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서 점점이…섬들이 따라온다 ‘통영 미륵산 웰빙 트레킹’

등록 2007.02.09.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피는 숲에 저녁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 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싶었다. …한산 통제영에서 장계를 쓰던 임진년의 여름밤은 달이 밝았다. 나는 내 무인된 운명을 깊이 시름하였다. 한 자루의 칼과 더불어 나는 포위되어 있었고 세상의 덫에 걸려 있었지만, 이 세상의 칼로 이 세상의 보이지 않는 덫을 칠 수는 없었다.(김훈 ‘칼의 노래’에서)》

통영 미륵산 트레킹

통영 미륵섬에 꽃이 피었다. 붉디붉은 동백꽃이 피었다. 봄은 도둑처럼 왔다. 시린 바다를 타고 미끄러져 들어왔다. 서호시장엔 도다리 쑥국에 미역, 파래무침, 쪽파무침…. 봄이 한 상 가득하다. 돌미역으로 싸먹는 회에선 갯냄새가 물씬 묻어난다.

통영 앞바다엔 150여 개의 섬이 떠 있다. 누군가 물수제비를 뜬 듯 바다에 점점이 흩뿌려져 있다.

미륵섬은 ‘섬 중의 섬’이다. 육지와 통영대교, 충무교, 해저터널로 연결돼 있어 ‘육지와 다름없는 섬’이다. 이 섬은 그 몸통 자체가 미륵산으로 이뤄져 있다.

꼭대기(461m)에 오르면 수많은 섬이 한눈에 잡힌다. 수평선 언저리에도 작은 섬들이 아슴아슴 걸쳐 있다.

저 멀리 일본의 쓰시마 섬이 떠 있고 가까이엔 한산섬이 마주하고 있다. 섬 밖으로는 사량도∼추도∼두미도∼욕지도∼연화도∼소매물도∼매물도∼거제도가 병풍을 두르듯, 빙 둘러싸고 있다. 임진왜란 때 조선 수군의 봉수대도 미륵산 정상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낮엔 연기로, 밤엔 횃불로 왜군의 동정을 전했다. 때론 연을 날려 급보를 알렸다. 이순신 장군은 한산섬 통제영에 머물렀다. 봉수대를 통해 적의 동정을 손금 보듯 알았다.

○ 동백꽃도 붉고 하늘도 붉고 바다도 붉다

미륵산 오르는 길은 ‘소걸음’으로 걷는 게 좋다. 느릿느릿 올라도 1시간이면 정상에 닿는다. 가령 용화사를 출발해 ‘관음사∼도솔암∼미륵재∼정상∼미래사∼띠밭등’을 거쳐 다시 용화사로 돌아오는 코스는 2시간 정도면 충분하다(동영상 dongA.com).

서울에서 온 동갑내기 부부 박태식 마경희(60) 씨는 “산행이 아기자기하고 참 재미있다. 정상에서 보는 바다가 너무 아름답다”고 말한다. 고은정(32) 씨는 “섬과 바다, 하늘의 어우러짐이 환상적”이라며 웃는다.

윤화숙(51) 씨는 “트레킹 코스로서 안성맞춤이다. 천천히 산책하듯 가다 보면 문득 꿈같은 남해 바다가 나타난다”고 말한다. 그렇다. 작은 산이지만 있을 것은 다 있다. 꿈틀꿈틀 용틀임하는 늙은 소나무들,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 제법 경사가 심한 깔딱 고개도 있다. 산 아래 쪽빛 바다는 사라졌다 나타나고, 나타났다 다시 사라진다. 절집들은 소박하고 아담하다. 도솔암 대웅전 뒤란의 대숲 바람소리는 “쏴아, 쏴아” 파도소리를 닮았다. 법당 앞 동백꽃은 벌써 속절없이 지고 있다.

산양일주도로는 미륵섬 허리를 한 바퀴 도는 동백꽃길(약 16km)이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 중 하나. 걸어서도 4, 5시간이면 충분하다.

택시나 버스를 이용해 걷고 싶은 만큼만 걸어도 된다. 갯바람이 끊임없이 바다 냄새를 실어 온다. 바닷가 마을들은 움푹 들어간 포구에 숨어 있다.

