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 이해인 수녀, “각오는 했지만 힘들었다”

등록 2011.04.08.
이해인 수녀, 암 투병 중 산문집 발간

3년째 암 투병 중인 이해인 수녀가 산문집을 냈다. 몇 년 새 여러 매체에 기고했던 글과 근래의 노트에서 길어 올린 글들을 한데 엮은 희망과 감사의 메시지다. 산문집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 소설가 박완서씨에 대한 애틋함도 담겼있다.특히 서문을 고 박완서 작가가 지난해에 남긴 편지로 대신할 정도로 고인과는 각별한 관계였다. 그는 투병 중이던 그의 정신적 언덕들이 떠날 때“각오를 안 한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신앙이 아니라면 참 극복하기 힘들더라”고 털어놨다. 투병 중에도 밝은 미소를 잃지 않은 이해인 수녀를 만났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

카톨릭에서는 요즘이 부활절을 앞둔 사순절이다. 그래서 조용하고 절제된 생활을 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병원에 갈 일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서울에 올라왔다. 새 책『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가 생각보다 일찍 언론에 공개 돼서 조금 바빠지기도 했지만, 그 동안은 내가 있는 부산의 수녀원에서 조용한 일과를 보냈다. 산책도 하고, 기도하고, 주변 정리도 하면서.

건강은 어떠신지? 뵙기에는 좋아 보이시는데.

그러게, 나보고 다들 암환자 맞냐고 그래.(웃음) 아무렇지도 않아 보인다고. 수술한 지 이제 2년 반 정도 됐으니까 그 동안 제일 힘든 방사선, 항암 치료를 마치고 약을 18개월 정도 먹다가 근래에는 약도 조금 줄였다. 그러다 보니까 컨디션이 좋아지는 것 같다. 사실 가려 먹고 더 노력을 해야 하는데 또 살만하니까 그렇게 안 되더라. 어쨌든 일상 생활하는 데 큰 불편함은 없다. 의학적으로 그렇게 썩 좋은 판정을 받은 것은 아닌데 비해서 내가 잘 견디니까 주변의 많은 분들이 내 힘이 아니라 주변에서 날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잘 버티는 것 같다고 덕담을 해 주신다.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고통이 오히려 축복이 됐다’고 했다. 아픈 후에야 ‘희망을 알게 됐다’고. 언뜻 역설적으로 들리는 데.

그 전에도 물론 희망이라던가 감사, 기쁨을 많이 느끼며 살았다. 그렇지만 고통이 축복이 된다는 건 예전에는 내가 경험해 보지 못했고, 나도 남의 얘기인 줄로만 알았지. 그랬는데 내가 그 입장이 되니까 정말 그럴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수도자니까 윤리도덕적으로 억지로 쥐어짜서 아닌데도 보여주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니라 고통에도 희망이 있고, 축복이 있다는 걸 정말 절실하게 느꼈다. 나는 고통의 학교에서 수련을 하는 학생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고.

요즘은 하루하루를 보물찾기하는 마음으로 산다. 매일이 내게는 보물섬 같다. 이 책에 쓰인 ‘아픔을 승화시킨 삶의 기쁨’이라던가, ‘눈물로 키운 삶의 힘’ 같은 표현들을 체험하고 있다. 내가 아프지 않았으면 경험하지 못했을 것들을. 마음 먹기에 따라서 전과는 다른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고 더 많이 감사하고 기뻐하고, 다른 사람을 더 넓은 안목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된 거지.

신간의 서문을 고 박완서 작가가 지난해에 남긴 편지로 대신했다. 꽃과 나비가 그려진 편지지에 박완서 작가가 자필로 쓰신 걸 그대로 실었다. ‘사랑하는 이해인 수녀님’으로 시작하는 편지다.

