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만에 만난 친정엄마, 그 옆엔 한 소녀가…

등록 2011.01.03.
(박제균 앵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월 3일 동아 뉴스 스테이션입니다.

2011년 신묘년 첫 소식은 한국에 시집온 지 11년 만에 고향 길에 오른 한 필리핀 여성의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구가인 앵커) 친정식구들에 대한 그리움도 물론 컸지만 고향에는 한국에 꼭 데려와야 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영상뉴스팀 신광영 기자가 필리핀 현지를 동행 취재했습니다.

***

친정집으로 가는 길. 11년이나 기다렸는데 비행기로 고작 4시간 거립니다.

마닐라 공항을 나온 펠리타엘 푸톤 씨가 누군가를 애타게 찾습니다.

고향인 바탄까지 가려면 차로 갈아타야해 친정엄마가 운전기사를 공항에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뜻밖의 상황이 벌어집니다.

푸톤 씨가 손수건에 얼굴을 묻은 한 여성을 끌어안습니다. 고향집에서 기다리겠다던 친정 엄맙니다.

그 옆에 한 소녀. 한국으로 시집하면서 두고 떠났던, 두 살 때 본 게 마지막이었던, 딸입니다. 엄마와 달리 딸은 덤덤합니다.

(인터뷰) 펠리타엘 푸톤

"너무 기분이 좋아가지고 눈물이 나와요. 보고 싶어 가지고."

차를 타고 마닐라 북서쪽으로 4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친정집.

집에 도착하자 푸톤 씨가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꺼냅니다.

줄 수 있는 건 헌옷뿐이지만 엄마의 선물이라 마냥 좋습니다.

미혼모였던 푸톤 씨는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면서 딸을 친정에 맡기고 와야 했습니다.

이름은 스위티 조이. `달콤한 기쁨`을 주겠다는 뜻으로 지어준 이름이지만 조이는 10년 넘게 엄마 없이 컸습니다.

푸톤 씨가 왔다는 소문에 친지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인터뷰) 펠리타엘 푸톤

"제가 11년 동안 못 먹었잖아요. 제가 엄마한테 `엄마, 우리 만나면 이거 꼭 가져와야 돼` 했어요. 제가 먹고 싶어가지고."

엄마 손맛이 그리웠을 딸을 위해 친정엄마는 며칠동안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너무 늦게 찾아온 한국인 사위는 송구한 표정으로 장모에게 건배를 권합니다.

(인터뷰) 김상수 / 푸톤 씨 남편

"잘 살면 매년 찾아오고 싶죠. 그러고 싶지만 그게 안돼요."

고향에 가지 못하는 동안 푸톤 씨의 아버지와 언니는 암으로, 오빠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습니다. 하지만 장례식엔 가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마저 건강이 악화돼 "엄마만큼은 살아있을 때 보고 싶다"는 사연이 수기공모전에 뽑혀 그 상금 덕에 친정에 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푸톤 씨가 고향에 가야하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11년 간 단 하루도 잊은 적이 없는 딸을 데려와야 했습니다.

(인터뷰) 김상수 / 푸톤 씨 남편

"내가 낳은 자식만 자식인가요. 상대편 아이들도 똑같이 해줘야죠. 그리고 아이들이 나이가 거의 맞잖아요. 조이가 여자니까 `누나` `누나` 하면서 잘 따를 거 같고."

난생 처음 외갓집에 온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동네 구경에 나섭니다.

동생들과 놀기 위해 조이도 따라 나섭니다. 한 배에서 나온 남매지만 아직은 서먹서먹합니다.

(인터뷰) 김규선 / 푸톤 씨 막내 아들

"(누나랑 노는 거 어색해?) 네."

한국에 시집 올 때만해도 금방 조이를 데려올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공사현장을 나가고 푸톤 씨는 산모도우미로 일하며 한달에 80만원 정도를 법니다.

그 돈으로 남편이 전 부인과 낳은 두 남매와 결혼 후 낳은 두 아들을 키우는 형편이라 조이를 데려오는 것은 물론 고향에 오는 것조차 엄두를 못 냈습니다.

(인터뷰) 펠리타엘 푸톤

"엄마가 `필리핀 언제 오냐` 하면 알았어, 가요. 가요. 내년에 가요. 또 내년에 돈 없어 못 가죠."

펠리타 씨도 어렸을 적 다른 도시의 공장에서 숙식하며 일했던 엄마와 몇 년 씩 떨어져 지냈습니다.

엄마의 빈자리가 어떤 것인지 펠리타 씨는 뼛속 깊이 알고 있습니다.

곧 중학생이 될 나이라 빨리 데려오지 않으면 조이가 한국에 적응하기가 더 힘들어집니다.

(인터뷰) 펠리타엘 푸톤

"어렸을 때 저도 똑같았어요. 엄마랑 떨어져서. 조이는 저랑 똑같으면 안돼요."

