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종교지도자들의 평양 만남

등록 2007.05.10.
《“에스더는 민족의 운명이 경각에 달렸을 때 목숨을 내놓고 나섰습니다. 하늘이 내린 우리 민족은 절대 나눠져서는 안 됩니다. 민족 분열과 핵전쟁의 역사적 위기에서 우리 민족이 한데 뭉치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6일 평양 칠골동에 위치한 칠골교회. 강대상에 오른 황민우 담임목사의 설교에 예배당을 채운 신도들이 ‘아멘’ 하고 합창했다. 150여 석의 좌석은 발 디딜 틈 없이 빽빽이 들어찼다.》

○현지 외국인들도 참석 합동예배 화기애애

예배 참석자들은 다양했다. 남측에서 온 성공회 박경조 주교 등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대표회장 최근덕 성균관장) 개신교 측 대표단, 독일에서 관광차 온 기독교인 32명, 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 등 방북단, 미국 시애틀에서 방문한 재미동포 신자 40여 명, 평양 주재 인도네시아 대사 부부, 북측 신도 50여 명 등.

예배의 형식은 남측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성가대도 있고, 찬송가책에는 ‘십자가 군병들아’ ‘진실하신 친구’ 등 대부분 귀에 익은 노래들이 눈에 띄었다. 독일 관광객들이 찬송을 같이하며 눈물까지 흘리는 것을 보면 그들도 같은 찬송가를 쓰는 것이 틀림없다. 성경이 같으니 이날의 ‘성경 말씀’인 에스더서 13∼15절도 우리와 같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목사님이든 스님이든 북측 인사들의 ‘말씀’은 시작은 다르지만 결국 ‘민족 대단결’ ‘통일’ ‘우리끼리’ ‘외세 배격’ 등으로 환원된다는 것이다.

올해는 남쪽의 주요 7개 교단 연합체인 KCRP와 북측의 조선종교인협의회(KCR)가 본격적인 교류를 시작한 지 10년째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해 5∼8일 평양을 방문한 KCRP 대표단은 칠골교회를 비롯해 광법사, 장충성당, 단군릉, 러시아정교회 교회당인 정백성당, 묘향산의 보현사 등 종교시설을 둘러보고 돌아왔다.

개신교가 원만하게 예배를 치른 데 비해 가톨릭 측은 ‘미사’가 아닌 ‘행사’ 모임만 가졌다. 교황청으로부터 공인받은 신부도, 공식적인 영세 신자도 없기 때문에 미사를 드리지 못했다. 장충성당을 방문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총장 배영호 신부는 이날 행사에 참석한 150여 명의 북측 교인에게 “나 자신이 신부인데도 미사를 진행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고 부끄럽다”며 “힘들지만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협력해 나가자”고 말했다.

조계종 사회부장 지원 스님과 원불교 김대선 교무 등 불교계 대표단은 대성구역 대성동 대성산성 안에 위치한 고려시대 사찰인 광법사를 찾아 예불을 드렸고, 최근덕 성균관장과 한양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등은 북한의 국보로 지정된 단군릉을 둘러봤다.

1997년 5월 중국 베이징에서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ACRP)를 통해 역사적인 상봉을 했던 KCRP와 KCR는 6·15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매년 교류의 폭을 넓혀 왔으며 2001년 ‘금강산 종교인평화모임’, 2003년 ‘3·1 민족대회’를 공동 개최했다.

여기에 남측 교단의 대북 인도적 지원이 확대되면서 이제는 교류의 흐름을 되돌리기 힘든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 KCRP 측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북측의 전반적인 태도도 유연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방문 첫날 밤 열린 집단체조극 ‘아리랑’ 공연이나 거리의 선전문구에도 ‘미제’에 관한 직접적 언급은 빠져 있었다. 지난해에도 아리랑을 관람했다는 KCRP 양덕창 천주교주교회의 부서장은 “예전에는 미군을 총칼로 때려잡는 섬뜩한 장면들이 많이 등장했는데 이번에는 ‘미제’라는 말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북 인도적 지원이 北 태도 누그러뜨려

하지만 KCR의 장재언 위원장이 행사 기간 중 “김정일 장군을 받들어 힘차게 투쟁하고 조국 통일을 이뤄내야 한다”, “외세를 배격하고 민족을 중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등 정치적 발언을 수차례 언급해 KCRP 변진흥 사무총장 등에게서 공식적인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번 행사에는 북측에서 KCR 장 위원장을 비롯해 강지영 상무위원, 심상진 조선불교도연맹 부위원장, 신상호 조선그리스도교연맹 부위원장, 강철원 천도교 중앙지도위 부위원장 등 17명이 참석했다. 남측 대표단은 북측 대표단을 공식 초청했으며 올 10월 이들의 답방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평양공동취재단·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에스더는 민족의 운명이 경각에 달렸을 때 목숨을 내놓고 나섰습니다. 하늘이 내린 우리 민족은 절대 나눠져서는 안 됩니다. 민족 분열과 핵전쟁의 역사적 위기에서 우리 민족이 한데 뭉치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6일 평양 칠골동에 위치한 칠골교회. 강대상에 오른 황민우 담임목사의 설교에 예배당을 채운 신도들이 ‘아멘’ 하고 합창했다. 150여 석의 좌석은 발 디딜 틈 없이 빽빽이 들어찼다.》