내용도 찡하고, 참 마음 아픈 일이지. 당신이 살아 계셨으면 직접 서문을 써 주셨을 텐데. 이 편지지만 봐도 마음이 아픈 게, 박완서 선생님이 우리 수녀원에 오셨을 때 지인한테 편지 쓰시라고 내가 방에 살짝 가져다 놓은 종이거든. 그걸 세상에, 당신이 다른 종이가 없으니까 여기다가 쓰신 거다.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용돈도 여기에 넣고 접어가지고 나한테 주셨다. 여기 ‘그때는 따뜻한’ 이런 표현은 우리한테 시켜주신 자장면이 다 식었으니까, 내년에는 따뜻한 자장면 또 같이 먹자고 하신 건데, 그 약속을 못 지키고 가셨지, 음.

상실감이 크시겠다. 박완서 작가 말고도 마음의 지기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이 근래 세상을 많이 떠나셨으니.

정신적으로 기대는 언덕이셨던 분들이 차례로 떠나시니까 상실감이 크다. 요 몇 년 사이에 김점선 화백, 김수환 추기경님, 장영희 교수, 법정 스님, 이태석 신부님하고는 개인적인 친분은 따로 없었지만, 김형모 선생님도 그렇고 갑자기 떠나시니까. 각오를 안 한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신앙이 아니라면 참 극복하기 힘들더라, 마음도 급해지고. 나도 준비를 해야겠구나, 싶고.(웃음)

기도 많이 하셨겠다.

기도 밖에 없지. 기도하면서 마음을 다 잡고 평정심을 찾으려 애를 썼다. 내가 환자이다 보니까 우울하고 슬픈 표정을 지으면 너무 많은 분들에게 걱정을 끼치니까 일단 표정관리를 잘 해야한다.(웃음) 힘들어서 내가 방에서 혼자 우는 한이 있더라도 표정을 밝게 해야지 남한테 부담이 안 된다. 내가 큰 수도공동체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잘 버티냐고 하면 내가 대단히 훌륭해서가 아니라 기본 에너지가 있어서 잘 참을 수 있는 것 같다고 겸양의 뜻으로 말하곤 한다.

지난해에 이어 또 신작이 나온 건데, 글을 쓰는 게 고되시진 않나?

책을 내기 위해서 새로 쓴 글도 있지만 예전에 썼던 글들을 추린 것도 많다. 몇 년 동안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했던 것들, 최근에 쓴 묵상, 단상들. 또 올해는 우리 수녀원 설립 8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해서 의미가 있다. 또 박완서 선생님 영향도 좀 있다. 선생님이 지난해에 산문집『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내셨을 때부터 나도 이 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도 오랜만에 산문집을 내보면 어떨까 하고.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를 새로 엮으면서 컨셉트는 뭐였나?

수도자로서, 인간으로서 내가 사는 모습이 잘 압축된, 종합해 놓은 책인 것 같다. 지난해 냈던 시집『희망은 깨어 있네』가 주로 병상에서의 아픔을 표현했다면, 이 책은 내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습을 담백하게 적은 거라서 누구나 한번쯤 읽으면 삶을 사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특별히 재미있지는 않지만.(웃음)

내가 수녀이니까 많은 분들이 내 존재 자체를 엄숙하게 받아들이시는 것 같다. 그래서 예전에는 글에 종교적인 색채를 의도적으로 많이 빼곤 했다. 독자들에게 부담을 주지 말고 자연스럽고 친숙한 글을 쓰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이번 책은 반대로 수도자로서의 모습도 보여드리자 해서 묵상, 단상을 일부러 넣었다. 총 6장의 챕터로 돼 있는데 각 챕터마다 하나의 소책자라고 생각하시면 된다. 내 일상이 궁금하면 1장을 보면 되고, 수녀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면 3장을 보면 될 거다.

‘고운말 차림표’라고 별책부록처럼 넣은 것도 있다. 이건 내가 강연을 다니면서 축적된 이야기들이다. 내가 병원에 있을 때 샘터출판사 직원분들이 위로의 편지를 많이 보내줬다. 그래서 퇴원 후에 감사의 뜻으로 출판사 직원들한테 강의를 했는데 그게 반응이 좋았다. 그래서 그 때 강의한 걸 글로 풀고 보충을 좀 해서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월간 에 연재를 했다. ‘고운말 차림표’가 바로 그 내용이다.

수녀원 안에 ‘해인글방’이 있다던데 거기서 매일 글을 쓰시는 건가?

