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팰리스 일진’ 그들은 왜…
등록 2013.04.23.경찰 ‘역삼 패밀리’ 중고생 35명 검거… 판사-의사 등 자녀들이 돈뺏기 주도
‘역삼 패밀리’로 불리며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학생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중고교생 35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주동자 격인 학생 중에는 판사, 의사, 변호사, 공기업 간부 등 부유층 자녀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넉넉한 가정에서 자란 이 학생들은 부모의 간섭과 가정폭력이 싫어 거리로 나갔다고 했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에 사는 중학교 3학년 A 군(15)은 어릴 적부터 가출을 반복했다. 경제적으로 부족한 것이 없었지만 공부를 강요하고 윽박지르는 부모에 대한 반항심이 컸다고 한다. A 군 외에도 전문직 종사자, 50억 원대 자산가 자녀 등 부유층 자녀 5명이 ‘역삼 패밀리’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10명은 가출 청소년이었다. 훔친 주민등록증으로 찜질방이나 PC방에서 생활해온 아이들이 많았다. 나머지 20명은 역삼동 등 이 일대 재개발 지역에서 자란 아이들이었다.
A 군 등 부유층 자녀들은 부모가 주는 용돈으로 패밀리를 결속했다. A 군 등은 매일 부모에게서 5만, 6만 원씩 온라인으로 입금받아 다른 아이들의 찜질방이나 PC방 이용료를 대줬다. 부유층 부모들은 “애들이 돈이 없으면 나쁜 짓을 하다가 경찰서에 붙잡혀 갈지 몰라 돈을 부쳐줄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했다. A 군 등은 집에서 부모가 때리거나 윽박지르기만 할 뿐 자신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지 않아 비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역삼 패밀리’는 매일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하루 한 번 시간을 정해 아지트인 역삼동 놀이터, 공원 등지에 모여 담배를 피우며 범행 계획을 상의했다. 또래 학생들에게 스마트폰과 돈을 빼앗는 일은 부유층 아이들이 주로 했다. 여러 명이 떼로 몰려다니며 학교나 학원가 주변에서 학생들에게 겁을 주고 최신형 스마트폰과 현금을 빼앗았다. 고가의 스마트폰은 장물업자에게 팔아 유흥비로 썼다. 이들은 피해 학생의 학생증을 빼앗아 학교와 이름을 확인하고 신고하지 못하도록 협박했다.
‘역삼 패밀리’는 절도도 일삼았다. 절도는 주로 가출했거나 형편이 어려운 집 아이들이 주도했다.
▼ “잘사는 애들이 우리와 거리 떠도는게 이상했다” ▼
편의점에 몰려가 담배와 군것질거리를 훔치고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고선 돈을 내지 않고 도망쳤다. 경찰 관계자는 “부유층 자녀도 가난한 아이들과 어울려 훔친 빵을 먹기도 했다”며 “부모가 자녀에게 관심을 쏟지 않으면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해도 비행 청소년이 될 위험성이 크다”고 말했다.
‘패밀리’로 결속돼 있는 듯 보였지만 형편이 어려운 집 아이들은 부유층 아이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진술했다. 중학교 2학년 B 군은 타워팰리스 인근 다세대 연립주택에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편의점에서 훔친 빵과 우유로 식사를 자주 해결했다. B 군은 “잘사는 애들이 굳이 집을 나와 우리와 함께 거리를 전전하니 이상했다”며 “그래도 그 애들이 부모에게 받은 돈으로 우리 찜질방비를 대주니 그저 고마웠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부유층 자녀 등 3명은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검찰도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기각됐다. 부유층 부모들은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백방의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10여 차례 스마트폰과 돈을 빼앗은 행위는 미성년자임을 고려해도 죄가 무겁다”며 “스마트폰 장물업자 등을 수사해 여죄를 밝혀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지난해 12월부터 올 4월 18일까지 42회에 걸쳐 1200만 원 상당을 갈취한 혐의(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 공갈)로 이들 35명 중 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1일 밝혔다. 7명은 소년부에 송치하고 19명은 훈방했다. 나머지 1명은 서울소년분류심사원에 있다. 이들 35명은 강남권 9개 중고교 소속이다.
하지만 22일 경찰서에서 본보 기자와 만난 자퇴생 C 군(17) 등 2명은 “우리 무리 중엔 판사 아들도 있다”며 “그냥 어울려 다녔을 뿐 경찰 말처럼 조직을 결성했던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들의 범행은 학교전담경찰관(SPO)이 관내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이던 중 역삼 패밀리 소속 한 명이 “서클에서 나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놔 드러났다. 피해 학생들은 경찰에 신고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이 피해 사실을 숨기는 현상은 청소년폭력예방재단(청예단)이 22일 발표한 ‘2012년 전국 학교폭력 실태’ 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청예단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전국 16개 시도 초등학교 4학년∼고등학교 2학년 총 5530명을 대상으로 온·오프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 학교폭력을 당한 뒤 주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학생이 33.8%로 3명 중 1명꼴이었다. 수사기관이나 학교에 도움을 요청한 학생 중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답한 학생이 41.8%나 됐다.
