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기능한국인’ ㈜쎄크 김종현 대표

등록 2009.06.23.
“꿈이요? 없었죠. 어릴 때부터 ‘먹고 사는 게’ 제겐 제일 큰 문제였는데요. 빨리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게 목표였어요. 대학은 당연히 엄두도 못 냈죠.”



중학교 때부터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학생이 있었다. 강원도 태백 광산촌에서 일하는 아버지, 어린 동생 둘과 보살핌이 필요했던 할아버지. 그는 중학교 3년 내내 아침마다 동생들 밥을 챙겨주고 집안일을 도맡았다. 주말엔 집안에 보탬이 되려고 노가리 내장을 제거하는 아르바이트도 했다. 이렇게 가난했던 그가 지금은 직원 71명에 연 매출 112억 원을 올리는 제조사 사장님이 됐다. 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이 선정하는 ‘6월 이달의 기능한국인’으로 뽑힌 (주)쎄크의 김종현(46) 대표, 그는 이 만큼 일군 비결을 한 우물을 열심히 팠던 ‘인내심’ 때문이라고 말한다.



“능력으로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양으로 승부했죠. 무조건 열심히 배웠습니다.”

공고에서 익힌 기술들은 다행히 재미있었고 적성에 맞았다. 기능올림픽에서 매달을 따면 좋은 직장에 취업할 수 있다는 선배들 말에 공고 3년간 기술 훈련에 매진했고 3학년 때 지방기능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 메달 덕에 졸업도 하기 전 삼성전자에 덜컥 붙었고 재직 2년째였던 83년,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열린 27회 국제대회 기계제도 부문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삼성 직원으로는 처음 받은 메달인 터라 더욱 의미가 있었다.



“일에 대한 집념이 생겼어요. 남들보다 더 일하는 만큼 고속승진도 했고요. 그런데 회사 생활 10년째 되던 해에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땐 젊었으니까 자신감도 있었고요. ”

김 대표는 28살에 후배 4명과 10년간 모은 돈으로 간신히 산 작은 아파트를 담보로 회사를 차렸다.

“일은 정말 열심히 했는데 수주가 불규칙하니 매출에 기복이 심했어요. 고정 매출 유지를 위해 우리만의 차별화된 제품 개발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죠”

준비되지 않은 채 벌인 사업은 만만치 않았다. 협력사의 부도로 5년간은 빚만 갚기도 했다. 팔리는 제품을 만들기 위한 상품 개발에 투자하자 조금씩 길이 보였다. 몇 년 후 반도체제조장비와 산업용 X-RAY 검사기, 전자현미경(SEM) 등을 생산하며 튼실한 기업으로 컸고 27건의 특허도 따냈다. 작년 초에는 공간 해상도 1마이크로미터급의 ‘개방형 엑스레이 발생장치’ 기술로 국가 신기술 인증(NET)도 획득했다.



김 대표는 회사를 차린 후 기능대회 선수 출신 후배들을 많이 고용했고 회사가 이 정도 규모로 큰 데는 이들 한 명 한 명의 노고가 컸다고 말했다.

“요즘 대졸자들은 취직이 안 돼 문제지만 저희는 오히려 사람을 못 구해서 난립니다.”

김종현 대표는 말이 나온 김에 기능인에 대한 사회 인식에 대해서도 한 마디 했다.

“기능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고는 있지만 여전히 우리사회는 학력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재능, 하고 싶은 일 인데 말이죠. 아이들보다 먼저 부모들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 대표는 이젠 살만하지만 아들에게도 대학을 강요하진 않았다. 오히려 공부에는 별로 적성이 없었던 아들을 설득해 공고를 보냈고 현재 그의 회사에서 사원으로 재직 중이다. 앞으로도 후배 기능인 발굴과 성장에 힘써 사회에도 일조하고 싶다는 김 대표.



기능인으로써 초심을 잃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온 그는 “머리가 돌아가지 않을 때까지만 일할 생각이에요. 직원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일을 할 순 없잖아요? 하하” 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달의 기능 한국인’은 국내 우수 기능인 성공사례를 발굴해 널리 알리려고 2006년 8월 정부가 제정한 월례 포상 제도. 대상자 추천은 연중 수시로 한국산업인력공단 6개 지역본부 및 18개 지사와 노동부 지방관서에 구비서류를 갖춰 제출하면 된다. (www.hrdkorea.or.kr)

“꿈이요? 없었죠. 어릴 때부터 ‘먹고 사는 게’ 제겐 제일 큰 문제였는데요. 빨리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게 목표였어요. 대학은 당연히 엄두도 못 냈죠.”



