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의 경쟁력]MS 사회공헌이사 권찬

등록 2009.01.09.
‘20년쯤 일한 뒤에는 내가 모은 돈으로 사회봉사를 하고 싶다.’

권찬(45).

한국마이크로소프트(MS) 사회공헌 담당 이사인 그가 1987년 광고대행사인 코래드에 입사할 때 입사지원서에 썼던 문구다.

연세대 사회사업학과를 졸업한 그는 현실을 쫓아 전공과 다른 분야 직장을 잡으면서도 ‘사회봉사’에 대한 미련은 버리지 않았다.

대학시절, 사회봉사 현장 실습 과정에서 만난 한 죄수의 모습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죄수와 마음 터놓고 얘기하며 앞으로 사회적응을 도우라는 역할을 받았지만 권 이사는 그가 무서워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저 그가 하는 말에 “예, 예…” 허둥대며 대답만 하며 2주일을 보냈다.

그때 그는 봉사가 마음만 앞선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상대방에 대해 잘 알고, 봉사 자체가 즐겁지 않으면 받는 사람도 불편하다는 사실을.

●죄수에게 얻은 교훈

코레드로 시작, 로또 시스템 업체인 코리아로터리서비스, 홍보컨설팅업체 한국버슨마스텔러, 삼성에버랜드를 거쳐 1998년 한국 MS로 자리를 옮겨 20년 가까이 광고, 홍보, 이벤트, 기업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해 왔다.

그런 그에게 2006년 11월 기회가 왔다.

한국MS가 사회공헌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이 분야 전문가 채용 나섰다. 그러나 좀처럼 적합한 인물이 나서지 않자 권 이사가 “기업과 사회사업을 모두 잘 아는 내가 책임지겠다”고 이 자리에 자원했고 MS 미국 본사와 한국MS는 이를 받아들였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일해오던 중에도 사회봉사에 대한 관심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표현해 온 게 회사의 결정을 쉽게 했다.

2005년 산제이 머천다니 MS 아시아 담당 대표 방한했을 때.

머천다니 대표는 “한국에서 MS가 사회공헌을 강화하기 위해 어떤 지원이 필요 하느냐”고 물었고, 권 이사는 “돈으로 할 수 있다고는 생각 안 한다”고 답했다.

당시 권 이사는 “직원들이 회사의 강요나 동원에 의해 억지로 봉사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봉사할 수 있도록 ‘봉사휴가’를 도입해 달라”고 말했다.

“며칠이면 되겠느냐”는 질문이 돌아왔고 순간 권이사는 빠르게 두뇌를 회전시켰다.

“1주일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처음부터 너무 많이 달라고 하면 아예 하루도 안 줄 것 같았죠. 당시 한 다국적 기업이 한국 지사 직원들에게 2일씩 봉사휴가를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그 회사 보단 더 하자는 생각으로 ‘3일을 달라’고 했지요.”

그 자리에서 임원회의가 열렸고, “한국 MS 직원들에게 3일씩 봉사휴가를 주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펀’(fun)하게 하자

권 이사는 전공을 살려 한국MS 사회공헌 사업에 기틀을 잡아 나갔다.

그는 우선 ‘예측 가능한 봉사’ 체계를 갖춰 나갔다.

권 이사 부임 전 두 곳이었던 지원 복지시설을 6곳으로 늘렸다. 권이사가 먼저 나서서 이렇게 늘어난 것은 아니었다.

3일간 봉사휴가 등으로 이미 직원들 사이에서 사회봉사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던 분위기.

직원들은 평소 자신들이 봉사활동을 하는 시설들에 대해 “회사 차원에서도 지원을 해 줬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올렸고 권 이사는 직접 현장을 찾아 지원 여부를 결정했다.

이렇게 해서 10여 년 전부터 MS가 지원해온 서울 영등포 ‘브니엘의 집’과 ‘암사재활원’외에 권 이사 부임 후 다문화 가정을 돌보는 ‘코시안의 집’, 노인 요양소인 ‘해뜨는 마을’, 행려병자를 돌보는 ‘요셉의원’, 아동 청소년들이 함께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만남의 집’ 등이 추가로 지원을 받게 됐다.

권 이사는 “사실 MS가 이들 시설에 지원하는 액수는 크지 않다”고 털어놨다.