내가 하는 일의 이름이 문서선교라고 할까. 분류를 하자면 그런 건데 좀 딱딱하니까 수녀님들이 ‘해인글방’이라고 이름을 붙여줬다. 수녀원의 수방은 단순하게 옷장, 침대, 책장 하나씩 있는 곳이다. 나는 컴퓨터 작업도 해야 하니까 수녀원 입구에 있는 연수원 아래층에다 방 하나를 마련해 놓고 거기서 일을 한다. 글은 보통 침방에서 쓸 때가 많지만, 글방에서 반나절 정도 보낸다. 이메일 체크도 하고.

이메일을 많이 보내 주신다. 내 병을 걱정해서 몸에 좋은 것, 건강식품 같은 거 알려주시는 분들도 있고, 내 책을 읽고 독후감을 보내시거나 인생상담을 하시는 분들도 있다. 처음에는 답을 친절하게 해드렸는데 한계가 있더라고. 그런 분들에겐 이 책이 답장이 되지 않을까. ‘해인글방’이라고 알려지니까 보고 싶어서 멀리서 오시는 분들도 많다. 사진도 찍고 싶어하고. 수도원은 기도시간이라 던지 항상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까 면회 시간을 예약해서 오시면 자유롭게 구경하시고 차도 한 잔 하시고 갈 수 있다. 덕담도 나누면서 시간도 함께 보내고.

하루하루가 바쁘시겠다.

바빠, 은근히.(웃음) 환자가 돼도 바쁘더라고. 누워서 들으라고 CD도 많이 보내주시는데 보통 때는 음악 들을 시간이 없다.(웃음) 수도원은 규칙적인 생활을 하니까 `땡`하고 종치면 성당에 가야하고, 뭐 지루할 틈이 없다. 단순하지만 그 단순성 안에서 리드미컬한 스케줄을 소화해야 한다.

워낙 성격이 밝고 긍정적이신 것 같다.

나도 한때는 별명이 석고상이었다, 석고상. 새침하고 웃지도 않고 나 좋은 일만 하고 그랬는데 수도원에 와서 살면서 그렇게 살면 남에게 부담을 주겠구나 싶더라고. 밝고 씩씩하게 하니까 그게 더 좋은 것 같더라고. 앞으로 기운 없어지는 날이 오겠지. 그렇지만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건 힘이 있는 것이니까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정말 아름답다고 느끼나? 세상의 아름다운 면을 유독 잘 보시는 건가, 세상의 이러저러한 면을 다 아름답게 여기는 건가?

내 생각에는 아름답다는 게 아무 문제도 없고,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꽃밭 같은 것이 아니다. 신앙을 지닌 나 같은 사람의 관점에서는 탐욕에 눈이 멀어서 죄를 짓는 사람들의 잘못은 밉지만, 그럼에도 오죽하면 그런 잘못을 했을까 싶어 연민의 정을 느낀다. 내 나이쯤 되고 아픔을 경험한 입장에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내 일가친척같이 정겨운 생각이 든다. 그런 분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니까 아름다울 수밖에.

우리가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고 언젠가 다들 이 세상이라는 무대를 떠날 거다. 그렇게 서로 헤어질 때까지는 사랑하면서 열심히 다독여주고 서로의 약점과 아픔과 마음에 들지 않는 못마땅한 점까지도 품어 안으면서 살면은, 그것이 우리가 천국을 만들어가는 것 아닐까. 그렇게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키우기 위해서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 되는 거고. 정말 책이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우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도 부대낄 때 논어라던가, 성경에서 삶의 도움을 받는 순간이 많다. 책의 한 줄, 한 단어가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전환점이 되기도 하니까. 나는 굉장히 부족한 사람이지만 내 글을 통해서 삶에 변화가 왔다고 하시는 분을 만나면 기쁘거든. 그게 또 하나의 보람인 것 같다.

요새 기쁘고 즐거운 일은 뭔가?

요즘은 그냥 하루하루를 살고 견뎌가는 자체가 기쁘다. 백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하루라는 시간을 매일 내가 받아서 선과 진실과 평화와 행복과 나눔을 그려가는 것 같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주위 분들을 돕는 것 또한 기쁘다. 나에게 활력을 준다.

