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의 조선학교를 아시나요?
등록 2009.06.09.종합격투기 대회 ‘Hero`s’의 메인이벤터로 나선 추성훈은 상대 오쿠다 마사카츠를 1라운드 TKO로 꺾었다.
환호하는 관중들을 바라보던 추성훈은 가쁜 숨을 고르며 마이크를 잡았다.
“저 지금 한국 사람 아니예요. (국적이) 일본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도 여기 가슴 안에 들어가는 피는 완전 한국입니다.”
편견과 차별을 이기지 못한 추성훈은 끝내 일본으로 귀화했다. 일부 국내 팬들은 추성훈의 선택을 비난했다. 하지만 결단을 내리는 순간까지 매 순간 고민했을 추성훈. 그의 고민은 그만의 것이 아니었다.
추성훈의 양 어깨에 나란히 붙어있는 태극기와 일장기.
그것은 모든 재일교포의 고민이다.
그와 같은 고민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다큐멘터리 작가 안해룡 (48)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 8일, 그의 전시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_나고야’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의 전시관을 찾았다.
의료기기상이 밀집해있는 좁은 골목을 비집고 들어가니 낮은 담으로 둘러쳐진 작은 뜰이 있다. 문패도 없고, 인적도 없어 언듯 흉가인가 싶기도 한 이 집이 안해룡전이 열리고 있는 대안공간건희다. 칠이 더 벗겨진 나무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탁 트인 사방이 온통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이 사진의 주인공은 안해룡이 지난 2년간 일본 나고야에 머물며 만난 조선학교의 아이들이다. 안해룡은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매 순간 고민해야 하는 재일교포들을 재조명해보고 싶다고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부끄러움`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는 `부끄러움`이 있다.
맹자의 사단설(四端說)에 이런 말이 있다.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無羞惡之心 非人也)
올 초 개봉한 안해룡의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는 우리에게 부끄러운 마음을 일깨워 주었다.
이 영화는 일본 군 위안부로 징용당했던 송신도 할머니의 법정 투쟁을 그린 작품이다.
여기에는 송신도 할머니를 지원하는 모임이 등장한다. 이들은 대부분 일본인이다. 그 일본인들과‘재판에서는 졌지만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고 외치는 송신도 할머니까지.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기각을 반복하는 일본 재판부를 제외하면 여기 등장하는 사람들은 ‘옳지 못한 것’을 ‘옳지 못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이제껏 제대로된 목소리 한 번 내보지 못했던 우리에게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다.
현재 진행중인 안해룡의‘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나고야’전 역시 부끄러움이 담겨있다.
이번에는 우리의 무지와 편견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우리 영화에서 그려진 재일교포의 모습은 딱 세 가지 부류입니다. 부자, 야쿠자, 아니면 북한의 스파이.”
안해룡은 우리의 편견이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한번도 재일교포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고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왜 일본에서 정착하게 됐는지, 왜 돌아오지 않는지 고찰해보기도 전에 단지 우리말에 서투르다는 이유로 우리는 그들을 ‘반 쪽발이’취급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안해룡이 재일교포에 대해 취재하면서 주목하게 된 것은 아직 남아있는 조선학교다. 흔히 조선학교라고 하면 북한 국적의 조총련계 동포들이 다니는 학교라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남북 정상회담 이후로 경계가 무너져 현재는 조선학교 학생의 절반 정도가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교포라고 한다.
안해룡은 조선학교가 단순히 교사와 학생의 공간이 아니라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고 계승하는 공간이라고 본다. 1945년 해방 이후 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재일동포들에게 민족의 말과 전통을 가르쳐 주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안해룡은 나고야 지역의 7개 조선학교가 60여년의 세월동안 1개로 통합되는 과정을 취재했다. 안해룡은 그들에 대한 우리의 무지에 비해 조선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전통의 승계는 놀라울 정도였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들을 버렸지만 그들은 조국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죠.”
‘정체성’을 찾아서.
안해룡의 작품에는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담겨있다.
이번 전시는 재일교포 사회가 정체성을 지켜가는 과정이 담겨있다. 차기작도 갈피를 잃은 우리나라의 무(武)가 정체성을 찾는 과정을 다룰 예정이다. 다른 영화를 만든다고 해서 재일교포 사회를 조명하는 작업이 끝난 것은 아니다. 다만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인 만큼 천천히 진행 할 예정이다. 아직도 재일사회에서 들어야 할 내용이 너무 많고 다 듣더라도 쉽게 정리할 수 없을 거라는 안해룡.
재일사회라는 특수한 공간을 알기위해 도요하시와 나고야를 넘나들며 보낸 7년간의 시간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왜 그들은 이국에 있으면서 조국에 대한 향수나 정체성을 버리지 않는가. 왜 그렇게 찾으려고 노력하는가.
이런 것들에 대한 고민이 이제 시작 된 겁니다.”
