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스펀 前 FRB 의장 “이라크전의 이유는…”
등록 2007.09.18.전쟁 시작 4년 반이 흐른 시점에 또다시 이라크전쟁의 진짜 이유를 따지는 논쟁이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말 한마디에 실린 신뢰와 무게감을 앞세워 18년간 ‘금융 대통령’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17일 출간한 회고록(‘격동의 시대’)에 쓴 한 구절이 불씨가 됐다.
그는 “이라크전쟁은 대체로 석유전쟁이라고 진실을 말하는 게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현실이 서글프다”고 썼다. 그러나 왜 이렇게 판단하는지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사담 후세인의 비밀 핵 개발을 막아야 한다며 전쟁 동의를 요구했으나, 끝내 대량살상무기(WMD)는 찾지 못했다. 그러다 2005년 2기 행정부 취임 연설을 통해 ‘민주주의 확산’을 명분으로 슬쩍 바꿨다.
▽한발 빼는 그린스펀=CBS방송은 16일 밤 간판 프로그램인 ‘60분’ 가운데 30분을 할애해 그의 삶을 조명하면서 ‘석유전쟁’ 질문을 빼놓지 않았다.
진행자는 “부시 행정부는 석유는 상관없다고 말해 왔다. (국가 안보나 자유 신장과 같은 명분이 아닌) 석유 때문에 아들딸을 이라크에서 잃었다면 전사자 부모의 심정이 어떻겠느냐”고 압박했다.
팔순을 넘긴 그린스펀 전 의장은 논란이 불거진 탓인지 한발 물러섰다. “경제정책 책임자인 내가 그렇게 봤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17일자 워싱턴포스트에서 그는 정권의 전쟁 의도는 석유가 아니겠지만, 자신은 석유 수출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 장악을 기도하던 후세인(이라크 전 대통령)을 제거하는 결정은 미국과 세계 경제를 위해 반드시 필요했다고 믿어 왔다고 해명했다. 그는 “나는 전쟁이건, 암살공작이건 후세인 제거 옹호론자”라고 소개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2003년 초 백악관의 한 중간 관리가 자신에게 “불행하게도 우린 석유 이야기를 꺼낼 순 없지요”라고 말했다는 일화를 공개했다.
이라크전쟁을 수행 중인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도 16일 TV에 출연했다. 그는 “중동지역 안정이 목표였고… WMD를 손에 넣으려는 불량정권이 있었고… 폭압적인 독재자의 문제였다”고 말했다. 석유는 적어도 세 가지 이유에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언론은 신중… 블로그는 열기=미국의 주요 방송 및 신문은 그린스펀 전 의장의 발언을 보도했으나 ‘꼬리가 드러났다’는 식의 결론은 내리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7일자에서 “석유전쟁이 진짜 이유라는 구체적 증거가 제시된 것은 없다”고 썼다.
그러나 데일리코스, 커먼드림스, 팀페인 등 반전 인터넷 매체는 ‘드디어 부시 대통령의 속셈이 들통 났다. 그것도 공화당이 임명한 현자(賢者) 그린스펀의 입으로’라는 취지의 글을 쏟아냈다.
진보단체가 자주 인용하는 자료는 부시 행정부가 비밀리에 작성했고 2002년 8월 부시 대통령이 서명한 ‘이라크: 목표와 전략’이라는 보고서다. 보고서는 이라크 정책의 여러 목표 중 하나로 “국제 석유시장에서 생길 수 있는 돌발변수의 최소화”를 꼽았다.
▽지금 이라크는=석유 매장량 세계 3위인 이라크는 내부 종파 간의 석유 다툼이 한창이다. 시아파 수니파 쿠르드족이 원유 판매 수익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를 놓고 다투면서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에 법제화를 요구해 온 ‘석유 배분법’은 2년째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미국이 전쟁 승리를 통해 이라크의 석유 이권을 노렸는지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확인하기 힘든 구조다.
이라크는 전쟁 시작 이후 무장 테러가 계속되고 있어 외국 석유자본의 개입은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지난해 말 추정한 일일 석유생산량인 213만 배럴은 전쟁 시작 전인 2002년(220만 배럴)에도 못 미치고 있다.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16일 “이라크 치안 상황이 안정되고 정상적인 해외투자 기회가 돌아온다면 국영화한 석유자원은 미국의 석유회사가 일부 채굴권을 가져갈 개연성이 크지만 그 시점이 언제가 될지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이라크전쟁은 석유 때문?
