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렴 前 박정희대통령비서실장, “박근혜 영애 시절에도 민원”

등록 2016.11.29.
“육영수 여사 서거 후 큰 영애(박근혜 대통령)가 업체 두 곳의 융자 얘기를 하며 나에게 ‘좀 해결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바로 최태민과 관련이 있는 업체였다. 지금 그때와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1969년 10월부터 1978년 12월까지 9년 2개월 동안 박정희 전 대통령을 모셨던 김정렴 전 대통령비서실장(92·사진)의 말이다. 그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질이 나쁜 사람(최태민)이 자기 딸을 박 대통령 측근에 앉히고 자기가 한 짓을 또 하도록 한 모양”이라며 “언론 보도를 보니 딸이 더 악질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언급한 업체는 대기업이 아닌 건설회사 한 곳과 섬유회사 한 곳이었다. “왜 그러시냐?”는 김 전 실장의 질문에 박 대통령은 “구국봉사단을 후원하는 기업체”라고 설명했다. ‘큰 영애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김 전 실장은 곧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인터뷰 내내 차분히 기억을 복기하던 그는 기업 관련 청탁과 재단 설립 문제 등으로 최순실 씨(60·구속 기소)와 공범이 된 박 대통령의 현 상황에 대해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특히 박 대통령에 대해 “최 씨 일가에 완전히 속은 것”이라고 말했다.

약 40년 전 일이었지만 김정렴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기억은 비교적 또렷했다. 정확한 연도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대출 청탁’ 시기에 대해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께 최태민 보고를 하기 전에 미리 부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중앙정보부가 관련 보고를 한 때는 1977년경으로 알려졌다. 그는 “기업의 대출 건이 있으면 큰 영애가 아니고 행정부나 은행에 이야기해야지. 그 어떤 사람이 큰 영애를 이용해 부당하게 융자를 받느냐고…”라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박 대통령에게 최태민 씨와 어떻게 알게 됐는지도 물었다. 박 대통령은 “내가 하는 사업(구국봉사단)의 후원자”라며 말을 이어갔다. 최 씨가 꿈을 꿨는데 돌아가신 육영수 여사가 나타나 ‘내 딸이 고생하고 있다. 도와줬으면 좋겠다’라는 내용을 편지에 써서 박 대통령에게 보냈다는 것이다. 김 전 비서실장은 “대출 건은 무엇이며 큰 영애와 (육 여사) 꿈을 꿨다는 녀석하고는 대체 무슨 관계란 말인가. 이건 완전한 협작이라고 생각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딸로서 아버지를 돕겠다고 순수하게 충효사상 선양운동을 시작한 큰 영애가 구국봉사단에 이용될 위험성이 크다고 봤다. 그리고 박 전 대통령에게 “이런 건 경계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박 전 대통령도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큰 영애’의 청탁을 처리하거나 별도로 취급하지 않았다.

 김 전 실장은 당시 열린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해당 내용을 언급했다. 그는 “큰 영애를 통해서 접근하는 최모 목사가 있는데 내가 각하께 말씀드려 차단했다. 전원이 그런 줄 알고, 이용당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승규 당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에게는 “큰 영애에게 오점이 생기면 안 되니 주의 깊게 (최 씨를) 관찰하라”고 별도로 당부까지 했다.

 이후 민정수석실과 중앙정보부는 최 씨 관련 정보를 모아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박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이 있는 자리에서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백광현 수사국장 등이 최 씨 비리를 말했다. 김 전 실장은 “그 자리에서 큰 영애가 ‘절대로 아니다’라며 (최태민을) 옹호하셨단 말이지”라며 당시 상황을 그렸다. 결국 최 씨 처벌이나 수사는 유야무야됐다는 게 김 전 실장의 기억이다.

김 전 실장에 따르면 당시 최 씨는 집요하게 박 대통령만 공략했다. 청와대에서 최 씨를 조사하면 한동안 잠잠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다시 ‘큰 영애를 돕는다’며 계속 박 대통령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전 실장은 “당시 큰 영애는 최 씨의 전횡을 잘 몰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씨가 개인적인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렇게 얻은 돈을 빼돌린 걸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란 설명이다. 그는 “지금도 큰 영애는 그저 (최순실이) 자기를 좋게 도와주는 그런 사람으로 알고 계실 것”이라고 말했다.

 최 씨에 대한 과거 중앙정보부 보고서 등을 살펴보면 최순실 씨의 범행은 아버지 최 씨와 똑 닮았다. 최 씨는 재벌 회장이나 고위 관계자를 만나 ‘자신이 박근혜 영애를 모시는 사람’이라며 기업인들이 알아서 기부하도록 유도했다. 이를 통해 구국봉사단에는 이례적으로 큰돈이 모였다. 결과적으로 최태민 부녀(父女)가 모두 재단을 세워 현 정권과 친분을 과시하며 재벌의 돈을 갈취해 온 것이다.

 김 전 실장은 최장수 대통령비서실장일 뿐 아니라 재무부 장관과 상공부 장관, 주일 대사를 지내며 박 전 대통령 일가를 지근거리에서 봤다. 지금도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장을 맡고 있다. 1997년 회고록 발간 때 박 대통령의 ‘대출 청탁’ 건을 적은 이유에 대해 “큰 결심을 하고 그자(최태민)를 사회적으로 매장시켜야 된다는 생각에 굳이 남의 이야기까지 썼다”고 말했다. 1997년은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입당해 대선 캠프 고문으로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한 해다.

 “내가 책을 갖다가 모두에게 나눠줬으니 (박 대통령도) 회고록의 그 내용을 읽으셨을 텐데…. (최 씨 일가를 경계하라는 메시지가 전달이 안 된 것 같아) 아쉽지….”