달아공원에서 보는 봄 바다는 산꼭대기에서 보는 것과 또 다르다. 아기 섬과 어른 섬이 옹기종기 모여 공기놀이를 하고 있다. 달아공원에 가면 뭐니 뭐니 해도 황홀한 일몰을 봐야 한다. 붉은 해가 한순간 바다 속으로 풍덩! 사라진다. 하늘도 붉고, 바다도 붉고, 사람도 붉고, 동백꽃도 붉다.

효봉(1888∼1966) 스님의 부도탑이 있는 미래사도 가볼 만하다. 효봉 스님은 판사 출신. 한 피고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뒤 밤새 고뇌하다 법복을 벗어던지고 출가했다. 만년에 좌선하던 토굴도 남아 있다. ‘내가 말한 모든 법/그거 다 군더더기/오늘 일을 묻는가/달이 일천강에 비치리.’ 스님의 열반송이다.

○ 섬과 섬 사이에 쪽빛바다가 누워 있다

미륵은 미래에 올 부처다. 그는 용화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뒤 고통받는 이 땅의 모든 중생을 구제한다고 한다. 그는 지금 도솔천에 머무르고 있다. 미륵섬은 바로 미륵의 땅이다. 용화사가 있고 미래사, 도솔암이 있다. 미륵산 정상은 3000년 만에 핀다는 꽃 ‘우담바라’인 셈이다. 점점이 떠 있는 섬은 사바세계의 중생들, 쪽빛 바다는 푸른 연잎이다.

섬과 섬 사이엔 쪽빛 바다가 누워 있다. 배들이 그 누운 바다를 가르며 흰 물살을 뿜는다. 하늘은 푸른빛으로 아련하다. 새들은 그 아득한 허공을 밟으며 날아오른다. 하얀 건물들은 바닷물에 드리워져 어른거린다.

시락국… 졸복국… 통영의 맛 느껴보세요

도시는 선(線)이다. 길이다. 길을 따라 이곳저곳 어슬렁거리다 보면 도시의 얼굴이 보인다. 통영의 새벽 서호시장은 갓 잡은 생선처럼 팔딱팔딱 뛴다.

도다리, 장갱이(바다메기), 생멸치, 바다장어, 볼락, 털게, 갑오징어…. 생선이 지천이다. 술꾼들 속 푸는 데도 딱이다. 시장통에 있는 시락국, 졸복국집을 찾으면 된다.

시락국은 바다장어 머리를 갈아서 넣고 밤새 끓인 시래기된장국이다. 보통 오전 3시 반에 문을 연다.

졸복국은 통영 근처에서 많이 잡히는 졸복으로 끓인 복국. 콩나물을 넣고 맑게 끓여 맛이 담백하고 시원하다.

오후쯤이라면 슬슬 걸어서 중앙시장도 가볼 만하다. 횟감을 싸게 산 뒤 부근의 횟집에서 자릿세와 양념값을 내고 먹을 수 있다. 요즘에는 ‘도다리쑥국’이 으뜸이다. 살이 통통 오른 도다리에 향긋한 쑥을 넣어 끓인 국이다. 고춧가루를 넣지 않아도 비린내가 없고 시원하다.

통영은 예술인의 고장. 시인 유치환 김상옥 김춘수, 소설가 박경리, 작곡가 윤이상, 극작가 유치진, 화가 전혁림 씨 등을 낳았다. 청마문학관, 전혁림미술관을 들러보면 ‘대꼬챙이’ 같은 통영 사람들의 얼을 느낄 수 있다.

3일 회원 40명과 함께 통영 미륵산 트레킹을 마친 골드윈코리아의 양만석(40) 팀장은 “섬, 산, 바다, 하늘이 있고 꽃과 사람 그리고 맛있는 음식이 있다. 여기에 격조 높은 문화까지 맛볼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말한다.