MS는 미국 본사 뿐 아니라 각국 지사에서 기빙 매치(Giving Match)라는 제도를 운영한다. 임직원이 자발적으로 일정액을 기부하면, 그와 똑 같은 액수를 회사 비용으로도 지원하는 것.

권 이사는 “이렇게 해서 각 시설에 지원되는 액수는 백만 단위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며 “하지만 예측 가능한 지원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액수는 크지 않지만 매달 일정액이 MS직원과 회사로부터 지원된다는 ‘예측 가능성’ 때문에 각 시설들은 예산을 세울 수 있고 필요에 따라 각종 물품이나 장비 구매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것.

권이사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펀’(fun) 이다.

“연말에 어느 기업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 봉사를 하러 온 직원들이 사실은 봉사를 하러 온 게 아니라 ‘동원돼’ 왔다면 상대방이 기분 좋을 리 없다”는 것.

최근 경기 시흥의 거모종합사회복지관 직원들과 함께 김장을 담그러 갔을 때였다.

권이사는 복지관 관계자들에게 “예산도 넉넉지 않을 텐데, 컴퓨터는 잘 쓰고 있느냐. 혹시 관리가 필요하면 지금 우리가 하겠다”고 제안했다.

복지관 측은 “그러지 않아도 그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도움 받는 입장에서 먼저 뭐 해 달라고 요구하기 힘들어서 말을 못하고 있었다”고 답했다.

권이사는 직원들에게 “우리 쉬운 일 좀 해 보자”고 운을 띄웠다.

“무슨 일인데요?”

“아 다름이 아니고 이곳 컴퓨터 손보는 일.”

그러자 직원들은 “회사에서도 하루 종일 컴퓨터랑 씨름하는데 여기까지 와서 또 컴퓨터 앞에 앉아야겠느냐”며 “쌀 나르고 김치 담그는 게 더 좋다”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이어지는 권이사의 말에 직원들은 “와, 그거 재밌겠는데요”라며 그 자리에서 ‘PC점검단’을 구성했다.

“컴퓨터 분해해서 먼지 제거하고, 바이러스 고치고 이런 일 하자는 거야, 일 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컴퓨터 관련 복잡한 이론과 부호와 씨름하는 게 직업인 한국MS 직원들에게 컴퓨터를 청소하고 바이러스를 잡는 일은 그야말로 평소에 해보지 못했던 ‘아무런 고민 없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었던 것.

권 이사는 “재미있는, 펀(fun)한 봉사가 되려면 결국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봉사와 연결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제약회사는 약품을 제공하고, 컴퓨터회사는 컴퓨터 기술을 제공하고, 야쿠르트 아주머니들은 실력을 발휘해 김장을 해 주시는 것이 수준 높은 봉사라고 봅니다.”

●“기술도 봉사다”

권 이사는 ‘테크 매치’(Tech Match)라는 개념도 도입했다. 직원이 기부한 돈 만큼 회사가 돈을 내 주듯, 자신이 가진 기술로 봉사를 하는 사람에게 회사도 기술로 지원한다는 개념.

한국MS는 회사 차원에서 특별 관리하는 각계 컴퓨터 전문가 130여명이 `마이크로소프트 MVP(Most Valuable Professionals)`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자영업자, 의사, 회사원 등 직업은 제각각이지만 이들은 MS 직원 못지않은 컴퓨터 실력을 갖추고 있다. MS가 한국시장에 새 제품을 내놓기 전 이들에게 먼저 제품을 제공하고 때로는 소스를 공개해 오류를 수정하고 품질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권 이사는 이들에게 “자신이 가진 기술로 봉사활동을 하면 MS가 필요한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해 9월경, MS가 지원하는 요셉의원의 홈페이지를 본 한 MVP가 “홈페이지가 너무 초라하다”고 지적하자 뜻을 같이 하는 MVP 8명이 모여 3개월여 간에 걸쳐 홈페이지를 새로 제작했다.

권 이사는 회사를 설득해 이들에게 필요한 소프트웨어 등을 지원했다.

테크매치의 경우 봉사에 필요한 돈은 MVP들 본인이 부담하는 경우가 많다. MVP들은 MS가 아닌 자신의 봉사활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 MS는 최소한의 지원만 한다.

권 이사는 비용을 늘리지 않으면서 이들에게 뭔가 보답을 하기 위해 회사 고문변호사들을 통한 법률자문 서비스를 시작했다.

