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논평 : 권력에 채운 수갑이 진정한 법치다

오늘 아침 신문에 실린 한 장의 외신 사진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양복을 입은 빈센트 그레이 미국 워싱턴 DC 시장이 경찰에 체포돼 수갑을 찬 채 경찰서로 연행되는 모습이었습니다. 혐의는 불법 시위였습니다. 워싱턴 의사당 주변에서 시위를 하지 못하도록 돼 있습니다. 그러나 그레이 시장은 시 의회 의원들과 함께 워싱턴 의사당 앞 보도를 점거하고 연방정부의 예산안 합의에 반발해 30분간 농성을 벌였습니다. 도로를 점거해 교통을 마비시킨 것도 아니고 폭력으로 경찰을 위협하는 행위도 없었지만 경찰은 이들을 모두 현행범으로 체포했습니다. 그레이 시장 등은 7시간 경찰조사를 받고 새벽 1시경에야 풀려났습니다.

사실 미국에서 이런 것은 특별한 일도 아닙니다. 2009년 워싱턴 수단대사관 앞에서 민주당 연방 하원의원 5명이 체포된 일이 있습니다. 수단 정부의 국제구호단체 추방 명령에 항의하던 의원들이 질서 유지선을 넘어서자 경찰은 3차례 경고한 후 수갑을 채워 연행했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어떨까요. 당장 경찰청장 사퇴 요구가 나왔을 겁니다. 많은 집회에서 질서유지를 위한 경찰의 지시를 안하무인격으로 무시하는 금배지들은 보지만 누구 하나 체포됐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헌법에 그냥 `집회의 권리`라고 두루뭉실 규정한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우리 헌법이 그 `기본권` 조항의 골격을 빌려온 독일 기본법은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라고 규정하고 있고 유럽 전역에 통용되는 유럽 인권헌장도 역시 집회의 권리 앞에 `평화로운`이란 수식어를 달고 있습니다. 그런 수식어가 없어도 집회와 시위는 평화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그 권리에 내재된 한계입니다.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의 야간 옥외 집회 금지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이 난 이후 집시법 개정이 1년 넘게 표류하고 있습니다. 야간 옥외 집회를 허용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사실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야간 집회가 폭력으로 변질되면 그때 가서 막아도 됩니다. 다만 그 전에 집회가 불법적이 될 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확실하게 수갑을 채우는 법치의 원칙이 지켜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