예를 들어 A라는 동료가 “아, 나는 그거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혼잣말을 했다고 치면, 나는 그걸 메모해 놨다가 내가 가지고 있는 거 중에서 찾아서 그 분한테 드린다. 아까울 수도 있는 거지만 나보다는 그 분한테 더 필요한 물건이고 더 유용하게 쓰일 테니까. 받는 분이 또 얼마나 기뻐하겠나. 줄 때도 잘난 척 으스대면서 “아깝지만 준다”가 아니라 “내가 기도하다가 문득 이게 수녀님한테 필요할 것 같더라”고 하면서 주면 서로 행복한 거다. 정말 사소한 것으로 인해서.

그런 감사와 행복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느끼는 환희심 같은 거. 불교용어지만 환희심이란 용어를 참 좋아한다. 또 내가 공인이다 보니 누가 나한테 안 좋은 말을 한 게 바람결에 들릴 때도 있다. 나로서는 억울하기도 하지만 원인제공은 내가 했으니까, 혹시라도 나도 모르게 허영심을 가지고 인기나 명예나 이런 것을 빙자해서 교만했을 지도 모르니 자중하라는 사인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면 그 또한 기쁘다. 이래도 기쁘고 저래도 기쁘고 감사하니까 웃으면서 살게 되더라고. 어떤 신부님이 삶이라는 게 ‘사랑하기 위해 주어진 얼마간의 자유시간’이라고 하셨듯이 사소하고 평범한 일들을 비범한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노력을 하고 싶다.

이미 더 할 수 없을 정도로 세상에 사랑을 나눠주고 계신걸.

마더 테레사도 그런 말을 했지만 인간이 많은 위대한 것을 할 수 없더라도 자기가 처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나의 모토다. 내가 아니면 누가 하나, 지금 아니면 언제 하나. 미루지 말고, 다음에 하자고 하지 말자는 거다. 박완서 선생님이 예전에 나한테 엽서를 보내셨는데 그런 말씀이 적혀 있었다. 선생님은 서울에서 사시고 난 부산에 있으니까 내가 ‘다음에 한번 보자’는 말을 자주 했던 모양이야. 선생님이 `그 다음이라는 게 언제 있느냐,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얼마나 더 만나겠냐`고 하셨다. 그 때 내가 강한 메시지를 받았다. 사랑이라는 게, 봉사라는 게 미루면 안 되고 느낌이 강하게 올 땐 해야 하는 거구나, 사랑은 재촉해서 할 수 있는 거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요즘 만날 사람은 만나고, 할 수 있는 건 하고 주변 정리를 한다. 요즘 시간도 있고, 내 건강이 허락될 때 하고 싶어서다. 또 착한 것만 가지고는 안되고 지혜의 덕이 필요한 것 같다. 난 이걸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가 해야 할 바를 깨우치는 게 지혜고, 그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게 지혜의 덕이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렇게 지혜의 덕을 잘 갈고 닦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가끔 따뜻한 유머도 필요하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우리는, 남이 나에게 어떻게 해 주기를 지나치게 바라기 때문에 실망하고 서로 험담하게 되는 것 같다. 그 사람이 해주기를 원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내가 먼저 그 행동을 하면 마음의 평화가 온다. 그것이 인간관계를 잘 빚는 지름길인 것 같다. 자신의 마음을 바꾸는 노력, 그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 같더라고.

마지막으로 이 책을 접할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해 주신다면.

내가 언젠가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읽어줘야 할 책’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종이에 쓴 책만 책이 아니다. 가족, 친지, 친구 모든 사람들이 다 책이라고 생각하면 암호처럼 풀어내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왜 우린 서로 다른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주위 사람들을 책이라고 생각하고 암호를 푸는 노력을 하다 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아름답고 기쁜 사랑과 희망의 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서로에게 잘 읽어주는 책이 되세요!

