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여성모험가 퐁트누아 “모험 있는곳에 나를 던진다”

등록 2008.04.01.
‘7m 쪽배’노저어…대서양을 건너…태평양을 건너

사르코지 입각 제의 거절해 화제

하룻밤새 배 17번 뒤집혀도 멈추지 않아

청소년들에 모험-용기 가르쳐주고 싶어

《7m 크기의 작은 배로 2003년 캐나다 동쪽 프랑스령 생피에르에미클롱 섬에서 스페인의 라코루냐까지 대서양을 횡단했고, 2005년 페루의 칼라오에서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마르키즈 제도까지 태평양을 건넜다. 지난해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에게서 청소년 담당 정무차관(Secr´etaire d'Etat·차관급이나 장관과 함께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각료)을 제의받았지만 거절해 화제가 되기도 했던 그를 최근 파리시내 종합전시장 ‘포르트 드 베르사유’에서 만났다. 그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은 나를 스스로의 한계에서 벗어나게 만들고, 나 자신을 넘어서게 만든다”고 끊임없는 도전의 이유를 설명했다.》

○“두려움은 나를 한계에서 벗어나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노를 저어 바다를 건넌다는 것을 말로만 들었지 실제 어떤 일인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대략 설명해 주신다면….

“요트와 비교해 볼까요. 노 젓는 보트는 요트에 비해 아주 작습니다. 많은 장비를 실을 수 없죠. 배 높이도 낮기 때문에 물이 자주 배를 덮치고, 또 노를 저어 가기 때문에 속도가 아주 느리죠. 대서양을 건너는 데 4개월, 태평양을 건너는 데 3개월이 걸렸습니다.”

그에게 ‘바다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과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물었다. 눈가에 알 듯 말 듯한 미소가 스쳤다.

“태평양을 건널 때였죠. 멀리서 엄청나게 큰 고래가 곧바로 배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어요. 어떻게 하려는 건지 의아했는데 배 밑으로 쓱 지나가더군요. 너무나도 멋진 순간이었어요.”

가장 힘든 순간은 대서양을 건너는 동안 하룻밤 사이 배가 17번이나 뒤집힌 때였다. 파도는 10m가 넘었다. “배가 한번 뒤집어지면 물을 채워 무게중심을 잡아서 바로 세워야 합니다. 체력적으로 정말 힘들죠. 밤새 폭풍우와 싸웠습니다.”

그는 2006년에는 요트를 타고 바람과 조류의 방향을 거슬러 지구를 동에서 서로 도는 역방향 세계 일주에도 도전했다. 아쉽게도 이 분야 세계 최초 여성의 타이틀은 간발의 차로 영국 모험가 디 카파리 씨가 차지했다.

○ 삶의 기준을 ‘자유’로 삼은 부모님

문득 그의 모습이 사진으로 보아온 것과 약간 다르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는 임신 중이다. 배 속의 아이도 자신처럼 키우고 싶을지 궁금했다.

“물론입니다. 부모님이 내게 보여준 것처럼 아이에게 바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고 싶어요. 그리고 그 아름다운 바다를, 자연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가르쳐야죠.”

그의 부모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한마디로 ‘삶의 유일한 기준으로 자유를 택한’ 분들이죠. 우리 가족은 전화도, 수도도, 난방도 없이 살았어요. 두 분은 약학대학에서 처음 만나셨는데, 반항아에다 바다를 꿈꾸던 아버지는 전공 대신에 자신의 집 정원에서 직접 길이 17m짜리 배를 만드는 데만 관심이 있었어요.”

그는 배에서 게으름은 용납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와 오빠, 남동생 모두 어릴 때부터 공구상자를 들고 간단한 것부터 고치는 법을 배웠다.

“배에서는 큰 소리를 내면 안 돼요. 모든 일은 말없이 이뤄져야 하죠. 힘들어도 툴툴 털고 일어나야 해요. 우리가 배의 춥고 습한 침대를 편안하게 느끼게 된 것은 이런 단순한 교육 덕분이었어요. 우리는 버려진 개를 데려다 키우고 상처 입은 새를 구해주며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이국의 섬에 갔을 때 본 아름다운 꽃들도 잊을 수 없어요.”

