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 in Uniform, 비하인드 스토리

등록 2010.04.15.
(박제균 앵커) `Men in Uniform`이란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줄여서 MIU라고도 하던데요. 군인이나 소방관, 경찰같이 제복을 입고 근무하는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김현수 앵커) MIU란 용어는 국가를 위해 제복을 입은 사람들의 노고와 희생을 재조명하자는 동아일보의 기획 보도로 널리 알려지게 됐는데요. 사회부 김윤종 기자에게 취재 과정을 들어보겠습니다. 김 기자. 왜 MIU를 주목하게 된 거죠?

(김윤종 기자)네. 천안함 실종자 구조작업 중 한주호 준위가 숨지면서 추모 열기가 뜨거웠는데요. 하지만 한국의 경우 나라를 위해서 희생한 사람들이 영웅 대접을 받다가도 금세 잊혀지거나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들의 희생을 제대로 평가하고 기억해야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우리사회 MIU들을 점검하게 됐습니다.

(박 앵커)네, 우리나라에서 MIU의 위상이 어떤가요?

(김 기자)네. 일단 외국 이야기부터 해야 될 것 같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MIU는 존경과 신뢰의 상징으로 통하는데요. 순직한 MIU는 영웅 대접을 받습니다. 금메달을 딴 김연아 선수처럼 말이죠. 미국은 상이용사를 메이저리그 개막전에 초대합니다. 각종 보상과 사회적 우대도 많습니다. 버스에서 자리가 없으면 노인에게는 양보하지 않지만, 훈장을 보면 자리를 양보할 정돈데요. 소방관이나 경찰관도 마찬가집니다. 경찰이 순직하면 시민들이 모여 애도를 표하고 기념관도 만듭니다. 현장에서 만난 외국 MIU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가에 대한 봉사는 제복을 입은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자긍심으로 돌아온다고요. 하지만 한국 MIU는 정반대였습니다.

(김 앵커) 그런가요? 취재해보니 한국 MIU의 상황은 어땠습니까?

(김 기자)존경을 받아야 할 한국 MIU의 현실은 한마디로 비참했습니다. 2002년 제2연평해전 기억하시죠? 당시 북한경비정에 맞서다 총에 맞아 손가락이 잘린 권기형 씨를 만났습니다. 권기형 씨는 영웅이기보다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있었습니다. 제대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불면증에 시달렸구요. 회사에 원서를 내도 "그 손으로 뭘 하냐"는 핀잔만 받았다고 합니다. 현재도 무직상태였습니다. 이런 현실이 그에게 자긍심마저 앗아간 것 같아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권기형 씨는 당시 받은 무공훈장을 장롱에 처박아 뒀다고 말했습니다.

유족들의 삶도 참 어려웠습니다. 중국 어선을 단속하다 숨진 해양경찰 박경조 경위(당시 48세) 가족을 방문했었는데요. 집에 걸린 훈장은 빛이 났지만 가족들의 표정은 참 어두웠습니다. 부인인 이선자 씨는 남편을 잃은 충격을 잊기 위해 두 아들과 고향을 떠나서 서울로 이사 온 상태였고요. 가장이 없다보니 생활비 걱정도 컸습니다.

(박 앵커) 한국과 외국,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거죠?

(김 기자)네.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직업` 1위가 소방관입니다. 군 장교는 5위, 경찰관은 7위구요. 한국은 소방관은 132위, 경찰관 104위, 군인 70위였는데요. 국내에서 MIU는 박봉과 격무에 시달리는 3D직업으로 통합니다. 실제 불길 속에 목숨을 걸고 일하는 소방관 위험수당은 월 5만 원에 불과합니다. 금전적 보상이 부족하면 명예라도 있어야 하는데 이마저 없는 것도 원인이었습니다. 흔히들 군인을 군바리, 경찰을 짭새라고 비하하는데요.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구요. 미국이나 유럽처럼 국민들이 MIU를 기릴 수 있는 여건이나 교육환경도 부족했습니다. 이러다보니 제가 만난 MIU들은 "자식이 이 직업을 갖겠다면 한사코 말린다"고 할 정도여서 안타까웠고요. 이제라도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을 지속적으로 조명할 수 있는 사회여건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컸습니다.

(김 앵커)정말 안타깝네요. 동아일보의 MIU 기획기사가 보도되자 반응이 뜨거웠다면서요?

(김 기자)네. 유족들에게 매달 20만 원씩 지원하겠다고 연락해온 산악회 회원들도 있었구요. 여러 국가유공자 가족들도 감사의 뜻을 전해왔습니다. 현직 경찰, 군인, 소방관들도 전화나 e메일로 연락해 왔는데요. "고생스러워서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았는데 큰 힘이 됐다"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국회에서 싸움질만 하지 말고 현실적인 지원대책을 세워라"라는 의견을 올리는 누리꾼들이 많았습니다. 한 여대생이 보낸 e메일이 기억나는데요. "MIU에 대한 관심이 냄비현상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적혀있었습니다.

(박 앵커)앞으로 MIU에 대한 추가 보도 계획도 가지고 계신가요?

(김 기자)네. 구체적으로 MIU들의 일상을 조명해보고 지원책이 뭔지 고민해볼 예정입니다. 이들이 부상당해도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 부족했는데요. 이런 부분도 점검하고요. 은퇴 후 갈 곳 없거나 사회 적응을 못하는 군인 경찰이 많습니다. MIU들의 은퇴 후 삶도 조명해볼 계획입니다. 그 외 해외 취재도 준비 중입니다.

(박 앵커) 시위대가 MIU에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행사하고, 조롱하는 나라엔 미래가 없죠. 김 기자, 좋은 기사, 수고 많았습니다.

