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이 앓고 있다] ‘놀이공원’ 된 국립공원

등록 2016.10.26.
▼ 1.8km 탐방로 뒤덮은 등산화… 46년 지켜온 속살에 생채기 ▼

 

 “밀지 마세요.” “좀 더 빨리 가라고요.”

 뒤를 돌아보면 형형색색 등산복이 긴 줄을 이루고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한 등산객이 흙이 파여 미끄러운 굽잇길을 나무를 잡고 조심스럽게 내려가자 뒤에서 “빨리 가라”며 고성이 터져 나왔다. 어떤 등산객은 폭이 3, 4m에 불과한 좁은 탐방로에서 새치기를 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46년 만에 개방된 설악산 만경대 코스(용소폭포 탐방지원센터∼만경대∼오색약수터로 이어지는 길이 1.8km 둘레길 탐방로)의 최근 모습이다. 하루 동안 8601명이 이곳을 찾은 13일. 입구 주차장에는 관광버스가 수시로 산악회 회원들을 토해 내면서 긴 줄을 만들었다.

○ 46년 지켜온 길에 사람 발길 쏠려

[2]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는 만경대 탐방로를 이번 가을에 한해 이달부터 한시적으로 개방했다. 이 코스는 설악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1970년 3월부터 자연보호와 안전사고 우려 때문에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구역이었다.

 그러나 최근 인근 등산로였던 흘림골 코스가 낙석 위험으로 통제되면서 갑작스레 개방이 결정됐다. 관광객 감소를 걱정한 지역 주민들의 요구에 따른 것. 준비가 안 된 개방에 이곳 탐방로에 서 있는 나무들은 뿌리를 앙상하게 드러냈고 흙길은 곳곳이 파였다. 이달 1일 개방한 이후 25일까지 이곳을 찾은 인파만 14만2542명에 달한다.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구기터널 앞. 북한산 향로봉 등으로 오르려는 등산객 행렬이 꼬리를 물었다. ‘정규 등반로’에서 벗어나는 보호구역에 거리낌 없이 들어가는 등산객도 많았다. 출입을 막는 가이드라인과 함께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지만 한 등산객은 아예 안에 텐트를 쳐놓고 즐기고 있었다.

 한 번 입소문을 탄 뒤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등산객이 몰리면서 국립공원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2011, 2012년 북한산과 지리산에 각각 둘레길이 생겼을 때에도 탐방객 분산 효과보다 탐방객 자체가 늘어나면서 산만 자꾸 무거워졌다. 국내 국립공원 탐방객 수는 2008년 3770만7405명에서 지난해 4533만2135명으로 10년도 안 돼 800만 명 가까이 늘었다.

○ 주요 명산 서식지 파편화 심각

[3]  이로 인해 국립공원의 생태계 건강성이 나쁜 것으로 조사됐다. 취재팀이 25일 입수한 국립공원관리공단의 ‘국립공원 건강성 평가’ 보고서를 보면 설악산, 지리산 등 국내 주요 산악형 국립공원 15곳의 생태에 대해 지난해 1∼12월 현장 조사를 한 결과 ‘서식지 파편화’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식지 파편화’란 국립공원 구역 내 산속에 등산객이 다니는 길이 많아져 자연환경이 훼손되고 동물이 서식하기 어렵게 된 상황을 뜻한다. 점수로 보면 △20점 이하는 ‘관리 시급’ △20∼60점대는 ‘관리 필요’ △70점대는 ‘양호’ △80점 이상은 ‘자연 환경 건강’ △90점 이상은 ‘매우 건강’ 등으로 해석된다.

 산별로 보면 북한산, 계룡산, 내장산, 경주 남산 등 4곳은 100점 만점에 20점에 불과했다. 주왕산도 40점에 불과했다. ‘관리가 필요하다’에 해당되는 곳(60점)도 지리산, 속리산, 가야산, 월출산 등 4곳이나 됐다. 조사 대상 국립공원 15곳 중 60%(9곳)는 서식지 파편화가 두드러진 셈. 공단 보전정책부 원혁재 과장은 “탐방객으로 인해 등산길이 너무 많아지면서 서식지가 훼손된 것”이라고 말했다.

○ 중구난방 50년… 향후 50년을 보고 관리해야

 국립공원 관리 정책은 ‘관광지로 활용’(1960∼1980년대)→‘자연보전 최우선’(1990∼2000년대 중반)→‘지역사회 발전과의 조화’(2000년대 중반 이후) 순으로 큰 기조가 변해 왔다. 이 과정에서 그때그때 정책 기조에 따른 정책과 안건들이 중구난방 식으로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위원회에 상정돼 의결됐다.

 즉 장기적인 국립공원 보전과 이용에 대한 기준, 나아가 철학이 없었던 것. 환경부조차 7월 국회에서 열린 국립공원 포럼에서 “통합적이고 체계적인 공원 자원 관리가 부족했다”고 밝혔을 정도다. 조우 상지대 관광학부 교수는 “국립공원 50주년을 맞아 공원 내 환경, 각종 용도지구 구분, 장기적 보호계획을 세워 이용뿐 아니라 보호 및 관리의 중요한 틀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양=임현석 lhs@donga.com·김윤종 기자

▼ 1.8km 탐방로 뒤덮은 등산화… 46년 지켜온 속살에 생채기 ▼

 

 “밀지 마세요.” “좀 더 빨리 가라고요.”

