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펠링 비(영어단어 철자 맞히기 대회) 결승전
등록 2009.06.08.대회 참가자들의 사인을 받거나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던 1000여 명의 관중이 일제히 숨을 죽였다. 무대 위 의자에 앉은 스펠러(Speller·‘스펠링 비’ 대회 참가자를 이르는 말)들은 손에 깍지를 끼고 마른 침을 삼켰다.
지난달 28일 미국 워싱턴 DC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제82회 내셔널 스펠링 비(National Spelling Bee·영어단어 철자 맞히기 대회) 결승전. 한국, 미국, 중국, 자메이카, 뉴질랜드 등 13개국에서 출전한 293명 중 11명만이 결승에 진출했다. 참가자 대부분은 ‘strathspey(스코틀랜드의 춤 이름)’, ‘Maecenas(고대 로마의 정치가)’, ‘palatschinken(유럽식 팬케이크)’처럼 세계 각국의 문화, 예술, 역사 등과 관련한 난도 높은 단어의 벽을 넘지 못했다.
오후 8시. 결승전 첫 번째 라운드가 시작됐다. 30여 분 만에 첫 번째 탈락자가 나왔다. 158번 미국인 투사 히에라 양(13). 문제는 ‘herniorrhaphy(헤르니아 봉합술)’, 의학용어였다. 단어 중간의 ‘r’자 하나를 빠뜨린 히에라 양은 ‘땡’ 소리와 함께 탈락이 선언되자 울음을 터뜨렸다. 관중과 대회 참가자들은 “Well done(잘 했다)!”을 외치며 히에라 양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지난해 대회 준우승자로 기대를 모았던 139번 미국인 싯달스 챈드 군(13)이 세 번째로 탈락하자 관중석에선 아쉬움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고개를 숙이자 관중들은 열렬한 기립박수로 격려했다.
결승이 시작된 지 두 시간여 만에 올해의 챔피언이 가려졌다. ‘laodicean(종교나 정치 등에 냉담한 또는 의견이 불분명한)’의 철자를 정확히 맞힌 110번 인도계 미국인 카비아 시바샹카라 양(13·미국 캘리포니아 트레일 중학교 8학년)이었다.
네 번의 도전 끝에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시바샹카라 양은 ‘laodicean’이란 단어가 그리스어로부터 유래됐으며 단어를 구성하는 부분 철자 ‘dicea’(의견)가 무슨 뜻인지도 정확히 알아 맞혔다.
1981년 우승자이자 이번 대회 총괄책임자인 페이지 킴블 씨는 “‘가미카제(Kamikaze·제2차 세계대전 중 자살공격을 감행한 일본 공군)’처럼 세계 역사와 문화, 단어의 어원을 모르면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다수 출제된다”면서 “단어의 정의나 문장 내 쓰임, 정확한 발음을 모른 채 철자만 달달 외워선 지역 예선도 통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세계적 영어대회인 내셔널 스펠링 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통합적 영어학습’이 필수적이라고 대회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언어학습의 기초인 어휘를 어원 등 뿌리부터 깊이 있게 공부함으로써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능력을 통합적으로 기르는 영어학습법이 그것. 그렇다면 이른바 ‘스펠링 비’ 식의 통합적 영어학습법은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 완성될까?
● 영어의 DNA를 파헤쳐라
“5년 전부터 배우기 시작한 프랑스어가 영어공부에 큰 도움이 됐어요. 예를 들어 ‘큐’라고 발음되는 어떤 단어의 어원이 프랑스어라면 영어단어의 철자는 ‘que’가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어원을 알면 발음만으로도 처음 본 단어의 뜻과 의미를 유추할 수도 있어요.”
