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와 혼돈의 지식인 황장엽 안장

등록 2010.10.14.
(박제균 앵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0월 14일 동아 뉴스 스테이션입니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오늘 오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습니다. 이에 앞서 오전 10시부터 빈소인 서울아산병원에서 영결식이 거행됐습니다.

(구가인 앵커) 선생은 1997년 탈북 해 한국에 온 뒤 13년 동안 북한 민주화운동과 자신의 인간중심철학 연구에 매진해 왔습니다. 지난 10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그의 일생과 갑작스런 죽음을 조명해 봤습니다. 생전의 황 전 비서를 취재했던 정치부 신석호 차장을 연결하겠습니다.

(박 앵커) 신 차장, 오늘 영결식 표정은 어땠나요.

(신 차장) 황 전 비서의 영결식은 아산병원 1층에서 국내외 조문객 약 2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약 한 시간 동안 통일사회장으로 엄수됐습니다. 황 전 비서의 수양딸 김숙향 씨를 비롯해 명예 장의위원장을 맡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현인택 통일부 장관,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 등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습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조사를 통해 "2300만 동포들을 노예로 만들고 `3대 세습`으로 전 인류를 우롱하는 용서 못할 정권이 살아 있는데, 선생님을 떠나 보내야하는 저희들은 참으로 비탄한 심정"이라고 애도했습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도 "선생님의 존재 자체는 통일 의지의 상징이자 희망이었고 선생님의 용기 있는 결단과 가르침은 우리 가슴에 살아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고인의 시신은 오전 11시 경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출발해 오후 3시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에 안장됐습니다. 앞서 정부는 12일 고인에게 1등급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습니다.

(구 앵커) 황 전 비서는 어떤 인물이었고 그의 탈북 생활 13년은 한국 현대사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신 차장) 황 전 비서는 북한 주체사상을 이론화, 체계화 한 `주체사상의 대부`였습니다. 소련 유학 후인 1954년부터 김일성종합대 교수를 시작했고 1958년 김일성 당시 노동당 총비서의 비서실에서 공직을 시작했습니다. 김일성대총장과 최고인민회의 의장, 당 비서 등을 지내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주체사상의 변질과 수령 절대주의 독재체제에 환멸을 느끼고 1997년 한국으로 귀순했습니다. 그러나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10년 동안 활동의 제약을 받았고 주로 연구와 집필활동에 몰두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이후 활발하게 대외활동을 하며 북한민주화운동에 앞장서 왔습니다. 그는 남한 내에 북한의 실상을 바로 알려 북한 바로 알기에 공헌했습니다. 북한은 이런 그에 대 암살 기도를 했고 올해 4월 암살조가 검거되기도 했습니다.

(박 앵커) 황 전 비서는 지난해 국내 방송사상 처음으로 동아 뉴스 스테이션에 출연했습니다. 당시 남긴 말을 다시하번 전해 주시죠.

(신 차장) 네, 황 전 비서는 지난해 8월 19일 동아뉴스스테이션의 `딥 포커스` 코너에 출연해 "북한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남북관계가 경색됐다, 개선됐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며 일부 친북 종북주의자들을 꾸짖었습니다. 그는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을 할 의지가 있습니까? 30년 동안 안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버릴 것입니까? 절대 버리지 않습니다. 북한이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새 저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소개하면서 "북한 수령 독재주의 사상이 남한에도 영향을 미쳐 청년들 사이에서 북한 수령 독재를 지지하고 김정일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자꾸 불어나고 있다"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마르크스 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황 전 비서는 출연에 앞서 8월 7일 역시 국내 언론사로는 처음으로 동아일보를 방문해 북한을 연구하는 기자들의 모임인 `남북한 포럼` 회원들을 상대로 북한 내부 분석과 북한 민주화 전략에 대해 강연했습니다.

(구 앵커) 황 전 비서의 조문을 놓고 보수 진영 내부, 그리고 보수와 진보진영 정치권 사이에 갈등이 불거지기도 했죠?

(신 차장) 예. 정부가 황 전 비서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한 것에 대해 보수진영 일각에서 `우파 포퓰리즘` 즉 대중영합주의가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비운의 망명자`인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김일성 김정일 정권에서 요직을 지내고, 주체사상의 기초를 제공한 그를 애국자로 추앙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배치될 수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김황식 국무총리는 13일 빈소에 와 "탈북자들을 품에 안고 지도해주신 우리 시대의 귀중한 분"이라며 "정부가 여론을 수렴해 신중하게 결정했다"고 말했습니다. 민주당에서는 조문 여부를 놓고 고민한 끝에 손학규 대표의 대리인 자격으로 박지원 원내대표가 조문했지만 당 차원이 아니라 개인 차원이라고 하는 등 어정쩡한 모습으로 일관했습니다. 지금까지 통일부에서 전해 드렸습나다.

