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푸드 된장 만들기 체험

등록 2010.11.25.
[Travel Guide]

모든 것이 빨라지고 편리해진 요즘이지만, 시간과 정성이 녹아들어야만 제 맛을 내는 것이 있다. 열 달의 인내심으로 빚어낸 그윽한 된장 맛을 ‘슬로시티’로 이름난 전남 담양에서 만났다.

푸른 대나무숲의 고장 전남 담양. 사시사철 자연 경관이 아름답고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유적이 잘 보존돼 있어 우리 것을 찾는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한국의 멋과 아름다움을 고루 느낄 수 있는 담양의 자랑거리 중 빠트릴 수 없는 것이 담양군 창평면의 기순도씨(61)가 만드는 ‘기순도 전통장’이다.

한 달 동안 메주를 발효시키고 다시 아홉 달 동안 숙성을 기다려 완성되는 된장 만드는 작업과 어울리게도 창평면은 완도 청산도, 신안 증도면, 장흥 유치면과 함께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슬로시티 지정을 받은 곳이다.

생각해보면 오랜 정성으로 빚어내는 한국의 된장, 간장, 고추장 같은 전통 장류야말로 슬로푸드의 대명사로 손꼽힐 만하다.



유기농 콩과 지하 암반수, 아홉 번 구운 죽염으로 만드는 장

서울에서 넉넉잡아 네 시간 걸리는 길.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오다 담양 IC가 보인다고 냉큼 나오면 담양읍으로 들어가게 되니 조금 더 가서 창평 IC에서 길을 갈아타고 달리다보면 기순도 전통장 이정표가 보인다.

원래는 감나무 밭 자리였다는 기씨의 집 마당에 들어서자 위풍당당하게 늘어선 수 백개의 장독이 눈에 들어온다. 마당 한 켠에 걸린 커다란 가마솥에서는 메주를 만들 콩들이 다섯 시간째 삶아지고 있는 중이다.

“담 양에서 나는 콩만으로는 모자라서 전남 지역에서 나오는 콩을 농협에서 사옵니다. 유기농 콩으로 따로 만드는 유기농 된장도 있어요. 된장 맛을 내는데 좋은 콩을 사는 것이 중요한 건 물론이죠. 전통 식품은 과정 하나하나, 재료 하나하나가 다 중요해요.”

기 순도 명인은 전남 곡성군 반송 마을의 기씨 집안(유학자 기대승 선생 후손)에서 태어나 창평 고씨 문중의 10대 종손에게 시집을 왔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남편은 동국대 불교학과를 나와 승려가 됐다가 부모의 성화로 결혼을 했다고 한다.

4대조 제사와 명절, 봄 가을 시제, 가족 생일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상을 차리고 집안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늘 음식을 넉넉히 장만해야 하는 종가 며느리로 살아온 세월이 올해로 39년째다.

집 앞 대나무 밭에서 남편이 구웠던 죽염을 넣어 장을 담갔더니 그 집 된장 맛있다는 소문이 났고 15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전통장 생산 판매를 시작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1년에 콩 50가마니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1천 가마니를 사들여 장을 만든다.

매 운 맛을 꺼려하는 외국인들을 위해 담양산 딸기를 넣은 딸기 고추장, 냄새나지 않는 분말 죽염 청국장, 물만 넣어 끓이면 즉석 우거지 된장국이 되는 우거지 들깨 된장 등 기씨가 가업을 잇고 있는 아들, 딸 삼남매와 함께 우리 전통 장을 응용, 개발해 내놓은 상품도 여럿이다. 2008년에는 농수산식품부가 지정하는 대한민국 식품명인에 이름을 올렸다.

잘 삶아진 콩이 식기 전에 절구 기계에 넣어 곱게 찧어서 들통에 담아 황토와 나무로 지은 2층 건물로 옮겼다. 기자가 담양을 찾은 11월은 콩을 사들이는 시기이고 본격적으로 메주를 만드는 것은 음력 동짓달인 12월 경이다.