다음날 아침, 긴장된 표정의 푸톤 씨가 서류 봉투를 들고 어디론가 향합니다.

푸톤 씨 가족이 도착한 곳은 마을 동사무소. 조이의 여권을 만들기 위해섭니다.

새로운 한 가족으로 함께 한국에 가려면 여권이 꼭 필요합니다.

담당직원과의 1시간 넘게 상담을 했지만 푸톤 씨의 얼굴이 갈수록 굳어집니다.

뒤에 앉은 조이와 남편도 초조하게 바라봅니다.

여권이 나오려면 부모의 동의가 필요한데 황당하게도 조이의 출생신고서에 이름이 잘못 기재돼 모녀관계를 증명하기가 어려워 진겁니다.

(인터뷰) 펠리타엔 푸톤

"지금 조이 여권이 여기서는 해결이 안 된데요."

모녀관계를 법적으로 확인 받으려면 변호사를 고용해야 하는데 수백만 원이 듭니다. 엄두가 안 나는 거액입니다.

(인터뷰) 펠리타엘 푸톤

"아 또 눈물이 나오네. 어제 말처럼 똑같아요. 나는 엄마니까. 떨어지고 싶지 않아요."

힘없이 동사무소를 나온 푸톤 씨 가족들. 발걸음은 무겁지만 서로 맞잡은 손을 놓지 않습니다.

그날 오후, 의기소침한 푸톤 씨를 위해 남편이 바다로 소풍을 가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바다로 가는 도중 시장에도 들릅니다. 해변에서 구워먹을 생선과 고기를 사기 위해섭니다.

(인터뷰) 김상수 / 푸톤 씨 남편

"우리 한국 광주에선 잘 못 먹는 참치도 있고. 없는 게 없고 신통하네요."

차로 1시간을 달려 도착한 해변가. 한국에선 바다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 다들 기분이 들뜹니다.

어른들은 화로에 고기를 구우며 식사 준비가 한창이고 아이들은 바다로 달려듭니다.

서먹했던 세 남매가 며칠 새 많이 가까워졌습니다. 엄마 아빠도 물놀이에 가세합니다.

(현장음) 펠리타엘 푸톤

"아빠 온다! 피해! 피해!"

한국에서 떠나올 때 4명이었던 가족은 어느덧 5명이 됐습니다.

(인터뷰) 펠리타엘 푸톤

"빨리 빨리 여권 됐으면 좋겠는데… 한국 와야 되요. 그런 소원. 끝까지 포기 안 해요. 제가 엄마니까."

(박제균 앵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월 3일 동아 뉴스 스테이션입니다.

2011년 신묘년 첫 소식은 한국에 시집온 지 11년 만에 고향 길에 오른 한 필리핀 여성의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구가인 앵커) 친정식구들에 대한 그리움도 물론 컸지만 고향에는 한국에 꼭 데려와야 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영상뉴스팀 신광영 기자가 필리핀 현지를 동행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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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집으로 가는 길. 11년이나 기다렸는데 비행기로 고작 4시간 거립니다.

마닐라 공항을 나온 펠리타엘 푸톤 씨가 누군가를 애타게 찾습니다.

고향인 바탄까지 가려면 차로 갈아타야해 친정엄마가 운전기사를 공항에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뜻밖의 상황이 벌어집니다.

푸톤 씨가 손수건에 얼굴을 묻은 한 여성을 끌어안습니다. 고향집에서 기다리겠다던 친정 엄맙니다.

그 옆에 한 소녀. 한국으로 시집하면서 두고 떠났던, 두 살 때 본 게 마지막이었던, 딸입니다. 엄마와 달리 딸은 덤덤합니다.

(인터뷰) 펠리타엘 푸톤

"너무 기분이 좋아가지고 눈물이 나와요. 보고 싶어 가지고."

차를 타고 마닐라 북서쪽으로 4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친정집.

집에 도착하자 푸톤 씨가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꺼냅니다.

줄 수 있는 건 헌옷뿐이지만 엄마의 선물이라 마냥 좋습니다.

미혼모였던 푸톤 씨는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면서 딸을 친정에 맡기고 와야 했습니다.

이름은 스위티 조이. `달콤한 기쁨`을 주겠다는 뜻으로 지어준 이름이지만 조이는 10년 넘게 엄마 없이 컸습니다.

푸톤 씨가 왔다는 소문에 친지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인터뷰) 펠리타엘 푸톤

"제가 11년 동안 못 먹었잖아요. 제가 엄마한테 `엄마, 우리 만나면 이거 꼭 가져와야 돼` 했어요. 제가 먹고 싶어가지고."

엄마 손맛이 그리웠을 딸을 위해 친정엄마는 며칠동안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너무 늦게 찾아온 한국인 사위는 송구한 표정으로 장모에게 건배를 권합니다.

(인터뷰) 김상수 / 푸톤 씨 남편

"잘 살면 매년 찾아오고 싶죠. 그러고 싶지만 그게 안돼요."