MVP들은 비즈니스나 생활 속에서 부딪히는 법률적 문제들을 한국MS의 변호사들과 상의해 해결하고 있다.

●펀(fun)하면 시키지 않은 일도…

한국 MS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펼치는 봉사 외에 회사가 정책적으로 하는 사회사업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비정부기구(NGO) 사회단체 지원.

한국MS는 한국정보문화진흥원, 케어코리아, 한국청년정책 연구원 등과 노인 정보화사업, 탈북청소년 컴퓨터 교육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이미 관계를 맺고 있는 NGO외에 권 이사는 사회공헌 담당으로 발령 나자마자 경실련, 공동모금회, 아름다운 재단, 녹색연합 등 NGO를 찾아다니며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조사했다.

회사 입장에서 권이사가 이처럼 NGO를 만나고 다니는 것은 ‘꼭 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하지만 권 이사는 “즐거우니까 한다”며 일을 멈추지 않았다.

권이사의 눈에 NGO는 매우 비효율적으로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고물 컴퓨터에, 철지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며 상담을 하러온 사람의 대화 내용을 종이에 받아 적어서는 ‘봉사의 능률’이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게 권 이사의 판단이었다.

필요한 소프트웨어와 장비를 지원하고 IT교육을 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NGO를 비롯한 일반인들은 MS가 기술 지원을 하는 것을 곱게 보지 않았다.

“독점 기업이 NGO들까지도 정품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게 해 돈을 벌려 한다”는 얘기가 들렸다.

권 이사는 서둘지 않았다. 꾸준히 NGO들과 관계를 유지하며 진심을 알아주기를 1년여간 기다렸고 지난해 하나둘 NGO들이 마음을 열면서 권 이사의 도움으로 컴퓨터를 업그레이드 했다.

지난해 4월에는 NGO 대표들이 모여 NGO 활동에 필요한 IT기술에 대해 토론을 벌이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권 이사는 내친김에 NGO를 위한 인터넷홈페이지도 개설해 지방 NGO들도 토론 모습을 동영상으로 지켜보고 필요한 정보를 얻어가도록 했다.

권 이사는 이밖에 국내 15개 컴퓨터 보조 공학기기 업체들과 장애인들을 위한 정보통신 보조기기 개발 지원 사업을 펼치는 등 ‘회사에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고 있다.

올해에는 정보문화진흥원 및 보조 공학기기 업체들과 장애인 관련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전시하는 ‘억세서빌리티 랩’을 국내에 세울 예정이다.

그동안 서로 정보공유를 하지 못해 제품 개발에 어려움을 겪어온 업체들이 MS의 기술지원과 서로간의 기술 교류로 제품 품질을 높이는 동시에 이 전시관을 통해 해외 바이어를 유치할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봉사는 결국 회사를 위한 활동”

권이사는 “봉사는 개인이 자발적으로 하고 회사는 지원하는 형태가 맞지만, 결국 봉사의 결실은 기업이 따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기업 이미지가 좋지 않으면 제품을 구매하지 않겠다, 기업 이미지가 좋으면 제품이 30% 비싸도 구입하겠다는 등의 조사결과는 여기저기서 이미 너무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습니다.”

사회공헌이 기업이 평소 하지 않던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기업의 핵심역량과 연결시켜야 한다는 인식도 CEO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는 게 권 이사의 설명.

“사실 불우 이웃, 장애인도 넓고 멀리 보면 고객입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을 뻗치면, 나중에 사정이 좋아졌을 때 이 분들은 MS의 소비자가 돼 주실 거예요.”

권이사는 “과거 사회공헌을 특징짓는 키워드는 ‘비용’ ‘동원’ ‘손실’ 등이었으나 앞으로는 ‘경영’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사회공헌, 봉사활동을 경험해본 직원들에게 설문을 돌렸습니다. 응답자 거의 전원은 ‘평소 느낄 수 없었던 성취감’을 느꼈다고 대답했습니다. 순수하게 함께 봉사에 나서는 동료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는 반응도 많았습니다.”

“억지로 하는 일은 표정이 나오지 않는다”, “누구를 돕는다는 건 너무 심한 자기만족이다”라고 말하는 권 이사는 “봉사활동에서 얻어진 애사심과 동료애는 회사 경쟁력에 그대로 반영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영상=동아닷컴 정주희 기자 zooey@donga.com

‘20년쯤 일한 뒤에는 내가 모은 돈으로 사회봉사를 하고 싶다.’

