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박근혜대통령 2007년 하버드大 연설화제

등록 2013.02.25.
헌정사상 최초로 여성 대통령으로 탄생한 박근혜 대통령이 6년 전 하버드대에서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이라는 취지로 연설한 내용 전문이 인터넷상에 공개돼 화제가 되고 있다.

당시 이명박 후보와 함께 한나라당의 유력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2007년 2월13일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을 방문, ‘대한민국과 미국이 함께 나눌 미래’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했다. 24일 미국의 웹진 케이아메리칸 포스트에 올라 있는 연설문에서 박 대통령은 북핵 문제와 한미 동맹 등 오늘날의 현안과 놀랍도록 빼닮은 문제들에 관한 견해와 청사진을 밝혀 눈길을 끈다.

대선 후보로 첫 출사표를 던진 당시의 정치·외교·국방에 관한 국정 운영 구상과 6년 뒤 대통령에 취임하며 국민들에게 밝힐 연설의 내용이 어떤 차이가 있을지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하버드대학(케네디스쿨)과 한국의 특별한 인연을 먼저 강조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하버드에서 역사를 공부했고 한국인 최초의 UN 사무총장 반기문 총장도 하버드 동문이라고 소개하고 “제 아버지는 1961년 백악관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고 오늘 그 딸이 케네디스쿨을 찾아왔다”고 소개했다.

현재 한국이 겪고 있는 반미와 친미, 자주와 외세의 대립이라는 혼돈과 갈등은 남북이 갈라진 특수한 상황에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한 박 대통령은 “북한 정권의 핵실험과 인권 탄압은 분명 제거돼야 할 대상이지만, 지구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핏줄이라는 사실에 한국인들의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 속에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을 목표로 자유를 확대해야 하며 성장의 토대 위에 복지가 이루어지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자주냐 외세냐의 이분법이 아니라 국가 이익을 생각하는 실리 외교로 한미 동맹도 21세기에 맞게 더욱 성숙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1950년 한국전쟁이 첫 번째 위기라면, 지금은 두 번째 안보적인 위기다. 한국전쟁 이래 북한은 여러 형태의 무력적 도발을 지속해 왔다. 청와대를 습격했고, 해외에서 우리 대통령에 대한 폭탄 테러, KAL기 폭파, 서해 교전 등을 자행했다”고 말했다.

또한 “저의 어머니께서도 북한의 사주를 받은 사람의 총탄에 돌아가셨다. 그때 제 나이 겨우 22살에 퍼스트 레이디를 대행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북한이 핵무장을 하지는 않았다. 2006년 10월9일 단행한 북한의 핵 실험으로 한반도 안보는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박 대통령은 “북핵 해법을 위해선 6자회담과 UN 안보리 제재, PSI(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 미북 접촉, 남북 대화의 5가지 열쇠를 통합하여 실질적 진전이 이뤄지도록 접근해야 하며 결정적 중요성을 갖는 또 하나의 열쇠는 바로 한미 동맹”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개인적 시련과 고뇌를 언급하며 18년 간 세인의 뇌리에서 잊혀졌다가 정치를 하게 된 동기도 털어놓았다.

“저는 일생을 시련 속에 살아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머니께서 총탄에 돌아가셨을 때, 저는 지구 반대편 프랑스에서 유학 중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조차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퍼스트 레이디의 역할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 되지 않아서 다시 아버지까지 또 그렇게 보내드려야 했습니다. 정말 숨쉬는 것조차 고통스럽게 느껴졌던 시간이었습니다.

누구나 살면서 서로 다른 종류의 시련을 겪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자기가 겪는 시련이 가장 가혹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가족에서 태어났더라면’이라는 제목의 수필집까지 냈습니다. 그런데 그 책도 많이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저에게는 시련이었습니다.

이렇게 시련 속에 살아온 저를 정치로 불러들인 것은, 다름아닌 조국이 겪는 시련이었습니다. 청와대를 나와 18년 간 소시민으로 살았던 저는 10년 전 IMF 사태로 조국 대한민국이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 혼자 편하게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으로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올 12월의 대통령선거는 한미 동맹의 운명이 걸린 선거다. 저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미 동맹이 앞으로 100년을 지속할 수 있는 확고한 기반을 마련할 것”이라며 “저의 목표는 단지 하나, 조국을 구하는 것(I have only one objective. I'm in to save my country)”이라고 연설을 갈무리했다.



