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와중에 예산 끼워 넣는 의원들

여행을 하다보면 교통량이 많지 않은데도 말끔하게 포장된 국도를 보게 됩니다. “언제 이런 곳까지 길을 잘 만들어 놓았나” 하는 감탄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기도 하죠. “이 곳 출신 국회의원이 누군데 예산을 잘 따왔을까.”

정부 사업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때로는 급하지 않은 사업에 혈세가 들어가는 사례도 보게 됩니다. 정부가 예산안을 짤 때 정치적 고려를 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해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국회의 끼워 넣기 예산입니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심의 의결하는 과정에서 의원들이 지역구를 위한 선심성 예산을 집어넣는 것입니다.

요즘이 국회가 예산안을 심의하는 기간입니다. 끼워 넣기 예산 이야기가 또 들립니다.

국회 예산결산위원회가 지역 선심성 예산 2조900여억 원을 늘리겠다고 합니다. 다른 상임위에서 증액을 요청한 게 3조5700억 원인데 그 중 1조원 이상이 선심성이라고 합니다. 둘을 합하면 새해 예산에 끼어들어가는 국회 차원의 선심성 예산이 3조 원 이상이 됩니다.

국회의원들이 ‘끗발 자랑’을 하듯 이런 식으로 예산을 챙기는 것을 지역에 대한 봉사로 보면 안 됩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 혈세로 벌이는 사전 선거운동일 뿐입니다. 여야 구분 없이 서로 봐줘가면서 국민이 낸 세금을 끌어다가 지역구 사업에 쓰는 것은 국회의 부패 관행일 뿐입니다.

이미 언론에 공개가 됐습니다만 강창일, 김기현, 류근찬, 주승용 의원 등은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지역구 사업비를 수백, 수천억 원씩 증액해놓았습니다. 이들은 언론이 “지역만 챙긴다”고 비판하는 것을 오히려 즐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지역구를 위해 욕 먹어가면서 열심히 챙기고 있다는 것을 언론이 증명해주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게 바로 구태입니다.

사업이 타당성이 있으면 정부의 예산안에 들어가는 게 정상입니다. 혈세를 헤프게 쓴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 정부조차 인정하지 않는 사업에 몰래 세금을 끌어갈 거면 지역구민 이외의 국민에게 뭐라고 설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강, 김, 류, 주 의원을 포함해서 끼워 넣기를 한 의원들은 어떤 사업에 얼마를 집어넣으려는 것인지를 밝혀야 합니다. 그래야만 국회도 정부 예산안에서 3조원이나 된다는 중복 낭비성 예산에 칼질을 하고 적자예산을 균형으로 짜라고 정정당당하게 요청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 민주당은 올해 초 ‘의회 부패 청산’ 선언을 했습니다. 그 중에는 어떤 의원이 무슨 이유로 특정예산을 삽입했는지 조목조목 공개함으로써 예산 끼워 넣기를 근절하겠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우리 국회도 이런 노력을 해야 할 때입니다. 국민도 “다른 의원들은 지역사업을 잘 챙기는데 우리 지역구 의원은 뭐 하나”라는 식으로 의원들에게 혈세를 따오라고 압박할 일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국회의 예산 끼워 넣기에 관해 말씀드렸습니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