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유연탄 3000만t 목숨걸고 캔다

등록 2009.06.24.
“앞으로 네 목숨은 우리 손에 있다. 늘 뒤통수를 조심해라.”

지난해 여름 어느 날. 인도네시아 동칼리만탄 주 쿠타이카르타르가라 군 로아쿨루 면에 위치한 LG상사의 MMP유연탄광 현장사무소에 이런 내용의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김성현 탄광 총무이사(40). 광산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인근 농장의 화교 세력과 갈등을 빚었던 일이 떠올랐다. 며칠 전에는 화교 세력을 지원하는 일부 현지 경찰과 군 장성까지 현장사무소에 직접 찾아와 “광산 개발을 중단하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갔다.

광산개발 전문가인 홍선표 현장소장(45)의 얼굴에도 근심의 그림자가 짙게 깔렸다. 그러나 여기서 중단할 수는 없었다. 홍 소장은 이 광산을 찾아내기 위해 2007년 10월부터 주변 원시림을 뒤지고 다녔다. 김 이사는 인근 주민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폭행을 당하는 봉변까지 감수했다. 두 사람은 유연탄을 처음 채굴하는 날까지 ‘주말의 휴식도 반납하자’고 다짐한 사이였다. 홍 소장은 김 이사에게 경호원을 붙이며 그대로 강행했다.

“광산 생활 20년째입니다. 결혼 생활의 절반 이상인 10년 동안 산속에서 탄(炭)만 캐며 살면서 깨달은 삶의 좌우명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벌여 놔야 수습도 된다’는 것입니다.”(홍 소장)

이창현 LG상사 현지법인장(40)은 이들의 절대적 후원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LG상사 본사도 이들 3인방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 1000만 달러(약 128억 원)의 추가 투자를 현장에서 요청받았을 때도 “모든 걸 믿고 맡기겠다”며 곧바로 승낙했다고 한다.

드디어 올해 1월 29일 여의도 면적(8.48km²·한강 둔치 및 하천 바닥 포함)보다 큰 10.14km²의 광산에서 유연탄이 처음 채굴됐다. 2월 13일에는 바지선(뗏목처럼 바닥만 있는 화물선)에 유연탄이 실려 한국 중국 일본 등으로 수출되기 시작했다.

구본준 LG상사 부회장은 지난해 10월과 올해 3월 두 차례나 이 광산을 직접 방문해 “한국 종합상사가 직접 광산을 개발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정말 대역사(大役事)를 이뤘다”고 격려했다.

이달 17일 기자가 MMP유연탄광 현장을 찾았을 때 8000t 규모의 바지선에 유연탄을 싣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유연탄을 다 선적하는 데만 20시간이 걸린다. 홍 소장은 “당초 목표는 연간 80만 t 생산이었지만 5월 중순 현재 벌써 50만 t을 넘어섰다. 연말까지 180만 t 생산도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내년 목표인 200만 t이 달성되면 LG상사가 얻는 연간 순이익만 약 1000억 원에 이른다. 이곳에 매장된 유연탄 총량은 약 3000만 t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연간 수입 발전용 유연탄 6500만 t의 절반 수준.

광산 입구에 있는 선적장에서 약 15km를 들어가니 광활한 노천탄광이 모습을 드러냈다. 20t 트럭 130여 대, 40t 트럭 30여 대, 굴삭기 30여 대가 쉴 새 없이 유연탄을 캐고 싣고 운반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현지 직원만 700여 명. 이 법인장은 “이 탄광은 지역에서 최고의 일자리로 손꼽힌다. 취직 못한 주민들이 ‘왜 나는 안 뽑아 주느냐’고 항의할 정도”라고 말했다.

인근 주민들의 이 탄광에 대한 인식도 우호적으로 변했다. 광산 개발 당시에는 비가 많이 와서 홍수가 났는데도 “광산 개발 때문에 물난리가 났다”며 항의하던 사람들이었다. 김 이사는 “유연탄 1t당 2.5달러를 지역지원기금으로 내놓는다. 이렇게 인근 12개 마을에 지원되는 돈이 마을당 연간 25만 달러에 이른다”고 말했다. 개별 마을에 대한 정부 지원금(약 10만 달러)의 2.5배나 되는 지원을 하는 것이다.