“음력 동짓달 말(午)날로 날을 받아 햇콩을 쑤어 메주를 만들어 띄웁니다. 아랫목 온도(25∼30℃)에서 한 달 걸려 메주가 발효되면 음력 정월에 장을 담그지요.”

2 층에는 얼마 전 이곳을 찾아 장 만들기 체험을 한 이들이 만들어 짚으로 묶어 매달아 놓은 메주들이 보였다. 볏짚은 콩이 발효될 수 있도록 발효균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네모난 나무 틀 안에 콩 찧은 것을 다져넣어 메주 모양을 만들면서 기씨의 설명을 들었다.

“한 달 걸려 메주에 좋은 곰팡이가 생기면 흐르는 물에 빠른 속도로 씻어 햇볕에 바싹 말립니다.”

물 은 지하 150m에서 길어 올린 암반수를 쓴다. 하루 전에 물을 받아 숯을 띄워놓고 아홉 번 구운 죽염을 풀어 앙금을 가라앉힌다. 간장을 담글 장독은 미리 깨끗이 소독해 말린 후에 메주를 넣고 앙금을 가라앉힌 죽염수를 체에 받혀가며 독에 넣어주는데 이 때 죽염수의 염도를 잘 맞춰야 한다고.

“장항아리에 날계란을 띄워 너무 많이 뜨면 간장이 짜게 되고, 메주를 많이 넣어야 진한 맛이 우러난다고 시어머니께 배웠어요. 죽염을 사용하면 짠 맛이 덜하고 감칠맛이 더해져요.”

메 주에 소금물을 부은 후 숯, 빨간 고추, 대추, 댓잎을 띄우고 양지 바른 곳에 보관하고 60~90일(상태에 따라 일자 조정)이 지나면 간장과 메주를 분리한다. 간장물은 100℃ 이상 끓인 후 식혀서 독에 부어놓으면 간장이 되고 메주를 건져서 덩어리를 잘 풀고 메주가루를 섞어 항아리에 넣어 아홉 달을 더 숙성시키면 맛있는 된장이 된다.

오는 음력 동짓달에 담그는 된장은 내년 가을에나 맛을 보게 되는, 말 그대로 슬로푸드다.

1 백년 묵은 소나무와 담양의 명물 대나무가 둘러싼 맑은 공기, 100% 국내산 콩, 아홉 번 구운 죽염, 숨 쉬는 전통 옹기 장독, 150m 지하 암반수. 이 모든 것이 한 데 어우러져 한 번 먹어보면 꼭 다시 찾게 된다는 전통장맛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전통 음식으로 보면 간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이 된장인데 요즘은 된장이 더 각광을 받고 간장이 부산물 취급을 받네요. 요즘 젊은이들은 소금으로 간을 맞추는데 음식의 깊은 맛을 내려면 간장으로 간을 맞춰야 해요.”

기씨의 막내아들은 조선간장을 전공하는 식품영양학 박사 과정 중이라고 한다.

“자연 발효는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인위적으로 시간을 줄일 수 없다는 것이 된장이라는 음식의 가장 큰 특징이죠.”

그 시간 속에 녹아들어간 것이 바로 그의 된장을 먹어본 사람들이 말하는 ‘고향의 맛’인지도 모른다.



항암 효과 탁월하고 간 기능 회복에 좋은 전통 된장

부 글부글 끓인 구수한 된장찌개 한 뚝배기와 방금 지은 따뜻한 밥 한 사발이면 다른 반찬 없이도 맛있게 한 상 뚝딱 비워내는 한국 사람들. 한국인의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음식인 된장에는 건강에 좋은 영양성분과 몸에 유익한 효능이 풍부하다.

된장의 주성분인 콩에는 식물성 단백질과 우리 몸에 꼭 필요한 필수 아미노산인 리신이 많이 들어있어 식생활의 균형을 잡아준다.