박훈상·곽도영·김수연 기자 tigermask@donga.com
서울 강남 부유층 자녀들 “늘 윽박지르는 부모님이 싫었다” 조직결성해 폭력-갈취
경찰 ‘역삼 패밀리’ 중고생 35명 검거… 판사-의사 등 자녀들이 돈뺏기 주도
‘역삼 패밀리’로 불리며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학생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중고교생 35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주동자 격인 학생 중에는 판사, 의사, 변호사, 공기업 간부 등 부유층 자녀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넉넉한 가정에서 자란 이 학생들은 부모의 간섭과 가정폭력이 싫어 거리로 나갔다고 했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에 사는 중학교 3학년 A 군(15)은 어릴 적부터 가출을 반복했다. 경제적으로 부족한 것이 없었지만 공부를 강요하고 윽박지르는 부모에 대한 반항심이 컸다고 한다. A 군 외에도 전문직 종사자, 50억 원대 자산가 자녀 등 부유층 자녀 5명이 ‘역삼 패밀리’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10명은 가출 청소년이었다. 훔친 주민등록증으로 찜질방이나 PC방에서 생활해온 아이들이 많았다. 나머지 20명은 역삼동 등 이 일대 재개발 지역에서 자란 아이들이었다.
A 군 등 부유층 자녀들은 부모가 주는 용돈으로 패밀리를 결속했다. A 군 등은 매일 부모에게서 5만, 6만 원씩 온라인으로 입금받아 다른 아이들의 찜질방이나 PC방 이용료를 대줬다. 부유층 부모들은 “애들이 돈이 없으면 나쁜 짓을 하다가 경찰서에 붙잡혀 갈지 몰라 돈을 부쳐줄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했다. A 군 등은 집에서 부모가 때리거나 윽박지르기만 할 뿐 자신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지 않아 비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역삼 패밀리’는 매일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하루 한 번 시간을 정해 아지트인 역삼동 놀이터, 공원 등지에 모여 담배를 피우며 범행 계획을 상의했다. 또래 학생들에게 스마트폰과 돈을 빼앗는 일은 부유층 아이들이 주로 했다. 여러 명이 떼로 몰려다니며 학교나 학원가 주변에서 학생들에게 겁을 주고 최신형 스마트폰과 현금을 빼앗았다. 고가의 스마트폰은 장물업자에게 팔아 유흥비로 썼다. 이들은 피해 학생의 학생증을 빼앗아 학교와 이름을 확인하고 신고하지 못하도록 협박했다.
‘역삼 패밀리’는 절도도 일삼았다. 절도는 주로 가출했거나 형편이 어려운 집 아이들이 주도했다.
▼ “잘사는 애들이 우리와 거리 떠도는게 이상했다” ▼
편의점에 몰려가 담배와 군것질거리를 훔치고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고선 돈을 내지 않고 도망쳤다. 경찰 관계자는 “부유층 자녀도 가난한 아이들과 어울려 훔친 빵을 먹기도 했다”며 “부모가 자녀에게 관심을 쏟지 않으면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해도 비행 청소년이 될 위험성이 크다”고 말했다.
‘패밀리’로 결속돼 있는 듯 보였지만 형편이 어려운 집 아이들은 부유층 아이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진술했다. 중학교 2학년 B 군은 타워팰리스 인근 다세대 연립주택에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편의점에서 훔친 빵과 우유로 식사를 자주 해결했다. B 군은 “잘사는 애들이 굳이 집을 나와 우리와 함께 거리를 전전하니 이상했다”며 “그래도 그 애들이 부모에게 받은 돈으로 우리 찜질방비를 대주니 그저 고마웠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부유층 자녀 등 3명은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검찰도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기각됐다. 부유층 부모들은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백방의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10여 차례 스마트폰과 돈을 빼앗은 행위는 미성년자임을 고려해도 죄가 무겁다”며 “스마트폰 장물업자 등을 수사해 여죄를 밝혀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지난해 12월부터 올 4월 18일까지 42회에 걸쳐 1200만 원 상당을 갈취한 혐의(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 공갈)로 이들 35명 중 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1일 밝혔다. 7명은 소년부에 송치하고 19명은 훈방했다. 나머지 1명은 서울소년분류심사원에 있다. 이들 35명은 강남권 9개 중고교 소속이다.
하지만 22일 경찰서에서 본보 기자와 만난 자퇴생 C 군(17) 등 2명은 “우리 무리 중엔 판사 아들도 있다”며 “그냥 어울려 다녔을 뿐 경찰 말처럼 조직을 결성했던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들의 범행은 학교전담경찰관(SPO)이 관내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이던 중 역삼 패밀리 소속 한 명이 “서클에서 나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놔 드러났다. 피해 학생들은 경찰에 신고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이 피해 사실을 숨기는 현상은 청소년폭력예방재단(청예단)이 22일 발표한 ‘2012년 전국 학교폭력 실태’ 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청예단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전국 16개 시도 초등학교 4학년∼고등학교 2학년 총 5530명을 대상으로 온·오프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 학교폭력을 당한 뒤 주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학생이 33.8%로 3명 중 1명꼴이었다. 수사기관이나 학교에 도움을 요청한 학생 중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답한 학생이 41.8%나 됐다.
박훈상·곽도영·김수연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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