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만에 남북 이산상봉…“죽기전 너희들 보려고 왔다”

등록 2014.02.21.
[4년만에 남북 이산상봉]

“죽더라도 금강산에서 죽을 거요….”

감기 증세로 쓰러져 링거를 매단 이동식 침대에 누워 있던 김섬경 씨(91)는 단호했다.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는 대한적십자사 관계자와 의료진에게 북한의 딸 춘순 씨(68)와 아들 진천 씨(65)를 반드시 만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20일 오전 그는 끝내 구급차를 타고 군사분계선을 넘었고 북한의 아들딸을 만나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최근 척추 골절 수술을 받은 홍신자 씨(84)도 구급차를 타고 금강산에 도착했고 여동생 영옥 씨(82)와 조카 한광룡 씨(44)를 만나 하염없이 울었다. 김 씨와 홍 씨 모두 구급차 안에서 ‘비공개 상봉’을 가졌다. 통일부 관계자는 “김 씨와 홍 씨는 건강상 우려가 너무 커 21일 오전 개별상봉을 마친 뒤 남측으로 조기 귀환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구급차를 이용한 김 씨와 홍 씨 외에 휠체어에 의지한 상봉자만 19명이었다. 한국 측 상봉자 82명 중 90세 이상이 25명(30.5%). 80대(42명)를 합치면 80세 이상은 81.7%에 달한다.

1972년 12월 납북된 오대양61호 선원 박양수 씨(55)가 한국에 사는 동생 양곤 씨(52)를, 1974년 2월 납북된 수원33호 선원 최영철 씨(61)가 형 선득 씨(71)를 만났다. 6·25전쟁 때 아버지가 납북된 최병관 씨(68) 등 2명도 북한의 이복동생들을 만났다.

대한적십자사 유중근 총재는 이날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만찬행사에서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 방안을 조속히 만들어야 한다. 시간이 없다. 시간이 지난 뒤 후회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 63년 만에 만난 아내, 처음 본 아들

남자는 목에 뭐가 걸린 듯 한동안 입을 떼지 못했다. 10초의 침묵. 여자는 그런 남자를 담담히 바라봤다. 두 사람이 손을 다시 맞잡을 때까지 63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왜….

김영환 씨(90)는 20일 오후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전쟁통에 헤어진 아내 김명옥 씨(87)를 만났다. 긴 세월 탓일까. 선뜻 말을 꺼내지 못했다. 비록 머리는 희어지고 얼굴은 주름졌지만 아내의 눈 속엔 60년 전 앳된 새색시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평남 강성군에 살았던 영환 씨는 1951년 1·4후퇴 때 가족과 함께 월남하던 중 폭격을 피하려다 아내와 아들과 생이별했다. 다섯 살이었던 아들 김대성 씨(65)가 60대 노인이 되도록 이들은 만날 수 없었다. 영환 씨 내외는 이날 유일한 부부 상봉자였다. 하지만 난청으로 대화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많이 늙었구나.”

90대 아버지가 생전 처음 본 60대 아들에게 건넨 첫마디. 강능환 씨(93)는 “한번 안아보자”며 아들 강정국 씨(63)를 힘주어 껴안았다. 1·4후퇴 때 강 씨는 홀로 남쪽으로 내려왔다. 그때만 하더라도 북에 두고 온 아내의 배 속에서 새 생명이 자라고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63년 만의 첫 만남이지만 그들이 ‘같은 핏줄’임을 금세 알 수 있었다. 굽은 등과 갸름한 얼굴. 아들은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 능환 씨는 “아들 모습을 보니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며 울먹였다. 정국 씨가 1971년 숨진 어머니 원순실 씨의 이름을 전하자 강 씨는 혼잣말로 “원순실, 원순실” 하고 되뇌었다.



○ 건강체크하며 맞아야 하는 ‘감격의 순간’

김용자 씨(68)는 북한에 사는 동생 김영실 씨(67)를 보자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건넸다. 영실 씨가 “엄마”라며 사진을 가슴에 꼭 안자, 용자 씨는 “지난해 9월에만 상봉이 이뤄졌어도 어머니를 볼 수 있었을 텐데…”라며 눈물을 훔쳤다. 1951년 피란길에 나선 어머니 서정숙 씨와 용자 씨가 먼저 배를 타고 대동강을 건넜다. 아버지와 동생 영실 씨가 타려던 다음 배가 인민군의 폭격으로 부서졌다. 서 씨는 지난해 상봉자로 선정됐을 때만 해도 북에 두고 온 딸을 본다는 기대감에 들떴다. 하지만 상봉은 연기됐고, 서 씨는 남북 간 실무협상이 진행되던 이달 5일 지병으로 숨졌다.

이날 상봉자 대부분이 80, 90대 고령인 탓에 대한적십자사는 의료진 20여 명을 상봉장에 배치해 혹시 발생할지도 모를 돌발사태에 대비했다. 박원숙 씨(82)가 전쟁 당시 행방불명됐던 여동생 박이숙 씨(79)를 만난 감격을 견디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자 현장에 있던 대한적십자사 간호사가 즉각 다가가 심장 박동을 체크하고 우황청심환 복용을 권했다.

궂은 날씨에 건강마저 쇠약해져 이동용 간이침대에 누운 상봉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을 반드시 만나겠다는 이들의 의지는 누구보다 강했다. 최고령자인 김성윤 씨(96·여)는 여동생 김석려 씨(81)를 만나기 위해 요양원에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이곳까지 왔다. 동생에게 줄 선물로 겨울옷도 미리 준비했다. 100세를 바라보는 성윤 씨는 사진을 보며 옛날 일을 모두 또렷이 기억해냈다.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4년만에 남북 이산상봉]

“죽더라도 금강산에서 죽을 거요….”