밭 에서 나는 쇠고기라고 불리는 콩 속의 식물성 단백질은 발효과정에서 생성되는 단백질 분해효소에 의해 아미노산으로 분해되는데 이렇게 분해된 단백질을 섭취하면 소장에서의 흡수율이 육류의 흡수율보다 훨씬 높고 그냥 삶은 콩의 흡수율보다도 높다.

이 단백질 분해효소는 혈전을 용해하는 기능이 탁월해 심근경색, 뇌졸증 같은 혈관성 질환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된 장 속에 들어있는 레시틴은 혈관 내의 콜레스테롤이나 기름기 성분을 흡착해서 배설하는 기능이 있어 혈관에 노폐물이 끼는 것을 막아준다. 이 레시틴이 인체에서 분해되면 콜린 성분이 되는데 콜린으로 만들어지는 아세틸콜린은 중요한 신경세포 전달물질로 뇌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된장은 브레인 식품이기도 하다.

된 장의 또 다른 효능은 노화를 억제하는 것이다. 콩 속에 들어있는 생리활성물질인 이소플라본은 된장으로 발효되면서 흡수율이 더욱 높아지는데 이 성분은 세포에 손상을 끼쳐 각종 질환을 일으키는 활성산소를 방지하는 항산화 효과가 크다. 이소플라본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역할을 수행해 골다공증과 여성의 폐경기증후군을 방지하는 효능도 있다.

소화가 잘 되는 고단백질과 비만과 콜레스테롤 걱정이 필요 없는 지방, 풍부한 열량을 내는 탄수화물, 뛰어난 항암 작용과 항산화 작용을 하는 각종 비타민과 무기질 등 콩 속에 가득한 영양소가 발효라는 시간을 거치면서 몸에 더 잘 흡수되고 꼭 필요한 새로운 성분들을 만들어내는 된장. 가족의 건강을 아끼는 이들이라면 어떻게 하면 된장을 식탁 위에 자주 올려 맛있게 먹을 것인가만 고민하면 된다.



여/ 행/ 상/ 세/ 정/ 보/

[ 찾아가는 길 ]

서 울-담양을 연결하는 고속버스가 1일 2회 운행하고 소요시간은 3시간45분. 1일 6회 운행하는 서울-광주 구간 기차를 타고 가서 10분 간격 운행하는 광주-담양간 버스를 타도 된다. 자동차로 서울에서 출발하면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다 담양 JC에서 빠져나와 창평 IC로 나가면 창평면이다.

[ 주변 볼거리 ]

슬 로시티 삼지내 마을에서 세월이 멈춘 듯 평화로운 모습을 간직한 돌담길 사이를 걷다가 아름드리 고목이 서 있는 한옥 마당에 들어가 맑은 바람, 따사로운 햇빛을 느껴보자. 독특한 모양새의 토석담이 굽이굽이 이어지는 돌담길은 등록문화재 265호다. 전통수공업으로 만드는 창평쌀엿을 파는 집들이 군데군데 눈에 띈다.

담 양에서 전북 순창 가는 국도 24번 옆으로 전국에서 제일 아름다운 길로 꼽히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이 있다.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길 양쪽으로 하늘 향해 우람하게 두 팔 벌린 가로수가 빽빽하게 우거져 아늑한 산책길이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른 멋과 풍경을 만들어낸다. 자동차 통행은 옆 국도가 맡아주고 가로수 길은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걷거나 조용히 사색에 잠겨 거닐거나 자전거를 탈 수 있는 휴식의 공간이다.

가 사문학의 본고장으로도 유명한 담양에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지은 정자가 많은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이 사적 304호인 소쇄원이다.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조선시대 정원의 원형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소쇄원을 찾아갔다면 개울물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오게 만든 오곡문 옆 외나무다리를 건너 제월당 마루에 앉아 계곡을 한 눈에 내려다보며 바람이 숲을 어루만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봐야 한다.

