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정 일장기 말소사건 80주년…“당시 부지기수로 지웠다”

등록 2016.08.24.
[손기정 일장기 말소 80주년]일제강점기 동아일보 지면 살펴보니

“동아일보가 일장기를 말소한 건 항다반(恒茶飯)으로 부지기수다.” ‘일장기 말소’를 주도한 이길용 전 동아일보 기자(1950년 납북)가 1947년 쓴 회고 글에는 과장이 없었다. 동아일보는 1936년 8월 25일자에서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으로 세계를 제패하고도 일장기를 단 채 시상대에 올라가야 했던 손기정 선생의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웠다. 일장기 말소 80주년을 맞아 사건이 벌어지기 2개월 전부터 발간된 동아일보 지면을 분석해 보니 일장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잉크를 떨어뜨린 듯 얼룩이 졌거나, 트리밍(trimming)을 통해 잘라낸 것으로 보이는 사진이 여럿 발견됐다.

 



▼ 일장기 나온 부분 잘라내고… 다른 사진으로 슬쩍 가려 ▼

“세상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의 일장기 말소 사건이 이길용의 짓으로 꾸며진 것만 알고 있다. (그러나) 사내의 사시라고 할까, 전통이라고 할까, 방침이 일장기를 되도록은 아니 실었다. 우리는 도무지 싣지 않을 속셈이었던 것이다.”

이길용 동아일보 기자가 ‘신문기자 수첩’(1948년 발간)에 실은 글 ‘세기적 승리와 민족적 의분의 충격-소위 일장기 말살 사건’의 일부다. 그는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 사건이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당시 동아일보 편집국에서 숱하게 있었던 일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이 글에서 “지방이건 서울이건 신문지에 게재해야 할 무슨 건물의 낙성식이나 무슨 공사의 준공식이나, 얼른 말하자면 지방면으로는 면소니 군청이니 또는 주재소니 등의 사진에는 반드시 일장기를 정면에 교차해 다는데, 이것을 지우고 실리기는 부지기수다”라고 설명했다.



1936년 일장기 말소 사건 80주년을 맞아 취재팀이 살펴본 당시 신문지면의 사진들은 이 기자의 회고와 다르지 않았다. 1936년 6월 25일자부터 일장기 말소 사건 전인 8월 24일자까지 두 달간의 동아일보 지면을 살펴봤다. 그 결과 일장기를 인위적으로 지웠거나 가린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이 여러 장 발견됐다.

우선 일장기가 나온 부분을 다른 사진으로 가리는 방법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 1936년 7월 29일자 조간 5면에는 강원 통천군 고저읍의 항구 준공식 사진이 실렸다. 이 항구가 총독부의 주요 공사였던 점과 준공식장 중앙의 장식 모양을 고려하면 당연히 일장기가 위쪽에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해당 부분을 묘향산 동룡굴 탐방단 사진이 덮고 있다. 이 밖에 7월 14일자 사리원시민대회 사진 등도 일장기가 있을 만한 상단이 같은 방식으로 잘려 있다.

8월 16일자를 보면 일장기가 다른 사진으로 가려진 게 우연이 아니라 의도적인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당일자 5면에는 선천보성여학교 음악단 안동현 공연 사진이 실렸는데 이 역시 일장기가 있을 만한 단상 상단 중앙을 위쪽 사진이 부자연스러운 형태로 덮고 있다. 위쪽 사진은 진남포 소년육상경기대회 입장식 사진인데 아래쪽의 빈 운동장 바닥을 이례적으로 살려 놓았다.

무언가로 일장기를 지운 듯한 사진도 발견됐다. 7월 29일자 항구 준공식 사진 아래의 유치원 개원식 사진에는 건물 정면에 일장기가 ‘X’자 모양으로 가로질러 걸려 있다. 적어도 오른쪽 깃발은 일장기의 동그라미 모양이 보일 법한데 윤곽이 뭉개져 보이지 않는다. 또 6월 30일자에 실린 행사 사진은 단상 상단 일장기가 걸려 있을 부분이 마치 잉크를 떨어뜨린 듯 검게 물들어 있다. 고의로 해당 부분을 보이지 않게 만든 것처럼 보인다.

분석 대상인 두 달 치 동아일보에서 일장기가 드러난 사진은 약 6장이었다. 하지만 원거리에서 촬영된 해수욕장, 행사장의 일장기로 작심하고 찾아봐야 식별할 수 있는 정도였다. 점에 가깝게 나온 것도 있었다. 베를린 올림픽에서 시상대에 오른 일본인 선수의 8월 23일자 사진은 비교적 잘 보였고, 한눈에 보이는 일장기는 8월 20일자 하단 광고에 그려진 것뿐이었다.

