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대한민국 1호 지하철

등록 2011.05.18.
지난달 13일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은 산업기술 관련 유물 50만점을 민간 수집가로부터 기증받았다. 한국의 산업기술의 발전사를 알리는 ‘산업기술문화공간’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이 엄청난 유물을 기증한 사람은 경기도 여주에서 테마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이우로(85) 씨다. 컴퓨터, 카메라, 방송·음향기기, 과학·의료기기 등, 대한민국 발전과 함께 최초로 수입된 희귀 산업기기들을 대거 보유하고 있다. 특히 1974년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개통 시승했던 대한민국 1호 지하철 12량도 소유하고 있다.

1974년, 일본 하다치사로부터 대당 6억 7천만 원을 주고 사들인 열차다. 1974년 8월 15일 서울역~청량리간 서울지하철 개통식이 열렸다. 이날은 앞서 장충동 국립극장 광복절 행사에서 육영수 여사가 저격에 쓰러진 날이기도 하다. 박 전 대통령은 육 여사가 쓰러진 뒤에도 개통식에 꼿꼿이 참석해 이 열차를 탔다. 그 정도로 지대한 관심을 보이던 ‘각하의 사업’이었다.

1999년, 25년간의 운행을 끝으로 이 열차는 퇴역했다. 이 씨는 지하철공사로부터 이 열차를 구입, 그의 집이자 박물관인 경기도 여주 대신면으로 옮겨 왔다.

덩치가 크고 운반 조건이 까다로워 옮기는 데만 1년이 넘게 걸렸다. 80톤이 넘는 지하철 중량 때문에 다리를 건널 수가 없어 먼 거리를 돌아야 했다. 운반 시간은 도로가 한산한 새벽 2시부터 4시까지만 허용 됐다. 낮 동안에는 갓길에 차를 세워두고 날을 꼬박 지새웠다. 전선이나 전화선도 큰 난관이었다. 운반비용 또한 어마어마하게 들었다. 10년 전 그가 지불한 객차 값은 대당 1200만원. 운송비는 유물 값을 넘어설 정도라고 한다.

객차는 비바람에 노출 되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퇴역한 객차 안에는 이제 승객 대신 객차와 함께 대한민국 발전에 이바지해온 산업유물들이 빼곡히 실려 있었다.

첫 번째 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1970년대 캐논에서 개발한 초창기의 노트북이었다. 10kg은 족히 넘어 보이는 사과상자만한 노트북에는 태잎식 기록 장치와 프린터기까지 달려있다.

6.25전쟁 때 스칸디나비아 의료진이 들어온 우리나라 최초의 수술대, 86년 아시안게임에서 한 기자가 사용해 세간을 놀라게 했던 아날로그 사진 전송기, 1945년 미군이 들여온 가장 오래된 X선 촬영기, 파고다 극장에서 흑백 영화를 상영하던 35mm영사기, 1980년 신군부의 언론통폐합 당시 문을 닫은 TBC방송국의 아날로그 카메라와 송출장비, 서울역 옛 청사 돔에 걸려있던 대형시계, 아웅산 폭발사건 때 사망한 장관들의 유품, 임진왜란 때 등장한 조총까지, 한국 근 현대사를 말해주는 각종 유품들이 12량의 객차 선반과 승객석에 가득 차 있었다.

황해도가 고향인 이 씨는 체신부 출입 기자였다. 언론인으로 역사의 현장에 서 있다 보니 역사를 증언할 유물이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게 안타까웠다. 그리고 보이는 데로 수집하기 시작했다.

열차의 마지막 칸 한쪽 끝에는 그가 자신에게 할애한 유일한 공간인 병실용 침상이 노여 있다. 올해로 85세가 된 그는 퇴역하는 산업 유물들과 함께 오늘도 이곳을 지키고 있다. 이 유물은 ‘산업기술문화공간’ 건립후 이전하여 전시, 교육, 체험 등에 활용될 예정이다.