TV 프로 ‘1박2일’에 나와서 더욱 유명해진 죽녹원에 가면 담양의 명물인 대나무숲 사이로 죽림욕을 즐길 수 있는 총 2.2km의 산책길이 있다. 죽녹원 옆으로는 소리 전수관인 우송당, 죽로차 제다실, 면앙정, 송강정 등의 정자가 어우러져 담양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죽향문화체험마을이 조성돼 있다.

[ 잠잘 곳 ]

슬 로시티 삼지내 마을의 민박집 한옥(061-382-3832)의 1백년 된 안채 건물과 별채, 사랑채에서 숙박을 할 수 있고 고풍스럽게 잘 가꾸어진 앞마당을 바라보며 전통차를 마실 수도 있다. 담양군 관광정보(http://tour.damyang.go.kr/)에서 숙박시설을 확인할 수 있다.

[ 먹을 거리 ]



담 양군 고읍리 한정식 전문 전통식당(061-382-3111)에서 남도 한정식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40여 가지 반찬과 담양떡갈비, 담양 특산품 죽순숙회가 나오고 다진 소고기와 참게알, 참게내장이 맛깔스럽게 조화를 이룬 참게장이 단연 명품이라 담양에 가면 꼭 들러봐야 할 맛집으로 꼽힌다.

담 양식 돼지갈비를 먹고 싶다면 승일식당(061-382-9011)을 추천한다. 간장양념으로 두 번 숯불에 구운 돼지갈비와 일인분씩 제공되는 반찬으로 구성되는 상차림은 생각보다 단출하지만 고기의 양과 맛으로 승부하기에 소문 듣고 찾아간 이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죽녹원 앞 담양 국수 거리에는 두툼한 면발의 멸치국수와 약계란을 찾는 이들로 항상 붐빈다.

글·오진영

사진·현일수

동영상·이지현

문의·CJ제일제당(080-850-2000 www.cj.co.kr)

[Travel Guide]

모든 것이 빨라지고 편리해진 요즘이지만, 시간과 정성이 녹아들어야만 제 맛을 내는 것이 있다. 열 달의 인내심으로 빚어낸 그윽한 된장 맛을 ‘슬로시티’로 이름난 전남 담양에서 만났다.

푸른 대나무숲의 고장 전남 담양. 사시사철 자연 경관이 아름답고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유적이 잘 보존돼 있어 우리 것을 찾는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한국의 멋과 아름다움을 고루 느낄 수 있는 담양의 자랑거리 중 빠트릴 수 없는 것이 담양군 창평면의 기순도씨(61)가 만드는 ‘기순도 전통장’이다.

한 달 동안 메주를 발효시키고 다시 아홉 달 동안 숙성을 기다려 완성되는 된장 만드는 작업과 어울리게도 창평면은 완도 청산도, 신안 증도면, 장흥 유치면과 함께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슬로시티 지정을 받은 곳이다.

생각해보면 오랜 정성으로 빚어내는 한국의 된장, 간장, 고추장 같은 전통 장류야말로 슬로푸드의 대명사로 손꼽힐 만하다.



유기농 콩과 지하 암반수, 아홉 번 구운 죽염으로 만드는 장

서울에서 넉넉잡아 네 시간 걸리는 길.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오다 담양 IC가 보인다고 냉큼 나오면 담양읍으로 들어가게 되니 조금 더 가서 창평 IC에서 길을 갈아타고 달리다보면 기순도 전통장 이정표가 보인다.

원래는 감나무 밭 자리였다는 기씨의 집 마당에 들어서자 위풍당당하게 늘어선 수 백개의 장독이 눈에 들어온다. 마당 한 켠에 걸린 커다란 가마솥에서는 메주를 만들 콩들이 다섯 시간째 삶아지고 있는 중이다.