글= 유지영 (교보문고 북뉴스) jygetz@kyobobook.co.kr , twitter.com/jygetz

영상= 윤태진 (교보문고 북뉴스) taejin107@kyobobook.co.kr, 트위터 @taejin107

이해인 수녀, 암 투병 중 산문집 발간

3년째 암 투병 중인 이해인 수녀가 산문집을 냈다. 몇 년 새 여러 매체에 기고했던 글과 근래의 노트에서 길어 올린 글들을 한데 엮은 희망과 감사의 메시지다. 산문집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 소설가 박완서씨에 대한 애틋함도 담겼있다.특히 서문을 고 박완서 작가가 지난해에 남긴 편지로 대신할 정도로 고인과는 각별한 관계였다. 그는 투병 중이던 그의 정신적 언덕들이 떠날 때“각오를 안 한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신앙이 아니라면 참 극복하기 힘들더라”고 털어놨다. 투병 중에도 밝은 미소를 잃지 않은 이해인 수녀를 만났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

카톨릭에서는 요즘이 부활절을 앞둔 사순절이다. 그래서 조용하고 절제된 생활을 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병원에 갈 일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서울에 올라왔다. 새 책『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가 생각보다 일찍 언론에 공개 돼서 조금 바빠지기도 했지만, 그 동안은 내가 있는 부산의 수녀원에서 조용한 일과를 보냈다. 산책도 하고, 기도하고, 주변 정리도 하면서.

건강은 어떠신지? 뵙기에는 좋아 보이시는데.

그러게, 나보고 다들 암환자 맞냐고 그래.(웃음) 아무렇지도 않아 보인다고. 수술한 지 이제 2년 반 정도 됐으니까 그 동안 제일 힘든 방사선, 항암 치료를 마치고 약을 18개월 정도 먹다가 근래에는 약도 조금 줄였다. 그러다 보니까 컨디션이 좋아지는 것 같다. 사실 가려 먹고 더 노력을 해야 하는데 또 살만하니까 그렇게 안 되더라. 어쨌든 일상 생활하는 데 큰 불편함은 없다. 의학적으로 그렇게 썩 좋은 판정을 받은 것은 아닌데 비해서 내가 잘 견디니까 주변의 많은 분들이 내 힘이 아니라 주변에서 날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잘 버티는 것 같다고 덕담을 해 주신다.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고통이 오히려 축복이 됐다’고 했다. 아픈 후에야 ‘희망을 알게 됐다’고. 언뜻 역설적으로 들리는 데.

그 전에도 물론 희망이라던가 감사, 기쁨을 많이 느끼며 살았다. 그렇지만 고통이 축복이 된다는 건 예전에는 내가 경험해 보지 못했고, 나도 남의 얘기인 줄로만 알았지. 그랬는데 내가 그 입장이 되니까 정말 그럴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수도자니까 윤리도덕적으로 억지로 쥐어짜서 아닌데도 보여주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니라 고통에도 희망이 있고, 축복이 있다는 걸 정말 절실하게 느꼈다. 나는 고통의 학교에서 수련을 하는 학생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고.

요즘은 하루하루를 보물찾기하는 마음으로 산다. 매일이 내게는 보물섬 같다. 이 책에 쓰인 ‘아픔을 승화시킨 삶의 기쁨’이라던가, ‘눈물로 키운 삶의 힘’ 같은 표현들을 체험하고 있다. 내가 아프지 않았으면 경험하지 못했을 것들을. 마음 먹기에 따라서 전과는 다른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고 더 많이 감사하고 기뻐하고, 다른 사람을 더 넓은 안목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된 거지.

신간의 서문을 고 박완서 작가가 지난해에 남긴 편지로 대신했다. 꽃과 나비가 그려진 편지지에 박완서 작가가 자필로 쓰신 걸 그대로 실었다. ‘사랑하는 이해인 수녀님’으로 시작하는 편지다.

내용도 찡하고, 참 마음 아픈 일이지. 당신이 살아 계셨으면 직접 서문을 써 주셨을 텐데. 이 편지지만 봐도 마음이 아픈 게, 박완서 선생님이 우리 수녀원에 오셨을 때 지인한테 편지 쓰시라고 내가 방에 살짝 가져다 놓은 종이거든. 그걸 세상에, 당신이 다른 종이가 없으니까 여기다가 쓰신 거다.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용돈도 여기에 넣고 접어가지고 나한테 주셨다. 여기 ‘그때는 따뜻한’ 이런 표현은 우리한테 시켜주신 자장면이 다 식었으니까, 내년에는 따뜻한 자장면 또 같이 먹자고 하신 건데, 그 약속을 못 지키고 가셨지, 음.

