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았던 좌익인사 친일행위

등록 2010.02.03.
(박제균 앵커) 지난해 11월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이 편향돼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습니다. 특히 좌익 정치인과 언론인의 친일 문제에 눈을 감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김현수 앵커) `해방공간의 언론인`을 연구해 온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진석 명예교수가 최근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내놨는데요,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좌익인사들의 친일행위가 밝혀졌습니다. 한상진 기자가 보도합니다.

몽양 여운형은 일제시대와 해방 직후의 대표적인 정치인이자 언론인입니다.

1930년대 조선중앙일보 사장을 지냈고 해방직후엔 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도 지냈습니다. 하지만 몽양은 일제시대 말기에 친일의 오점을 남겼습니다.

일제말기 노골적으로 태평양 전쟁을 찬양하며 조선 젊은이들이 군인으로 나서기를 촉구하는 시를 썼습니다.

또 여운형이 총독부로부터 2000만 엔을 받아 일본인들의 안전보장을 촉구하는 전단지를 뿌린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정진석 교수)

" 조선 총독부가 여운형에게 2000만엔을 줬다. 미군정보보고서에 그렇게 나와 있어요. 그 보고서에 의하면, 다 자세히는 못 썼지만, 비행기, 왜 비행기냐, 삐라를 살포할 수 있도록, 민심을 안정시키고, 일본인에게 위해를 가하지 말라는 삐라를 뿌리는 비행기…"

하지만 그의 이름은 최근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에 없습니다.

한국외국어대 정진석 명예교수는 여운형의 친일행적을 확인해 주는 각종 자료를 발굴해 최근 월간지 `신동아`에 기고했습니다.

(정진석 교수)

"그 기간만 보면 여운형은 친일파 중에서도 아주 높은 단계의 친일팝니다. 지금 친일인명사전 만드는 큰 기관이 두개였죠. 그 두 기관에서 친일파로 분류해서 명단에 올라간 사람들 중에 대부분은 여운형의 친일기록에 비하면 약합니다"

정 교수는 또 광복 이후 월북한 좌익인사들이 북한에서 어떤 최후를 맞았는지를 연구했습니다. 연구결과는 충격적입니다.

박헌영과 임화는 1953년 미국 스파이 혐의로 숙청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최후진술에서 억울함을 호소하기는커녕 죄를 모두 인정할 뿐 만 아니라 자신들을 인민들에게 표본으로 보여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박헌영은 최후 진술에서 "나는 미국 간첩들의 두목이고 범죄를 감행하게끔 모든 것을 비호 보장해 온 장본인이고, 더 널리 인민들 속에 알리어 매국역적의 말로를 널리 알려주시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임화도 최후 진술에서 "엄중한 범죄를 범한 저에게 조국에 영광을 축원할 수 있으며 만족하고 죽을 수 있는 조건을 지어준데 대하여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런 최후진술을 남겼을까요?

(정 교수)

"남아있는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인간 박헌영으로서, 처와 아들을 보호하려면 이런 소리를 할 수 있음직도 합니다. 그만큼 (당시 김일성정권이) 악랄합니다."

정진석 교수는 연구결과를 곧 책으로 발간할 계획입니다. 동아일보 한상진입니다.

(박제균 앵커) 지난해 11월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이 편향돼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습니다. 특히 좌익 정치인과 언론인의 친일 문제에 눈을 감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김현수 앵커) `해방공간의 언론인`을 연구해 온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진석 명예교수가 최근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내놨는데요,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좌익인사들의 친일행위가 밝혀졌습니다. 한상진 기자가 보도합니다.

몽양 여운형은 일제시대와 해방 직후의 대표적인 정치인이자 언론인입니다.

1930년대 조선중앙일보 사장을 지냈고 해방직후엔 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도 지냈습니다. 하지만 몽양은 일제시대 말기에 친일의 오점을 남겼습니다.

일제말기 노골적으로 태평양 전쟁을 찬양하며 조선 젊은이들이 군인으로 나서기를 촉구하는 시를 썼습니다.

또 여운형이 총독부로부터 2000만 엔을 받아 일본인들의 안전보장을 촉구하는 전단지를 뿌린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정진석 교수)

" 조선 총독부가 여운형에게 2000만엔을 줬다. 미군정보보고서에 그렇게 나와 있어요. 그 보고서에 의하면, 다 자세히는 못 썼지만, 비행기, 왜 비행기냐, 삐라를 살포할 수 있도록, 민심을 안정시키고, 일본인에게 위해를 가하지 말라는 삐라를 뿌리는 비행기…"

하지만 그의 이름은 최근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에 없습니다.

한국외국어대 정진석 명예교수는 여운형의 친일행적을 확인해 주는 각종 자료를 발굴해 최근 월간지 `신동아`에 기고했습니다.

(정진석 교수)

"그 기간만 보면 여운형은 친일파 중에서도 아주 높은 단계의 친일팝니다. 지금 친일인명사전 만드는 큰 기관이 두개였죠. 그 두 기관에서 친일파로 분류해서 명단에 올라간 사람들 중에 대부분은 여운형의 친일기록에 비하면 약합니다"

정 교수는 또 광복 이후 월북한 좌익인사들이 북한에서 어떤 최후를 맞았는지를 연구했습니다. 연구결과는 충격적입니다.

박헌영과 임화는 1953년 미국 스파이 혐의로 숙청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최후진술에서 억울함을 호소하기는커녕 죄를 모두 인정할 뿐 만 아니라 자신들을 인민들에게 표본으로 보여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박헌영은 최후 진술에서 "나는 미국 간첩들의 두목이고 범죄를 감행하게끔 모든 것을 비호 보장해 온 장본인이고, 더 널리 인민들 속에 알리어 매국역적의 말로를 널리 알려주시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임화도 최후 진술에서 "엄중한 범죄를 범한 저에게 조국에 영광을 축원할 수 있으며 만족하고 죽을 수 있는 조건을 지어준데 대하여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런 최후진술을 남겼을까요?

(정 교수)

"남아있는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인간 박헌영으로서, 처와 아들을 보호하려면 이런 소리를 할 수 있음직도 합니다. 그만큼 (당시 김일성정권이) 악랄합니다."

정진석 교수는 연구결과를 곧 책으로 발간할 계획입니다. 동아일보 한상진입니다.

더보기
공유하기 닫기

VODA 인기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