동아닷컴 백완종 기자 100pd@donga.com
2005년 11월 5일,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
종합격투기 대회 ‘Hero`s’의 메인이벤터로 나선 추성훈은 상대 오쿠다 마사카츠를 1라운드 TKO로 꺾었다.
환호하는 관중들을 바라보던 추성훈은 가쁜 숨을 고르며 마이크를 잡았다.
“저 지금 한국 사람 아니예요. (국적이) 일본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도 여기 가슴 안에 들어가는 피는 완전 한국입니다.”
편견과 차별을 이기지 못한 추성훈은 끝내 일본으로 귀화했다. 일부 국내 팬들은 추성훈의 선택을 비난했다. 하지만 결단을 내리는 순간까지 매 순간 고민했을 추성훈. 그의 고민은 그만의 것이 아니었다.
추성훈의 양 어깨에 나란히 붙어있는 태극기와 일장기.
그것은 모든 재일교포의 고민이다.
그와 같은 고민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다큐멘터리 작가 안해룡 (48)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 8일, 그의 전시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_나고야’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의 전시관을 찾았다.
의료기기상이 밀집해있는 좁은 골목을 비집고 들어가니 낮은 담으로 둘러쳐진 작은 뜰이 있다. 문패도 없고, 인적도 없어 언듯 흉가인가 싶기도 한 이 집이 안해룡전이 열리고 있는 대안공간건희다. 칠이 더 벗겨진 나무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탁 트인 사방이 온통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이 사진의 주인공은 안해룡이 지난 2년간 일본 나고야에 머물며 만난 조선학교의 아이들이다. 안해룡은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매 순간 고민해야 하는 재일교포들을 재조명해보고 싶다고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부끄러움`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는 `부끄러움`이 있다.
맹자의 사단설(四端說)에 이런 말이 있다.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無羞惡之心 非人也)
올 초 개봉한 안해룡의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는 우리에게 부끄러운 마음을 일깨워 주었다.
이 영화는 일본 군 위안부로 징용당했던 송신도 할머니의 법정 투쟁을 그린 작품이다.
여기에는 송신도 할머니를 지원하는 모임이 등장한다. 이들은 대부분 일본인이다. 그 일본인들과‘재판에서는 졌지만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고 외치는 송신도 할머니까지.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기각을 반복하는 일본 재판부를 제외하면 여기 등장하는 사람들은 ‘옳지 못한 것’을 ‘옳지 못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이제껏 제대로된 목소리 한 번 내보지 못했던 우리에게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다.
현재 진행중인 안해룡의‘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나고야’전 역시 부끄러움이 담겨있다.
이번에는 우리의 무지와 편견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우리 영화에서 그려진 재일교포의 모습은 딱 세 가지 부류입니다. 부자, 야쿠자, 아니면 북한의 스파이.”
안해룡은 우리의 편견이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한번도 재일교포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고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왜 일본에서 정착하게 됐는지, 왜 돌아오지 않는지 고찰해보기도 전에 단지 우리말에 서투르다는 이유로 우리는 그들을 ‘반 쪽발이’취급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안해룡이 재일교포에 대해 취재하면서 주목하게 된 것은 아직 남아있는 조선학교다. 흔히 조선학교라고 하면 북한 국적의 조총련계 동포들이 다니는 학교라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남북 정상회담 이후로 경계가 무너져 현재는 조선학교 학생의 절반 정도가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교포라고 한다.
안해룡은 조선학교가 단순히 교사와 학생의 공간이 아니라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고 계승하는 공간이라고 본다. 1945년 해방 이후 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재일동포들에게 민족의 말과 전통을 가르쳐 주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안해룡은 나고야 지역의 7개 조선학교가 60여년의 세월동안 1개로 통합되는 과정을 취재했다. 안해룡은 그들에 대한 우리의 무지에 비해 조선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전통의 승계는 놀라울 정도였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들을 버렸지만 그들은 조국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죠.”
‘정체성’을 찾아서.
안해룡의 작품에는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담겨있다.
이번 전시는 재일교포 사회가 정체성을 지켜가는 과정이 담겨있다. 차기작도 갈피를 잃은 우리나라의 무(武)가 정체성을 찾는 과정을 다룰 예정이다. 다른 영화를 만든다고 해서 재일교포 사회를 조명하는 작업이 끝난 것은 아니다. 다만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인 만큼 천천히 진행 할 예정이다. 아직도 재일사회에서 들어야 할 내용이 너무 많고 다 듣더라도 쉽게 정리할 수 없을 거라는 안해룡.
재일사회라는 특수한 공간을 알기위해 도요하시와 나고야를 넘나들며 보낸 7년간의 시간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왜 그들은 이국에 있으면서 조국에 대한 향수나 정체성을 버리지 않는가. 왜 그렇게 찾으려고 노력하는가.
이런 것들에 대한 고민이 이제 시작 된 겁니다.”
동아닷컴 백완종 기자 100p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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