통영의 길은 둥글다. 해안선을 따라 올록볼록하다. 바다를 향해 얼굴을 내밀었다가, 금세 꼬리를 감춘다. 통영은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졸복국처럼 맑고 담백하다. 도다리쑥국처럼 상큼한 쑥냄새가 난다. 늘 향긋한 바다냄새가 난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피는 숲에 저녁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 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싶었다. …한산 통제영에서 장계를 쓰던 임진년의 여름밤은 달이 밝았다. 나는 내 무인된 운명을 깊이 시름하였다. 한 자루의 칼과 더불어 나는 포위되어 있었고 세상의 덫에 걸려 있었지만, 이 세상의 칼로 이 세상의 보이지 않는 덫을 칠 수는 없었다.(김훈 ‘칼의 노래’에서)》

통영 미륵산 트레킹

통영 미륵섬에 꽃이 피었다. 붉디붉은 동백꽃이 피었다. 봄은 도둑처럼 왔다. 시린 바다를 타고 미끄러져 들어왔다. 서호시장엔 도다리 쑥국에 미역, 파래무침, 쪽파무침…. 봄이 한 상 가득하다. 돌미역으로 싸먹는 회에선 갯냄새가 물씬 묻어난다.

통영 앞바다엔 150여 개의 섬이 떠 있다. 누군가 물수제비를 뜬 듯 바다에 점점이 흩뿌려져 있다.

미륵섬은 ‘섬 중의 섬’이다. 육지와 통영대교, 충무교, 해저터널로 연결돼 있어 ‘육지와 다름없는 섬’이다. 이 섬은 그 몸통 자체가 미륵산으로 이뤄져 있다.

꼭대기(461m)에 오르면 수많은 섬이 한눈에 잡힌다. 수평선 언저리에도 작은 섬들이 아슴아슴 걸쳐 있다.

저 멀리 일본의 쓰시마 섬이 떠 있고 가까이엔 한산섬이 마주하고 있다. 섬 밖으로는 사량도∼추도∼두미도∼욕지도∼연화도∼소매물도∼매물도∼거제도가 병풍을 두르듯, 빙 둘러싸고 있다. 임진왜란 때 조선 수군의 봉수대도 미륵산 정상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낮엔 연기로, 밤엔 횃불로 왜군의 동정을 전했다. 때론 연을 날려 급보를 알렸다. 이순신 장군은 한산섬 통제영에 머물렀다. 봉수대를 통해 적의 동정을 손금 보듯 알았다.

○ 동백꽃도 붉고 하늘도 붉고 바다도 붉다

미륵산 오르는 길은 ‘소걸음’으로 걷는 게 좋다. 느릿느릿 올라도 1시간이면 정상에 닿는다. 가령 용화사를 출발해 ‘관음사∼도솔암∼미륵재∼정상∼미래사∼띠밭등’을 거쳐 다시 용화사로 돌아오는 코스는 2시간 정도면 충분하다(동영상 dongA.com).

서울에서 온 동갑내기 부부 박태식 마경희(60) 씨는 “산행이 아기자기하고 참 재미있다. 정상에서 보는 바다가 너무 아름답다”고 말한다. 고은정(32) 씨는 “섬과 바다, 하늘의 어우러짐이 환상적”이라며 웃는다.

윤화숙(51) 씨는 “트레킹 코스로서 안성맞춤이다. 천천히 산책하듯 가다 보면 문득 꿈같은 남해 바다가 나타난다”고 말한다. 그렇다. 작은 산이지만 있을 것은 다 있다. 꿈틀꿈틀 용틀임하는 늙은 소나무들,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 제법 경사가 심한 깔딱 고개도 있다. 산 아래 쪽빛 바다는 사라졌다 나타나고, 나타났다 다시 사라진다. 절집들은 소박하고 아담하다. 도솔암 대웅전 뒤란의 대숲 바람소리는 “쏴아, 쏴아” 파도소리를 닮았다. 법당 앞 동백꽃은 벌써 속절없이 지고 있다.

산양일주도로는 미륵섬 허리를 한 바퀴 도는 동백꽃길(약 16km)이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 중 하나. 걸어서도 4, 5시간이면 충분하다.

택시나 버스를 이용해 걷고 싶은 만큼만 걸어도 된다. 갯바람이 끊임없이 바다 냄새를 실어 온다. 바닷가 마을들은 움푹 들어간 포구에 숨어 있다.