권찬(45).

한국마이크로소프트(MS) 사회공헌 담당 이사인 그가 1987년 광고대행사인 코래드에 입사할 때 입사지원서에 썼던 문구다.

연세대 사회사업학과를 졸업한 그는 현실을 쫓아 전공과 다른 분야 직장을 잡으면서도 ‘사회봉사’에 대한 미련은 버리지 않았다.

대학시절, 사회봉사 현장 실습 과정에서 만난 한 죄수의 모습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죄수와 마음 터놓고 얘기하며 앞으로 사회적응을 도우라는 역할을 받았지만 권 이사는 그가 무서워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저 그가 하는 말에 “예, 예…” 허둥대며 대답만 하며 2주일을 보냈다.

그때 그는 봉사가 마음만 앞선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상대방에 대해 잘 알고, 봉사 자체가 즐겁지 않으면 받는 사람도 불편하다는 사실을.

●죄수에게 얻은 교훈

코레드로 시작, 로또 시스템 업체인 코리아로터리서비스, 홍보컨설팅업체 한국버슨마스텔러, 삼성에버랜드를 거쳐 1998년 한국 MS로 자리를 옮겨 20년 가까이 광고, 홍보, 이벤트, 기업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해 왔다.

그런 그에게 2006년 11월 기회가 왔다.

한국MS가 사회공헌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이 분야 전문가 채용 나섰다. 그러나 좀처럼 적합한 인물이 나서지 않자 권 이사가 “기업과 사회사업을 모두 잘 아는 내가 책임지겠다”고 이 자리에 자원했고 MS 미국 본사와 한국MS는 이를 받아들였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일해오던 중에도 사회봉사에 대한 관심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표현해 온 게 회사의 결정을 쉽게 했다.

2005년 산제이 머천다니 MS 아시아 담당 대표 방한했을 때.

머천다니 대표는 “한국에서 MS가 사회공헌을 강화하기 위해 어떤 지원이 필요 하느냐”고 물었고, 권 이사는 “돈으로 할 수 있다고는 생각 안 한다”고 답했다.

당시 권 이사는 “직원들이 회사의 강요나 동원에 의해 억지로 봉사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봉사할 수 있도록 ‘봉사휴가’를 도입해 달라”고 말했다.

“며칠이면 되겠느냐”는 질문이 돌아왔고 순간 권이사는 빠르게 두뇌를 회전시켰다.

“1주일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처음부터 너무 많이 달라고 하면 아예 하루도 안 줄 것 같았죠. 당시 한 다국적 기업이 한국 지사 직원들에게 2일씩 봉사휴가를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그 회사 보단 더 하자는 생각으로 ‘3일을 달라’고 했지요.”

그 자리에서 임원회의가 열렸고, “한국 MS 직원들에게 3일씩 봉사휴가를 주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펀’(fun)하게 하자

권 이사는 전공을 살려 한국MS 사회공헌 사업에 기틀을 잡아 나갔다.

그는 우선 ‘예측 가능한 봉사’ 체계를 갖춰 나갔다.

권 이사 부임 전 두 곳이었던 지원 복지시설을 6곳으로 늘렸다. 권이사가 먼저 나서서 이렇게 늘어난 것은 아니었다.

3일간 봉사휴가 등으로 이미 직원들 사이에서 사회봉사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던 분위기.

직원들은 평소 자신들이 봉사활동을 하는 시설들에 대해 “회사 차원에서도 지원을 해 줬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올렸고 권 이사는 직접 현장을 찾아 지원 여부를 결정했다.

이렇게 해서 10여 년 전부터 MS가 지원해온 서울 영등포 ‘브니엘의 집’과 ‘암사재활원’외에 권 이사 부임 후 다문화 가정을 돌보는 ‘코시안의 집’, 노인 요양소인 ‘해뜨는 마을’, 행려병자를 돌보는 ‘요셉의원’, 아동 청소년들이 함께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만남의 집’ 등이 추가로 지원을 받게 됐다.

권 이사는 “사실 MS가 이들 시설에 지원하는 액수는 크지 않다”고 털어놨다.

