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도 잘못있다”…n번방 피해자 두번 울리는 2차 가해

  • 뉴시스
  • 입력 2020년 3월 28일 12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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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폰서 알바, SNS 일탈계 왜 했냐" 비난 나와
'반일종족주의' 저자 "내 딸이었다면 교육 반성"
전문가들 "2차 가해의 전형…피해자 위축시켜"
2차 가해자 처벌 법적 근거 미비…법 제정해야

n번방, 박사방 등 텔레그램 내 성착취 영상물 공유방의 피해자들이 SNS에서 일탈 계정을 운영하고 조건만남 아르바이트에 지원했다는 등 이유로 피해자들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주장이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전형적인 2차 가해”라고 지적했다.

28일 온라인 커뮤니티 및 포털 사이트 댓글 등에 따르면 n번방·박사방 사건 피해자들을 향해 “스폰서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한 것도 잘못이다”, “어차피 보여주기 위해서 일탈 계정(몸 사진 등을 올리는 계정)을 한 것 아니냐”는 등의 의견이 나온다.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조건만남 아르바이트 등을 빌미로 피해자들을 꾀어 냈다는 게 알려지면서 이런 의견이 나오는 것이다. n번방 운영자 ‘갓갓’도 SNS에서 일탈계정을 운영하는 여성들에게 접근해 피해자를 양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명인들도 이런 의견을 내고 있다. 책 ‘반일종족주의’의 저자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최근 페이스북에 “내게 딸이 있다면 n번방 근처에도 가지 않도록 평소에 가르치겠다”며 “내 딸이 지금 그 피해자라면, 내 딸의 행동과 내 교육을 반성하겠다”고 썼다. 이어 “n번방 피해자들에게도 같은 규칙이 적용돼야 한다”고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의견이 나오는 것을 두고 “피해자들에게 재갈을 물리는 전형적인 2차 가해”라고 지적했다.

김수희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책부장은 “피해자들은, 특히 미성년자들은 온라인에서 이런 말이 확산하면 더더욱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가해자를 엄중히 처벌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자신이 원인이라고 생각해 신고할 수 없고, 자신은 구제받을 수 없다는 생각을 심하게 하게 된다”고 했다.

이어 “2차 가해는 피해자와 가족, 지인을 더욱 숨게 만들고 피해 구제를 못 받게 하고 가해자도 잡아 들이지 못하게 하는 심각한 것”이라며 “한국에서 지속됐던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에 대한 비난의 연장선”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성명을 내고 “내 딸이 n번방 같은 곳에는 못가도록 가르칠 것이다, 가해자 처벌과는 별개로 ‘음란한’ 피해자에게도 처벌이 필요하다며 ‘진짜 성폭력 피해자’와 ‘가짜 성폭력 피해자’를 나누며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태도는 n번방과 큰 차이가 없다”고 규탄했다.
또 불특정 다수의 여성들이 모인 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 시위팀은 “음란물 사이트에 n번방 관련 검색어가 도배됐고, 사건 피해자의 신상 공유를 모의하는 게시글은 물론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게시글도 적지 않게 보인다”며 “명백히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에 해당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에 2차 가해자 역시 처벌할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팀은 “수많은 과거 성범죄에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문제가 제기됐음에도 이를 다룰 마땅한 법적 체계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는 성범죄와 절대 분리할 수 없는 문제이며 성범죄의 연속선상으로 봐야 한다”며 “성범죄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를 처벌할 수 있는 법률 제정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난 24일부터 ‘n번방 관련 2차 가해자 엄중 처벌 및 2차 가해 방지법 개정’을 촉구하는 청원에 게시 돼 진행 중인 상태다.

청원인은 “엄중한 처벌을 통해 2차 가해를 막을 수 있다면 피해자들이 더이상 상처 속에 내몰리지 않을 수 있지 않겠냐”며 “더 많은 피해자들의 보호를 위해 2차 가해에 대한 지속적인 처벌과 감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법률안을 강화 개정해달라”고 요구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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