상실감이 크시겠다. 박완서 작가 말고도 마음의 지기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이 근래 세상을 많이 떠나셨으니.

정신적으로 기대는 언덕이셨던 분들이 차례로 떠나시니까 상실감이 크다. 요 몇 년 사이에 김점선 화백, 김수환 추기경님, 장영희 교수, 법정 스님, 이태석 신부님하고는 개인적인 친분은 따로 없었지만, 김형모 선생님도 그렇고 갑자기 떠나시니까. 각오를 안 한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신앙이 아니라면 참 극복하기 힘들더라, 마음도 급해지고. 나도 준비를 해야겠구나, 싶고.(웃음)

기도 많이 하셨겠다.

기도 밖에 없지. 기도하면서 마음을 다 잡고 평정심을 찾으려 애를 썼다. 내가 환자이다 보니까 우울하고 슬픈 표정을 지으면 너무 많은 분들에게 걱정을 끼치니까 일단 표정관리를 잘 해야한다.(웃음) 힘들어서 내가 방에서 혼자 우는 한이 있더라도 표정을 밝게 해야지 남한테 부담이 안 된다. 내가 큰 수도공동체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잘 버티냐고 하면 내가 대단히 훌륭해서가 아니라 기본 에너지가 있어서 잘 참을 수 있는 것 같다고 겸양의 뜻으로 말하곤 한다.

지난해에 이어 또 신작이 나온 건데, 글을 쓰는 게 고되시진 않나?

책을 내기 위해서 새로 쓴 글도 있지만 예전에 썼던 글들을 추린 것도 많다. 몇 년 동안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했던 것들, 최근에 쓴 묵상, 단상들. 또 올해는 우리 수녀원 설립 8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해서 의미가 있다. 또 박완서 선생님 영향도 좀 있다. 선생님이 지난해에 산문집『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내셨을 때부터 나도 이 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도 오랜만에 산문집을 내보면 어떨까 하고.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를 새로 엮으면서 컨셉트는 뭐였나?

수도자로서, 인간으로서 내가 사는 모습이 잘 압축된, 종합해 놓은 책인 것 같다. 지난해 냈던 시집『희망은 깨어 있네』가 주로 병상에서의 아픔을 표현했다면, 이 책은 내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습을 담백하게 적은 거라서 누구나 한번쯤 읽으면 삶을 사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특별히 재미있지는 않지만.(웃음)

내가 수녀이니까 많은 분들이 내 존재 자체를 엄숙하게 받아들이시는 것 같다. 그래서 예전에는 글에 종교적인 색채를 의도적으로 많이 빼곤 했다. 독자들에게 부담을 주지 말고 자연스럽고 친숙한 글을 쓰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이번 책은 반대로 수도자로서의 모습도 보여드리자 해서 묵상, 단상을 일부러 넣었다. 총 6장의 챕터로 돼 있는데 각 챕터마다 하나의 소책자라고 생각하시면 된다. 내 일상이 궁금하면 1장을 보면 되고, 수녀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면 3장을 보면 될 거다.

‘고운말 차림표’라고 별책부록처럼 넣은 것도 있다. 이건 내가 강연을 다니면서 축적된 이야기들이다. 내가 병원에 있을 때 샘터출판사 직원분들이 위로의 편지를 많이 보내줬다. 그래서 퇴원 후에 감사의 뜻으로 출판사 직원들한테 강의를 했는데 그게 반응이 좋았다. 그래서 그 때 강의한 걸 글로 풀고 보충을 좀 해서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월간 에 연재를 했다. ‘고운말 차림표’가 바로 그 내용이다.

수녀원 안에 ‘해인글방’이 있다던데 거기서 매일 글을 쓰시는 건가?