【뉴욕=뉴시스】

헌정사상 최초로 여성 대통령으로 탄생한 박근혜 대통령이 6년 전 하버드대에서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이라는 취지로 연설한 내용 전문이 인터넷상에 공개돼 화제가 되고 있다.

당시 이명박 후보와 함께 한나라당의 유력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2007년 2월13일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을 방문, ‘대한민국과 미국이 함께 나눌 미래’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했다. 24일 미국의 웹진 케이아메리칸 포스트에 올라 있는 연설문에서 박 대통령은 북핵 문제와 한미 동맹 등 오늘날의 현안과 놀랍도록 빼닮은 문제들에 관한 견해와 청사진을 밝혀 눈길을 끈다.

대선 후보로 첫 출사표를 던진 당시의 정치·외교·국방에 관한 국정 운영 구상과 6년 뒤 대통령에 취임하며 국민들에게 밝힐 연설의 내용이 어떤 차이가 있을지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하버드대학(케네디스쿨)과 한국의 특별한 인연을 먼저 강조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하버드에서 역사를 공부했고 한국인 최초의 UN 사무총장 반기문 총장도 하버드 동문이라고 소개하고 “제 아버지는 1961년 백악관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고 오늘 그 딸이 케네디스쿨을 찾아왔다”고 소개했다.

현재 한국이 겪고 있는 반미와 친미, 자주와 외세의 대립이라는 혼돈과 갈등은 남북이 갈라진 특수한 상황에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한 박 대통령은 “북한 정권의 핵실험과 인권 탄압은 분명 제거돼야 할 대상이지만, 지구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핏줄이라는 사실에 한국인들의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 속에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을 목표로 자유를 확대해야 하며 성장의 토대 위에 복지가 이루어지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자주냐 외세냐의 이분법이 아니라 국가 이익을 생각하는 실리 외교로 한미 동맹도 21세기에 맞게 더욱 성숙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1950년 한국전쟁이 첫 번째 위기라면, 지금은 두 번째 안보적인 위기다. 한국전쟁 이래 북한은 여러 형태의 무력적 도발을 지속해 왔다. 청와대를 습격했고, 해외에서 우리 대통령에 대한 폭탄 테러, KAL기 폭파, 서해 교전 등을 자행했다”고 말했다.

또한 “저의 어머니께서도 북한의 사주를 받은 사람의 총탄에 돌아가셨다. 그때 제 나이 겨우 22살에 퍼스트 레이디를 대행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북한이 핵무장을 하지는 않았다. 2006년 10월9일 단행한 북한의 핵 실험으로 한반도 안보는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박 대통령은 “북핵 해법을 위해선 6자회담과 UN 안보리 제재, PSI(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 미북 접촉, 남북 대화의 5가지 열쇠를 통합하여 실질적 진전이 이뤄지도록 접근해야 하며 결정적 중요성을 갖는 또 하나의 열쇠는 바로 한미 동맹”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개인적 시련과 고뇌를 언급하며 18년 간 세인의 뇌리에서 잊혀졌다가 정치를 하게 된 동기도 털어놓았다.

“저는 일생을 시련 속에 살아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머니께서 총탄에 돌아가셨을 때, 저는 지구 반대편 프랑스에서 유학 중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조차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퍼스트 레이디의 역할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 되지 않아서 다시 아버지까지 또 그렇게 보내드려야 했습니다. 정말 숨쉬는 것조차 고통스럽게 느껴졌던 시간이었습니다.

누구나 살면서 서로 다른 종류의 시련을 겪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자기가 겪는 시련이 가장 가혹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가족에서 태어났더라면’이라는 제목의 수필집까지 냈습니다. 그런데 그 책도 많이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저에게는 시련이었습니다.

이렇게 시련 속에 살아온 저를 정치로 불러들인 것은, 다름아닌 조국이 겪는 시련이었습니다. 청와대를 나와 18년 간 소시민으로 살았던 저는 10년 전 IMF 사태로 조국 대한민국이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 혼자 편하게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으로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올 12월의 대통령선거는 한미 동맹의 운명이 걸린 선거다. 저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미 동맹이 앞으로 100년을 지속할 수 있는 확고한 기반을 마련할 것”이라며 “저의 목표는 단지 하나, 조국을 구하는 것(I have only one objective. I'm in to save my country)”이라고 연설을 갈무리했다.



【뉴욕=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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