강성휘 yolo@donga.com ·정지영 기자

“육영수 여사 서거 후 큰 영애(박근혜 대통령)가 업체 두 곳의 융자 얘기를 하며 나에게 ‘좀 해결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바로 최태민과 관련이 있는 업체였다. 지금 그때와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1969년 10월부터 1978년 12월까지 9년 2개월 동안 박정희 전 대통령을 모셨던 김정렴 전 대통령비서실장(92·사진)의 말이다. 그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질이 나쁜 사람(최태민)이 자기 딸을 박 대통령 측근에 앉히고 자기가 한 짓을 또 하도록 한 모양”이라며 “언론 보도를 보니 딸이 더 악질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언급한 업체는 대기업이 아닌 건설회사 한 곳과 섬유회사 한 곳이었다. “왜 그러시냐?”는 김 전 실장의 질문에 박 대통령은 “구국봉사단을 후원하는 기업체”라고 설명했다. ‘큰 영애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김 전 실장은 곧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인터뷰 내내 차분히 기억을 복기하던 그는 기업 관련 청탁과 재단 설립 문제 등으로 최순실 씨(60·구속 기소)와 공범이 된 박 대통령의 현 상황에 대해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특히 박 대통령에 대해 “최 씨 일가에 완전히 속은 것”이라고 말했다.

약 40년 전 일이었지만 김정렴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기억은 비교적 또렷했다. 정확한 연도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대출 청탁’ 시기에 대해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께 최태민 보고를 하기 전에 미리 부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중앙정보부가 관련 보고를 한 때는 1977년경으로 알려졌다. 그는 “기업의 대출 건이 있으면 큰 영애가 아니고 행정부나 은행에 이야기해야지. 그 어떤 사람이 큰 영애를 이용해 부당하게 융자를 받느냐고…”라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박 대통령에게 최태민 씨와 어떻게 알게 됐는지도 물었다. 박 대통령은 “내가 하는 사업(구국봉사단)의 후원자”라며 말을 이어갔다. 최 씨가 꿈을 꿨는데 돌아가신 육영수 여사가 나타나 ‘내 딸이 고생하고 있다. 도와줬으면 좋겠다’라는 내용을 편지에 써서 박 대통령에게 보냈다는 것이다. 김 전 비서실장은 “대출 건은 무엇이며 큰 영애와 (육 여사) 꿈을 꿨다는 녀석하고는 대체 무슨 관계란 말인가. 이건 완전한 협작이라고 생각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딸로서 아버지를 돕겠다고 순수하게 충효사상 선양운동을 시작한 큰 영애가 구국봉사단에 이용될 위험성이 크다고 봤다. 그리고 박 전 대통령에게 “이런 건 경계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박 전 대통령도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큰 영애’의 청탁을 처리하거나 별도로 취급하지 않았다.

 김 전 실장은 당시 열린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해당 내용을 언급했다. 그는 “큰 영애를 통해서 접근하는 최모 목사가 있는데 내가 각하께 말씀드려 차단했다. 전원이 그런 줄 알고, 이용당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승규 당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에게는 “큰 영애에게 오점이 생기면 안 되니 주의 깊게 (최 씨를) 관찰하라”고 별도로 당부까지 했다.

 이후 민정수석실과 중앙정보부는 최 씨 관련 정보를 모아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박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이 있는 자리에서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백광현 수사국장 등이 최 씨 비리를 말했다. 김 전 실장은 “그 자리에서 큰 영애가 ‘절대로 아니다’라며 (최태민을) 옹호하셨단 말이지”라며 당시 상황을 그렸다. 결국 최 씨 처벌이나 수사는 유야무야됐다는 게 김 전 실장의 기억이다.

김 전 실장에 따르면 당시 최 씨는 집요하게 박 대통령만 공략했다. 청와대에서 최 씨를 조사하면 한동안 잠잠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다시 ‘큰 영애를 돕는다’며 계속 박 대통령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전 실장은 “당시 큰 영애는 최 씨의 전횡을 잘 몰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씨가 개인적인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렇게 얻은 돈을 빼돌린 걸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란 설명이다. 그는 “지금도 큰 영애는 그저 (최순실이) 자기를 좋게 도와주는 그런 사람으로 알고 계실 것”이라고 말했다.

 최 씨에 대한 과거 중앙정보부 보고서 등을 살펴보면 최순실 씨의 범행은 아버지 최 씨와 똑 닮았다. 최 씨는 재벌 회장이나 고위 관계자를 만나 ‘자신이 박근혜 영애를 모시는 사람’이라며 기업인들이 알아서 기부하도록 유도했다. 이를 통해 구국봉사단에는 이례적으로 큰돈이 모였다. 결과적으로 최태민 부녀(父女)가 모두 재단을 세워 현 정권과 친분을 과시하며 재벌의 돈을 갈취해 온 것이다.

 김 전 실장은 최장수 대통령비서실장일 뿐 아니라 재무부 장관과 상공부 장관, 주일 대사를 지내며 박 전 대통령 일가를 지근거리에서 봤다. 지금도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장을 맡고 있다. 1997년 회고록 발간 때 박 대통령의 ‘대출 청탁’ 건을 적은 이유에 대해 “큰 결심을 하고 그자(최태민)를 사회적으로 매장시켜야 된다는 생각에 굳이 남의 이야기까지 썼다”고 말했다. 1997년은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입당해 대선 캠프 고문으로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한 해다.

 “내가 책을 갖다가 모두에게 나눠줬으니 (박 대통령도) 회고록의 그 내용을 읽으셨을 텐데…. (최 씨 일가를 경계하라는 메시지가 전달이 안 된 것 같아) 아쉽지….”

강성휘 yolo@donga.com ·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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