동아일보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앞으로 네 목숨은 우리 손에 있다. 늘 뒤통수를 조심해라.”

지난해 여름 어느 날. 인도네시아 동칼리만탄 주 쿠타이카르타르가라 군 로아쿨루 면에 위치한 LG상사의 MMP유연탄광 현장사무소에 이런 내용의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김성현 탄광 총무이사(40). 광산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인근 농장의 화교 세력과 갈등을 빚었던 일이 떠올랐다. 며칠 전에는 화교 세력을 지원하는 일부 현지 경찰과 군 장성까지 현장사무소에 직접 찾아와 “광산 개발을 중단하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갔다.

광산개발 전문가인 홍선표 현장소장(45)의 얼굴에도 근심의 그림자가 짙게 깔렸다. 그러나 여기서 중단할 수는 없었다. 홍 소장은 이 광산을 찾아내기 위해 2007년 10월부터 주변 원시림을 뒤지고 다녔다. 김 이사는 인근 주민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폭행을 당하는 봉변까지 감수했다. 두 사람은 유연탄을 처음 채굴하는 날까지 ‘주말의 휴식도 반납하자’고 다짐한 사이였다. 홍 소장은 김 이사에게 경호원을 붙이며 그대로 강행했다.

“광산 생활 20년째입니다. 결혼 생활의 절반 이상인 10년 동안 산속에서 탄(炭)만 캐며 살면서 깨달은 삶의 좌우명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벌여 놔야 수습도 된다’는 것입니다.”(홍 소장)

이창현 LG상사 현지법인장(40)은 이들의 절대적 후원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LG상사 본사도 이들 3인방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 1000만 달러(약 128억 원)의 추가 투자를 현장에서 요청받았을 때도 “모든 걸 믿고 맡기겠다”며 곧바로 승낙했다고 한다.

드디어 올해 1월 29일 여의도 면적(8.48km²·한강 둔치 및 하천 바닥 포함)보다 큰 10.14km²의 광산에서 유연탄이 처음 채굴됐다. 2월 13일에는 바지선(뗏목처럼 바닥만 있는 화물선)에 유연탄이 실려 한국 중국 일본 등으로 수출되기 시작했다.

구본준 LG상사 부회장은 지난해 10월과 올해 3월 두 차례나 이 광산을 직접 방문해 “한국 종합상사가 직접 광산을 개발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정말 대역사(大役事)를 이뤘다”고 격려했다.

이달 17일 기자가 MMP유연탄광 현장을 찾았을 때 8000t 규모의 바지선에 유연탄을 싣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유연탄을 다 선적하는 데만 20시간이 걸린다. 홍 소장은 “당초 목표는 연간 80만 t 생산이었지만 5월 중순 현재 벌써 50만 t을 넘어섰다. 연말까지 180만 t 생산도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내년 목표인 200만 t이 달성되면 LG상사가 얻는 연간 순이익만 약 1000억 원에 이른다. 이곳에 매장된 유연탄 총량은 약 3000만 t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연간 수입 발전용 유연탄 6500만 t의 절반 수준.

광산 입구에 있는 선적장에서 약 15km를 들어가니 광활한 노천탄광이 모습을 드러냈다. 20t 트럭 130여 대, 40t 트럭 30여 대, 굴삭기 30여 대가 쉴 새 없이 유연탄을 캐고 싣고 운반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현지 직원만 700여 명. 이 법인장은 “이 탄광은 지역에서 최고의 일자리로 손꼽힌다. 취직 못한 주민들이 ‘왜 나는 안 뽑아 주느냐’고 항의할 정도”라고 말했다.

인근 주민들의 이 탄광에 대한 인식도 우호적으로 변했다. 광산 개발 당시에는 비가 많이 와서 홍수가 났는데도 “광산 개발 때문에 물난리가 났다”며 항의하던 사람들이었다. 김 이사는 “유연탄 1t당 2.5달러를 지역지원기금으로 내놓는다. 이렇게 인근 12개 마을에 지원되는 돈이 마을당 연간 25만 달러에 이른다”고 말했다. 개별 마을에 대한 정부 지원금(약 10만 달러)의 2.5배나 되는 지원을 하는 것이다.

동아일보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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