 ‘일상 복원력’의 저력을 보여 주고 있다.

150만 명의 파리 시민과 세계 34개국 정상이 함께 행진을 벌였던 레퓌블리크 광장, 바스티유 광장 주변의 노천카페에는 따스한 햇살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도 관광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고, 겨울 세일을 끝내고 봄 신상품으로 단장한 가게의 점원들도 미소로 손님을 맞았다.



에펠탑 앞에서 소총을 들고 경계하는 군인들이 부쩍 늘어났다는 점만 빼 놓으면 한 달 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스페인 여행객 알리시아 카잘스 씨(52·여)는 “파리 여행을 계획해놓고 약간 걱정됐는데 안전 조치가 강화된 모습을 보니 오히려 더 안심이 된다”며 “하기야 테러를 당했다고 파리를 여행지에서 제외하기엔 너무 아쉽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인터내셔널비즈니스타임스에 따르면 프랑스 여행업계는 테러 공격에도 불구하고 1월에 파리를 찾은 여행객 수가 거의 줄지 않았다고 한다.

국가적 재난 사태에서도 프랑스인들이 ‘일상’을 지속하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테러 사건 발생 직후 TF1과 프랑스2 TV 등 최대 민영·공영 방송사들은 코미디, 노래자랑, 연애 리얼리티쇼 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그대로 내보냈다. 파리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 중인 최재헌 씨(24)는 “한국에서는 재난이 닥치면 모든 일상이 올스톱된 채 국가 전체가 우울증에 빠지고 스스로 자학하는 경우가 많은데, 프랑스인들은 단결을 보여 주면서도 일상을 지속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대형 사건이 터지면 으레 있을 법한 정부 책임론이 별로 없다는 것도 특이하다. 외국 언론들이 프랑스 정보 당국과 경찰이 안이했던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를 했을 뿐 오히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과 마뉘엘 발스 총리, 베르나르 카즈뇌브 내무장관 등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지지율은 10∼20%씩 크게 상승했다. 한-프랑스 문화예술 교류 단체 ‘에코드라코레’를 운영하는 한국인 이미아 씨(47·여)는 “국가적 재난 속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를 비난할 뿐 초점을 흐릴 수 있는 엉뚱한 ‘마녀사냥식’의 희생양 찾기는 찾아볼 수 없어 나도 놀랐다”며 “모두 평정심을 찾아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테러범들에게 하는 최고의 복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파리 시민들이 테러를 잊은 것은 결코 아니다. 샤를리 에브도 사무실이 있는 테러 현장은 지난 한 달 동안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꽃들이 마치 무덤처럼 둥그렇게 쌓였다. 추모 열기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11일 ‘나는 샤를리다’라는 추모의 메시지를 적은 연필 모양의 기다란 나무 막대를 가지고 아이와 함께 온 쥘리앙 씨(42)는 “샤를리 에브도 사건의 교훈을 기억하기 위해 테러 현장은 꼭 보존돼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인 유학생 메간 노르가드 씨(20·패션 마케팅 전공)는 “늘 이 앞을 지날 때면 뉴욕에서 9·11테러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그라운드 제로’를 찾는 것과 마찬가지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프랑스 정부는 이민자 통합을 위한 학교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인터넷을 통한 이슬람극단주의 테러 선동 방지 대책을 실시하는 등 조용하지만 강력한 대책을 펴 나가고 있다. 11일 파리 5구에 있는 프랑스 최대의 이슬람사원 ‘그랑드 모스케’에서는 기도를 올리는 이슬람 신자들뿐 아니라 카페에서 민트차를 마시는 수많은 관광객으로 붐볐다. 모스크에서 만난 이맘(이슬람 지도자) 타하르 마흐디 씨는 “샤를리 에브도가 우리를 연필로 공격했기 때문에 우리도 연필로 대응해야 한다”며 “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총알로 대응하는 것은 이슬람이 아니라 마피아”라고 말했다.

프랑스의 국제관계연구소(IFRI)의 정치학자 도미니크 무아지는 “프랑스의 일상 복원력은 수많은 혁명을 통해 계몽주의적인 공화국의 가치를 발전시켜 온 전통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런던의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의 이코노미스트 길 모어 씨는 “테러 공격 이후 프랑스가 보여 준 단결은 지난 10년 동안 ‘프랑스 쇠퇴론’으로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던 ‘집단적 의기소침’을 치유할 수 있는 전기충격과 같은 효과”라고 말했다.

전승훈·파리 특파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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