감기 증세로 쓰러져 링거를 매단 이동식 침대에 누워 있던 김섬경 씨(91)는 단호했다.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는 대한적십자사 관계자와 의료진에게 북한의 딸 춘순 씨(68)와 아들 진천 씨(65)를 반드시 만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20일 오전 그는 끝내 구급차를 타고 군사분계선을 넘었고 북한의 아들딸을 만나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최근 척추 골절 수술을 받은 홍신자 씨(84)도 구급차를 타고 금강산에 도착했고 여동생 영옥 씨(82)와 조카 한광룡 씨(44)를 만나 하염없이 울었다. 김 씨와 홍 씨 모두 구급차 안에서 ‘비공개 상봉’을 가졌다. 통일부 관계자는 “김 씨와 홍 씨는 건강상 우려가 너무 커 21일 오전 개별상봉을 마친 뒤 남측으로 조기 귀환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구급차를 이용한 김 씨와 홍 씨 외에 휠체어에 의지한 상봉자만 19명이었다. 한국 측 상봉자 82명 중 90세 이상이 25명(30.5%). 80대(42명)를 합치면 80세 이상은 81.7%에 달한다.

1972년 12월 납북된 오대양61호 선원 박양수 씨(55)가 한국에 사는 동생 양곤 씨(52)를, 1974년 2월 납북된 수원33호 선원 최영철 씨(61)가 형 선득 씨(71)를 만났다. 6·25전쟁 때 아버지가 납북된 최병관 씨(68) 등 2명도 북한의 이복동생들을 만났다.

대한적십자사 유중근 총재는 이날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만찬행사에서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 방안을 조속히 만들어야 한다. 시간이 없다. 시간이 지난 뒤 후회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 63년 만에 만난 아내, 처음 본 아들

남자는 목에 뭐가 걸린 듯 한동안 입을 떼지 못했다. 10초의 침묵. 여자는 그런 남자를 담담히 바라봤다. 두 사람이 손을 다시 맞잡을 때까지 63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왜….

김영환 씨(90)는 20일 오후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전쟁통에 헤어진 아내 김명옥 씨(87)를 만났다. 긴 세월 탓일까. 선뜻 말을 꺼내지 못했다. 비록 머리는 희어지고 얼굴은 주름졌지만 아내의 눈 속엔 60년 전 앳된 새색시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평남 강성군에 살았던 영환 씨는 1951년 1·4후퇴 때 가족과 함께 월남하던 중 폭격을 피하려다 아내와 아들과 생이별했다. 다섯 살이었던 아들 김대성 씨(65)가 60대 노인이 되도록 이들은 만날 수 없었다. 영환 씨 내외는 이날 유일한 부부 상봉자였다. 하지만 난청으로 대화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많이 늙었구나.”

90대 아버지가 생전 처음 본 60대 아들에게 건넨 첫마디. 강능환 씨(93)는 “한번 안아보자”며 아들 강정국 씨(63)를 힘주어 껴안았다. 1·4후퇴 때 강 씨는 홀로 남쪽으로 내려왔다. 그때만 하더라도 북에 두고 온 아내의 배 속에서 새 생명이 자라고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63년 만의 첫 만남이지만 그들이 ‘같은 핏줄’임을 금세 알 수 있었다. 굽은 등과 갸름한 얼굴. 아들은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 능환 씨는 “아들 모습을 보니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며 울먹였다. 정국 씨가 1971년 숨진 어머니 원순실 씨의 이름을 전하자 강 씨는 혼잣말로 “원순실, 원순실” 하고 되뇌었다.



○ 건강체크하며 맞아야 하는 ‘감격의 순간’

김용자 씨(68)는 북한에 사는 동생 김영실 씨(67)를 보자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건넸다. 영실 씨가 “엄마”라며 사진을 가슴에 꼭 안자, 용자 씨는 “지난해 9월에만 상봉이 이뤄졌어도 어머니를 볼 수 있었을 텐데…”라며 눈물을 훔쳤다. 1951년 피란길에 나선 어머니 서정숙 씨와 용자 씨가 먼저 배를 타고 대동강을 건넜다. 아버지와 동생 영실 씨가 타려던 다음 배가 인민군의 폭격으로 부서졌다. 서 씨는 지난해 상봉자로 선정됐을 때만 해도 북에 두고 온 딸을 본다는 기대감에 들떴다. 하지만 상봉은 연기됐고, 서 씨는 남북 간 실무협상이 진행되던 이달 5일 지병으로 숨졌다.

이날 상봉자 대부분이 80, 90대 고령인 탓에 대한적십자사는 의료진 20여 명을 상봉장에 배치해 혹시 발생할지도 모를 돌발사태에 대비했다. 박원숙 씨(82)가 전쟁 당시 행방불명됐던 여동생 박이숙 씨(79)를 만난 감격을 견디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자 현장에 있던 대한적십자사 간호사가 즉각 다가가 심장 박동을 체크하고 우황청심환 복용을 권했다.

궂은 날씨에 건강마저 쇠약해져 이동용 간이침대에 누운 상봉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을 반드시 만나겠다는 이들의 의지는 누구보다 강했다. 최고령자인 김성윤 씨(96·여)는 여동생 김석려 씨(81)를 만나기 위해 요양원에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이곳까지 왔다. 동생에게 줄 선물로 겨울옷도 미리 준비했다. 100세를 바라보는 성윤 씨는 사진을 보며 옛날 일을 모두 또렷이 기억해냈다.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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