MS는 미국 본사 뿐 아니라 각국 지사에서 기빙 매치(Giving Match)라는 제도를 운영한다. 임직원이 자발적으로 일정액을 기부하면, 그와 똑 같은 액수를 회사 비용으로도 지원하는 것.

권 이사는 “이렇게 해서 각 시설에 지원되는 액수는 백만 단위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며 “하지만 예측 가능한 지원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액수는 크지 않지만 매달 일정액이 MS직원과 회사로부터 지원된다는 ‘예측 가능성’ 때문에 각 시설들은 예산을 세울 수 있고 필요에 따라 각종 물품이나 장비 구매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것.

권이사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펀’(fun) 이다.

“연말에 어느 기업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 봉사를 하러 온 직원들이 사실은 봉사를 하러 온 게 아니라 ‘동원돼’ 왔다면 상대방이 기분 좋을 리 없다”는 것.

최근 경기 시흥의 거모종합사회복지관 직원들과 함께 김장을 담그러 갔을 때였다.

권이사는 복지관 관계자들에게 “예산도 넉넉지 않을 텐데, 컴퓨터는 잘 쓰고 있느냐. 혹시 관리가 필요하면 지금 우리가 하겠다”고 제안했다.

복지관 측은 “그러지 않아도 그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도움 받는 입장에서 먼저 뭐 해 달라고 요구하기 힘들어서 말을 못하고 있었다”고 답했다.

권이사는 직원들에게 “우리 쉬운 일 좀 해 보자”고 운을 띄웠다.

“무슨 일인데요?”

“아 다름이 아니고 이곳 컴퓨터 손보는 일.”

그러자 직원들은 “회사에서도 하루 종일 컴퓨터랑 씨름하는데 여기까지 와서 또 컴퓨터 앞에 앉아야겠느냐”며 “쌀 나르고 김치 담그는 게 더 좋다”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이어지는 권이사의 말에 직원들은 “와, 그거 재밌겠는데요”라며 그 자리에서 ‘PC점검단’을 구성했다.

“컴퓨터 분해해서 먼지 제거하고, 바이러스 고치고 이런 일 하자는 거야, 일 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컴퓨터 관련 복잡한 이론과 부호와 씨름하는 게 직업인 한국MS 직원들에게 컴퓨터를 청소하고 바이러스를 잡는 일은 그야말로 평소에 해보지 못했던 ‘아무런 고민 없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었던 것.

권 이사는 “재미있는, 펀(fun)한 봉사가 되려면 결국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봉사와 연결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제약회사는 약품을 제공하고, 컴퓨터회사는 컴퓨터 기술을 제공하고, 야쿠르트 아주머니들은 실력을 발휘해 김장을 해 주시는 것이 수준 높은 봉사라고 봅니다.”

●“기술도 봉사다”

권 이사는 ‘테크 매치’(Tech Match)라는 개념도 도입했다. 직원이 기부한 돈 만큼 회사가 돈을 내 주듯, 자신이 가진 기술로 봉사를 하는 사람에게 회사도 기술로 지원한다는 개념.

한국MS는 회사 차원에서 특별 관리하는 각계 컴퓨터 전문가 130여명이 `마이크로소프트 MVP(Most Valuable Professionals)`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자영업자, 의사, 회사원 등 직업은 제각각이지만 이들은 MS 직원 못지않은 컴퓨터 실력을 갖추고 있다. MS가 한국시장에 새 제품을 내놓기 전 이들에게 먼저 제품을 제공하고 때로는 소스를 공개해 오류를 수정하고 품질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권 이사는 이들에게 “자신이 가진 기술로 봉사활동을 하면 MS가 필요한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해 9월경, MS가 지원하는 요셉의원의 홈페이지를 본 한 MVP가 “홈페이지가 너무 초라하다”고 지적하자 뜻을 같이 하는 MVP 8명이 모여 3개월여 간에 걸쳐 홈페이지를 새로 제작했다.

권 이사는 회사를 설득해 이들에게 필요한 소프트웨어 등을 지원했다.

테크매치의 경우 봉사에 필요한 돈은 MVP들 본인이 부담하는 경우가 많다. MVP들은 MS가 아닌 자신의 봉사활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 MS는 최소한의 지원만 한다.

권 이사는 비용을 늘리지 않으면서 이들에게 뭔가 보답을 하기 위해 회사 고문변호사들을 통한 법률자문 서비스를 시작했다.

