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포커스<2>北 ‘때리고 어르기’ 이번에도 재미보나

등록 2010.07.14.


(박 앵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북한이 대외적 무력도발 뒤 돌연 대화를 제의하는 이중전술을 들고 나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요,

(구 앵커) 스튜디오에 신 차장이 나와 있습니다. 신 차장, 바로 지난해에도 북한은 국제사회에 대해 공세와 대화제의의 이중전술을 폈지요?

(신 차장) 예 그렇습니다. 북한은 지난해 4월에는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고 5월 2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한국과 미국을 강하게 압박했습니다. 그러나 7월부터 태도를 180도 바꿔 미국과 직접대화를 추진하고 8월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 빈소에 조문단을 내려 보내 연내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제의했습니다. 북한은 북미 대화 및 정상회담 논의가 자신들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자 올해 3월 26일 천안함 폭침 사건을 일으킨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분단 후 65년 동안 도발과 대화의 이중전술로 남한을 대해 온 것은 남북관계의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북한은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며 남북화해 무드를 조성하더니 1년 만에 대화를 중단했고 1974년 8월 15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 기도 사건 등 무력 도발을 강화했습니다. 1983년 아웅산 폭발 사건을 일으켰지만 1985년 비밀특사를 서울에 특파해 전두환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논의를 타진했습니다.

(박 앵커) 북한이 1990년대 벌인 1, 2차 핵 위기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도발과 대화의 반복이었죠.

(신 차장) 서훈 전 국가정보원 3차장은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벌인 핵 공갈과 협상과정을 `선군외교`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박사학위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악명(惡名) 유지→모호성 유지→벼랑 끝 대치→맞대응→위기관리→협상이라는 여섯 가지 전술을 반복적으로 사용해왔습니다. 2006년 10월 1차 핵 실험 이후 중국의 중재로 6자회담에 참여해 2007년 2·13합의와 10·3합의에 동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서 차장에 따르면 북한은 1차 핵 위기와 2차 핵 위기 때 대 여섯 가지 전술의 사이클을 각각 두세 차례 씩 이용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구 앵커) 그렇다면 북한이 이중전술을 통해 노리는 것이 무엇인가요.

(신 차장) 북한을 흔히 `실패한 국가` 또는 `실패 도상 국가`라고 부릅니다. 수령 절대주의 독재체제와 낡은 사회주의 시스템의 실패로 정상적인 국가운영을 통해 체제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핵으로 체제를 지키고 무력시위에 이은 대화를 통해 외부의 경제적 지원을 받으려는 것입니다.

북한이 남한에 대한 이중전술을 반복해 경제적인 이익을 추구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습니다. 코리아정책연구원의 강승규 박사는 1988년부터 2007년까지 남북관계 사건 6000건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지난해 고려대에 `탈냉전기 남북한 갈등과 협력에 관한 경험적 연구`라는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했습니다. 분석 결과를 들어보시겠습니다.

(인터뷰) 강승규 박사

"20년 동안 북한의 대남도발을 연구한 결과 대남도발을 많이 했을 때 대화제의를 같이 많이 유도했습니다. 도발을 하면서 대화를 제의하는 이중전략을 구사했다는 것이지요. 둘째는 이것을 통해 북한은 돈을 더 많이 벌었습니다. 20년 동안 10대 사건을 조사한 결과 사건 이후 4개월 이내에 더욱 남한에서 경제적 지원을 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이러한 사건들이 김정일 시대에 더욱 많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1990년대 경제위기를 대남갈등을 조장해서 극복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박 앵커)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 등 우방국에도 이 같은 전술을 사용합니까?

(신 차장) 예. 마치 과거 이승만 대통령이 북진통일론을 주장해 미국과의 동맹을 형성하고 지원을 받아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최근 우드로윌슨센터와 북한대학원대가 독일 문서보관소에서 발굴한 옛 동독의 북한 관련 외교문서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은 1975년 베트남 공산화 이후 내심으로는 무력을 통한 남한 공산화가 어렵다고 생각하면서도 중국에게는 "지금이 남침의 적기"라고 호언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문서발굴에 참여한 신종대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당시 김일성의 군사모험주의적 호전성은 동맹 강화용"이라고 말했습니다. 소련이나 중국에 모험주의를 포기했다는 확신을 주는 순간 북한의 전략적 가치와 협상력은 급격히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북한이 이런 `계산된 모험주의`를 포기하는 것은 일종의 `전략적 자살`과도 같다는 설명입니다. 천안함 사건 이후 중국이 적극적으로 북한을 비호한 것은 북한의 `계산된 모험주의`가 먹혀들었다는 얘기도 됩니다.

(구 앵커)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합니까.

(신 차장) 적을 알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법입니다. 정부는 우선 북한의 의도와 판에 박힌 이중전술을 꿰뚫어보고 이를 국민들에게 이해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들도 북한이 지금은 대화를 논하지만 언제 다시 무력도발을 감행할지 모른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북한의 사과와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과 재발방지 요구 등 기존의 원칙은 지켜나가고 북한이 요구한 대화에 적절히 응해 대화를 통한 비핵화와 남북관계 관리를 추구하는 지혜가 필요할 때입니다.

(박 앵커) 북한의 반복되는 `도발과 대화`의 이중전술에 그런 비밀이 있었군요. 신 차장, 수고했습니다.