중학교 때부터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학생이 있었다. 강원도 태백 광산촌에서 일하는 아버지, 어린 동생 둘과 보살핌이 필요했던 할아버지. 그는 중학교 3년 내내 아침마다 동생들 밥을 챙겨주고 집안일을 도맡았다. 주말엔 집안에 보탬이 되려고 노가리 내장을 제거하는 아르바이트도 했다. 이렇게 가난했던 그가 지금은 직원 71명에 연 매출 112억 원을 올리는 제조사 사장님이 됐다. 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이 선정하는 ‘6월 이달의 기능한국인’으로 뽑힌 (주)쎄크의 김종현(46) 대표, 그는 이 만큼 일군 비결을 한 우물을 열심히 팠던 ‘인내심’ 때문이라고 말한다.



“능력으로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양으로 승부했죠. 무조건 열심히 배웠습니다.”

공고에서 익힌 기술들은 다행히 재미있었고 적성에 맞았다. 기능올림픽에서 매달을 따면 좋은 직장에 취업할 수 있다는 선배들 말에 공고 3년간 기술 훈련에 매진했고 3학년 때 지방기능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 메달 덕에 졸업도 하기 전 삼성전자에 덜컥 붙었고 재직 2년째였던 83년,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열린 27회 국제대회 기계제도 부문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삼성 직원으로는 처음 받은 메달인 터라 더욱 의미가 있었다.



“일에 대한 집념이 생겼어요. 남들보다 더 일하는 만큼 고속승진도 했고요. 그런데 회사 생활 10년째 되던 해에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땐 젊었으니까 자신감도 있었고요. ”

김 대표는 28살에 후배 4명과 10년간 모은 돈으로 간신히 산 작은 아파트를 담보로 회사를 차렸다.

“일은 정말 열심히 했는데 수주가 불규칙하니 매출에 기복이 심했어요. 고정 매출 유지를 위해 우리만의 차별화된 제품 개발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죠”

준비되지 않은 채 벌인 사업은 만만치 않았다. 협력사의 부도로 5년간은 빚만 갚기도 했다. 팔리는 제품을 만들기 위한 상품 개발에 투자하자 조금씩 길이 보였다. 몇 년 후 반도체제조장비와 산업용 X-RAY 검사기, 전자현미경(SEM) 등을 생산하며 튼실한 기업으로 컸고 27건의 특허도 따냈다. 작년 초에는 공간 해상도 1마이크로미터급의 ‘개방형 엑스레이 발생장치’ 기술로 국가 신기술 인증(NET)도 획득했다.



김 대표는 회사를 차린 후 기능대회 선수 출신 후배들을 많이 고용했고 회사가 이 정도 규모로 큰 데는 이들 한 명 한 명의 노고가 컸다고 말했다.

“요즘 대졸자들은 취직이 안 돼 문제지만 저희는 오히려 사람을 못 구해서 난립니다.”

김종현 대표는 말이 나온 김에 기능인에 대한 사회 인식에 대해서도 한 마디 했다.

“기능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고는 있지만 여전히 우리사회는 학력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재능, 하고 싶은 일 인데 말이죠. 아이들보다 먼저 부모들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 대표는 이젠 살만하지만 아들에게도 대학을 강요하진 않았다. 오히려 공부에는 별로 적성이 없었던 아들을 설득해 공고를 보냈고 현재 그의 회사에서 사원으로 재직 중이다. 앞으로도 후배 기능인 발굴과 성장에 힘써 사회에도 일조하고 싶다는 김 대표.



기능인으로써 초심을 잃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온 그는 “머리가 돌아가지 않을 때까지만 일할 생각이에요. 직원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일을 할 순 없잖아요? 하하” 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달의 기능 한국인’은 국내 우수 기능인 성공사례를 발굴해 널리 알리려고 2006년 8월 정부가 제정한 월례 포상 제도. 대상자 추천은 연중 수시로 한국산업인력공단 6개 지역본부 및 18개 지사와 노동부 지방관서에 구비서류를 갖춰 제출하면 된다. (www.hrdkore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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