올해 중국 대표로 이 대회에 처음 출전한 쿤 재키 치아오 군(12)은 새로운 단어를 접할 때마다 그 단어의 ‘어원(language of origin)’을 확인한다. 영어의 뿌리를 알면 의미와 단어 활용법을 쉽게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영어의 85%는 프랑스어, 그리스어, 독일어, 라틴어 등으로부터 유래됐다. 단어의 어원을 통해 그 뜻을 유추하거나 단어의 형성과정을 분석하며 공부하면 영어어휘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 예를 들어 원자를 뜻하는 영어단어 ‘atom’은 그리스어로 부정의 의미를 갖는 ‘a’와 ‘자르다’의 의미인 ‘tom’이 결합된 것. 그리스어로 해석하자면 ‘더 이상 자를 수 없다’란 의미로,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인 원자를 뜻하는 단어란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새로운 단어를 발견할 때마다 ‘단어-어원-뜻-발음-스펠링’ 식으로 세분화해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면 어휘를 더 오래 기억한다.
● 영어단어 뜯어보기
단어를 뜯어보는 관찰력도 영어단어를 익히는 데 도움이 된다. 특정의미를 갖는 접두어나 접미어가 단어의 뜻을 유추하는 실마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뜻하는 영어단어 ‘bicycle’은 ‘두 개’를 뜻하는 접두어 ‘bi’와 ‘원’을 뜻하는 ‘cycle’이 결합돼 만들어진 단어. ‘어디에나 존재하는’의 ‘omnipresent’도 ‘omni(모든)’과 ‘present(존재하는)’란 단어가 결합된 것이다.
● 찾고, 쓰고, 말하고!
스펠링 비식 학습법은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능력을 고루 쌓는데 효과적이다. 단어의 철자를 정확하게 익히기 위해 그 단어의 뜻, 어원은 물론 단어를 활용한 예문까지 공부해야 하기 때문.
단어의 철자를 맞히는 것 뿐 아니라 단어 자체를 정확히 발음해야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대회 참가자들은 단어를 큰소리로 읽는 연습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똑같은 소리로 발음되지만 철자가 틀린 단어를 함께 묶어 공부하는 것도 필수다.
집에서 스펠링 비식 학습법을 벤치마킹해보자. 영어책을 읽을 땐 책에 딸린 테이프나 CD를 들으며 단어가 어떻게 발음되는지 정확하게 익히고, 그대로 따라하며 큰 소리로 읽는다. 새롭게 알게 된 단어는 사전에서 그 뜻과 어원, 단어가 사용된 예문을 찾아 노트에 기록해 놓는다. 이렇게 쓴 노트는 ‘나만의 사전’으로 계속 활용한다.
공부했던 단어를 활용해 1개월 단위로 집 또는 학교에서 ‘스펠링 비’ 대회를 열고, 게임을 하듯 단어를 익히면 흥미롭게 어휘력을 키울 수 있다.
(도움말: 박명수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 국제교사교육원 원장, 에드 로 덴버 메트로폴리탄 주립대학 영어학 명예교수)
[스펠링 비(Spelling Bee)란]
미국의 사전 출판사인 스크립스 사가 주최하는 스펠링 비는 단어의 철자를 한 자씩 발음해 맞히는 세계적 규모의 영어대회다. 예선시험(지필·오랄 테스트) 점수로 준결승 진출자가 결정되며, 준결승전부터는 토너먼트로 진행된다. 지역 또는 국가 대표로 뽑힌 초·중학생들이 매년 5월 미국 워싱턴 DC에 모여 우승자를 가린다. 승자에겐 4만 달러의 상금과 부상, 명예가 주어진다.
참가자들은 경쟁과 동시에 파티, 관광 등을 즐기며 세계적으로 인맥을 쌓고 견문을 넓힌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지역별 국가별로 치러지는 스펠링 비 참가자 선발대회엔 매년 수백~수천 명의 학생이 몰린다. 금요일 저녁 황금 시간대에 미국 전역에 생중계 되는 이 대회는 매년 1000만 명 이상이 시청한다.
우리나라에선 서지원 양(13·경기 고양시 한내초등학교 6학년)이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이 대회에 출전했다. 한국 대표 선발하는 대회는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이 주최하고 영어교육전문기업인 윤선생영어교실의 후원으로 매년 2월 서울에서 열린다. 대회 공식 지정 사전은 메리엄-웹스터 사전.