달아공원에서 보는 봄 바다는 산꼭대기에서 보는 것과 또 다르다. 아기 섬과 어른 섬이 옹기종기 모여 공기놀이를 하고 있다. 달아공원에 가면 뭐니 뭐니 해도 황홀한 일몰을 봐야 한다. 붉은 해가 한순간 바다 속으로 풍덩! 사라진다. 하늘도 붉고, 바다도 붉고, 사람도 붉고, 동백꽃도 붉다.

효봉(1888∼1966) 스님의 부도탑이 있는 미래사도 가볼 만하다. 효봉 스님은 판사 출신. 한 피고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뒤 밤새 고뇌하다 법복을 벗어던지고 출가했다. 만년에 좌선하던 토굴도 남아 있다. ‘내가 말한 모든 법/그거 다 군더더기/오늘 일을 묻는가/달이 일천강에 비치리.’ 스님의 열반송이다.

○ 섬과 섬 사이에 쪽빛바다가 누워 있다

미륵은 미래에 올 부처다. 그는 용화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뒤 고통받는 이 땅의 모든 중생을 구제한다고 한다. 그는 지금 도솔천에 머무르고 있다. 미륵섬은 바로 미륵의 땅이다. 용화사가 있고 미래사, 도솔암이 있다. 미륵산 정상은 3000년 만에 핀다는 꽃 ‘우담바라’인 셈이다. 점점이 떠 있는 섬은 사바세계의 중생들, 쪽빛 바다는 푸른 연잎이다.

섬과 섬 사이엔 쪽빛 바다가 누워 있다. 배들이 그 누운 바다를 가르며 흰 물살을 뿜는다. 하늘은 푸른빛으로 아련하다. 새들은 그 아득한 허공을 밟으며 날아오른다. 하얀 건물들은 바닷물에 드리워져 어른거린다.

시락국… 졸복국… 통영의 맛 느껴보세요

도시는 선(線)이다. 길이다. 길을 따라 이곳저곳 어슬렁거리다 보면 도시의 얼굴이 보인다. 통영의 새벽 서호시장은 갓 잡은 생선처럼 팔딱팔딱 뛴다.

도다리, 장갱이(바다메기), 생멸치, 바다장어, 볼락, 털게, 갑오징어…. 생선이 지천이다. 술꾼들 속 푸는 데도 딱이다. 시장통에 있는 시락국, 졸복국집을 찾으면 된다.

시락국은 바다장어 머리를 갈아서 넣고 밤새 끓인 시래기된장국이다. 보통 오전 3시 반에 문을 연다.

졸복국은 통영 근처에서 많이 잡히는 졸복으로 끓인 복국. 콩나물을 넣고 맑게 끓여 맛이 담백하고 시원하다.

오후쯤이라면 슬슬 걸어서 중앙시장도 가볼 만하다. 횟감을 싸게 산 뒤 부근의 횟집에서 자릿세와 양념값을 내고 먹을 수 있다. 요즘에는 ‘도다리쑥국’이 으뜸이다. 살이 통통 오른 도다리에 향긋한 쑥을 넣어 끓인 국이다. 고춧가루를 넣지 않아도 비린내가 없고 시원하다.

통영은 예술인의 고장. 시인 유치환 김상옥 김춘수, 소설가 박경리, 작곡가 윤이상, 극작가 유치진, 화가 전혁림 씨 등을 낳았다. 청마문학관, 전혁림미술관을 들러보면 ‘대꼬챙이’ 같은 통영 사람들의 얼을 느낄 수 있다.

3일 회원 40명과 함께 통영 미륵산 트레킹을 마친 골드윈코리아의 양만석(40) 팀장은 “섬, 산, 바다, 하늘이 있고 꽃과 사람 그리고 맛있는 음식이 있다. 여기에 격조 높은 문화까지 맛볼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말한다.

통영의 길은 둥글다. 해안선을 따라 올록볼록하다. 바다를 향해 얼굴을 내밀었다가, 금세 꼬리를 감춘다. 통영은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졸복국처럼 맑고 담백하다. 도다리쑥국처럼 상큼한 쑥냄새가 난다. 늘 향긋한 바다냄새가 난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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