동영상 뉴스팀 ㅣ 박태근 기자 ptk@donga.com

지난달 13일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은 산업기술 관련 유물 50만점을 민간 수집가로부터 기증받았다. 한국의 산업기술의 발전사를 알리는 ‘산업기술문화공간’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이 엄청난 유물을 기증한 사람은 경기도 여주에서 테마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이우로(85) 씨다. 컴퓨터, 카메라, 방송·음향기기, 과학·의료기기 등, 대한민국 발전과 함께 최초로 수입된 희귀 산업기기들을 대거 보유하고 있다. 특히 1974년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개통 시승했던 대한민국 1호 지하철 12량도 소유하고 있다.

1974년, 일본 하다치사로부터 대당 6억 7천만 원을 주고 사들인 열차다. 1974년 8월 15일 서울역~청량리간 서울지하철 개통식이 열렸다. 이날은 앞서 장충동 국립극장 광복절 행사에서 육영수 여사가 저격에 쓰러진 날이기도 하다. 박 전 대통령은 육 여사가 쓰러진 뒤에도 개통식에 꼿꼿이 참석해 이 열차를 탔다. 그 정도로 지대한 관심을 보이던 ‘각하의 사업’이었다.

1999년, 25년간의 운행을 끝으로 이 열차는 퇴역했다. 이 씨는 지하철공사로부터 이 열차를 구입, 그의 집이자 박물관인 경기도 여주 대신면으로 옮겨 왔다.

덩치가 크고 운반 조건이 까다로워 옮기는 데만 1년이 넘게 걸렸다. 80톤이 넘는 지하철 중량 때문에 다리를 건널 수가 없어 먼 거리를 돌아야 했다. 운반 시간은 도로가 한산한 새벽 2시부터 4시까지만 허용 됐다. 낮 동안에는 갓길에 차를 세워두고 날을 꼬박 지새웠다. 전선이나 전화선도 큰 난관이었다. 운반비용 또한 어마어마하게 들었다. 10년 전 그가 지불한 객차 값은 대당 1200만원. 운송비는 유물 값을 넘어설 정도라고 한다.

객차는 비바람에 노출 되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퇴역한 객차 안에는 이제 승객 대신 객차와 함께 대한민국 발전에 이바지해온 산업유물들이 빼곡히 실려 있었다.

첫 번째 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1970년대 캐논에서 개발한 초창기의 노트북이었다. 10kg은 족히 넘어 보이는 사과상자만한 노트북에는 태잎식 기록 장치와 프린터기까지 달려있다.

6.25전쟁 때 스칸디나비아 의료진이 들어온 우리나라 최초의 수술대, 86년 아시안게임에서 한 기자가 사용해 세간을 놀라게 했던 아날로그 사진 전송기, 1945년 미군이 들여온 가장 오래된 X선 촬영기, 파고다 극장에서 흑백 영화를 상영하던 35mm영사기, 1980년 신군부의 언론통폐합 당시 문을 닫은 TBC방송국의 아날로그 카메라와 송출장비, 서울역 옛 청사 돔에 걸려있던 대형시계, 아웅산 폭발사건 때 사망한 장관들의 유품, 임진왜란 때 등장한 조총까지, 한국 근 현대사를 말해주는 각종 유품들이 12량의 객차 선반과 승객석에 가득 차 있었다.

황해도가 고향인 이 씨는 체신부 출입 기자였다. 언론인으로 역사의 현장에 서 있다 보니 역사를 증언할 유물이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게 안타까웠다. 그리고 보이는 데로 수집하기 시작했다.

열차의 마지막 칸 한쪽 끝에는 그가 자신에게 할애한 유일한 공간인 병실용 침상이 노여 있다. 올해로 85세가 된 그는 퇴역하는 산업 유물들과 함께 오늘도 이곳을 지키고 있다. 이 유물은 ‘산업기술문화공간’ 건립후 이전하여 전시, 교육, 체험 등에 활용될 예정이다.

동영상 뉴스팀 ㅣ 박태근 기자 pt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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