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10]중동 강호들도 제친 北 축구 급성장의 비결은?

등록 2009.03.10.
(박제균 앵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3월 10일 동아뉴스 스테이션입니다.

최근 북한 축구의 상승세가 만만치 않습니다. 한국과는 4연속 무승부를 기록했고 2010년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전에서는 승점 7점으로 중동의 강호 이란과 사우디를 제치고 조 2위에 올라있습니다.

(김현수 앵커) 북한은 다음달 1일 서울에서 월드컵 최종 진출이 달린 운명의 한판 승부를 벌일 예정입니다. 북한 축구가 최근 무섭게 성장한 비결은 무엇인지, 북한에서 축구의 인기는 어느 정도인지, 2000년대 초반 북한에서 탈북한 국제부 주성하 기자와 함께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주 기자, 북한 축구의 급성장 비결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주성하) 한국에 ‘도하의 기적’으로 널리 알려진 1993년 미국월드컵 최종예선전이 1990년대 북한이 국제무대에 나섰던 마지막 경기였습니다. 이 경기에서 북한은 단 1승만 챙기고 나머지 경기는 전부 패배했습니다. 이 경기가 끝난 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대노했습니다. 국가체육위원회 부위원장이 당시 단장을 맡았는데 그는 패배의 책임을 지고 혁명화라는 명목으로 평양철도공장에 노동자로 강등돼야 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실력이 어느 정도 쌓인 뒤에 국제무대에 나가라는 지시도 하달했습니다. 그때부터 10년 넘게 북한 축구의 와신상담이 이어졌습니다.

한국과 다시 맞닥뜨린 것은 12년이 지난 2005년이었습니다. 요즘 북한 축구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특히 홍영조 등 자국 선수를 외국 리그에 파견하고 일본 리그에서 뛰는 정대세는 물론 남한 리그에서 뛰는 안영학까지 대표팀에 선발하는 등 한마디로 축구 분야에선 과감한 개방이 이뤄졌습니다. 여러 해석이 있겠지만 저는 북한 축구의 급성장을 이끈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개방정책에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북한 대표팀은 장기간의 합숙훈련이 가능하기 때문에 선수들이 서로 호흡을 맞출 시간이 충분하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박 앵커) 예, 그렇군요. 그럼에도 북한 축구는 아직 세계적 수준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가장 큰 약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주) 북한 축구가 정신력은 매우 뛰어나지만 체격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는 북한 경제난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데요. 어린이들에 대한 전반적인 영양 공급이 매우 뒤떨어지다 보니 키가 크지 않습니다. 북한 감독들은 전국을 돌면서 선수들을 모집하는데요. 이들이 아쉬워하는 점이 바로 “체격이 좋은 선수를 찾을 수 없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선수를 10대 중반에 모집해 그때부터 잘 먹여 봐도 이미 늦은 것입니다. 그리고 포지션 별로 볼 때는 골키퍼가 가장 큰 약점입니다. 어려서부터 골키퍼를 양성하는 시스템이 잘 돼 있지 않은 영향이 큽니다.

(김 앵커) 북한 주민들도 남측 못지않게 축구에 대한 인기가 높다고 들었는데요. 현지 주민들의 축구에 대한 사랑은 어느 정돕니까.

(주) 북한 주민들도 축구를 매우 사랑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남쪽보다는 열기가 좀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남한은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과 박지성 선수 등 해외파 선수들의 활약 등으로 축구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축구에 대한 관심을 끌만한 이슈가 지금까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 조별진출이 이뤄진다면 축구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곳에도 축구 매니아들은 존재합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은 평양의 보통강호텔 등 일부 외국인 숙소에서만 방영됐는데 이것을 들어가 볼 수 있던 사람은 외교관들뿐이었습니다. 한 외교관은 새벽에 집에서 경기 결과를 기다리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아들아, 우리 민족은 이렇게도 축구를 사랑하는데 우리 팀은 어디로 사라졌느냐”하고 울분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박 앵커) 전에 북한 축구의 발전이 개방정책에 기인한다고 말하셨는데 그렇다면 축구의 개방이 남북관계나 외부세계로의 개방에 어떤 연결 고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주) 올해 1월 북한에서 월드컵 경기를 방영하는 도중에 축구 해설자가 박지성 선수를 “혼자 두 몫을 하는 선수”라고 소개했다고 합니다. 이는 한국 언론에도 보도된 바 있는데요. 이는 과거엔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2000년 초반만 하더라도 북한은 월드컵 조별리그 일정을 소개하면서 남한의 이름은 빠뜨리곤 했습니다. 다시 말해 남한이 들어가 있는 조는 3개 팀만 소개하는 거죠. 그러면 북한 주민들은 “아, 이 조의 공란이 남조선이구나”하고 미뤄 짐작하곤 했습니다. 북한에 변화가 감지된 것은 2002년 서울 월드컵 때부터입니다. 북한은 과감히 한국팀의 4강 소식과 경기장면을 방영했습니다. 아마 김 위원장의 지시가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남한에서 진행하는 경기도 서슴지 않고 방영합니다. 북한 주민들은 축구 경기를 통해서나마 남측은 물론 외국을 체험하는 것이죠. 북한 축구가 앞으로 좋은 성과를 거둔다면 이런 추세는 더 커질 것이라고 봅니다.

(박 앵커) 탁구가 중국의 개방을 불러왔듯이, 축구가 북한의 개방을 가져왔으면 좋겠습니다. 주 기자 수고했습니다.