○현지 외국인들도 참석 합동예배 화기애애

예배 참석자들은 다양했다. 남측에서 온 성공회 박경조 주교 등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대표회장 최근덕 성균관장) 개신교 측 대표단, 독일에서 관광차 온 기독교인 32명, 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 등 방북단, 미국 시애틀에서 방문한 재미동포 신자 40여 명, 평양 주재 인도네시아 대사 부부, 북측 신도 50여 명 등.

예배의 형식은 남측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성가대도 있고, 찬송가책에는 ‘십자가 군병들아’ ‘진실하신 친구’ 등 대부분 귀에 익은 노래들이 눈에 띄었다. 독일 관광객들이 찬송을 같이하며 눈물까지 흘리는 것을 보면 그들도 같은 찬송가를 쓰는 것이 틀림없다. 성경이 같으니 이날의 ‘성경 말씀’인 에스더서 13∼15절도 우리와 같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목사님이든 스님이든 북측 인사들의 ‘말씀’은 시작은 다르지만 결국 ‘민족 대단결’ ‘통일’ ‘우리끼리’ ‘외세 배격’ 등으로 환원된다는 것이다.

올해는 남쪽의 주요 7개 교단 연합체인 KCRP와 북측의 조선종교인협의회(KCR)가 본격적인 교류를 시작한 지 10년째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해 5∼8일 평양을 방문한 KCRP 대표단은 칠골교회를 비롯해 광법사, 장충성당, 단군릉, 러시아정교회 교회당인 정백성당, 묘향산의 보현사 등 종교시설을 둘러보고 돌아왔다.

개신교가 원만하게 예배를 치른 데 비해 가톨릭 측은 ‘미사’가 아닌 ‘행사’ 모임만 가졌다. 교황청으로부터 공인받은 신부도, 공식적인 영세 신자도 없기 때문에 미사를 드리지 못했다. 장충성당을 방문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총장 배영호 신부는 이날 행사에 참석한 150여 명의 북측 교인에게 “나 자신이 신부인데도 미사를 진행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고 부끄럽다”며 “힘들지만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협력해 나가자”고 말했다.

조계종 사회부장 지원 스님과 원불교 김대선 교무 등 불교계 대표단은 대성구역 대성동 대성산성 안에 위치한 고려시대 사찰인 광법사를 찾아 예불을 드렸고, 최근덕 성균관장과 한양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등은 북한의 국보로 지정된 단군릉을 둘러봤다.

1997년 5월 중국 베이징에서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ACRP)를 통해 역사적인 상봉을 했던 KCRP와 KCR는 6·15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매년 교류의 폭을 넓혀 왔으며 2001년 ‘금강산 종교인평화모임’, 2003년 ‘3·1 민족대회’를 공동 개최했다.

여기에 남측 교단의 대북 인도적 지원이 확대되면서 이제는 교류의 흐름을 되돌리기 힘든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 KCRP 측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북측의 전반적인 태도도 유연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방문 첫날 밤 열린 집단체조극 ‘아리랑’ 공연이나 거리의 선전문구에도 ‘미제’에 관한 직접적 언급은 빠져 있었다. 지난해에도 아리랑을 관람했다는 KCRP 양덕창 천주교주교회의 부서장은 “예전에는 미군을 총칼로 때려잡는 섬뜩한 장면들이 많이 등장했는데 이번에는 ‘미제’라는 말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북 인도적 지원이 北 태도 누그러뜨려

하지만 KCR의 장재언 위원장이 행사 기간 중 “김정일 장군을 받들어 힘차게 투쟁하고 조국 통일을 이뤄내야 한다”, “외세를 배격하고 민족을 중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등 정치적 발언을 수차례 언급해 KCRP 변진흥 사무총장 등에게서 공식적인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번 행사에는 북측에서 KCR 장 위원장을 비롯해 강지영 상무위원, 심상진 조선불교도연맹 부위원장, 신상호 조선그리스도교연맹 부위원장, 강철원 천도교 중앙지도위 부위원장 등 17명이 참석했다. 남측 대표단은 북측 대표단을 공식 초청했으며 올 10월 이들의 답방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평양공동취재단·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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