내가 하는 일의 이름이 문서선교라고 할까. 분류를 하자면 그런 건데 좀 딱딱하니까 수녀님들이 ‘해인글방’이라고 이름을 붙여줬다. 수녀원의 수방은 단순하게 옷장, 침대, 책장 하나씩 있는 곳이다. 나는 컴퓨터 작업도 해야 하니까 수녀원 입구에 있는 연수원 아래층에다 방 하나를 마련해 놓고 거기서 일을 한다. 글은 보통 침방에서 쓸 때가 많지만, 글방에서 반나절 정도 보낸다. 이메일 체크도 하고.

이메일을 많이 보내 주신다. 내 병을 걱정해서 몸에 좋은 것, 건강식품 같은 거 알려주시는 분들도 있고, 내 책을 읽고 독후감을 보내시거나 인생상담을 하시는 분들도 있다. 처음에는 답을 친절하게 해드렸는데 한계가 있더라고. 그런 분들에겐 이 책이 답장이 되지 않을까. ‘해인글방’이라고 알려지니까 보고 싶어서 멀리서 오시는 분들도 많다. 사진도 찍고 싶어하고. 수도원은 기도시간이라 던지 항상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까 면회 시간을 예약해서 오시면 자유롭게 구경하시고 차도 한 잔 하시고 갈 수 있다. 덕담도 나누면서 시간도 함께 보내고.

하루하루가 바쁘시겠다.

바빠, 은근히.(웃음) 환자가 돼도 바쁘더라고. 누워서 들으라고 CD도 많이 보내주시는데 보통 때는 음악 들을 시간이 없다.(웃음) 수도원은 규칙적인 생활을 하니까 `땡`하고 종치면 성당에 가야하고, 뭐 지루할 틈이 없다. 단순하지만 그 단순성 안에서 리드미컬한 스케줄을 소화해야 한다.

워낙 성격이 밝고 긍정적이신 것 같다.

나도 한때는 별명이 석고상이었다, 석고상. 새침하고 웃지도 않고 나 좋은 일만 하고 그랬는데 수도원에 와서 살면서 그렇게 살면 남에게 부담을 주겠구나 싶더라고. 밝고 씩씩하게 하니까 그게 더 좋은 것 같더라고. 앞으로 기운 없어지는 날이 오겠지. 그렇지만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건 힘이 있는 것이니까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정말 아름답다고 느끼나? 세상의 아름다운 면을 유독 잘 보시는 건가, 세상의 이러저러한 면을 다 아름답게 여기는 건가?

내 생각에는 아름답다는 게 아무 문제도 없고,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꽃밭 같은 것이 아니다. 신앙을 지닌 나 같은 사람의 관점에서는 탐욕에 눈이 멀어서 죄를 짓는 사람들의 잘못은 밉지만, 그럼에도 오죽하면 그런 잘못을 했을까 싶어 연민의 정을 느낀다. 내 나이쯤 되고 아픔을 경험한 입장에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내 일가친척같이 정겨운 생각이 든다. 그런 분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니까 아름다울 수밖에.

우리가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고 언젠가 다들 이 세상이라는 무대를 떠날 거다. 그렇게 서로 헤어질 때까지는 사랑하면서 열심히 다독여주고 서로의 약점과 아픔과 마음에 들지 않는 못마땅한 점까지도 품어 안으면서 살면은, 그것이 우리가 천국을 만들어가는 것 아닐까. 그렇게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키우기 위해서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 되는 거고. 정말 책이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우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도 부대낄 때 논어라던가, 성경에서 삶의 도움을 받는 순간이 많다. 책의 한 줄, 한 단어가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전환점이 되기도 하니까. 나는 굉장히 부족한 사람이지만 내 글을 통해서 삶에 변화가 왔다고 하시는 분을 만나면 기쁘거든. 그게 또 하나의 보람인 것 같다.

요새 기쁘고 즐거운 일은 뭔가?

요즘은 그냥 하루하루를 살고 견뎌가는 자체가 기쁘다. 백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하루라는 시간을 매일 내가 받아서 선과 진실과 평화와 행복과 나눔을 그려가는 것 같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주위 분들을 돕는 것 또한 기쁘다. 나에게 활력을 준다.