(박제균 앵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3월 10일 동아뉴스 스테이션입니다.

최근 북한 축구의 상승세가 만만치 않습니다. 한국과는 4연속 무승부를 기록했고 2010년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전에서는 승점 7점으로 중동의 강호 이란과 사우디를 제치고 조 2위에 올라있습니다.

(김현수 앵커) 북한은 다음달 1일 서울에서 월드컵 최종 진출이 달린 운명의 한판 승부를 벌일 예정입니다. 북한 축구가 최근 무섭게 성장한 비결은 무엇인지, 북한에서 축구의 인기는 어느 정도인지, 2000년대 초반 북한에서 탈북한 국제부 주성하 기자와 함께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주 기자, 북한 축구의 급성장 비결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주성하) 한국에 ‘도하의 기적’으로 널리 알려진 1993년 미국월드컵 최종예선전이 1990년대 북한이 국제무대에 나섰던 마지막 경기였습니다. 이 경기에서 북한은 단 1승만 챙기고 나머지 경기는 전부 패배했습니다. 이 경기가 끝난 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대노했습니다. 국가체육위원회 부위원장이 당시 단장을 맡았는데 그는 패배의 책임을 지고 혁명화라는 명목으로 평양철도공장에 노동자로 강등돼야 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실력이 어느 정도 쌓인 뒤에 국제무대에 나가라는 지시도 하달했습니다. 그때부터 10년 넘게 북한 축구의 와신상담이 이어졌습니다.

한국과 다시 맞닥뜨린 것은 12년이 지난 2005년이었습니다. 요즘 북한 축구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특히 홍영조 등 자국 선수를 외국 리그에 파견하고 일본 리그에서 뛰는 정대세는 물론 남한 리그에서 뛰는 안영학까지 대표팀에 선발하는 등 한마디로 축구 분야에선 과감한 개방이 이뤄졌습니다. 여러 해석이 있겠지만 저는 북한 축구의 급성장을 이끈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개방정책에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북한 대표팀은 장기간의 합숙훈련이 가능하기 때문에 선수들이 서로 호흡을 맞출 시간이 충분하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박 앵커) 예, 그렇군요. 그럼에도 북한 축구는 아직 세계적 수준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가장 큰 약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주) 북한 축구가 정신력은 매우 뛰어나지만 체격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는 북한 경제난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데요. 어린이들에 대한 전반적인 영양 공급이 매우 뒤떨어지다 보니 키가 크지 않습니다. 북한 감독들은 전국을 돌면서 선수들을 모집하는데요. 이들이 아쉬워하는 점이 바로 “체격이 좋은 선수를 찾을 수 없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선수를 10대 중반에 모집해 그때부터 잘 먹여 봐도 이미 늦은 것입니다. 그리고 포지션 별로 볼 때는 골키퍼가 가장 큰 약점입니다. 어려서부터 골키퍼를 양성하는 시스템이 잘 돼 있지 않은 영향이 큽니다.

(김 앵커) 북한 주민들도 남측 못지않게 축구에 대한 인기가 높다고 들었는데요. 현지 주민들의 축구에 대한 사랑은 어느 정돕니까.

(주) 북한 주민들도 축구를 매우 사랑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남쪽보다는 열기가 좀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남한은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과 박지성 선수 등 해외파 선수들의 활약 등으로 축구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축구에 대한 관심을 끌만한 이슈가 지금까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 조별진출이 이뤄진다면 축구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곳에도 축구 매니아들은 존재합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은 평양의 보통강호텔 등 일부 외국인 숙소에서만 방영됐는데 이것을 들어가 볼 수 있던 사람은 외교관들뿐이었습니다. 한 외교관은 새벽에 집에서 경기 결과를 기다리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아들아, 우리 민족은 이렇게도 축구를 사랑하는데 우리 팀은 어디로 사라졌느냐”하고 울분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박 앵커) 전에 북한 축구의 발전이 개방정책에 기인한다고 말하셨는데 그렇다면 축구의 개방이 남북관계나 외부세계로의 개방에 어떤 연결 고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주) 올해 1월 북한에서 월드컵 경기를 방영하는 도중에 축구 해설자가 박지성 선수를 “혼자 두 몫을 하는 선수”라고 소개했다고 합니다. 이는 한국 언론에도 보도된 바 있는데요. 이는 과거엔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2000년 초반만 하더라도 북한은 월드컵 조별리그 일정을 소개하면서 남한의 이름은 빠뜨리곤 했습니다. 다시 말해 남한이 들어가 있는 조는 3개 팀만 소개하는 거죠. 그러면 북한 주민들은 “아, 이 조의 공란이 남조선이구나”하고 미뤄 짐작하곤 했습니다. 북한에 변화가 감지된 것은 2002년 서울 월드컵 때부터입니다. 북한은 과감히 한국팀의 4강 소식과 경기장면을 방영했습니다. 아마 김 위원장의 지시가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남한에서 진행하는 경기도 서슴지 않고 방영합니다. 북한 주민들은 축구 경기를 통해서나마 남측은 물론 외국을 체험하는 것이죠. 북한 축구가 앞으로 좋은 성과를 거둔다면 이런 추세는 더 커질 것이라고 봅니다.

(박 앵커) 탁구가 중국의 개방을 불러왔듯이, 축구가 북한의 개방을 가져왔으면 좋겠습니다. 주 기자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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