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
대회시작을 알리는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미국 3대 방송사 중 하나인 ABC와 스포츠 전문 방송채널 ESPN의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대회 참가자들의 사인을 받거나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던 1000여 명의 관중이 일제히 숨을 죽였다. 무대 위 의자에 앉은 스펠러(Speller·‘스펠링 비’ 대회 참가자를 이르는 말)들은 손에 깍지를 끼고 마른 침을 삼켰다.
지난달 28일 미국 워싱턴 DC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제82회 내셔널 스펠링 비(National Spelling Bee·영어단어 철자 맞히기 대회) 결승전. 한국, 미국, 중국, 자메이카, 뉴질랜드 등 13개국에서 출전한 293명 중 11명만이 결승에 진출했다. 참가자 대부분은 ‘strathspey(스코틀랜드의 춤 이름)’, ‘Maecenas(고대 로마의 정치가)’, ‘palatschinken(유럽식 팬케이크)’처럼 세계 각국의 문화, 예술, 역사 등과 관련한 난도 높은 단어의 벽을 넘지 못했다.
오후 8시. 결승전 첫 번째 라운드가 시작됐다. 30여 분 만에 첫 번째 탈락자가 나왔다. 158번 미국인 투사 히에라 양(13). 문제는 ‘herniorrhaphy(헤르니아 봉합술)’, 의학용어였다. 단어 중간의 ‘r’자 하나를 빠뜨린 히에라 양은 ‘땡’ 소리와 함께 탈락이 선언되자 울음을 터뜨렸다. 관중과 대회 참가자들은 “Well done(잘 했다)!”을 외치며 히에라 양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지난해 대회 준우승자로 기대를 모았던 139번 미국인 싯달스 챈드 군(13)이 세 번째로 탈락하자 관중석에선 아쉬움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고개를 숙이자 관중들은 열렬한 기립박수로 격려했다.
결승이 시작된 지 두 시간여 만에 올해의 챔피언이 가려졌다. ‘laodicean(종교나 정치 등에 냉담한 또는 의견이 불분명한)’의 철자를 정확히 맞힌 110번 인도계 미국인 카비아 시바샹카라 양(13·미국 캘리포니아 트레일 중학교 8학년)이었다.
네 번의 도전 끝에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시바샹카라 양은 ‘laodicean’이란 단어가 그리스어로부터 유래됐으며 단어를 구성하는 부분 철자 ‘dicea’(의견)가 무슨 뜻인지도 정확히 알아 맞혔다.
1981년 우승자이자 이번 대회 총괄책임자인 페이지 킴블 씨는 “‘가미카제(Kamikaze·제2차 세계대전 중 자살공격을 감행한 일본 공군)’처럼 세계 역사와 문화, 단어의 어원을 모르면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다수 출제된다”면서 “단어의 정의나 문장 내 쓰임, 정확한 발음을 모른 채 철자만 달달 외워선 지역 예선도 통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세계적 영어대회인 내셔널 스펠링 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통합적 영어학습’이 필수적이라고 대회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언어학습의 기초인 어휘를 어원 등 뿌리부터 깊이 있게 공부함으로써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능력을 통합적으로 기르는 영어학습법이 그것. 그렇다면 이른바 ‘스펠링 비’ 식의 통합적 영어학습법은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 완성될까?
● 영어의 DNA를 파헤쳐라
“5년 전부터 배우기 시작한 프랑스어가 영어공부에 큰 도움이 됐어요. 예를 들어 ‘큐’라고 발음되는 어떤 단어의 어원이 프랑스어라면 영어단어의 철자는 ‘que’가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어원을 알면 발음만으로도 처음 본 단어의 뜻과 의미를 유추할 수도 있어요.”