“담 양에서 나는 콩만으로는 모자라서 전남 지역에서 나오는 콩을 농협에서 사옵니다. 유기농 콩으로 따로 만드는 유기농 된장도 있어요. 된장 맛을 내는데 좋은 콩을 사는 것이 중요한 건 물론이죠. 전통 식품은 과정 하나하나, 재료 하나하나가 다 중요해요.”

기 순도 명인은 전남 곡성군 반송 마을의 기씨 집안(유학자 기대승 선생 후손)에서 태어나 창평 고씨 문중의 10대 종손에게 시집을 왔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남편은 동국대 불교학과를 나와 승려가 됐다가 부모의 성화로 결혼을 했다고 한다.

4대조 제사와 명절, 봄 가을 시제, 가족 생일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상을 차리고 집안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늘 음식을 넉넉히 장만해야 하는 종가 며느리로 살아온 세월이 올해로 39년째다.

집 앞 대나무 밭에서 남편이 구웠던 죽염을 넣어 장을 담갔더니 그 집 된장 맛있다는 소문이 났고 15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전통장 생산 판매를 시작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1년에 콩 50가마니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1천 가마니를 사들여 장을 만든다.

매 운 맛을 꺼려하는 외국인들을 위해 담양산 딸기를 넣은 딸기 고추장, 냄새나지 않는 분말 죽염 청국장, 물만 넣어 끓이면 즉석 우거지 된장국이 되는 우거지 들깨 된장 등 기씨가 가업을 잇고 있는 아들, 딸 삼남매와 함께 우리 전통 장을 응용, 개발해 내놓은 상품도 여럿이다. 2008년에는 농수산식품부가 지정하는 대한민국 식품명인에 이름을 올렸다.

잘 삶아진 콩이 식기 전에 절구 기계에 넣어 곱게 찧어서 들통에 담아 황토와 나무로 지은 2층 건물로 옮겼다. 기자가 담양을 찾은 11월은 콩을 사들이는 시기이고 본격적으로 메주를 만드는 것은 음력 동짓달인 12월 경이다.

“음력 동짓달 말(午)날로 날을 받아 햇콩을 쑤어 메주를 만들어 띄웁니다. 아랫목 온도(25∼30℃)에서 한 달 걸려 메주가 발효되면 음력 정월에 장을 담그지요.”

2 층에는 얼마 전 이곳을 찾아 장 만들기 체험을 한 이들이 만들어 짚으로 묶어 매달아 놓은 메주들이 보였다. 볏짚은 콩이 발효될 수 있도록 발효균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네모난 나무 틀 안에 콩 찧은 것을 다져넣어 메주 모양을 만들면서 기씨의 설명을 들었다.

“한 달 걸려 메주에 좋은 곰팡이가 생기면 흐르는 물에 빠른 속도로 씻어 햇볕에 바싹 말립니다.”

물 은 지하 150m에서 길어 올린 암반수를 쓴다. 하루 전에 물을 받아 숯을 띄워놓고 아홉 번 구운 죽염을 풀어 앙금을 가라앉힌다. 간장을 담글 장독은 미리 깨끗이 소독해 말린 후에 메주를 넣고 앙금을 가라앉힌 죽염수를 체에 받혀가며 독에 넣어주는데 이 때 죽염수의 염도를 잘 맞춰야 한다고.

“장항아리에 날계란을 띄워 너무 많이 뜨면 간장이 짜게 되고, 메주를 많이 넣어야 진한 맛이 우러난다고 시어머니께 배웠어요. 죽염을 사용하면 짠 맛이 덜하고 감칠맛이 더해져요.”

메 주에 소금물을 부은 후 숯, 빨간 고추, 대추, 댓잎을 띄우고 양지 바른 곳에 보관하고 60~90일(상태에 따라 일자 조정)이 지나면 간장과 메주를 분리한다. 간장물은 100℃ 이상 끓인 후 식혀서 독에 부어놓으면 간장이 되고 메주를 건져서 덩어리를 잘 풀고 메주가루를 섞어 항아리에 넣어 아홉 달을 더 숙성시키면 맛있는 된장이 된다.

