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서 옷팔던 고졸 청년 이제는 뉴욕을 넘본다

등록 2009.11.03.
(박제균 앵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1월 3일 동아 뉴스 스테이션입니다.

요즘 최고 인기 직장은 공기업 같은 고용이 안정된 곳이라고 합니다. 젊음의 상징이었던 모험과 도전정신이 아쉽단 얘기가 많습니다.

(김현수 앵커) 그래서일까요. 요즘 디자이너 최범석 씨에겐 청년들을 위한 강연 요청이 많습니다. 고졸 학력으로 동대문 시장을 넘어 스타 디자이너가 된 그의 인생역정 때문인데요, 최근 뉴욕시장에 도전한 최범석 씨를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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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파리, 밀라노 컬렉션.

이벤트 같지만, 냉혹한 적자생존의 세계입니다. 바이어들은 컬렉션을 보고 주문 물량을 정합니다. 팔리지 않는 옷을 선보인 디자이너는 소리 없이 도태됩니다.

디자이너 최범석 씨도 이를 잘 압니다. 그럼에도 올해 뉴욕 컬렉션에 도전했고, 연말엔 현지 사무소도 냅니다.

(인터뷰) 최범석 대표 / 제너럴아이디어

"막 PR에 얼마, 뭐에 얼마, 세일즈에 얼마 들어가고 이렇게 들어가서 얼마 수익이 남고. 이렇게 계산을 했으면 아마 못 갔을 거예요. 그냥 간다, 가면 된다, 안 된다 두개로 나눠서 된다에 승부를 걸어서 그냥 가는 거예요."

최범석 씨는 이처럼 무모해 보이는 계산법으로 살아왔습니다.

고3때 노점상을 하다 종자돈 100만 원을 모두 날렸습니다. 부산과 의정부를 거쳐 동대문 시장에 들어갔습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원단 시장을 매일 돌며 동대문 `삼촌`, `이모` 들에게 묻고 또 물었습니다.

(인터뷰)

" 뭐든지 그런 거 같아요. 실패가 많으면 그만큼 성공할 확률도 높은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보다 동대문 들어가서 실패를 더 많이 했었어요. 아 이런 옷을 만들었더니 손님들이 안 좋아하는 구나라는 걸 먼저 알게 된 거예요. 그래서 그런 건 피해야겠다는 걸 알게 된 거죠."

동대문 대박매장 사장이 됐지만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이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습니다. 서울 컬렉션의 문을 두드렸고, 결국 압구정동에 진출해 스타 디자이너로 주목받았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장인 전부인 그는 `정통` 디자인을 어떻게 아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인터뷰)

" 학교에서 어떤 교수님한테 배우는 거랑, 공장에 게신 교수님한테 배우는 거랑 어떤 게 정통인지는 모르겠어요. 저는 그냥 원단에서 파시는 분들, 공장에서 미싱하시는 분들에게서 배운 거기 때문에 저는 그게 오히려 더 정통인 것 같아요."

얼마 전 한 대기업에서 `꿈`에 대한 강연을 부탁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첫 번째 바람은 7살 때, `떡 장사를 하는 어머니가 지붕 있는 가게를 가졌으면`이었습니다.

좀 `놀았던` 중학교 땐 `킬러`, 현실에 눈 뜬 고등학교 땐 옷장사로 돈을 버는 게 꿈이었습니다.

(인터뷰)

" 생존이었죠. 전 생존이었고, 그런 거 같아요. 그게, 보지 않으면 꿈을 가질 수 없잖아요. 어떻게 먹어보지 않은 음식 만들 수 없고, 보다보니까, 좀 더 큰 데를 보게 되고, 그 큰 데를 보다 보니까 거기서 또 크게 얘기하면 정복을 하고 싶어지고, 그러는 거잖아요. 그래서 계속 큰 걸 보고 가는 거죠."

많은 토종 한국디자이너들이 뉴욕을 뛰어넘으려 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습니다. 지금껏 애써 이룬 것까지 날리면 어쩌느냐는 질문에 요즘 읽고 있고 있다는 책을 보여줍니다.

(인터뷰)

" 책 보셨죠. 상상하면 이뤄진다. 상상하면 이루려고 되게 노력해요…돈 다 날려도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시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최악의 시나리오는 제가 아파서 쓰러지는 거고, 나머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란 없는 것 같아요."