○ “바다는 변하고 있다, 두렵도록”

퐁트누아 씨는 뭍에서보다 바다에서 보낸 시간이 많다. 어릴 때부터 작은 배에 의지해 먼 바다까지 나갔다. 바다의 변화를 누구보다 잘 안다. 최근 기상 변화를 포함한 바다와 지구의 모습이 바뀌어 가는 것은 그에겐 걱정거리다.

―바다가 변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태평양을 건널 때는 노르웨이 모험가 토르 헤위에르달이 1947년 건넜던 경로를 따라갔습니다. 그는 당시의 경험을 1950년 책으로 펴냈고 저도 그 책을 항해 전에 읽어봤어요. 그런데 그가 약 50년 전에 봤다는 많은 물고기를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바다가 텅 비어가고 있어요.” 항해를 하면서 마주치는 플라스틱 등 화학물질 쓰레기도 급격히 늘어났다고 한다.

최근의 기상 변화에는 두려움을 느끼는 듯했다. “무엇보다 진저리쳐지는 것은 폭풍우예요. 폭풍우가 너무 잦고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폭풍우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유롭게 항해할 수 없는 날이 올지도 몰라요.”

내친김에 최근 그가 왜 사르코지 대통령의 입각 제안을 거절했는지 물어보았다.

“프랑스에서 정치를 하려면 정치만을 해야 하죠. 다른 일은 꿈꿀 수 없습니다. 정치 참여는 거절했지만 다른 방식으로 청소년을 돕겠다는 꿈은 갖고 있습니다.”

그런 꿈의 하나는 ‘어린이와 바다의 모험을 연결하는 재단을 만드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특히 암에 걸린 아이들을 배에 태워서 바다에 나가 병을 이길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라디오 환경운동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일에도 관심이 있다고 덧붙였다.

―꿈의 많은 부분을 이뤘고 또 이뤄가고 있는데, 거대한 계획을 세우고 실현하는 데 특별한 방법이 있는지요.

“혼자 많은 항해를 했지만, 자기를 충분히 따르고 도와줄 팀이 필요합니다. 거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은 큰 산에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전체를 보면 어렵지만 하나씩 세분해서 살펴보면 할 만하다는 자신감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하기로 한 이상은 과감히 출발해야 합니다.”

그가 거친 바다를 수없이 건너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그런 꿈과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7m 쪽배’노저어…대서양을 건너…태평양을 건너

사르코지 입각 제의 거절해 화제

하룻밤새 배 17번 뒤집혀도 멈추지 않아

청소년들에 모험-용기 가르쳐주고 싶어

《7m 크기의 작은 배로 2003년 캐나다 동쪽 프랑스령 생피에르에미클롱 섬에서 스페인의 라코루냐까지 대서양을 횡단했고, 2005년 페루의 칼라오에서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마르키즈 제도까지 태평양을 건넜다. 지난해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에게서 청소년 담당 정무차관(Secr´etaire d'Etat·차관급이나 장관과 함께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각료)을 제의받았지만 거절해 화제가 되기도 했던 그를 최근 파리시내 종합전시장 ‘포르트 드 베르사유’에서 만났다. 그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은 나를 스스로의 한계에서 벗어나게 만들고, 나 자신을 넘어서게 만든다”고 끊임없는 도전의 이유를 설명했다.》

○“두려움은 나를 한계에서 벗어나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노를 저어 바다를 건넌다는 것을 말로만 들었지 실제 어떤 일인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대략 설명해 주신다면….

“요트와 비교해 볼까요. 노 젓는 보트는 요트에 비해 아주 작습니다. 많은 장비를 실을 수 없죠. 배 높이도 낮기 때문에 물이 자주 배를 덮치고, 또 노를 저어 가기 때문에 속도가 아주 느리죠. 대서양을 건너는 데 4개월, 태평양을 건너는 데 3개월이 걸렸습니다.”

그에게 ‘바다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과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물었다. 눈가에 알 듯 말 듯한 미소가 스쳤다.

“태평양을 건널 때였죠. 멀리서 엄청나게 큰 고래가 곧바로 배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어요. 어떻게 하려는 건지 의아했는데 배 밑으로 쓱 지나가더군요. 너무나도 멋진 순간이었어요.”

가장 힘든 순간은 대서양을 건너는 동안 하룻밤 사이 배가 17번이나 뒤집힌 때였다. 파도는 10m가 넘었다. “배가 한번 뒤집어지면 물을 채워 무게중심을 잡아서 바로 세워야 합니다. 체력적으로 정말 힘들죠. 밤새 폭풍우와 싸웠습니다.”