오는 음력 동짓달에 담그는 된장은 내년 가을에나 맛을 보게 되는, 말 그대로 슬로푸드다.

1 백년 묵은 소나무와 담양의 명물 대나무가 둘러싼 맑은 공기, 100% 국내산 콩, 아홉 번 구운 죽염, 숨 쉬는 전통 옹기 장독, 150m 지하 암반수. 이 모든 것이 한 데 어우러져 한 번 먹어보면 꼭 다시 찾게 된다는 전통장맛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전통 음식으로 보면 간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이 된장인데 요즘은 된장이 더 각광을 받고 간장이 부산물 취급을 받네요. 요즘 젊은이들은 소금으로 간을 맞추는데 음식의 깊은 맛을 내려면 간장으로 간을 맞춰야 해요.”

기씨의 막내아들은 조선간장을 전공하는 식품영양학 박사 과정 중이라고 한다.

“자연 발효는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인위적으로 시간을 줄일 수 없다는 것이 된장이라는 음식의 가장 큰 특징이죠.”

그 시간 속에 녹아들어간 것이 바로 그의 된장을 먹어본 사람들이 말하는 ‘고향의 맛’인지도 모른다.



항암 효과 탁월하고 간 기능 회복에 좋은 전통 된장

부 글부글 끓인 구수한 된장찌개 한 뚝배기와 방금 지은 따뜻한 밥 한 사발이면 다른 반찬 없이도 맛있게 한 상 뚝딱 비워내는 한국 사람들. 한국인의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음식인 된장에는 건강에 좋은 영양성분과 몸에 유익한 효능이 풍부하다.

된장의 주성분인 콩에는 식물성 단백질과 우리 몸에 꼭 필요한 필수 아미노산인 리신이 많이 들어있어 식생활의 균형을 잡아준다.

밭 에서 나는 쇠고기라고 불리는 콩 속의 식물성 단백질은 발효과정에서 생성되는 단백질 분해효소에 의해 아미노산으로 분해되는데 이렇게 분해된 단백질을 섭취하면 소장에서의 흡수율이 육류의 흡수율보다 훨씬 높고 그냥 삶은 콩의 흡수율보다도 높다.

이 단백질 분해효소는 혈전을 용해하는 기능이 탁월해 심근경색, 뇌졸증 같은 혈관성 질환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된 장 속에 들어있는 레시틴은 혈관 내의 콜레스테롤이나 기름기 성분을 흡착해서 배설하는 기능이 있어 혈관에 노폐물이 끼는 것을 막아준다. 이 레시틴이 인체에서 분해되면 콜린 성분이 되는데 콜린으로 만들어지는 아세틸콜린은 중요한 신경세포 전달물질로 뇌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된장은 브레인 식품이기도 하다.

된 장의 또 다른 효능은 노화를 억제하는 것이다. 콩 속에 들어있는 생리활성물질인 이소플라본은 된장으로 발효되면서 흡수율이 더욱 높아지는데 이 성분은 세포에 손상을 끼쳐 각종 질환을 일으키는 활성산소를 방지하는 항산화 효과가 크다. 이소플라본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역할을 수행해 골다공증과 여성의 폐경기증후군을 방지하는 효능도 있다.

소화가 잘 되는 고단백질과 비만과 콜레스테롤 걱정이 필요 없는 지방, 풍부한 열량을 내는 탄수화물, 뛰어난 항암 작용과 항산화 작용을 하는 각종 비타민과 무기질 등 콩 속에 가득한 영양소가 발효라는 시간을 거치면서 몸에 더 잘 흡수되고 꼭 필요한 새로운 성분들을 만들어내는 된장. 가족의 건강을 아끼는 이들이라면 어떻게 하면 된장을 식탁 위에 자주 올려 맛있게 먹을 것인가만 고민하면 된다.