(박 앵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북한이 대외적 무력도발 뒤 돌연 대화를 제의하는 이중전술을 들고 나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요,

(구 앵커) 스튜디오에 신 차장이 나와 있습니다. 신 차장, 바로 지난해에도 북한은 국제사회에 대해 공세와 대화제의의 이중전술을 폈지요?

(신 차장) 예 그렇습니다. 북한은 지난해 4월에는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고 5월 2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한국과 미국을 강하게 압박했습니다. 그러나 7월부터 태도를 180도 바꿔 미국과 직접대화를 추진하고 8월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 빈소에 조문단을 내려 보내 연내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제의했습니다. 북한은 북미 대화 및 정상회담 논의가 자신들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자 올해 3월 26일 천안함 폭침 사건을 일으킨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분단 후 65년 동안 도발과 대화의 이중전술로 남한을 대해 온 것은 남북관계의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북한은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며 남북화해 무드를 조성하더니 1년 만에 대화를 중단했고 1974년 8월 15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 기도 사건 등 무력 도발을 강화했습니다. 1983년 아웅산 폭발 사건을 일으켰지만 1985년 비밀특사를 서울에 특파해 전두환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논의를 타진했습니다.

(박 앵커) 북한이 1990년대 벌인 1, 2차 핵 위기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도발과 대화의 반복이었죠.

(신 차장) 서훈 전 국가정보원 3차장은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벌인 핵 공갈과 협상과정을 `선군외교`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박사학위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악명(惡名) 유지→모호성 유지→벼랑 끝 대치→맞대응→위기관리→협상이라는 여섯 가지 전술을 반복적으로 사용해왔습니다. 2006년 10월 1차 핵 실험 이후 중국의 중재로 6자회담에 참여해 2007년 2·13합의와 10·3합의에 동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서 차장에 따르면 북한은 1차 핵 위기와 2차 핵 위기 때 대 여섯 가지 전술의 사이클을 각각 두세 차례 씩 이용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구 앵커) 그렇다면 북한이 이중전술을 통해 노리는 것이 무엇인가요.

(신 차장) 북한을 흔히 `실패한 국가` 또는 `실패 도상 국가`라고 부릅니다. 수령 절대주의 독재체제와 낡은 사회주의 시스템의 실패로 정상적인 국가운영을 통해 체제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핵으로 체제를 지키고 무력시위에 이은 대화를 통해 외부의 경제적 지원을 받으려는 것입니다.

북한이 남한에 대한 이중전술을 반복해 경제적인 이익을 추구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습니다. 코리아정책연구원의 강승규 박사는 1988년부터 2007년까지 남북관계 사건 6000건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지난해 고려대에 `탈냉전기 남북한 갈등과 협력에 관한 경험적 연구`라는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했습니다. 분석 결과를 들어보시겠습니다.

(인터뷰) 강승규 박사

"20년 동안 북한의 대남도발을 연구한 결과 대남도발을 많이 했을 때 대화제의를 같이 많이 유도했습니다. 도발을 하면서 대화를 제의하는 이중전략을 구사했다는 것이지요. 둘째는 이것을 통해 북한은 돈을 더 많이 벌었습니다. 20년 동안 10대 사건을 조사한 결과 사건 이후 4개월 이내에 더욱 남한에서 경제적 지원을 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이러한 사건들이 김정일 시대에 더욱 많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1990년대 경제위기를 대남갈등을 조장해서 극복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박 앵커)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 등 우방국에도 이 같은 전술을 사용합니까?

(신 차장) 예. 마치 과거 이승만 대통령이 북진통일론을 주장해 미국과의 동맹을 형성하고 지원을 받아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최근 우드로윌슨센터와 북한대학원대가 독일 문서보관소에서 발굴한 옛 동독의 북한 관련 외교문서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은 1975년 베트남 공산화 이후 내심으로는 무력을 통한 남한 공산화가 어렵다고 생각하면서도 중국에게는 "지금이 남침의 적기"라고 호언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문서발굴에 참여한 신종대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당시 김일성의 군사모험주의적 호전성은 동맹 강화용"이라고 말했습니다. 소련이나 중국에 모험주의를 포기했다는 확신을 주는 순간 북한의 전략적 가치와 협상력은 급격히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북한이 이런 `계산된 모험주의`를 포기하는 것은 일종의 `전략적 자살`과도 같다는 설명입니다. 천안함 사건 이후 중국이 적극적으로 북한을 비호한 것은 북한의 `계산된 모험주의`가 먹혀들었다는 얘기도 됩니다.

(구 앵커)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합니까.

(신 차장) 적을 알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법입니다. 정부는 우선 북한의 의도와 판에 박힌 이중전술을 꿰뚫어보고 이를 국민들에게 이해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들도 북한이 지금은 대화를 논하지만 언제 다시 무력도발을 감행할지 모른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북한의 사과와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과 재발방지 요구 등 기존의 원칙은 지켜나가고 북한이 요구한 대화에 적절히 응해 대화를 통한 비핵화와 남북관계 관리를 추구하는 지혜가 필요할 때입니다.

(박 앵커) 북한의 반복되는 `도발과 대화`의 이중전술에 그런 비밀이 있었군요. 신 차장,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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