예를 들어 A라는 동료가 “아, 나는 그거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혼잣말을 했다고 치면, 나는 그걸 메모해 놨다가 내가 가지고 있는 거 중에서 찾아서 그 분한테 드린다. 아까울 수도 있는 거지만 나보다는 그 분한테 더 필요한 물건이고 더 유용하게 쓰일 테니까. 받는 분이 또 얼마나 기뻐하겠나. 줄 때도 잘난 척 으스대면서 “아깝지만 준다”가 아니라 “내가 기도하다가 문득 이게 수녀님한테 필요할 것 같더라”고 하면서 주면 서로 행복한 거다. 정말 사소한 것으로 인해서.

그런 감사와 행복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느끼는 환희심 같은 거. 불교용어지만 환희심이란 용어를 참 좋아한다. 또 내가 공인이다 보니 누가 나한테 안 좋은 말을 한 게 바람결에 들릴 때도 있다. 나로서는 억울하기도 하지만 원인제공은 내가 했으니까, 혹시라도 나도 모르게 허영심을 가지고 인기나 명예나 이런 것을 빙자해서 교만했을 지도 모르니 자중하라는 사인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면 그 또한 기쁘다. 이래도 기쁘고 저래도 기쁘고 감사하니까 웃으면서 살게 되더라고. 어떤 신부님이 삶이라는 게 ‘사랑하기 위해 주어진 얼마간의 자유시간’이라고 하셨듯이 사소하고 평범한 일들을 비범한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노력을 하고 싶다.

이미 더 할 수 없을 정도로 세상에 사랑을 나눠주고 계신걸.

마더 테레사도 그런 말을 했지만 인간이 많은 위대한 것을 할 수 없더라도 자기가 처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나의 모토다. 내가 아니면 누가 하나, 지금 아니면 언제 하나. 미루지 말고, 다음에 하자고 하지 말자는 거다. 박완서 선생님이 예전에 나한테 엽서를 보내셨는데 그런 말씀이 적혀 있었다. 선생님은 서울에서 사시고 난 부산에 있으니까 내가 ‘다음에 한번 보자’는 말을 자주 했던 모양이야. 선생님이 `그 다음이라는 게 언제 있느냐,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얼마나 더 만나겠냐`고 하셨다. 그 때 내가 강한 메시지를 받았다. 사랑이라는 게, 봉사라는 게 미루면 안 되고 느낌이 강하게 올 땐 해야 하는 거구나, 사랑은 재촉해서 할 수 있는 거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요즘 만날 사람은 만나고, 할 수 있는 건 하고 주변 정리를 한다. 요즘 시간도 있고, 내 건강이 허락될 때 하고 싶어서다. 또 착한 것만 가지고는 안되고 지혜의 덕이 필요한 것 같다. 난 이걸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가 해야 할 바를 깨우치는 게 지혜고, 그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게 지혜의 덕이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렇게 지혜의 덕을 잘 갈고 닦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가끔 따뜻한 유머도 필요하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우리는, 남이 나에게 어떻게 해 주기를 지나치게 바라기 때문에 실망하고 서로 험담하게 되는 것 같다. 그 사람이 해주기를 원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내가 먼저 그 행동을 하면 마음의 평화가 온다. 그것이 인간관계를 잘 빚는 지름길인 것 같다. 자신의 마음을 바꾸는 노력, 그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 같더라고.

마지막으로 이 책을 접할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해 주신다면.

내가 언젠가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읽어줘야 할 책’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종이에 쓴 책만 책이 아니다. 가족, 친지, 친구 모든 사람들이 다 책이라고 생각하면 암호처럼 풀어내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왜 우린 서로 다른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주위 사람들을 책이라고 생각하고 암호를 푸는 노력을 하다 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아름답고 기쁜 사랑과 희망의 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서로에게 잘 읽어주는 책이 되세요!

글= 유지영 (교보문고 북뉴스) jygetz@kyobobook.co.kr , twitter.com/jygetz

영상= 윤태진 (교보문고 북뉴스) taejin107@kyobobook.co.kr, 트위터 @taejin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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