(박제균 앵커) `Men in Uniform`이란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줄여서 MIU라고도 하던데요. 군인이나 소방관, 경찰같이 제복을 입고 근무하는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김현수 앵커) MIU란 용어는 국가를 위해 제복을 입은 사람들의 노고와 희생을 재조명하자는 동아일보의 기획 보도로 널리 알려지게 됐는데요. 사회부 김윤종 기자에게 취재 과정을 들어보겠습니다. 김 기자. 왜 MIU를 주목하게 된 거죠?

(김윤종 기자)네. 천안함 실종자 구조작업 중 한주호 준위가 숨지면서 추모 열기가 뜨거웠는데요. 하지만 한국의 경우 나라를 위해서 희생한 사람들이 영웅 대접을 받다가도 금세 잊혀지거나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들의 희생을 제대로 평가하고 기억해야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우리사회 MIU들을 점검하게 됐습니다.

(박 앵커)네, 우리나라에서 MIU의 위상이 어떤가요?

(김 기자)네. 일단 외국 이야기부터 해야 될 것 같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MIU는 존경과 신뢰의 상징으로 통하는데요. 순직한 MIU는 영웅 대접을 받습니다. 금메달을 딴 김연아 선수처럼 말이죠. 미국은 상이용사를 메이저리그 개막전에 초대합니다. 각종 보상과 사회적 우대도 많습니다. 버스에서 자리가 없으면 노인에게는 양보하지 않지만, 훈장을 보면 자리를 양보할 정돈데요. 소방관이나 경찰관도 마찬가집니다. 경찰이 순직하면 시민들이 모여 애도를 표하고 기념관도 만듭니다. 현장에서 만난 외국 MIU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가에 대한 봉사는 제복을 입은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자긍심으로 돌아온다고요. 하지만 한국 MIU는 정반대였습니다.

(김 앵커) 그런가요? 취재해보니 한국 MIU의 상황은 어땠습니까?

(김 기자)존경을 받아야 할 한국 MIU의 현실은 한마디로 비참했습니다. 2002년 제2연평해전 기억하시죠? 당시 북한경비정에 맞서다 총에 맞아 손가락이 잘린 권기형 씨를 만났습니다. 권기형 씨는 영웅이기보다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있었습니다. 제대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불면증에 시달렸구요. 회사에 원서를 내도 "그 손으로 뭘 하냐"는 핀잔만 받았다고 합니다. 현재도 무직상태였습니다. 이런 현실이 그에게 자긍심마저 앗아간 것 같아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권기형 씨는 당시 받은 무공훈장을 장롱에 처박아 뒀다고 말했습니다.

유족들의 삶도 참 어려웠습니다. 중국 어선을 단속하다 숨진 해양경찰 박경조 경위(당시 48세) 가족을 방문했었는데요. 집에 걸린 훈장은 빛이 났지만 가족들의 표정은 참 어두웠습니다. 부인인 이선자 씨는 남편을 잃은 충격을 잊기 위해 두 아들과 고향을 떠나서 서울로 이사 온 상태였고요. 가장이 없다보니 생활비 걱정도 컸습니다.

(박 앵커) 한국과 외국,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거죠?

(김 기자)네.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직업` 1위가 소방관입니다. 군 장교는 5위, 경찰관은 7위구요. 한국은 소방관은 132위, 경찰관 104위, 군인 70위였는데요. 국내에서 MIU는 박봉과 격무에 시달리는 3D직업으로 통합니다. 실제 불길 속에 목숨을 걸고 일하는 소방관 위험수당은 월 5만 원에 불과합니다. 금전적 보상이 부족하면 명예라도 있어야 하는데 이마저 없는 것도 원인이었습니다. 흔히들 군인을 군바리, 경찰을 짭새라고 비하하는데요.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구요. 미국이나 유럽처럼 국민들이 MIU를 기릴 수 있는 여건이나 교육환경도 부족했습니다. 이러다보니 제가 만난 MIU들은 "자식이 이 직업을 갖겠다면 한사코 말린다"고 할 정도여서 안타까웠고요. 이제라도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을 지속적으로 조명할 수 있는 사회여건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컸습니다.

(김 앵커)정말 안타깝네요. 동아일보의 MIU 기획기사가 보도되자 반응이 뜨거웠다면서요?

(김 기자)네. 유족들에게 매달 20만 원씩 지원하겠다고 연락해온 산악회 회원들도 있었구요. 여러 국가유공자 가족들도 감사의 뜻을 전해왔습니다. 현직 경찰, 군인, 소방관들도 전화나 e메일로 연락해 왔는데요. "고생스러워서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았는데 큰 힘이 됐다"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국회에서 싸움질만 하지 말고 현실적인 지원대책을 세워라"라는 의견을 올리는 누리꾼들이 많았습니다. 한 여대생이 보낸 e메일이 기억나는데요. "MIU에 대한 관심이 냄비현상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적혀있었습니다.

(박 앵커)앞으로 MIU에 대한 추가 보도 계획도 가지고 계신가요?

(김 기자)네. 구체적으로 MIU들의 일상을 조명해보고 지원책이 뭔지 고민해볼 예정입니다. 이들이 부상당해도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 부족했는데요. 이런 부분도 점검하고요. 은퇴 후 갈 곳 없거나 사회 적응을 못하는 군인 경찰이 많습니다. MIU들의 은퇴 후 삶도 조명해볼 계획입니다. 그 외 해외 취재도 준비 중입니다.

(박 앵커) 시위대가 MIU에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행사하고, 조롱하는 나라엔 미래가 없죠. 김 기자, 좋은 기사, 수고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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