MVP들은 비즈니스나 생활 속에서 부딪히는 법률적 문제들을 한국MS의 변호사들과 상의해 해결하고 있다.

●펀(fun)하면 시키지 않은 일도…

한국 MS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펼치는 봉사 외에 회사가 정책적으로 하는 사회사업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비정부기구(NGO) 사회단체 지원.

한국MS는 한국정보문화진흥원, 케어코리아, 한국청년정책 연구원 등과 노인 정보화사업, 탈북청소년 컴퓨터 교육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이미 관계를 맺고 있는 NGO외에 권 이사는 사회공헌 담당으로 발령 나자마자 경실련, 공동모금회, 아름다운 재단, 녹색연합 등 NGO를 찾아다니며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조사했다.

회사 입장에서 권이사가 이처럼 NGO를 만나고 다니는 것은 ‘꼭 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하지만 권 이사는 “즐거우니까 한다”며 일을 멈추지 않았다.

권이사의 눈에 NGO는 매우 비효율적으로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고물 컴퓨터에, 철지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며 상담을 하러온 사람의 대화 내용을 종이에 받아 적어서는 ‘봉사의 능률’이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게 권 이사의 판단이었다.

필요한 소프트웨어와 장비를 지원하고 IT교육을 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NGO를 비롯한 일반인들은 MS가 기술 지원을 하는 것을 곱게 보지 않았다.

“독점 기업이 NGO들까지도 정품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게 해 돈을 벌려 한다”는 얘기가 들렸다.

권 이사는 서둘지 않았다. 꾸준히 NGO들과 관계를 유지하며 진심을 알아주기를 1년여간 기다렸고 지난해 하나둘 NGO들이 마음을 열면서 권 이사의 도움으로 컴퓨터를 업그레이드 했다.

지난해 4월에는 NGO 대표들이 모여 NGO 활동에 필요한 IT기술에 대해 토론을 벌이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권 이사는 내친김에 NGO를 위한 인터넷홈페이지도 개설해 지방 NGO들도 토론 모습을 동영상으로 지켜보고 필요한 정보를 얻어가도록 했다.

권 이사는 이밖에 국내 15개 컴퓨터 보조 공학기기 업체들과 장애인들을 위한 정보통신 보조기기 개발 지원 사업을 펼치는 등 ‘회사에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고 있다.

올해에는 정보문화진흥원 및 보조 공학기기 업체들과 장애인 관련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전시하는 ‘억세서빌리티 랩’을 국내에 세울 예정이다.

그동안 서로 정보공유를 하지 못해 제품 개발에 어려움을 겪어온 업체들이 MS의 기술지원과 서로간의 기술 교류로 제품 품질을 높이는 동시에 이 전시관을 통해 해외 바이어를 유치할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봉사는 결국 회사를 위한 활동”

권이사는 “봉사는 개인이 자발적으로 하고 회사는 지원하는 형태가 맞지만, 결국 봉사의 결실은 기업이 따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기업 이미지가 좋지 않으면 제품을 구매하지 않겠다, 기업 이미지가 좋으면 제품이 30% 비싸도 구입하겠다는 등의 조사결과는 여기저기서 이미 너무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습니다.”

사회공헌이 기업이 평소 하지 않던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기업의 핵심역량과 연결시켜야 한다는 인식도 CEO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는 게 권 이사의 설명.

“사실 불우 이웃, 장애인도 넓고 멀리 보면 고객입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을 뻗치면, 나중에 사정이 좋아졌을 때 이 분들은 MS의 소비자가 돼 주실 거예요.”

권이사는 “과거 사회공헌을 특징짓는 키워드는 ‘비용’ ‘동원’ ‘손실’ 등이었으나 앞으로는 ‘경영’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사회공헌, 봉사활동을 경험해본 직원들에게 설문을 돌렸습니다. 응답자 거의 전원은 ‘평소 느낄 수 없었던 성취감’을 느꼈다고 대답했습니다. 순수하게 함께 봉사에 나서는 동료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는 반응도 많았습니다.”

“억지로 하는 일은 표정이 나오지 않는다”, “누구를 돕는다는 건 너무 심한 자기만족이다”라고 말하는 권 이사는 “봉사활동에서 얻어진 애사심과 동료애는 회사 경쟁력에 그대로 반영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영상=동아닷컴 정주희 기자 zoo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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