올해 중국 대표로 이 대회에 처음 출전한 쿤 재키 치아오 군(12)은 새로운 단어를 접할 때마다 그 단어의 ‘어원(language of origin)’을 확인한다. 영어의 뿌리를 알면 의미와 단어 활용법을 쉽게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영어의 85%는 프랑스어, 그리스어, 독일어, 라틴어 등으로부터 유래됐다. 단어의 어원을 통해 그 뜻을 유추하거나 단어의 형성과정을 분석하며 공부하면 영어어휘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 예를 들어 원자를 뜻하는 영어단어 ‘atom’은 그리스어로 부정의 의미를 갖는 ‘a’와 ‘자르다’의 의미인 ‘tom’이 결합된 것. 그리스어로 해석하자면 ‘더 이상 자를 수 없다’란 의미로,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인 원자를 뜻하는 단어란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새로운 단어를 발견할 때마다 ‘단어-어원-뜻-발음-스펠링’ 식으로 세분화해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면 어휘를 더 오래 기억한다.
● 영어단어 뜯어보기
단어를 뜯어보는 관찰력도 영어단어를 익히는 데 도움이 된다. 특정의미를 갖는 접두어나 접미어가 단어의 뜻을 유추하는 실마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뜻하는 영어단어 ‘bicycle’은 ‘두 개’를 뜻하는 접두어 ‘bi’와 ‘원’을 뜻하는 ‘cycle’이 결합돼 만들어진 단어. ‘어디에나 존재하는’의 ‘omnipresent’도 ‘omni(모든)’과 ‘present(존재하는)’란 단어가 결합된 것이다.
● 찾고, 쓰고, 말하고!
스펠링 비식 학습법은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능력을 고루 쌓는데 효과적이다. 단어의 철자를 정확하게 익히기 위해 그 단어의 뜻, 어원은 물론 단어를 활용한 예문까지 공부해야 하기 때문.
단어의 철자를 맞히는 것 뿐 아니라 단어 자체를 정확히 발음해야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대회 참가자들은 단어를 큰소리로 읽는 연습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똑같은 소리로 발음되지만 철자가 틀린 단어를 함께 묶어 공부하는 것도 필수다.
집에서 스펠링 비식 학습법을 벤치마킹해보자. 영어책을 읽을 땐 책에 딸린 테이프나 CD를 들으며 단어가 어떻게 발음되는지 정확하게 익히고, 그대로 따라하며 큰 소리로 읽는다. 새롭게 알게 된 단어는 사전에서 그 뜻과 어원, 단어가 사용된 예문을 찾아 노트에 기록해 놓는다. 이렇게 쓴 노트는 ‘나만의 사전’으로 계속 활용한다.
공부했던 단어를 활용해 1개월 단위로 집 또는 학교에서 ‘스펠링 비’ 대회를 열고, 게임을 하듯 단어를 익히면 흥미롭게 어휘력을 키울 수 있다.
(도움말: 박명수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 국제교사교육원 원장, 에드 로 덴버 메트로폴리탄 주립대학 영어학 명예교수)
[스펠링 비(Spelling Bee)란]
미국의 사전 출판사인 스크립스 사가 주최하는 스펠링 비는 단어의 철자를 한 자씩 발음해 맞히는 세계적 규모의 영어대회다. 예선시험(지필·오랄 테스트) 점수로 준결승 진출자가 결정되며, 준결승전부터는 토너먼트로 진행된다. 지역 또는 국가 대표로 뽑힌 초·중학생들이 매년 5월 미국 워싱턴 DC에 모여 우승자를 가린다. 승자에겐 4만 달러의 상금과 부상, 명예가 주어진다.
참가자들은 경쟁과 동시에 파티, 관광 등을 즐기며 세계적으로 인맥을 쌓고 견문을 넓힌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지역별 국가별로 치러지는 스펠링 비 참가자 선발대회엔 매년 수백~수천 명의 학생이 몰린다. 금요일 저녁 황금 시간대에 미국 전역에 생중계 되는 이 대회는 매년 1000만 명 이상이 시청한다.
우리나라에선 서지원 양(13·경기 고양시 한내초등학교 6학년)이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이 대회에 출전했다. 한국 대표 선발하는 대회는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이 주최하고 영어교육전문기업인 윤선생영어교실의 후원으로 매년 2월 서울에서 열린다. 대회 공식 지정 사전은 메리엄-웹스터 사전.
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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