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에 니퍼트였다면 LG엔 켈리…KBO에 최적화된 外人투수들[이헌재의 B급 야구]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2일 0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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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머리 휘날리며 포효하는 LG 트윈스 외국인 에이스 케이시 켈리. 스포츠동아 DB
긴 머리 휘날리며 포효하는 LG 트윈스 외국인 에이스 케이시 켈리. 스포츠동아 DB
A라는 선발투수는 매 경기 5이닝 3~4실점을 합니다. 선발투수 B는 한 경기에선 9이닝 완투를 했다가 다음 경기에선 3이닝을 못 버티곤 합니다.

사령탑은 어떤 투수를 선호할까요. 당연히 전자입니다. 다승, 승률, 평균자책, 탈삼진 등 선발 투수를 평가하는 다양한 지표들이 있지만 감독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 중 하나는 꾸준함입니다. 한마디로 계산이 서기 때문입니다. 이 투수가 나가면 최소 몇 이닝을 버텨준다는 믿음이 있으면 그에 맞게 경기를 운영 할 수 있습니다. 후자처럼 롤러코스터를 타는 투수를 데리고는 당일 경기는 물론이고 한 시즌 운영을 해나가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LG 트윈스 외국인 투수 케이시 켈리(33)는 모든 감독들이 가장 좋아할만한 투수라 할 수 있습니다(류지현 감독님 축하합니다!). 일단 켈리가 나가면 최소 5이닝 이상을 던져준다는 계산이 서고, 거기에 맞춰 경기를 운영할 수 있으니까요.

KBO리그 4년째를 맞는 켈리는 역대 한국 프로야구 최다인 71경기 연속 5이닝 이상 투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5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강판한 게 2020년 5월 10일 NC 다이노스전(2이닝 6실점)이었습니다. 다음 경기인 5월 16일 키움 히어로즈전부터 올해 6월 28일 NC전까지 2년 넘도록 선발 투수의 기본 요건이랄 수 있는 5이닝 이상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이는 KIA 타이거즈 왼손 에이스 양현종이 갖고 있던 종전 기록 47경기를 훌쩍 뛰어넘는 대기록입니다.

그냥 버티기만 한 게 아닙니다. 켈리는 6월 28일 NC전에서 상대 에이스 구창모와 맞붙어 6이닝 2안타 2볼넷 6삼진 무실점 호투로 팀의 5-0 승리를 이끌며 올 시즌 가장 먼저 10승(1패) 고지에 올랐습니다. 5월 11일 한화 이글스전부터 7연승 행진을 이어갔고, 같은 기간 평균자책점은 1.72밖에 되지 않습니다. 6월 30일 현재 평균자책점은 2.52로 이 부문 7위에 올라 있습니다. 올해 팀의 에이스 역할을 해 주는 켈리의 어깨를 발판 삼아 LG는 3위(43승 1무 29패)의 성적으로 6월을 마무리했습니다. 144경기 정규시즌의 반환점을 깔끔하게 돈 것이지요. 선두 SSG 랜더스와의 승차도 크지 않아 좀더 큰 꿈을 노려볼 수도 있습니다.

LG 케이시 켈리가 6월 28일 잠실 NC전에서 6이닝 2안타 6삼진 무실점 호투로 올 시즌 가장 먼저 10승 고지를 밟았다. 주현희 스포츠동아 기자 teth1147@donga.com
LG 케이시 켈리가 6월 28일 잠실 NC전에서 6이닝 2안타 6삼진 무실점 호투로 올 시즌 가장 먼저 10승 고지를 밟았다. 주현희 스포츠동아 기자 teth1147@donga.com
그 동안 외국인 투수 덕을 크게 보지 못했던 LG에 켈리는 구세주와 같은 존재입니다. 2019년 LG의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이후 매 년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두며 벌써 52승(28패)을 올렸습니다. 역대 팀 외국인 투수 최다승입니다.

이웃집 두산 베어스에도 비슷한 투수가 있었습니다. 두산 팬들로부터 ‘니느님’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더스틴 니퍼트(은퇴)입니다. 니퍼트는 두산 구단 역사상 가장 오래 베어스 유니폼을 입었던 투수입니다. 2011년부터 2017년까지 무려 7년을 뛰었지요. 두산에서 거둔 승수만 94승이나 됩니다. 선수 생활 마지막이었던 2018년 KT 위즈에서 거둔 8승을 더하면 KBO리그에서 102승을 거뒀습니다. 이는 역대 외국인 투수 최다승 기록입니다. 2010년대 이후 이른바 ‘왕조’를 구축했던 두산의 배경에는 1선발로 제 몫을 다해준 니퍼트가 있었습니다.

니퍼트와 켈리가 최고의 외국인 투수인 데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KBO리그에 특화된 투수들이라는 것입니다. 두 선수 모두 뛰어난 투수인 것은 분명합니다. 니퍼트 같은 경우엔 2016시즌에 22승을 거두며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로도 선정됐습니다. 하지만 한국을 벗어나 조금 더 큰 리그에 갈 정도의 구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계속 한국 무대에서 뛸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LG 김성진 통역업무 담당이 켈리의 32번째 생일한 케이크. 사진제공 김성진 LG 통역업무 담당
LG 김성진 통역업무 담당이 켈리의 32번째 생일한 케이크. 사진제공 김성진 LG 통역업무 담당
켈리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객관적으로 켈리의 구위가 리그를 씹어 먹을 정도로 압도적인 것은 아닙니다. 최고 150km가 넘는 속구를 던지지만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140km대 중후반입니다. 메이저리그의 기준으로는 느린 편입니다.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 변화구도 수준급이지만 ‘마구’라고 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닙니다. 투수 출신 한 해설위원은 “켈리의 변화구 중 가장 좋은 건 커브다. 오른손 타자, 왼손 타자를 가리지 않고 커브를 잘 구사한다. 그런데 국내 타자들에게 잘 통하는 켈리의 커브가 과연 메이저리그나 일본프로야구에서 먹힐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켈리는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1순위 지명 선수입니다. 보스턴에서 1순위 지명을 받았고 처음 몇 년간 최고 유망주로 평가받았습니다. 하지만 2013년 토미존 서저리 이후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여러 차례 트레이드로 팀을 옮기면서 메이저리그 통산 성적은 26경기 등판 2승 11패 평균자책점 5.46에 불과합니다. 메이저리그에서 마지막으로 뛴 것은 2018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던진 7경기였습니다.

한국에 오는 외국인 선수 중에는 KBO리그의 성적을 바탕으로 다시 메이저리그나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하는 선수가 많습니다. 최근에만 해도 조시 린드블럼(두산→피츠버그), 라울 알칸타라(두산→한신 타이거즈) 등이 다시 해외에 나갔지요.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에서 뛰었던 또 다른 켈리(메릴 켈리)는 메이저리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 선발 투수로 뛰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덧 30대 중반의 나이로 접어든 LG 켈리가 다시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뛸 수 있는 곳은 결국 LG밖에 없는 것이지요. 니퍼트가 두산에서 최장수 외국인 선수로 뛰면서 최고의 외인 투수가 되었듯, 켈리 역시 LG의 최장수 외인으로 뛰면서 최고의 자리를 노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LG로서는 무척 다행스러운 일 아닐까요.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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