여/ 행/ 상/ 세/ 정/ 보/

[ 찾아가는 길 ]

서 울-담양을 연결하는 고속버스가 1일 2회 운행하고 소요시간은 3시간45분. 1일 6회 운행하는 서울-광주 구간 기차를 타고 가서 10분 간격 운행하는 광주-담양간 버스를 타도 된다. 자동차로 서울에서 출발하면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다 담양 JC에서 빠져나와 창평 IC로 나가면 창평면이다.

[ 주변 볼거리 ]

슬 로시티 삼지내 마을에서 세월이 멈춘 듯 평화로운 모습을 간직한 돌담길 사이를 걷다가 아름드리 고목이 서 있는 한옥 마당에 들어가 맑은 바람, 따사로운 햇빛을 느껴보자. 독특한 모양새의 토석담이 굽이굽이 이어지는 돌담길은 등록문화재 265호다. 전통수공업으로 만드는 창평쌀엿을 파는 집들이 군데군데 눈에 띈다.

담 양에서 전북 순창 가는 국도 24번 옆으로 전국에서 제일 아름다운 길로 꼽히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이 있다.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길 양쪽으로 하늘 향해 우람하게 두 팔 벌린 가로수가 빽빽하게 우거져 아늑한 산책길이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른 멋과 풍경을 만들어낸다. 자동차 통행은 옆 국도가 맡아주고 가로수 길은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걷거나 조용히 사색에 잠겨 거닐거나 자전거를 탈 수 있는 휴식의 공간이다.

가 사문학의 본고장으로도 유명한 담양에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지은 정자가 많은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이 사적 304호인 소쇄원이다.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조선시대 정원의 원형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소쇄원을 찾아갔다면 개울물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오게 만든 오곡문 옆 외나무다리를 건너 제월당 마루에 앉아 계곡을 한 눈에 내려다보며 바람이 숲을 어루만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봐야 한다.

TV 프로 ‘1박2일’에 나와서 더욱 유명해진 죽녹원에 가면 담양의 명물인 대나무숲 사이로 죽림욕을 즐길 수 있는 총 2.2km의 산책길이 있다. 죽녹원 옆으로는 소리 전수관인 우송당, 죽로차 제다실, 면앙정, 송강정 등의 정자가 어우러져 담양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죽향문화체험마을이 조성돼 있다.

[ 잠잘 곳 ]

슬 로시티 삼지내 마을의 민박집 한옥(061-382-3832)의 1백년 된 안채 건물과 별채, 사랑채에서 숙박을 할 수 있고 고풍스럽게 잘 가꾸어진 앞마당을 바라보며 전통차를 마실 수도 있다. 담양군 관광정보(http://tour.damyang.go.kr/)에서 숙박시설을 확인할 수 있다.

[ 먹을 거리 ]



담 양군 고읍리 한정식 전문 전통식당(061-382-3111)에서 남도 한정식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40여 가지 반찬과 담양떡갈비, 담양 특산품 죽순숙회가 나오고 다진 소고기와 참게알, 참게내장이 맛깔스럽게 조화를 이룬 참게장이 단연 명품이라 담양에 가면 꼭 들러봐야 할 맛집으로 꼽힌다.

담 양식 돼지갈비를 먹고 싶다면 승일식당(061-382-9011)을 추천한다. 간장양념으로 두 번 숯불에 구운 돼지갈비와 일인분씩 제공되는 반찬으로 구성되는 상차림은 생각보다 단출하지만 고기의 양과 맛으로 승부하기에 소문 듣고 찾아간 이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죽녹원 앞 담양 국수 거리에는 두툼한 면발의 멸치국수와 약계란을 찾는 이들로 항상 붐빈다.

글·오진영

사진·현일수

동영상·이지현

문의·CJ제일제당(080-850-2000 www.c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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