(박제균 앵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0월 14일 동아 뉴스 스테이션입니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오늘 오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습니다. 이에 앞서 오전 10시부터 빈소인 서울아산병원에서 영결식이 거행됐습니다.

(구가인 앵커) 선생은 1997년 탈북 해 한국에 온 뒤 13년 동안 북한 민주화운동과 자신의 인간중심철학 연구에 매진해 왔습니다. 지난 10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그의 일생과 갑작스런 죽음을 조명해 봤습니다. 생전의 황 전 비서를 취재했던 정치부 신석호 차장을 연결하겠습니다.

(박 앵커) 신 차장, 오늘 영결식 표정은 어땠나요.

(신 차장) 황 전 비서의 영결식은 아산병원 1층에서 국내외 조문객 약 2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약 한 시간 동안 통일사회장으로 엄수됐습니다. 황 전 비서의 수양딸 김숙향 씨를 비롯해 명예 장의위원장을 맡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현인택 통일부 장관,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 등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습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조사를 통해 "2300만 동포들을 노예로 만들고 `3대 세습`으로 전 인류를 우롱하는 용서 못할 정권이 살아 있는데, 선생님을 떠나 보내야하는 저희들은 참으로 비탄한 심정"이라고 애도했습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도 "선생님의 존재 자체는 통일 의지의 상징이자 희망이었고 선생님의 용기 있는 결단과 가르침은 우리 가슴에 살아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고인의 시신은 오전 11시 경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출발해 오후 3시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에 안장됐습니다. 앞서 정부는 12일 고인에게 1등급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습니다.

(구 앵커) 황 전 비서는 어떤 인물이었고 그의 탈북 생활 13년은 한국 현대사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신 차장) 황 전 비서는 북한 주체사상을 이론화, 체계화 한 `주체사상의 대부`였습니다. 소련 유학 후인 1954년부터 김일성종합대 교수를 시작했고 1958년 김일성 당시 노동당 총비서의 비서실에서 공직을 시작했습니다. 김일성대총장과 최고인민회의 의장, 당 비서 등을 지내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주체사상의 변질과 수령 절대주의 독재체제에 환멸을 느끼고 1997년 한국으로 귀순했습니다. 그러나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10년 동안 활동의 제약을 받았고 주로 연구와 집필활동에 몰두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이후 활발하게 대외활동을 하며 북한민주화운동에 앞장서 왔습니다. 그는 남한 내에 북한의 실상을 바로 알려 북한 바로 알기에 공헌했습니다. 북한은 이런 그에 대 암살 기도를 했고 올해 4월 암살조가 검거되기도 했습니다.

(박 앵커) 황 전 비서는 지난해 국내 방송사상 처음으로 동아 뉴스 스테이션에 출연했습니다. 당시 남긴 말을 다시하번 전해 주시죠.

(신 차장) 네, 황 전 비서는 지난해 8월 19일 동아뉴스스테이션의 `딥 포커스` 코너에 출연해 "북한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남북관계가 경색됐다, 개선됐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며 일부 친북 종북주의자들을 꾸짖었습니다. 그는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을 할 의지가 있습니까? 30년 동안 안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버릴 것입니까? 절대 버리지 않습니다. 북한이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새 저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소개하면서 "북한 수령 독재주의 사상이 남한에도 영향을 미쳐 청년들 사이에서 북한 수령 독재를 지지하고 김정일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자꾸 불어나고 있다"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마르크스 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황 전 비서는 출연에 앞서 8월 7일 역시 국내 언론사로는 처음으로 동아일보를 방문해 북한을 연구하는 기자들의 모임인 `남북한 포럼` 회원들을 상대로 북한 내부 분석과 북한 민주화 전략에 대해 강연했습니다.

(구 앵커) 황 전 비서의 조문을 놓고 보수 진영 내부, 그리고 보수와 진보진영 정치권 사이에 갈등이 불거지기도 했죠?

(신 차장) 예. 정부가 황 전 비서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한 것에 대해 보수진영 일각에서 `우파 포퓰리즘` 즉 대중영합주의가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비운의 망명자`인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김일성 김정일 정권에서 요직을 지내고, 주체사상의 기초를 제공한 그를 애국자로 추앙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배치될 수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김황식 국무총리는 13일 빈소에 와 "탈북자들을 품에 안고 지도해주신 우리 시대의 귀중한 분"이라며 "정부가 여론을 수렴해 신중하게 결정했다"고 말했습니다. 민주당에서는 조문 여부를 놓고 고민한 끝에 손학규 대표의 대리인 자격으로 박지원 원내대표가 조문했지만 당 차원이 아니라 개인 차원이라고 하는 등 어정쩡한 모습으로 일관했습니다. 지금까지 통일부에서 전해 드렸습나다.

더보기
공유하기 닫기

VODA 인기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