그는 2006년에는 요트를 타고 바람과 조류의 방향을 거슬러 지구를 동에서 서로 도는 역방향 세계 일주에도 도전했다. 아쉽게도 이 분야 세계 최초 여성의 타이틀은 간발의 차로 영국 모험가 디 카파리 씨가 차지했다.

○ 삶의 기준을 ‘자유’로 삼은 부모님

문득 그의 모습이 사진으로 보아온 것과 약간 다르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는 임신 중이다. 배 속의 아이도 자신처럼 키우고 싶을지 궁금했다.

“물론입니다. 부모님이 내게 보여준 것처럼 아이에게 바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고 싶어요. 그리고 그 아름다운 바다를, 자연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가르쳐야죠.”

그의 부모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한마디로 ‘삶의 유일한 기준으로 자유를 택한’ 분들이죠. 우리 가족은 전화도, 수도도, 난방도 없이 살았어요. 두 분은 약학대학에서 처음 만나셨는데, 반항아에다 바다를 꿈꾸던 아버지는 전공 대신에 자신의 집 정원에서 직접 길이 17m짜리 배를 만드는 데만 관심이 있었어요.”

그는 배에서 게으름은 용납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와 오빠, 남동생 모두 어릴 때부터 공구상자를 들고 간단한 것부터 고치는 법을 배웠다.

“배에서는 큰 소리를 내면 안 돼요. 모든 일은 말없이 이뤄져야 하죠. 힘들어도 툴툴 털고 일어나야 해요. 우리가 배의 춥고 습한 침대를 편안하게 느끼게 된 것은 이런 단순한 교육 덕분이었어요. 우리는 버려진 개를 데려다 키우고 상처 입은 새를 구해주며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이국의 섬에 갔을 때 본 아름다운 꽃들도 잊을 수 없어요.”

○ “바다는 변하고 있다, 두렵도록”

퐁트누아 씨는 뭍에서보다 바다에서 보낸 시간이 많다. 어릴 때부터 작은 배에 의지해 먼 바다까지 나갔다. 바다의 변화를 누구보다 잘 안다. 최근 기상 변화를 포함한 바다와 지구의 모습이 바뀌어 가는 것은 그에겐 걱정거리다.

―바다가 변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태평양을 건널 때는 노르웨이 모험가 토르 헤위에르달이 1947년 건넜던 경로를 따라갔습니다. 그는 당시의 경험을 1950년 책으로 펴냈고 저도 그 책을 항해 전에 읽어봤어요. 그런데 그가 약 50년 전에 봤다는 많은 물고기를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바다가 텅 비어가고 있어요.” 항해를 하면서 마주치는 플라스틱 등 화학물질 쓰레기도 급격히 늘어났다고 한다.

최근의 기상 변화에는 두려움을 느끼는 듯했다. “무엇보다 진저리쳐지는 것은 폭풍우예요. 폭풍우가 너무 잦고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폭풍우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유롭게 항해할 수 없는 날이 올지도 몰라요.”

내친김에 최근 그가 왜 사르코지 대통령의 입각 제안을 거절했는지 물어보았다.

“프랑스에서 정치를 하려면 정치만을 해야 하죠. 다른 일은 꿈꿀 수 없습니다. 정치 참여는 거절했지만 다른 방식으로 청소년을 돕겠다는 꿈은 갖고 있습니다.”

그런 꿈의 하나는 ‘어린이와 바다의 모험을 연결하는 재단을 만드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특히 암에 걸린 아이들을 배에 태워서 바다에 나가 병을 이길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라디오 환경운동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일에도 관심이 있다고 덧붙였다.

―꿈의 많은 부분을 이뤘고 또 이뤄가고 있는데, 거대한 계획을 세우고 실현하는 데 특별한 방법이 있는지요.

“혼자 많은 항해를 했지만, 자기를 충분히 따르고 도와줄 팀이 필요합니다. 거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은 큰 산에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전체를 보면 어렵지만 하나씩 세분해서 살펴보면 할 만하다는 자신감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하기로 한 이상은 과감히 출발해야 합니다.”

그가 거친 바다를 수없이 건너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그런 꿈과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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