동아일보 김현수입니다.

(박제균 앵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1월 3일 동아 뉴스 스테이션입니다.

요즘 최고 인기 직장은 공기업 같은 고용이 안정된 곳이라고 합니다. 젊음의 상징이었던 모험과 도전정신이 아쉽단 얘기가 많습니다.

(김현수 앵커) 그래서일까요. 요즘 디자이너 최범석 씨에겐 청년들을 위한 강연 요청이 많습니다. 고졸 학력으로 동대문 시장을 넘어 스타 디자이너가 된 그의 인생역정 때문인데요, 최근 뉴욕시장에 도전한 최범석 씨를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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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파리, 밀라노 컬렉션.

이벤트 같지만, 냉혹한 적자생존의 세계입니다. 바이어들은 컬렉션을 보고 주문 물량을 정합니다. 팔리지 않는 옷을 선보인 디자이너는 소리 없이 도태됩니다.

디자이너 최범석 씨도 이를 잘 압니다. 그럼에도 올해 뉴욕 컬렉션에 도전했고, 연말엔 현지 사무소도 냅니다.

(인터뷰) 최범석 대표 / 제너럴아이디어

"막 PR에 얼마, 뭐에 얼마, 세일즈에 얼마 들어가고 이렇게 들어가서 얼마 수익이 남고. 이렇게 계산을 했으면 아마 못 갔을 거예요. 그냥 간다, 가면 된다, 안 된다 두개로 나눠서 된다에 승부를 걸어서 그냥 가는 거예요."

최범석 씨는 이처럼 무모해 보이는 계산법으로 살아왔습니다.

고3때 노점상을 하다 종자돈 100만 원을 모두 날렸습니다. 부산과 의정부를 거쳐 동대문 시장에 들어갔습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원단 시장을 매일 돌며 동대문 `삼촌`, `이모` 들에게 묻고 또 물었습니다.

(인터뷰)

" 뭐든지 그런 거 같아요. 실패가 많으면 그만큼 성공할 확률도 높은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보다 동대문 들어가서 실패를 더 많이 했었어요. 아 이런 옷을 만들었더니 손님들이 안 좋아하는 구나라는 걸 먼저 알게 된 거예요. 그래서 그런 건 피해야겠다는 걸 알게 된 거죠."

동대문 대박매장 사장이 됐지만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이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습니다. 서울 컬렉션의 문을 두드렸고, 결국 압구정동에 진출해 스타 디자이너로 주목받았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장인 전부인 그는 `정통` 디자인을 어떻게 아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인터뷰)

" 학교에서 어떤 교수님한테 배우는 거랑, 공장에 게신 교수님한테 배우는 거랑 어떤 게 정통인지는 모르겠어요. 저는 그냥 원단에서 파시는 분들, 공장에서 미싱하시는 분들에게서 배운 거기 때문에 저는 그게 오히려 더 정통인 것 같아요."

얼마 전 한 대기업에서 `꿈`에 대한 강연을 부탁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첫 번째 바람은 7살 때, `떡 장사를 하는 어머니가 지붕 있는 가게를 가졌으면`이었습니다.

좀 `놀았던` 중학교 땐 `킬러`, 현실에 눈 뜬 고등학교 땐 옷장사로 돈을 버는 게 꿈이었습니다.

(인터뷰)

" 생존이었죠. 전 생존이었고, 그런 거 같아요. 그게, 보지 않으면 꿈을 가질 수 없잖아요. 어떻게 먹어보지 않은 음식 만들 수 없고, 보다보니까, 좀 더 큰 데를 보게 되고, 그 큰 데를 보다 보니까 거기서 또 크게 얘기하면 정복을 하고 싶어지고, 그러는 거잖아요. 그래서 계속 큰 걸 보고 가는 거죠."

많은 토종 한국디자이너들이 뉴욕을 뛰어넘으려 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습니다. 지금껏 애써 이룬 것까지 날리면 어쩌느냐는 질문에 요즘 읽고 있고 있다는 책을 보여줍니다.

(인터뷰)

" 책 보셨죠. 상상하면 이뤄진다. 상상하면 이루려고 되게 노력해요…돈 다 날려도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시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최악의 시나리오는 제가 아파서 쓰러지는 거고, 나머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란 없는 것 같아요."

동아일보 김현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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