고향에 가지 못하는 동안 푸톤 씨의 아버지와 언니는 암으로, 오빠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습니다. 하지만 장례식엔 가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마저 건강이 악화돼 "엄마만큼은 살아있을 때 보고 싶다"는 사연이 수기공모전에 뽑혀 그 상금 덕에 친정에 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푸톤 씨가 고향에 가야하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11년 간 단 하루도 잊은 적이 없는 딸을 데려와야 했습니다.

(인터뷰) 김상수 / 푸톤 씨 남편

"내가 낳은 자식만 자식인가요. 상대편 아이들도 똑같이 해줘야죠. 그리고 아이들이 나이가 거의 맞잖아요. 조이가 여자니까 `누나` `누나` 하면서 잘 따를 거 같고."

난생 처음 외갓집에 온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동네 구경에 나섭니다.

동생들과 놀기 위해 조이도 따라 나섭니다. 한 배에서 나온 남매지만 아직은 서먹서먹합니다.

(인터뷰) 김규선 / 푸톤 씨 막내 아들

"(누나랑 노는 거 어색해?) 네."

한국에 시집 올 때만해도 금방 조이를 데려올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공사현장을 나가고 푸톤 씨는 산모도우미로 일하며 한달에 80만원 정도를 법니다.

그 돈으로 남편이 전 부인과 낳은 두 남매와 결혼 후 낳은 두 아들을 키우는 형편이라 조이를 데려오는 것은 물론 고향에 오는 것조차 엄두를 못 냈습니다.

(인터뷰) 펠리타엘 푸톤

"엄마가 `필리핀 언제 오냐` 하면 알았어, 가요. 가요. 내년에 가요. 또 내년에 돈 없어 못 가죠."

펠리타 씨도 어렸을 적 다른 도시의 공장에서 숙식하며 일했던 엄마와 몇 년 씩 떨어져 지냈습니다.

엄마의 빈자리가 어떤 것인지 펠리타 씨는 뼛속 깊이 알고 있습니다.

곧 중학생이 될 나이라 빨리 데려오지 않으면 조이가 한국에 적응하기가 더 힘들어집니다.

(인터뷰) 펠리타엘 푸톤

"어렸을 때 저도 똑같았어요. 엄마랑 떨어져서. 조이는 저랑 똑같으면 안돼요."

다음날 아침, 긴장된 표정의 푸톤 씨가 서류 봉투를 들고 어디론가 향합니다.

푸톤 씨 가족이 도착한 곳은 마을 동사무소. 조이의 여권을 만들기 위해섭니다.

새로운 한 가족으로 함께 한국에 가려면 여권이 꼭 필요합니다.

담당직원과의 1시간 넘게 상담을 했지만 푸톤 씨의 얼굴이 갈수록 굳어집니다.

뒤에 앉은 조이와 남편도 초조하게 바라봅니다.

여권이 나오려면 부모의 동의가 필요한데 황당하게도 조이의 출생신고서에 이름이 잘못 기재돼 모녀관계를 증명하기가 어려워 진겁니다.

(인터뷰) 펠리타엔 푸톤

"지금 조이 여권이 여기서는 해결이 안 된데요."

모녀관계를 법적으로 확인 받으려면 변호사를 고용해야 하는데 수백만 원이 듭니다. 엄두가 안 나는 거액입니다.

(인터뷰) 펠리타엘 푸톤

"아 또 눈물이 나오네. 어제 말처럼 똑같아요. 나는 엄마니까. 떨어지고 싶지 않아요."

힘없이 동사무소를 나온 푸톤 씨 가족들. 발걸음은 무겁지만 서로 맞잡은 손을 놓지 않습니다.

그날 오후, 의기소침한 푸톤 씨를 위해 남편이 바다로 소풍을 가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바다로 가는 도중 시장에도 들릅니다. 해변에서 구워먹을 생선과 고기를 사기 위해섭니다.

(인터뷰) 김상수 / 푸톤 씨 남편

"우리 한국 광주에선 잘 못 먹는 참치도 있고. 없는 게 없고 신통하네요."

차로 1시간을 달려 도착한 해변가. 한국에선 바다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 다들 기분이 들뜹니다.

어른들은 화로에 고기를 구우며 식사 준비가 한창이고 아이들은 바다로 달려듭니다.

서먹했던 세 남매가 며칠 새 많이 가까워졌습니다. 엄마 아빠도 물놀이에 가세합니다.

(현장음) 펠리타엘 푸톤

"아빠 온다! 피해! 피해!"

한국에서 떠나올 때 4명이었던 가족은 어느덧 5명이 됐습니다.

(인터뷰) 펠리타엘 푸톤

"빨리 빨리 여권 됐으면 좋겠는데… 한국 와야 되요. 그런 소원. 끝까지 포기 안 해요. 제가 엄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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