 뒤를 돌아보면 형형색색 등산복이 긴 줄을 이루고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한 등산객이 흙이 파여 미끄러운 굽잇길을 나무를 잡고 조심스럽게 내려가자 뒤에서 “빨리 가라”며 고성이 터져 나왔다. 어떤 등산객은 폭이 3, 4m에 불과한 좁은 탐방로에서 새치기를 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46년 만에 개방된 설악산 만경대 코스(용소폭포 탐방지원센터∼만경대∼오색약수터로 이어지는 길이 1.8km 둘레길 탐방로)의 최근 모습이다. 하루 동안 8601명이 이곳을 찾은 13일. 입구 주차장에는 관광버스가 수시로 산악회 회원들을 토해 내면서 긴 줄을 만들었다.

○ 46년 지켜온 길에 사람 발길 쏠려

[2]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는 만경대 탐방로를 이번 가을에 한해 이달부터 한시적으로 개방했다. 이 코스는 설악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1970년 3월부터 자연보호와 안전사고 우려 때문에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구역이었다.

 그러나 최근 인근 등산로였던 흘림골 코스가 낙석 위험으로 통제되면서 갑작스레 개방이 결정됐다. 관광객 감소를 걱정한 지역 주민들의 요구에 따른 것. 준비가 안 된 개방에 이곳 탐방로에 서 있는 나무들은 뿌리를 앙상하게 드러냈고 흙길은 곳곳이 파였다. 이달 1일 개방한 이후 25일까지 이곳을 찾은 인파만 14만2542명에 달한다.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구기터널 앞. 북한산 향로봉 등으로 오르려는 등산객 행렬이 꼬리를 물었다. ‘정규 등반로’에서 벗어나는 보호구역에 거리낌 없이 들어가는 등산객도 많았다. 출입을 막는 가이드라인과 함께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지만 한 등산객은 아예 안에 텐트를 쳐놓고 즐기고 있었다.

 한 번 입소문을 탄 뒤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등산객이 몰리면서 국립공원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2011, 2012년 북한산과 지리산에 각각 둘레길이 생겼을 때에도 탐방객 분산 효과보다 탐방객 자체가 늘어나면서 산만 자꾸 무거워졌다. 국내 국립공원 탐방객 수는 2008년 3770만7405명에서 지난해 4533만2135명으로 10년도 안 돼 800만 명 가까이 늘었다.

○ 주요 명산 서식지 파편화 심각

[3]  이로 인해 국립공원의 생태계 건강성이 나쁜 것으로 조사됐다. 취재팀이 25일 입수한 국립공원관리공단의 ‘국립공원 건강성 평가’ 보고서를 보면 설악산, 지리산 등 국내 주요 산악형 국립공원 15곳의 생태에 대해 지난해 1∼12월 현장 조사를 한 결과 ‘서식지 파편화’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식지 파편화’란 국립공원 구역 내 산속에 등산객이 다니는 길이 많아져 자연환경이 훼손되고 동물이 서식하기 어렵게 된 상황을 뜻한다. 점수로 보면 △20점 이하는 ‘관리 시급’ △20∼60점대는 ‘관리 필요’ △70점대는 ‘양호’ △80점 이상은 ‘자연 환경 건강’ △90점 이상은 ‘매우 건강’ 등으로 해석된다.

 산별로 보면 북한산, 계룡산, 내장산, 경주 남산 등 4곳은 100점 만점에 20점에 불과했다. 주왕산도 40점에 불과했다. ‘관리가 필요하다’에 해당되는 곳(60점)도 지리산, 속리산, 가야산, 월출산 등 4곳이나 됐다. 조사 대상 국립공원 15곳 중 60%(9곳)는 서식지 파편화가 두드러진 셈. 공단 보전정책부 원혁재 과장은 “탐방객으로 인해 등산길이 너무 많아지면서 서식지가 훼손된 것”이라고 말했다.

○ 중구난방 50년… 향후 50년을 보고 관리해야

 국립공원 관리 정책은 ‘관광지로 활용’(1960∼1980년대)→‘자연보전 최우선’(1990∼2000년대 중반)→‘지역사회 발전과의 조화’(2000년대 중반 이후) 순으로 큰 기조가 변해 왔다. 이 과정에서 그때그때 정책 기조에 따른 정책과 안건들이 중구난방 식으로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위원회에 상정돼 의결됐다.

 즉 장기적인 국립공원 보전과 이용에 대한 기준, 나아가 철학이 없었던 것. 환경부조차 7월 국회에서 열린 국립공원 포럼에서 “통합적이고 체계적인 공원 자원 관리가 부족했다”고 밝혔을 정도다. 조우 상지대 관광학부 교수는 “국립공원 50주년을 맞아 공원 내 환경, 각종 용도지구 구분, 장기적 보호계획을 세워 이용뿐 아니라 보호 및 관리의 중요한 틀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양=임현석 lhs@donga.com·김윤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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