당시 동아일보는 조간 8면, 석간 4면(때로 8면)을 발행했고, 각 면별로 여러 장의 사진이 실렸다. 운동경기대회, 음악회, 재봉 자수 강습회, 학교 창립 기념식, 강좌, 시민대회 등을 비롯해 각종 행사 사진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는 상당수 행사 자리에 일장기가 걸려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처럼 일장기 사진이 적게 나타난 것은 사진 촬영 시부터 아예 일장기를 프레임 안에 넣지 않았거나, 트리밍해 보이지 않도록 처리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원 사진의 화질, 인쇄 시 동판의 상태를 비롯해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어 일장기가 보이지 않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며 “그러나 이길용 기자의 회고와 현진건 동아일보 사회부장을 비롯한 당시 편집국 인사들의 면면과 분위기로 보아 가능하면 일장기를 지면에서 보이지 않게 했다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손기정 일장기 말소 80주년]일제강점기 동아일보 지면 살펴보니

“동아일보가 일장기를 말소한 건 항다반(恒茶飯)으로 부지기수다.” ‘일장기 말소’를 주도한 이길용 전 동아일보 기자(1950년 납북)가 1947년 쓴 회고 글에는 과장이 없었다. 동아일보는 1936년 8월 25일자에서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으로 세계를 제패하고도 일장기를 단 채 시상대에 올라가야 했던 손기정 선생의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웠다. 일장기 말소 80주년을 맞아 사건이 벌어지기 2개월 전부터 발간된 동아일보 지면을 분석해 보니 일장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잉크를 떨어뜨린 듯 얼룩이 졌거나, 트리밍(trimming)을 통해 잘라낸 것으로 보이는 사진이 여럿 발견됐다.

 



▼ 일장기 나온 부분 잘라내고… 다른 사진으로 슬쩍 가려 ▼

“세상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의 일장기 말소 사건이 이길용의 짓으로 꾸며진 것만 알고 있다. (그러나) 사내의 사시라고 할까, 전통이라고 할까, 방침이 일장기를 되도록은 아니 실었다. 우리는 도무지 싣지 않을 속셈이었던 것이다.”

이길용 동아일보 기자가 ‘신문기자 수첩’(1948년 발간)에 실은 글 ‘세기적 승리와 민족적 의분의 충격-소위 일장기 말살 사건’의 일부다. 그는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 사건이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당시 동아일보 편집국에서 숱하게 있었던 일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이 글에서 “지방이건 서울이건 신문지에 게재해야 할 무슨 건물의 낙성식이나 무슨 공사의 준공식이나, 얼른 말하자면 지방면으로는 면소니 군청이니 또는 주재소니 등의 사진에는 반드시 일장기를 정면에 교차해 다는데, 이것을 지우고 실리기는 부지기수다”라고 설명했다.



1936년 일장기 말소 사건 80주년을 맞아 취재팀이 살펴본 당시 신문지면의 사진들은 이 기자의 회고와 다르지 않았다. 1936년 6월 25일자부터 일장기 말소 사건 전인 8월 24일자까지 두 달간의 동아일보 지면을 살펴봤다. 그 결과 일장기를 인위적으로 지웠거나 가린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이 여러 장 발견됐다.

우선 일장기가 나온 부분을 다른 사진으로 가리는 방법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 1936년 7월 29일자 조간 5면에는 강원 통천군 고저읍의 항구 준공식 사진이 실렸다. 이 항구가 총독부의 주요 공사였던 점과 준공식장 중앙의 장식 모양을 고려하면 당연히 일장기가 위쪽에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해당 부분을 묘향산 동룡굴 탐방단 사진이 덮고 있다. 이 밖에 7월 14일자 사리원시민대회 사진 등도 일장기가 있을 만한 상단이 같은 방식으로 잘려 있다.

8월 16일자를 보면 일장기가 다른 사진으로 가려진 게 우연이 아니라 의도적인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당일자 5면에는 선천보성여학교 음악단 안동현 공연 사진이 실렸는데 이 역시 일장기가 있을 만한 단상 상단 중앙을 위쪽 사진이 부자연스러운 형태로 덮고 있다. 위쪽 사진은 진남포 소년육상경기대회 입장식 사진인데 아래쪽의 빈 운동장 바닥을 이례적으로 살려 놓았다.

무언가로 일장기를 지운 듯한 사진도 발견됐다. 7월 29일자 항구 준공식 사진 아래의 유치원 개원식 사진에는 건물 정면에 일장기가 ‘X’자 모양으로 가로질러 걸려 있다. 적어도 오른쪽 깃발은 일장기의 동그라미 모양이 보일 법한데 윤곽이 뭉개져 보이지 않는다. 또 6월 30일자에 실린 행사 사진은 단상 상단 일장기가 걸려 있을 부분이 마치 잉크를 떨어뜨린 듯 검게 물들어 있다. 고의로 해당 부분을 보이지 않게 만든 것처럼 보인다.

분석 대상인 두 달 치 동아일보에서 일장기가 드러난 사진은 약 6장이었다. 하지만 원거리에서 촬영된 해수욕장, 행사장의 일장기로 작심하고 찾아봐야 식별할 수 있는 정도였다. 점에 가깝게 나온 것도 있었다. 베를린 올림픽에서 시상대에 오른 일본인 선수의 8월 23일자 사진은 비교적 잘 보였고, 한눈에 보이는 일장기는 8월 20일자 하단 광고에 그려진 것뿐이었다.

당시 동아일보는 조간 8면, 석간 4면(때로 8면)을 발행했고, 각 면별로 여러 장의 사진이 실렸다. 운동경기대회, 음악회, 재봉 자수 강습회, 학교 창립 기념식, 강좌, 시민대회 등을 비롯해 각종 행사 사진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는 상당수 행사 자리에 일장기가 걸려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처럼 일장기 사진이 적게 나타난 것은 사진 촬영 시부터 아예 일장기를 프레임 안에 넣지 않았거나, 트리밍해 보이지 않도록 처리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원 사진의 화질, 인쇄 시 동판의 상태를 비롯해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어 일장기가 보이지 않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며 “그러나 이길용 기자의 회고와 현진건 동아일보 사회부장을 비롯한 당시 편집국 인사들의 면면과 분위기로 보아 가능하면 일장기를 지면에서 보이지 않게 했다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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