전쟁 시작 4년 반이 흐른 시점에 또다시 이라크전쟁의 진짜 이유를 따지는 논쟁이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말 한마디에 실린 신뢰와 무게감을 앞세워 18년간 ‘금융 대통령’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17일 출간한 회고록(‘격동의 시대’)에 쓴 한 구절이 불씨가 됐다.
그는 “이라크전쟁은 대체로 석유전쟁이라고 진실을 말하는 게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현실이 서글프다”고 썼다. 그러나 왜 이렇게 판단하는지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사담 후세인의 비밀 핵 개발을 막아야 한다며 전쟁 동의를 요구했으나, 끝내 대량살상무기(WMD)는 찾지 못했다. 그러다 2005년 2기 행정부 취임 연설을 통해 ‘민주주의 확산’을 명분으로 슬쩍 바꿨다.
▽한발 빼는 그린스펀=CBS방송은 16일 밤 간판 프로그램인 ‘60분’ 가운데 30분을 할애해 그의 삶을 조명하면서 ‘석유전쟁’ 질문을 빼놓지 않았다.
진행자는 “부시 행정부는 석유는 상관없다고 말해 왔다. (국가 안보나 자유 신장과 같은 명분이 아닌) 석유 때문에 아들딸을 이라크에서 잃었다면 전사자 부모의 심정이 어떻겠느냐”고 압박했다.
팔순을 넘긴 그린스펀 전 의장은 논란이 불거진 탓인지 한발 물러섰다. “경제정책 책임자인 내가 그렇게 봤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17일자 워싱턴포스트에서 그는 정권의 전쟁 의도는 석유가 아니겠지만, 자신은 석유 수출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 장악을 기도하던 후세인(이라크 전 대통령)을 제거하는 결정은 미국과 세계 경제를 위해 반드시 필요했다고 믿어 왔다고 해명했다. 그는 “나는 전쟁이건, 암살공작이건 후세인 제거 옹호론자”라고 소개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2003년 초 백악관의 한 중간 관리가 자신에게 “불행하게도 우린 석유 이야기를 꺼낼 순 없지요”라고 말했다는 일화를 공개했다.
이라크전쟁을 수행 중인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도 16일 TV에 출연했다. 그는 “중동지역 안정이 목표였고… WMD를 손에 넣으려는 불량정권이 있었고… 폭압적인 독재자의 문제였다”고 말했다. 석유는 적어도 세 가지 이유에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언론은 신중… 블로그는 열기=미국의 주요 방송 및 신문은 그린스펀 전 의장의 발언을 보도했으나 ‘꼬리가 드러났다’는 식의 결론은 내리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7일자에서 “석유전쟁이 진짜 이유라는 구체적 증거가 제시된 것은 없다”고 썼다.
그러나 데일리코스, 커먼드림스, 팀페인 등 반전 인터넷 매체는 ‘드디어 부시 대통령의 속셈이 들통 났다. 그것도 공화당이 임명한 현자(賢者) 그린스펀의 입으로’라는 취지의 글을 쏟아냈다.
진보단체가 자주 인용하는 자료는 부시 행정부가 비밀리에 작성했고 2002년 8월 부시 대통령이 서명한 ‘이라크: 목표와 전략’이라는 보고서다. 보고서는 이라크 정책의 여러 목표 중 하나로 “국제 석유시장에서 생길 수 있는 돌발변수의 최소화”를 꼽았다.
▽지금 이라크는=석유 매장량 세계 3위인 이라크는 내부 종파 간의 석유 다툼이 한창이다. 시아파 수니파 쿠르드족이 원유 판매 수익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를 놓고 다투면서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에 법제화를 요구해 온 ‘석유 배분법’은 2년째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미국이 전쟁 승리를 통해 이라크의 석유 이권을 노렸는지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확인하기 힘든 구조다.
이라크는 전쟁 시작 이후 무장 테러가 계속되고 있어 외국 석유자본의 개입은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지난해 말 추정한 일일 석유생산량인 213만 배럴은 전쟁 시작 전인 2002년(220만 배럴)에도 못 미치고 있다.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16일 “이라크 치안 상황이 안정되고 정상적인 해외투자 기회가 돌아온다면 국영화한 석유자원은 미국의 석유회사가 일부 채굴권을 가져갈 개연성이 크지만 그 시점이 언제가 될지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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